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게이 메카' 수원역 뒷골목 탐방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2.13 13: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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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아지트 가보니…노인이 "이리와 XX줄게"

[일요시사=사회팀] 수원역 뒷골목은 모텔과 각종 성매매 업소들이 뒤엉켜 있다. 그 속에 동성애자 전용 업소들도 비밀스럽게 운영되고 있다. 동성애자들은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살아가기 위해 더욱 자신들만의 공간을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게이 전용 업소가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그 환경은 영 좋지 못하다. 점점 더 음지로 내몰리고 있는 것. 기자는 눈 질끈 감고 그들이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공간을 탐방해 봤다.

동성애 전용 바와 찜질방, 그리고 섹스방은 전국적으로 퍼져있다. 이른바 '이반' 전용 업소들이다. 이반은 이성애자들을 칭하는 일반이라는 말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일반인과는 구분된다는 의미. 이 같은 이반 업소들은 일반인에게 성 정체성을 들키지 않으려는 이반끼리 모여 친분을 쌓고 커플이 되고 또 성관계를 맺는 곳이다.

게이들의 성지
수원역 일대

그 중 수원역 역전시장 모텔촌은 이반 업소들이 뒤섞여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기자가 확인한 이반 전용 술집만 해도 네 곳, 찜질방과 유사한 숙박시설은 세 곳이었다. 게이 업소들이 성업 중인 서울 종로와 이태원까지 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가 수원인 것.

지난 4일 기자는 수원역 부근에 위치한 동성애 업소를 찾아다니며 그들만의 삶을 들여다봤다.

수원역 일대는 그야말로 모텔 천지였다. 골목골목마다 늘여선 모텔의 개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한자로 써진 간판도 보였다. 조선족이 많이 모여 살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일대를 돌아보던 중 경쾌한 트로트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간판을 보니 성인 콜라텍이었다. 잠시 올라가 내부를 들여다보니 붉은 조명 아래 중장년 남성과 여성들이 짝지어 춤을 추고 있었다. 홍등가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밤이 되니 아가씨들이 손짓하며 연신 "오빠 놀다가"를 외쳐댔다. 수원의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수원은 게이업소가 많기로 유명하다. 기자는 이반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업소의 위치를 미리 파악했다. 역전 시장 일대를 배회하다 수원ㅇㅇ휴게텔을 찾아갔다. 서ㅇㅇ극장이라는 성인 극장이 있는 건물 3층에 기자가 찾던 휴게텔이 있었다. 또 입구 바로 맞은편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무인텔이 있었다. 휴게텔에서 눈이 맞은 게이커플이 좀 더 친밀한 시간을 가지기 위한 곳임을 짐작케 했다.

휴게텔은 오후 5시 이전에 입실하면 5000원, 그 이후에 찾아가면 1만원을 받고 있었다. 무인텔은 대실 1만5000원, 숙박 2만5000원이었다. 이 건물 지하엔 대규모 성인 게임장이 있었고, 2층은 허름한 고시텔, 4층은 대중목욕탕이 운영되고 있었다.

기자는 마음을 굳게먹고 게이 휴게텔에 들어갔다. 신발장 왼쪽 카운터로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 점원이 기자를 반겼다. 먼저 "안에 손님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지금 세 분 정도 있다"면서 "주중보다 주말에 손님이 많다"고 귀띔했다. 일단 돈을 내고 열쇠를 건네받았다.

바·찜질방·섹스방 '이반' 전용업소 즐비
쾌쾌한 악취 진동…남자 신음 울려퍼져

내부는 예상 밖이었다. 일반 목욕탕 및 찜질방의 내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 여기는 게이 업소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옷을 탈의하는 중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기자가 옷을 벗고 있는 도중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기자의 맨살 엉덩이를 손으로 툭 치고 지나갔다. 샤워를 마친 후 가운을 입고 있을 때도 다가오더니 이번엔 노골적으로 쓰다듬었다.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자를 당황하게 한 것은 또 있었다. 입실할 때 나눠준 가운에 바지가 없었다. 상의도 무척 얇았고 또 짧은 편이었다. 아랫도리가 영 허전했다. 차라리 다 벗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팬티를 입고 수면실에 입장할까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취재하기 위해 팬티를 입지 않고 수면실에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남자들인데 뭐 어때'라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내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먼저 손님들이 몇 명인지 확인했다. 수면실 내부엔 노인과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만 보였다. 청년은 통로에 계속 서 있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듯한 눈치였다. 청년은 계속해서 기자를 따라 끈적끈적한 시선을 보냈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지나쳤다.


그 순간 충격적인 현장이 목격됐다. 통로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방에서 기자를 추행했던 그 노인이 자위행위를 하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 노인은 컴퓨터와 연결된 모니터를 통해 '게이야동'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대형 화면에는 근육질 백인 남성들이 항문성교를 하고 있었다.

조명하나 없는
차가운 수면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명이 하나도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내부를 살펴봤다. 탈의실과 샤워실은 찜질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수면실은 확연히 달랐다. 일단 바닥이 매우 차가웠다. 바닥뿐 아니라 공기도 차가워 한기가 느껴졌다. 이 같이 추운 곳에서 어떻게 잠을 잘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찜질방처럼 탁 트인 공간도 없었다. 미로 같은 복도를 따라 각기 크기가 다른 방이 있을 뿐이었다. 커튼이 쳐진 방, 문이 딸린 방, 2층 구조인 방, 더블침대가 놓인 방 등 제각각 있었다. 그리고 각 방엔 찜질방용 갈색 매트와 베개가 있었다. 반대편 방을 몰래 훔쳐볼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이 뚫린 방도 있었다. 관음증 환자를 위한 곳으로 짐작됐다. 

수면실 내부에 있는 샤워실은 유일하게 붉은 조명이 켜져 있었다. 그곳에선 적응하기 어려운 강한 악취가 풍겨왔다. 설명하자면 피와 변이 섞인 냄새였다. 샤워실 휴지통엔 콘돔과 젤 포장지가 버려져 있었다.
방을 살펴본 기자는 여전히 들리는 노인의 신음소리를 피해 가장 구석방으로 향했다. 그나마 넓은 그 방엔 매트 3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쾌쾌한 냄새가 났다. 기자는 쪼그려 앉아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스마트폰에 메모했다.

통로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휴대폰 불을 비춰보니 아까 그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씻었지? 내가 빨아 줄게"라며 막무가내로 기자의 가장 소중한 부위를 향해 손과 얼굴을 들이밀었다. 깜짝 놀란 기자는 그곳을 보호하기 위해 손을 잡아 뿌리치고 얼굴을 밀어내니 이번엔 허벅지와 엉덩이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부탁할게 이리와
기분 좋게 해줄게"

결국 기자는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노인의 추행을 막기 위해 몸으로 어깨를 강하게 밀친 후 "젊은 사람을 만나러 왔다. 그러니 쫓아오지 말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그 방을 벗어나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노인은 "한 번만, 부탁할게. 이리와. 기분 좋게 해줄게"라며 기자를 따라왔다.

이후 청년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다짜고짜 "탑이냐 바텀이냐" 물어왔다. 이럴 때를 대비해 게이들 사이에서 쓰이는 용어를 검색해서 알아두고 있었다. 이에 기자는 "탑이다"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탑'은 '남자 역할' '바텀'은 '여자 역할'을 의미했다. 일반적으로 바텀이라고 자칭하는 하는 게이 남성은 여성성을 가지고 있고 이들은 이것을 또 '끼'라고 표현했다.

기자의 대답에 청년은 물끄러미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이에 "몇 살이냐. 여기 자주 오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25살"이라며 "매일 온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빤히 쳐다보기에 "왜 빤히 쳐다보고 있느냐"고 물으니 "나도 탑이라 어색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자가 바텀이길 바라는 눈치였다.

더 이상 수면실에 있기 힘들어서 따라오는 시선을 무시하며 지나쳐 나왔다. 그때 뒤에서 노인과 청년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기자에게 퇴짜 맞은 노인이 청년을 쓰다듬으려 하자 청년은 정색하며 "이제 안 하시기로 했잖아요"라고 말하며 노인을 뿌리치고 있었다.

수면실에서 빠져나온 기자는 부대시설들을 살펴봤다. 이때 막 업소로 들어온 한 30대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겉으로 보기엔 동성애자로 보이지 않았다. 이 남성뿐만 아니라 게이들은 겉모습만으론 전혀 구분되지 않았다.

20대 청년 다가와
"탑이냐 바텀이냐"


탈의실 한쪽 편엔 대형거울과 그 앞에 로션과 면봉 등이 있었다. 이것 역시 일반 업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 업소와 확연히 다른 특징을 발견했다. 바로 한 바구니에는 콘돔과 윤활 젤이 가득 담겨있었던 것. 과연 '게이 전용 업소'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수면실 반대편엔 대형 TV와 소파가 놓인 흡연실이 있었다. 30대로 보이는 뚱뚱한 남성과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휴게텔 관계자로 짐작됐다. 둘은 TV를 보다 대화를 했는데 뚱뚱한 남성은 여성성이 다분했다. 주먹을 살짝 쥐고 남성을 툭툭 치는 것이 마치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애교부리는 것 같았다.

컴퓨터 2대가 비치된 PC방도 있었다. 그리고 한 남성이 야동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게이용 야동이 아니라 남녀가 한데 엉켜 정사를 펼치는 야동이었다. 남성이 자리를 뜬 후 혹시나 해서 컴퓨터 동영상 폴더를 열어보니 역시 게이용 야동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손님이 더 이상 늘지 않아 다른 휴게텔을 찾아가 봤다.

대로를 건너 위치한 이 업소는 '24시간 사우나'라는 낡은 간판을 걸고 있었다. 현관문은 가정집과 같았고 벨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었다.

1만원을 내고 입실했다. 앞서 방문한 휴게텔보다 규모가 작은 곳이었다. 사우나라는 간판과 달리 간단한 탈의실과 샤워 시설이 마련돼 있을 뿐이었다.


샤워하러 들어가니 30대로 보이는 체격 좋은 남자가 샤워하고 있었다. 태연한 척 샤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발밑으로 비누가 굴러들어왔다. 일종의 관심 표명으로 짐작됐다. 비누를 주울까 생각하다 괜한 오해를 살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콘돔·젤 곳곳에 비치
관음증 환자 용 방도

이 업소도 콘돔과 윤활 젤이 가득 들어 있는 바구니가 있었다. 수면실로 이동하니 조명이 거의 없어 눈앞이 깜깜했다. 앞서 방문한 업소와 비슷했다. 다만 각 방에는 찜질방용 매트가 아닌 전기 매트와 이불이 깔려 있었다.

그때 한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갔다. 통로를 따라 조금더 들어가자 구석 칸막이 안쪽에선 중저음의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남성 두 명이 애정행각을 나누고 있는 듯했다.

이런 것을 목격할 것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상황이 닥치니 난감했다. 빠져나가려는 순간 인기척을 느낀 그들이 행동을 멈췄다. 어둠속에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수면실을 빠져나와 이번엔 흡연실로 갔다. 이곳 역시 소파와 TV가 있고 주인을 비롯해 사복을 입은 남성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에 놓인 컴퓨터에선 한 할아버지가 온라인 바둑을 두고 있었다.

주인에게 "손님이 왜 이렇게 없나"고 물었다. 그는 "평일에는 많이 없는 편이다. 금요일, 토요일에 오면 정신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고 대답했다. "어젯밤에는 몇 명이 들어왔느냐"고 물으니 그는 "어젠 15명 정도였다. 보통 사람들이 오는 시간은 11시부터 새벽까지다. 술 한잔하고 오거나 집안일을 마친 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전용 업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대답했다.

게이인 줄 모르고
결혼하기도 해

업소를 빠져나온 기자는 착잡했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숨어 지내야 하는 그들이 안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이바에서 일하는 30대 곽모씨는 "중년 이반 남성들은 결혼한 사람들이 많다. 가족에게조차 동성애자임을 숨기기 위해 원치 않는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재산 때문에 결혼하기도 한다. 또 결혼할 당시에는 자신이 게이인 것을 모르고 있다가 아내와 부부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동성애로 돌아서기도 한다. 이들은 항상 힘들어한다. 부부생활이 안 되니까. 게이로 태어난 것을 어찌하나…"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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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