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테마1>부패의 덫에 빠진 사람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정치인부터 대통령 친인척까지 … ‘권력 놓고 돈 먹기’
‘박연차 게이트’ 뒤 몸 숨긴 청와대 성매매 혐의 사건

돈은 권력을 향해 움직이고 최고 권력이 모이는 곳에서는 썩는 듯한 악취가 풍긴다. 정권교체 후 전 정권의 부패에 대한 수사만큼이나 현 정권의 부패도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장관으로 내세웠던 이들이 ‘부패종합세트’라는 오명을 받고 낙마하는가 하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떡값 리스트’와 ‘쌀 직불금’ 논란으로 대한민국 곳곳에 만연한 부패가 세상에 드러났다. 최근에는 ‘박연차 리스트’가 정·관계와 재계를 뒤흔들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는 대한민국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기초단체장과 국회의원은 물론 여야 정계의 실력자들과 비리를 수사해야 하는 검찰의 고위 인물, 전 대통령의 핏줄과 현 대통령의 친인척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던 것. 거대 게이트로 진면목을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부패공화국’을 파헤쳐봤다.

새 정권들은 출범과 동시에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권력이 모인 곳에서는 여지없이 ‘구린’ 냄새가 ‘풀풀’ 풍기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부패한 인사들과 함께였다. 출범 초기 청와대 비서진과 장관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시달렸으며 ‘강부자’라는 비아냥을 받아야 했다. 장관 임명을 앞두고 내정자들의 논문 표절, 자질 문제 등 온갖 의혹이 불거졌다.

첫발부터 ‘부패’ 딛고
삐거덕거리며 출발

초기 내각 멤버로 거론됐던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과다 보유와 투기 의혹을 받다가 정부 출범 전날 사퇴했다. 남주홍 통일부 장관 내정자는 부인과 자녀의 이중국적 문제·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쓸렸으며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인해 정부 출범 이틀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은 논문 표절과 농지법 위반이 문제가 됐음에도 버티다 한나라당까지 나서서 사퇴압박을 가하자 물러났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 리스트’를 공개하며 “새 정부 각료 가운데도 삼성 비자금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폭탄’을 던졌다. 그는 “이미 각료로 확정된 사람이나 청와대 사람, 후보로 오르내리는 사람 가운데 당연히 많지 않겠느냐”면서 “사제단에 제출한 이른바 ‘삼성 비자금 명단’에는 50여 명의 이름이 들어있으며 주로 검찰이고 정치인 등 기억나는 대로 적었다”고 밝혔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구사제단이 공개한 삼성 금품로비 대상자들의 명단에는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 초대 금융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던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 등이 올라있었다.

사제단은 “이종찬은 삼성의 관리대상으로 평소에 정기적으로 금품을 수수했다. 김성호 역시 삼성의 관리대상으로 평소에 정기적으로 금품을 수수했고, 김용철 변호사가 김성호에게 직접 금품을 전달한 사실도 있다. 황영기의 경우 우리은행장, 삼성증권 사장을 거친 자로서, 재직 시 삼성 비자금 차명계좌 개설 및 관리를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임채진 검찰총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도 ‘떡값검사’로 거론, 권력의 심층부에 자리에 부패한 인사들의 면면이 알려졌다.

정권교체 후 여권 수장이 된 한나라당 강재섭 전 대표는 “새 시대의 신정치, 정치권의 환골탈태를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다”면서 “우선 한나라당이 계속 달라지겠다. 게이트가 없는 정권을 반드시 만들겠다. 윤리강령을 철저히 적용하는 정당, 그리고 한나라당이 지방정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정부와 의회에 대한 감사 시스템도 제대로 구축해야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연달아 터진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의 돈봉투 살포와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 김옥희씨의 ‘공천 장사’, 유한열 한나라당 상임고문의 국방부 납품 청탁은 이명박 정부를 출범 6개월 만에 ‘부패의 덫’에 빠뜨렸다.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은 동료 시의원 30명에게 100여 만원 상당의 수표가 든 봉투를 건네는 등 모두 3500여 만원을 뿌리며 차기 의장 선거에서 지지를 호소했다. 서울시 의회 의원 106명 중 100명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의 약 30%가 관련돼 있는 사건이었다.

뇌물 파동 후 김 의장은 한나라당을 탈당했으나 의원직은 유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뇌물 혐의로 구속된 지 94일 만에 자진 사퇴하며 “부덕과 무지의 소치로 인해 서울시민과 서울시 의원님들께 많은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반성하고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옥희씨는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김종원 서울버스운송조합 이사장 등에게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며 3차례에 걸쳐 30억원을 받아 챙겼다.

이재오, 이방호 전 의원 등 당시 공천에 관여했던 실세들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으며 김씨가 청와대에 전화를 한 사실이 알려지며 파장을 키웠지만 ‘언니 게이트’라고 불린 그의 ‘총선장사’는 결국 단순 사기사건으로 결론 났다.

유한열 상임고문은 국방부 납품청탁 명목으로 지방의 한 전산업체로부터 약 6억원을 받았다. 그는 로비를 위해 공성진 최고위원과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까지 손길을 뻗었다. 그러나 검찰은 유 상임고문에 대한 수사에서 정치권에 로비 명목으로 금품이 흘러 들어간 정황이나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가장 남는 장사는
공천·청탁 장사?

지난해 10월 ‘쌀 직불금’ 파문이 정치권을 강타했다. 고위공직자 4만명이 직접 쌀농사를 지은 농민이 받아야 할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쌀 직불금 파문은 고위공직자 4만명 중 100여 명의 정·관계 인사가 포함됐다고 전해지면서 파장을 더했다.

쌀 직불금 파문은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돈을 부당 수령했다는 점 외에도 농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점에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고위 공직자의 쌀 직불금 파문과 관련, 부정 수급자 명단 발표를 촉구하며 부정 수급액의 국고 환수, 부정 수급을 받은 정무직 공무원의 파면을 요구했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농민을 위해 지불돼야할 국민의 혈세가 탐관오리들에 의해 갈취당한 사건”이라면서 “국회의원이든 장차관이든 모두 밝혀내고 처벌과 책임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 김학용, 김성회 의원이 쌀 직불금을 수령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자유선진당 권선택 의원도 쌀 직불금 수령자로 거명됐다.

정부는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공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직불금 부당수령 실태조사를 벌여 2499명을 부당 수령자로 결정했다. 이어 이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 실제 경작하지 않으면서 직불금을 위법·부당하게 수령한 경우와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이 직불금을 불법 수령하거나 신청한 사실을 본인이 알고 있었던 1000명가량에게 징계를 내린다는 방침이다.

소문만 무성했던 ‘박연차 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정·관계가 떨고 있다. ‘참여정부의 후원자’이자 ‘여야를 막론한 마당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리스트’에 노무현 정권 실세들은 물론 현 여권과 검찰 등 권력기관 인사들의 이름이 줄줄이 거명됐다는 이유에서다.

정대근 전 농협회장의 구속 기소를 시작으로 이정욱 전 한국수산개발원장과 송은복 전 김해시장,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 민주당 이광재 의원과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 등 정치권 인사들이 줄줄이 사법처리 됐다.

또한 현역 의원들에 대한 소환조사도 멈추지 않고 있어 박연차 회장에 대한 수사는 4월을 기점으로 8월까지 전방위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청와대 행정관과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가 업무와 관련된 케이블 TV업체로부터 접대를 받은 ‘청와대 성매매 의혹 사건’이 불거졌다.


청와대 김모 전 행정관은 지난달 24일 서울 신촌네거리에 위치한 D룸살롱에서 청와대 장모 행정관, 방송통신위원회 신모 뉴미디어 과장과 함께 국내 최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티브로드 임원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

이들은 술 접대에 이어 룸살롱 종업원과 ‘2차’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행정관은 이날 마포구 노고산동 G호텔에서 유흥업소 여종업원과 함께 있다 적발됐다.

‘박연차 리스트’ 찍고
청와대 성매매에 방점

더욱이 티브로드는 업계 6위인 큐릭스를 인수한 후 방통위에 합병 승인 심사를 앞두고 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김 전 행정관은 방송위원회 출신으로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업무를 담당했고 신 과장은 방통위에서 뉴미디어 분야의 담당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행정관들의 성매매 의혹 사건과 관련 “국민 여러분께 실망과 참담함을 안겨드린 점을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히고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을 수사기관에서 철저히 조사해 한 점 의문도 남지 않도록 하겠으며 내부 기강도 더욱 철저히 다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영희 의원은 “경찰은 단순 성매매로 왜곡하고 청와대는 금주령으로 무마하려고 한다”며 “국회가 열리면 진상조사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사태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