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별기획] MB정부 출범, 그 이후…②친인척·측근 비리 총정리

“부정부패 난무”임기 5년 욕먹다 끝났다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2008년 MB정부 출범 이후,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부터 친인척·측근 비리가 꼬리를 물었다. 정권 초부터 친인척 비리가 터진 경우는 MB정권이 유일하다.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부터 친형 이상은·이상득, 아들 이시형에 이르기까지 임기 내내 친인척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MB도 피해갈 수 없었던 친인척을 포함한 측근 비리. 그 실태를 폭로한다.


MB정권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달 25일 박근혜 당선인의 취임식이 거행되면 이명박 대통령은 5년 동안 한 나라를 대표했던 대통령직을 내려놓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MB정권 5년. 짧고도 긴 시간동안 이 대통령은 여느 정권과 마찬가지로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를 쏟아냈다. 특히 정권 초부터 논란이 일었던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논란을 일으켰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대통령 비리를 한 꺼풀 한 꺼풀씩 벗겨봤다.

영부인 사촌언니
공천 미끼 꿀꺽

MB정권 출범 불과 5개월만인 7월에 발생한 친인척 비리사건. 그 주인공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였다. 김씨는 대한노인회 부회장 출신으로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해온 와중 우연한 계기로 브로커 김모씨를 알게 됐다.

김옥희씨는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던 브로커 김씨와 사전공모를 한 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게 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김종원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으로부터 30억원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이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2월부터 3월까지 한 차례에 10억원씩 모두 3차례에 걸쳐 김 이사장을 함께 만나 수표로 30억원을 받아 나눠 가졌다. 돈을 건넨 김 이사장은 대한노인회 자문위원·서울시의원을 지냈으며 한 이익단체의 추천을 받아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지만, 결국 공천 심사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검찰조사에서 “김 이사장이 공천에서 탈락하자 받은 돈 중 25억원을 돌려준 사실을 확인하고 나머지 5억원은 대부분 회사 운영 경비나 생활비 등으로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옥희씨는 대한노인회 부회장 출신으로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국회의원 공천 청탁 명목으로 30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다음해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2009년에는 이 대통령의 셋째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 앤디코프 주가 조작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조 사장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조카이자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둘째 아들로, 지난 2011년 이 대통령의 셋째 딸 수연씨와 결혼했다. 조 사장은 구속된 한국도자기 창업주의 손자 김영집씨가 지난 2006년 인수한 코스닥 상장사인 앤디코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시세차익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정권 시작하자마자 대형 스캔들 꼬리에 꼬리
사돈·사촌·형제·자녀 등 가족비리 잇달아


그러나 겸찰조사 결과 조 사장이 앤디코프 투자에 직접 참여한 것이 아니라 S투자자문사를 통해 투자했으며 S투자자문사가 투자 포트폴리오에 따라 앤디코프에 분산 투자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 사장은 당시 40억원을 투자했고, 코디너스사의 주식 39만4090주(5.7%)를 가진 대주주였다. 검찰은 조 사장이 당시 미공개 정보를 제공했다고 의심되는 정황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으며, 인수한 코디너스에 거액을 투자한 것도 단순투자에 불과하다고 판단,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010년 7월, 조현범씨의 사촌이자 이 대통령의 사돈인 조현준 효성 사장은 550만달러(약 64억원)를 횡령하고, 회삿돈으로 수십억원대 해외 부동산을 구입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서울고등법원은 조 사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11년에는 유독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도드라진 해였다. 그 유명한 ‘내곡동 사저 특검’이 터진 해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의 장남 시형씨는 내곡동 사저 부지를 편법으로 증여받고. 부동산실명제를 위반한 의혹을 받았다. 그는 큰아버지인 이상은 다스 회장에게서 6억원을 현금으로 빌리고, 모친 김윤옥 여사 명의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 땅을 담보로 6억원을 대출받아 부지를 샀다. 이듬해 시형씨는 14시간 동안의 특검조사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땅을 산 다음 1년 정도 후에 아버지에게 되팔아 돈을 갚을 계획이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가 자신이 실제 소유할 생각으로 내곡동 땅을 샀다는 취지로 말을 바꿨다. 큰아버지에게 빌린 돈은 당장 갚을 능력이 없어 천천히 갚을 생각이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특검팀은 사저부지 매입자금 12억원은 시형씨가 영부인 김윤옥 여사로부터 편법 증여받은 것으로 결론 내리고 국세청이 증여세 부과 등 적정한 처분을 하도록 서울 강남세무서에 증여 과세자료를 통보했다. 그러나 시형씨의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의혹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친인척 비리
이어지는 악몽

이어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KT&G 복지재단 이사장이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은 영업정지된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수억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유 회장으로부터 제일저축은행이 영업정지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4억여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당시 김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일부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청탁의 대가는 아니었다며 대가성을 부인했지만 곧 혐의가 드러나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즈음 이 대통령의 둘째 형 이상득 의원의 아들 지형씨에 대한 의혹도 이어졌다. 지형씨는 정부가 인천공항 매각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함께 오른 바 있다. 오스트레일리아계 매쿼리 그룹이 인천공항 매입에 적극 나섰는데, 지형씨는 매쿼리 IMM자산운용 대표로 재직했다. 국고가 2조원 가까이 날아간 메릴린치 투자 사건에도 지형씨가 관여했다는 의혹도 있었지만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형씨는 ‘조세회피지역’인 싱가포르로 이민을 떠났다.

이밖에도 이 대통령의 첫째형 이상은 다스 대표이사의 사위 전종화씨가 지난해 12월 씨모텍 주식 부정거래와 시세조정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됐고, 이 대통령의 손위 동서인 황태섭씨도 제일저축은행 고문료 명목으로 거액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 또 다른 손위 동서인 신기옥씨는 최근 BBK 사건과 관련해 김경준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되는 ‘가짜 편지’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았다.

지난해 이 대통령의 둘째 형으로 ‘상왕’으로 불리는 이상득 전 의원은 보좌관이 돈 세탁을 했단 의혹을 사며 뇌물 혐의로 보좌진이 대거 구속된 가운데 불출마 선언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했지만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수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밝혀지며 징역 2년에 추징금 7억575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전 의원은 지난해 말 코오롱 시절부터 자신을 보필해 온 박배수 보좌관이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과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10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이에 앞서 이 전 의원은 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10월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에게서 정치자금 명목으로 현금 3억원을, 2007년 12월 중순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저축은행 경영관련 업무에 대한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또 2007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매월 250만~300만원씩 모두 1억575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도 포함됐다.


이 밖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사촌형 이상훈씨는 4대강 건설 사업권을 미끼로 건설업자로부터 3억원을 챙겼다고 사기 혐의로 피소 됐다가 무혐의로 처분됐고, 조카인 정 모씨는 위조 계약서로 분양권을 주겠다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측근비리도
만만치 않아∼

이 대통령 측근 비리의 첫 테이프를 끊은 인물은 바로 ‘친구’였다. “임기 중 측근비리는 없다”고 자부했던 이 대통령의 발언을 오랜 시간 동안 곁에 있었던 친구가 무참히 밟았다. 이로써 이 대통령의 도덕성과 체면도 함께 무너졌다.

2010년 이 대통령의 대학동창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이수우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40억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천 회장은 “사업상 편의를 봐달라”는 이 대표의 청탁과 함께 금품수수 혐의를 받았다. 2008년 천회장이 자녀 3명의 명의로 임천공업과 계열사 주식 18만주 가량을 25억7000만원에 사들인 뒤 나중에 주식매입 대금을 이씨로부터 기부금 등의 형태로 되돌려 받고, 2009년 천 회장이 북악산에 짓고 있는 돌 박물관에 쓰일 12어원어치의 철근도 이씨에게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 회장 금품수수는 국세청이 임천공업과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천 회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6인회' '안국포럼' 등 이 대통령의 측근비리도 스케일이 남다르다. 측근 비리 사건은 2011년 초부터 연말까지 연이어 집중적으로 터져 나왔다. 2010년 말 터진 함바집(건설현장 식당) 비리 사건으로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 강희락 전 경찰청장,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 등이 브로커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이에 최 전 사장은 징역3년을 선고 받으며 함바집 비리 사건은 서울시청과 대통령직 인수위 출신 측근들의 무덤이 됐다.

뒤이어 부산저축은행 구명 로비 사건은 대선캠프와 청와대 참모 출신 측근들의 발목을 잡았다.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 검사 완화 등을 대가로 로비, 청탁과 함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징역 1년6월), 은진수 전 감사위원(징역 1년6월),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 등이 구속 기소된 것이다. 또한 청와대 정무1비서관 출신인 김해수 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징역 1년6월)도 청탁과 금품 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인한 정권 실세들의 비리 의혹은 MB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날리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9월엔 SLS그룹 구명 로비 사건이 터져 또다시 대통령 측근들이 징역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부산저축은행에 이어 이국철 SLS 회장의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수억원대의 금품 및 향응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 이국철 회장은 자신의 비망록에 “신재민 전 차관 등이 검찰 연결고리”라는 내용을 언급하며 의혹이 불거졌다. 신 전 차관의 혐의는 차관 재직 시절인 2008∼2009년 SLS조선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저지 등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주는 대가로 이 회장에게서 SLS그룹 법인카드를 받아 1억300여만원을 사용한 혐의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친구·동기·가신들 ‘검은돈’수수 
특별사면에 국민들 마지막까지 실망

지난해 역시 MB 측근은 적게는 수백만, 많게는 수억원의 비리로 다사다난한 해를 보냈다.

이 대통령의 ‘멘토’이자 6인회 멤버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 전 방통위원장은 양재동 복합물류단지 개발사업 중인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 청탁명목으로 수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최 전 위원장 중학교 후배인 이정배 파이시티 전 대표는 브로커를 통해 최시중과 박영준을 소개받고, 지난 2004년부터 2008년 4월까지 19차례에 걸쳐 61억5000만원을 줬다고 검찰조사에서 밝혔다. 이에 최 전 위원장도 일부 금액 7억원에 대해서는 시인했고, 방송통신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특히 최 전 위원장이 이 전 대표로부터 불법수수한 거액의 돈을 2007년 이명박 대선 당시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 날 곧바로 입장을 바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최 전 위원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항소했지만, 항소심 역시 동결됐다.

같은 해 초, 고승덕 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2008년 불거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을 언론에 터뜨리며 결국 박희태 국회의장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옷을 벗겼다. 고 전 의원은 “서류 봉투 안에는 ‘박희태’라는 이름만 쓰인 명함이 들어있어 그 자리에서 보좌관에게 돈을 돌려주도록 했다”고 폭로했다. 박 전 국회의장은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최고위원에 선출될 목적으로 거액의 마이너스통장 계좌에서 300만원을 인출해 고승덕 의원에게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또 당시 박 의장 캠프의 상황실장이었던 김 전 수석은 돈봉투 살포를 주도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박 전 의장은 재판부에 “정당법이 생기지 얼마돼지 않은 때여서 식사와 함께 조금씩 금품을 제공하는 것은 한나라당의 관례였다”고 언급하며 선처를 요구한 바 있다.

당시 정치권에선 각종 비리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상득 전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이 대통령 원로자문그룹인 ‘6인회’ 멤버가 잇따라 몰락한 것에 대해 레임덕의 대표적 사례로 인식했다.


도덕적 정권?
도둑적 정권!

이 대통령은 스스로 현 정권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말했었다.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뻔뻔한 발언은 각종 비리에 대한 언론과 검찰·경찰 등 사정기관의 적극적인 외면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임기 초부터 말까지 이어진 수십명에 달하는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로 인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란 이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케 하며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 혹은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망가진 정권’ 등으로 변색됐다.

또 최근 이 대통령이 친인척과 최측근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강행하면서 국민에게 마지막까지 큰 실망을 안기고 있다. 한 달도 채 남지 않는 임기 말, MB정권은 이 대통령의 바람과는 달리 도덕적 정권과는 거리가 먼 부정부패가 난무한 정권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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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