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긋지긋하게 되풀이되는 것 중 하나가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열전’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전 대통령 아들의 비리가 드러나 시끌시끌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박연차 리스트에 오르고 검찰조사를 받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박 회장이 건넨 300만 달러가 건호씨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되면서 그도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처럼 법의 심판을 받는 수모를 겪을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함께 말 많고 탈 많았던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도 함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돌아봤다.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 박연차 회장과 연루 정황 포착
건호씨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3백만 달러 흘러 들어가
대통령 아들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고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사이에 자녀를 보지 못한 이 전 대통령은 이기붕 전 부통령의 아들 강석씨를 양자로 삼았다.
이로 인해 부통령의 아들에서 대통령의 아들이 된 강석씨의 비극은 4·19 혁명으로 이 전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낸 뒤 일어났다. 권총으로 이기붕 전 부통령과 어머니 박마리아, 그리고 동생 강욱씨를 차례로 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각종 유혹 떨치지 못해
줄줄이 이어진 구속 행진
그 뒤를 이어 수난의 인생길을 걸은 대통령 아들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다. 한때 지만씨의 인생을 나락에 빠뜨린 것은 돈도, 권력도 아닌 마약이었다. 그는 번번이 백색가루의 유혹을 떨치지 못해 가족과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지만씨가 처음 마약혐의로 적발된 것은 1989년 10월. 당시 그는 코카인을 복용한 혐의가 드러났으나 초범인데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란 것과 부모의 비극적인 죽음에 따른 충격 등을 이유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그 후 지만씨는 치료감호소에 들어가 마약 전문치료를 받은 뒤 사회에 복귀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지만씨는 마약의 유혹을 거스르지 못했다. 1991년, 1994년, 1996년, 1998년 등 수차례 마약투약혐의가 드러나 구속된 것. 이처럼 반복해 마약범죄를 저질렀지만 법원은 그에게 늘 관대했다.
2004년에는 법원이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를 기각하기도 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박씨가 사건 당시 8차례 마약을 복용한 점 등은 객관적인 치료감호 요건에 해당된다”며 “그러나 재범을 하지 않겠다는 본인 의지가 확고하고 보호관찰에 성실히 응한 태도 등으로 미뤄 박씨 상태가 대법원 판결 때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2006년에는 지만씨에게 마약을 건넨 40대 남성이 법조브로커 김홍수씨에게 사건 해결을 청탁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도 법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면서 71억여 원의 증여재산을 은닉하고 조세를 포탈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6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 뒤 서대문세무서는 재용씨가 지난 2000년 외조부로부터 증여받은 167억원 상당의 국민채권 중 73억5000만원어치는 외조부로부터, 나머지 93억5000만원어치는 아버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보고 증여세 80억원을 부과했다.
재용씨는 이에 “이 채권은 지난 1988년 결혼축의금으로 들어온 20억원을 외조부께 관리를 맡겨놓은 돈으로 외조부가 이 돈을 관리하면서 증식돼 2000년 말 채권형태로 돌려받은 것”이라며 증여세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역대 대통령 아들들, 부정·비리 사건 비일비재
마약, 부적절한 사생활, 정경유착 등 수난 반복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는 20억원을 결혼축의금이라고 하지만 결혼축의금을 조성하고 그 돈을 증식한 경위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자료는 전혀 없다”며 “일반 거래관념에 의할 때 20억원의 자금을 13년 만에 200억원으로 증식했다고 믿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서대문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바 있다.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도 세간에 오르내렸다. 재용씨는 이혼과 재혼을 반복해 현재 탤런트 박상아씨와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그런데 2003년 5월 전 부인과 혼인관계가 유지된 상태에서 박상아씨와 미국에서 법적 결혼을 해 이중혼 논란에 휩싸이는 등 수많은 의혹을 받기도 했다.
‘소통령’ 권력 누리다
연이어 ‘철창’ 신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역시 대통령 아들로서의 권력을 마음껏 누리다가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김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소(小)통령’으로 불릴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현철씨의 비리가 처음 드러난 것은 1997년으로 한보그룹 비리 사건에 연루된 것이 포착되면서부터다.
사건의 발단은 한보그룹이 부도를 내면서 불거졌다. 부실 대출의 규모가 5조7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인데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천문학적 금액의 돈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정계와 금융계가 유착해 부정과 비리가 행해진 것이 드러나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비리 수사 과정에서 현철씨가 깊숙이 관여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33명이 조사를 받았는데 그중 한 명이 현철씨였던 것. 그는 기업인 6명으로부터 66억여 원을 받고 12억여 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1997년 2월 구속됐다. 이 일로 인해 아버지 김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참담한 표정으로 대국민사과까지 한 바 있다.
그러나 현철씨의 비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아 또 한 번 구속이 된 것이다.
아들 셋 모두 비리연루
비운의 역사는 계속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도 부정과 비리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남인 홍일씨는 2003년 ‘나라종금 로비’ 수사과정에서 1억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나 불구속 기소됐다. 차남 홍업씨는 2003년 5월 기업체 이권에 개입해 청탁 대가로 25억여 원, 정치자금 명목으로 22억여 원을 받고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다.
삼남 홍걸씨는 2001년 3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로비와 공사 수주 로비 대가 등으로 36억9000여 만원을 받고 2억2000여 만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철창신세를 졌다. 또 ‘대우그룹 구명 로비’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의 아들들은 권력의 최측근인 혈육이라는 점을 이용해 권력을 누리다 법과 대중들의 심판을 받는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설마’했던 노 전 대통령의 아들마저 검은돈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는 정황들이 나오면서 또 한 번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