<기획테마4>돈 권력 그리고 사람들

총수대신 총대 멘 2인자 현주소

재벌그룹 총수들은 저마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총알받이’가 되어 주는 심복을 두고 있다. 소위 ‘그림자’로 불리는 2인자들이다. 평상시 이들은 재벌총수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경영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위기상황에서는 본능에 가까운 충성심을 보이며 총수를 대신해 구속 수감되기도 하고 여론의 뭇매를 홀로 견뎌내기도 한다. ‘굴곡’을 거친 2인자들은 그룹 내에서의 위상은 더 높아진다. 총수의 ‘보호막’이 되어준 만큼 보상이 따르는 셈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만은 예외다. ‘보호막’이 되어줄 2인자가 없다. 이로 인해 정몽구 회장은 ‘그림자’가 없는 ‘설움’을 몸소 겪어 내야 한다. 재벌그룹 2인자의 면면을 살펴봤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그림자’는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 부회장이다. 이 전 부회장은 지난해 4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불거진 삼성특검 이후 이 전 회장과 함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이 일이 있기 전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 전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이 전 부회장은 부산상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뒤 지난 1971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이후 재무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전 회장의 신임을 받아 그룹의 핵심인 비서실로 입성했다. 삼성화재의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경영능력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능력을 인정받은 이 전 부회장은 1998년 비서실장 겸 구조조정본부 본부장에 취임, IMF 직후 위기 속에서 과감한 구조조정 작업을 통해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 전 부회장은 또한 ‘2인자’의 숙명인 ‘총알받이’ 역할도 충실히 수행,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지난 2003년에는 불법대선자금 385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또 2005년에는 안기부 X파일 사건이 터지면서 정경유착의 핵심인물로 부각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로 여론의 비난을 한 몸에 받기는 했지만 삼성과 이건희 전 회장을 보호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내에서의 위상은 더욱 굳건해졌다. 10년 이상 그룹의 사령탑 역할을 도맡았으며 이 전 회장의 인감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이 전 회장의 신임은 두터웠다.


최근까지도 이 전 부회장은 ‘삼성 X파일’과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의 정·관계 로비의혹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돼 법정에 섰지만 입을 굳게 다무는 모습으로 일관, 삼성과 이 전 회장의 ‘보호막’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이학수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도 ‘가신’이 있다. ‘부드러운 원칙주의자’란 별명을 가진 ‘기획통’ 강유식 (주)LG 부회장이다. 외유내강형 CEO인 강 부회장은 타의 추종을 부르는 탁월한 기획력으로 LG그룹에서 실세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최대규모인 68억6000달러의 외자를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구 회장의 눈에 들었다. 또 LG그룹 지주회사 출범, LG-GS그룹 분가 등도 총괄했다.

충심으로 ‘주군’을 모셔라

그러나 강 부회장도 역시 ‘2인자’로서 ‘주군의 보호막’ 역할은 피해갈 수는 없었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에 이른바 차떼기 수법으로 불법정치자금 150억원을 전달한 혐의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여론의 질타는 받았지만 그룹 내 강 부회장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지난 2004년 형이 확정돼 옥고를 치른 강 부회장은 지난 2005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특별 사면·복권된 후 다음 해에 (주)LG 대표로 복귀했다. 이후 지난 3월에는 이사회를 통해 대표이사로 재선임되면서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다.

SK그룹의 ‘2인자’는 손길승 명예회장이다. 손 명예회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그룹 회장직을 역임,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다. 지난 1965년 선경직물에 입사한 손 회장은 지난 1980년대 유공과 1990년대 한국이동통신 인수작업을 이끌었으며 지난 1998년에는 고 최종현 회장의 뒤를 이어 SK그룹 회장에 오르며 지난 2003년까지 SK그룹을 이끌기도 했다.


그런 손 회장도 지난 2004년 터진 SK사태(분식회계)와 1조원 유용 혐의로 구속되는 비운을 맞았다. ‘2인자’들이 그렇듯 총수 대신 총대를 멘 것이다. 이로 인해 손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그는 8개월간 수감생활을 한 후 보석으로 풀려났고 지난 2007년 8·15 특사로 사면됐다. 이후 손 회장은 지난해 명예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4년만에 SK그룹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을 보필하는 이는 구학서 부회장이다. 지난 2006년 11월 부회장으로 승진한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은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재무 전문가다. 구 부회장에 대한 재계의 평가는 ‘좋다’다. 일 잘하고 말 잘하고 모든 면에서 뒤처지는 게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신세계가 이뤄온 사업적 성과의 대부분은 구 부회장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후문이다.

‘주군’을 잘 만났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이 부회장이 ‘주군’을 위한 ‘보호막’ 역할을 한 것은 경영권 승계 부분으로, ‘잔펀치’ 정도였다. 이 회장이 큰 사고를 치지 않아 2인자로서 ‘방패막이’를 할 경우가 극히 없어 경영전략에 올인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구 부회장은 현재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절대적 신임 아래 ‘차세대 총수’인 정용진 부회장과 함께 실질적으로 신세계를 이끌고 있다.

이렇듯 재벌총수들은 누구나 자신을 옆에서 보필할 심복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이 부분에선 예외다. 방패막이가 되어 줄 ‘2인자’가 없다. 이런 이유로 정 회장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기아차엔 모두 11명의 부회장이 있지만 이들 중 누구도 2인자가 아니다. 몇몇 인사들이 정 회장을 보필할 인물로 거론되고 있지만 그룹 내 입지로 볼 때 모두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가신 없는 외로운 정 회장

정 회장의 고민은 그러나 자업자득이라는 분석이다. ‘실무형 경영자’ 스타일인 정 회장은 전문경영인에게 보고만 받지 않고 직접 현장에서 지휘하고 주요의사를 결정한다. 그런 만큼 정 회장이 모든 ‘실권’을 쥐고 있다. 굵직굵직한 현안들은 정 회장 자신이 직접 결정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실권을 나눠주지 않아 ‘2인자’를 키우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또한 ‘럭비공 인사’를 단행하면서 몸 바쳐 일할 가신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자신을 그림자처럼 수행할 ‘2인자’를 키우지 못한 정 회장은 지난 2007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을 실형 받는 등 크고 작은 ‘설움’을 몸소 겪어 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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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