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별기획] MB정부 출범, 그 이후…②친인척·측근 비리 총정리

“부정부패 난무”임기 5년 욕먹다 끝났다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2008년 MB정부 출범 이후,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부터 친인척·측근 비리가 꼬리를 물었다. 정권 초부터 친인척 비리가 터진 경우는 MB정권이 유일하다.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부터 친형 이상은·이상득, 아들 이시형에 이르기까지 임기 내내 친인척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MB도 피해갈 수 없었던 친인척을 포함한 측근 비리. 그 실태를 폭로한다.


MB정권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달 25일 박근혜 당선인의 취임식이 거행되면 이명박 대통령은 5년 동안 한 나라를 대표했던 대통령직을 내려놓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MB정권 5년. 짧고도 긴 시간동안 이 대통령은 여느 정권과 마찬가지로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를 쏟아냈다. 특히 정권 초부터 논란이 일었던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논란을 일으켰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대통령 비리를 한 꺼풀 한 꺼풀씩 벗겨봤다.

영부인 사촌언니
공천 미끼 꿀꺽

MB정권 출범 불과 5개월만인 7월에 발생한 친인척 비리사건. 그 주인공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였다. 김씨는 대한노인회 부회장 출신으로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해온 와중 우연한 계기로 브로커 김모씨를 알게 됐다.

김옥희씨는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던 브로커 김씨와 사전공모를 한 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게 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김종원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으로부터 30억원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이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2월부터 3월까지 한 차례에 10억원씩 모두 3차례에 걸쳐 김 이사장을 함께 만나 수표로 30억원을 받아 나눠 가졌다. 돈을 건넨 김 이사장은 대한노인회 자문위원·서울시의원을 지냈으며 한 이익단체의 추천을 받아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지만, 결국 공천 심사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검찰조사에서 “김 이사장이 공천에서 탈락하자 받은 돈 중 25억원을 돌려준 사실을 확인하고 나머지 5억원은 대부분 회사 운영 경비나 생활비 등으로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옥희씨는 대한노인회 부회장 출신으로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국회의원 공천 청탁 명목으로 30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다음해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2009년에는 이 대통령의 셋째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 앤디코프 주가 조작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조 사장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조카이자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둘째 아들로, 지난 2011년 이 대통령의 셋째 딸 수연씨와 결혼했다. 조 사장은 구속된 한국도자기 창업주의 손자 김영집씨가 지난 2006년 인수한 코스닥 상장사인 앤디코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시세차익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정권 시작하자마자 대형 스캔들 꼬리에 꼬리
사돈·사촌·형제·자녀 등 가족비리 잇달아


그러나 겸찰조사 결과 조 사장이 앤디코프 투자에 직접 참여한 것이 아니라 S투자자문사를 통해 투자했으며 S투자자문사가 투자 포트폴리오에 따라 앤디코프에 분산 투자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 사장은 당시 40억원을 투자했고, 코디너스사의 주식 39만4090주(5.7%)를 가진 대주주였다. 검찰은 조 사장이 당시 미공개 정보를 제공했다고 의심되는 정황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으며, 인수한 코디너스에 거액을 투자한 것도 단순투자에 불과하다고 판단,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010년 7월, 조현범씨의 사촌이자 이 대통령의 사돈인 조현준 효성 사장은 550만달러(약 64억원)를 횡령하고, 회삿돈으로 수십억원대 해외 부동산을 구입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서울고등법원은 조 사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11년에는 유독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도드라진 해였다. 그 유명한 ‘내곡동 사저 특검’이 터진 해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의 장남 시형씨는 내곡동 사저 부지를 편법으로 증여받고. 부동산실명제를 위반한 의혹을 받았다. 그는 큰아버지인 이상은 다스 회장에게서 6억원을 현금으로 빌리고, 모친 김윤옥 여사 명의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 땅을 담보로 6억원을 대출받아 부지를 샀다. 이듬해 시형씨는 14시간 동안의 특검조사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땅을 산 다음 1년 정도 후에 아버지에게 되팔아 돈을 갚을 계획이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가 자신이 실제 소유할 생각으로 내곡동 땅을 샀다는 취지로 말을 바꿨다. 큰아버지에게 빌린 돈은 당장 갚을 능력이 없어 천천히 갚을 생각이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특검팀은 사저부지 매입자금 12억원은 시형씨가 영부인 김윤옥 여사로부터 편법 증여받은 것으로 결론 내리고 국세청이 증여세 부과 등 적정한 처분을 하도록 서울 강남세무서에 증여 과세자료를 통보했다. 그러나 시형씨의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의혹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친인척 비리
이어지는 악몽

이어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KT&G 복지재단 이사장이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은 영업정지된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수억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유 회장으로부터 제일저축은행이 영업정지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4억여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당시 김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일부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청탁의 대가는 아니었다며 대가성을 부인했지만 곧 혐의가 드러나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즈음 이 대통령의 둘째 형 이상득 의원의 아들 지형씨에 대한 의혹도 이어졌다. 지형씨는 정부가 인천공항 매각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함께 오른 바 있다. 오스트레일리아계 매쿼리 그룹이 인천공항 매입에 적극 나섰는데, 지형씨는 매쿼리 IMM자산운용 대표로 재직했다. 국고가 2조원 가까이 날아간 메릴린치 투자 사건에도 지형씨가 관여했다는 의혹도 있었지만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형씨는 ‘조세회피지역’인 싱가포르로 이민을 떠났다.

이밖에도 이 대통령의 첫째형 이상은 다스 대표이사의 사위 전종화씨가 지난해 12월 씨모텍 주식 부정거래와 시세조정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됐고, 이 대통령의 손위 동서인 황태섭씨도 제일저축은행 고문료 명목으로 거액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 또 다른 손위 동서인 신기옥씨는 최근 BBK 사건과 관련해 김경준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되는 ‘가짜 편지’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았다.

지난해 이 대통령의 둘째 형으로 ‘상왕’으로 불리는 이상득 전 의원은 보좌관이 돈 세탁을 했단 의혹을 사며 뇌물 혐의로 보좌진이 대거 구속된 가운데 불출마 선언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했지만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수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밝혀지며 징역 2년에 추징금 7억575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전 의원은 지난해 말 코오롱 시절부터 자신을 보필해 온 박배수 보좌관이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과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10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이에 앞서 이 전 의원은 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10월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에게서 정치자금 명목으로 현금 3억원을, 2007년 12월 중순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저축은행 경영관련 업무에 대한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또 2007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매월 250만~300만원씩 모두 1억575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도 포함됐다.


이 밖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사촌형 이상훈씨는 4대강 건설 사업권을 미끼로 건설업자로부터 3억원을 챙겼다고 사기 혐의로 피소 됐다가 무혐의로 처분됐고, 조카인 정 모씨는 위조 계약서로 분양권을 주겠다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측근비리도
만만치 않아∼

이 대통령 측근 비리의 첫 테이프를 끊은 인물은 바로 ‘친구’였다. “임기 중 측근비리는 없다”고 자부했던 이 대통령의 발언을 오랜 시간 동안 곁에 있었던 친구가 무참히 밟았다. 이로써 이 대통령의 도덕성과 체면도 함께 무너졌다.

2010년 이 대통령의 대학동창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이수우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40억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천 회장은 “사업상 편의를 봐달라”는 이 대표의 청탁과 함께 금품수수 혐의를 받았다. 2008년 천회장이 자녀 3명의 명의로 임천공업과 계열사 주식 18만주 가량을 25억7000만원에 사들인 뒤 나중에 주식매입 대금을 이씨로부터 기부금 등의 형태로 되돌려 받고, 2009년 천 회장이 북악산에 짓고 있는 돌 박물관에 쓰일 12어원어치의 철근도 이씨에게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 회장 금품수수는 국세청이 임천공업과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천 회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6인회' '안국포럼' 등 이 대통령의 측근비리도 스케일이 남다르다. 측근 비리 사건은 2011년 초부터 연말까지 연이어 집중적으로 터져 나왔다. 2010년 말 터진 함바집(건설현장 식당) 비리 사건으로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 강희락 전 경찰청장,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 등이 브로커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이에 최 전 사장은 징역3년을 선고 받으며 함바집 비리 사건은 서울시청과 대통령직 인수위 출신 측근들의 무덤이 됐다.

뒤이어 부산저축은행 구명 로비 사건은 대선캠프와 청와대 참모 출신 측근들의 발목을 잡았다.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 검사 완화 등을 대가로 로비, 청탁과 함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징역 1년6월), 은진수 전 감사위원(징역 1년6월),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 등이 구속 기소된 것이다. 또한 청와대 정무1비서관 출신인 김해수 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징역 1년6월)도 청탁과 금품 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인한 정권 실세들의 비리 의혹은 MB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날리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9월엔 SLS그룹 구명 로비 사건이 터져 또다시 대통령 측근들이 징역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부산저축은행에 이어 이국철 SLS 회장의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수억원대의 금품 및 향응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 이국철 회장은 자신의 비망록에 “신재민 전 차관 등이 검찰 연결고리”라는 내용을 언급하며 의혹이 불거졌다. 신 전 차관의 혐의는 차관 재직 시절인 2008∼2009년 SLS조선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저지 등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주는 대가로 이 회장에게서 SLS그룹 법인카드를 받아 1억300여만원을 사용한 혐의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친구·동기·가신들 ‘검은돈’수수 
특별사면에 국민들 마지막까지 실망

지난해 역시 MB 측근은 적게는 수백만, 많게는 수억원의 비리로 다사다난한 해를 보냈다.

이 대통령의 ‘멘토’이자 6인회 멤버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 전 방통위원장은 양재동 복합물류단지 개발사업 중인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 청탁명목으로 수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최 전 위원장 중학교 후배인 이정배 파이시티 전 대표는 브로커를 통해 최시중과 박영준을 소개받고, 지난 2004년부터 2008년 4월까지 19차례에 걸쳐 61억5000만원을 줬다고 검찰조사에서 밝혔다. 이에 최 전 위원장도 일부 금액 7억원에 대해서는 시인했고, 방송통신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특히 최 전 위원장이 이 전 대표로부터 불법수수한 거액의 돈을 2007년 이명박 대선 당시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 날 곧바로 입장을 바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최 전 위원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항소했지만, 항소심 역시 동결됐다.

같은 해 초, 고승덕 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2008년 불거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을 언론에 터뜨리며 결국 박희태 국회의장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옷을 벗겼다. 고 전 의원은 “서류 봉투 안에는 ‘박희태’라는 이름만 쓰인 명함이 들어있어 그 자리에서 보좌관에게 돈을 돌려주도록 했다”고 폭로했다. 박 전 국회의장은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최고위원에 선출될 목적으로 거액의 마이너스통장 계좌에서 300만원을 인출해 고승덕 의원에게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또 당시 박 의장 캠프의 상황실장이었던 김 전 수석은 돈봉투 살포를 주도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박 전 의장은 재판부에 “정당법이 생기지 얼마돼지 않은 때여서 식사와 함께 조금씩 금품을 제공하는 것은 한나라당의 관례였다”고 언급하며 선처를 요구한 바 있다.

당시 정치권에선 각종 비리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상득 전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이 대통령 원로자문그룹인 ‘6인회’ 멤버가 잇따라 몰락한 것에 대해 레임덕의 대표적 사례로 인식했다.


도덕적 정권?
도둑적 정권!

이 대통령은 스스로 현 정권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말했었다.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뻔뻔한 발언은 각종 비리에 대한 언론과 검찰·경찰 등 사정기관의 적극적인 외면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임기 초부터 말까지 이어진 수십명에 달하는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로 인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란 이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케 하며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 혹은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망가진 정권’ 등으로 변색됐다.

또 최근 이 대통령이 친인척과 최측근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강행하면서 국민에게 마지막까지 큰 실망을 안기고 있다. 한 달도 채 남지 않는 임기 말, MB정권은 이 대통령의 바람과는 달리 도덕적 정권과는 거리가 먼 부정부패가 난무한 정권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