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클럽메카' 홍대 뒷골목 가보니…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2.07 14: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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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잇 천국…허탕쳐도 아가씨는 깔렸다

[일요시사=사회팀] '젊음의 거리' 홍대 일대가 성매매로 얼룩지고 있다. 성매매방지특별법으로 집창촌이 집중적인 단속을 받으면서 풍선효과로 인해 대학가까지 성매매 업소가 침투한 것이다. 특히 클럽에서 '욕구'를 풀지 못한 많은 남성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성매매 업소로 발길을 향하고 있다.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루는 홍대 앞의 밤 문화는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홍대클럽 부근 퇴폐업소를 집중 취재했다. 

인디문화와 클럽문화의 메카인 홍대 앞 일대가 퇴폐와 향락으로 얼룩져가고 있다. 톡톡 튀는 개성을 가진 인디밴드들, 테크노·재즈·힙합 공연에 맞춰 몸을 흔들며 젊음을 불태우던 클럽들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부비부비'와 '원나잇스탠드'만 남았다.

기자는 지난달 24일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홍대 앞 한 클럽을 찾았다. '불금에서 불토까지'라고 했던가. 클럽 입구는 하룻밤의 즐거움을 찾으려는 젊은이로 넘쳐났다.

클럽에 입장하자마자 강한 비트의 음악 소리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들렸다. 계단을 따라 클럽 내부로 들어가자 화려한 조명이 눈을 어지럽혔다. 클럽 내부는 수백 명의 남녀가 엉겨 붙어 있는 '별천지'였다. 음악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부비부비에 열중하는 남녀가 보였다. 빠른 힙합리듬과 천장에서 뿜어대는 인공안개 속에서 이들은 서로 몸을 밀착한 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젊음의 거리서
성매매 온상지로

서로 마주 본 채 마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아찔한 춤을 추는 커플도 눈에 띄었다. 좁은 공간에 워낙 많은 이들로 넘쳐나다 보니 신체 접촉은 의도치 않아도 자연스레 이뤄졌다. 그리고 서로 느낌이 통한다 싶으면 말이 필요 없다. 그저 아찔한 스킨십을 즐길 뿐이다.

하지만 짝을 찾지 못한 많은 남성들은 꿀을 찾아 헤매는 벌처럼 원나잇 대상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클럽 바깥에서 입장을 관리하는 직원에게 "예전이랑 요즘이랑 클럽문화가 달라졌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5년 전부터 클럽 문화가 많이 변했다"며 "예전에는 그래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부비부비'가 90%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각 클럽이 가지고 있던 특색도 없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클럽에서 눈이 제대로 맞은 커플들은 어디론가 향했다. 하지만 여자 꾀기를 성공하지 못한 대다수의 남성들은 입맛만 다셔야 할 형편이다. 이들은 어디로 향할까. 아마 이들 중 일부는 아쉬운 마음에 돈을 주고서라도 자신의 욕구를 풀 장소를 찾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홍대 클럽 일대에 퇴폐 업소가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홍대입구역 1번, 2번 출구 일대는 한눈에 봐도 성매매 업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화려한 번화가였고 다른 한쪽은 인적이 드문 음산한 뒷골목 느낌에 온갖 퇴폐업소가 즐비했다.

기자는 지난달 26일 홍대 클럽가 주위에 위치한 불법 퇴폐 업소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키스방이었다. 키스방의 간판에는 '연예인·모델급·여대생·고품격S라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키스방 현문은 누구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개방돼 있었고 친절하게도 '문을 열고 들어오세요'라고 안내문까지 현문에 붙어있었다.

낮보다 밝은 밤문화…변태 퇴폐업소 불야성
짝 찾지 못한 남성들 변종 성행위업소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 앉아 있던 업소 주인이 기자를 반기며 "예약했느냐"고 물었다. 기자가 고개를 흔들자 주인은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이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예약이 다 찼다는 뜻이었다.

카운터 오른쪽으로 가격과 매니저의 예명, 신체치수, 스타일이 적힌 간판이 서 있었고 방들이 늘어선 복도가 보였다. 예명은 실제 연예인 이름이 많았다. 대리석을 이용한 내부 인테리어는 깔끔했다. 가격은 모든 매니저가 30분에 4만원, 1시간에 7만원이었다.


기자는 호기심을 내비치며 "어디까지 가능한 것이냐"고 수위를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이곳은 연예인급만 받으면서 수질을 관리하는 곳으로 여타 키스방들과 비교하지 말라"며 "약간의 키스,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는 것은 가능하지만 유사성행위는 어떤 형태로든지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어 "남자들은 대신해주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런 것을 하면 텐프로급 매니저들이 떨어져 나간다"며 "우리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단골손님들로 우리 업소가 수질관리를 하고 있는만큼 그것을 믿고 찾고 있다"고 답했다.

그랬다. 이 키스방은 합법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키스방 간판을 내걸고 당당하게 영업하고 있었던 것. 현행법상 키스방 등 업소에서 유사성행위만 이루어지지 않으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위법성을 가진 유사성행위 업소를 찾아 나섰다. '데이트방'이라는 분홍색 간판이 보였다. 이런 곳은 기자의 직감상 유사성행위 업소일 가능성이 높았다.

굳게 잠겨있는 문을 두드리자 업소 주인은 문을 약간 열고 고개만 빠끔히 내민 채 "어떻게 찾아왔느냐"고 물어왔다. 예약하지 않고 온 기자를 상당히 경계하는 듯했다. 이에 기자가 "키스방인가 싶어 왔다"고 말하니 문을 열고 일단 들어오라고 했다. 

그는 립카페라고 업소를 소개하며 "키스방과 비슷한 가격이면서도 키스와 애무는 물론 입으로 '대딸 서비스'까지 확실하다"며 "매니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같은 값이면 키스방보다 립카페가 훨씬 낫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실제로 처음 방문했던 키스방보다도 낮은 가격 3만5000원이었다.

업소를 빠져나오며 "근처에 유사성행위 업소가 몇 개 정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성매매하는 곳을 빼더라도 립카페, 핸플방(손으로 대신) 등의 업소가 수십 곳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것이 사실인지 과정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유사성행위 업소
수십 곳은 될 것"

이번엔 립카페 옆 건물에 위치한 'ㅇㅇ안마시술소'를 찾아가봤다. 안마시술소는 3층에 있었고 지하는 유흥주점이었다. 2층엔 세무사와 법무사 사무소, 4층엔 고시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애매한 것이 퇴폐안마시술소가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카운터에 있던 주인과 대화를 나누자마자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격을 묻자 주인은 "안마 40분에 아가씨 서비스 1시간해서 18만원"이라고 대답했다. "아가씨 서비스만 받을 수도 있느냐"고 묻자 그는 "원하시면 안마 빼고 아가씨 서비스만 해서 17만원에 해 드리겠다. 아가씨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주겠다"고 대답했다. 성매매까지 일사천리였다.

핑계를 대고 빠져나온 뒤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을 내건 'ㅇㅇ안마 맛사지'라는 곳을 찾아갔다. 이 업소는 2층에 자리했다. 지하는 유흥주점이었고 3층은 사우나방으로 서로 연계된  듯했다. 유흥주점까지 직접 확인하진 못했지만 기자가 방문한 퇴폐마사지 업소와 연계된 '풀살롱'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ㅇㅇ안마 맛사지 내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붉은 조명이 깔린 프런트는 바닥과 벽면이 고급 대리석이어서 호텔 로비 같았다. 게다가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체격 건장한 젊은 남성이 정장을 차려입고 깍듯이 인사까지 했다. 그는 카운터로 기자를 안내했고 그곳엔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이곳은 대학생보다는 술이 거나하게 취한 중년 남성들이 주로 찾는 접대 장소일 것으로 짐작됐다.

기자는 "아가씨랑 얼마냐"고 짧게 물었다. 주인은 "40분 동안 전문 안마사가 태국 정통스타일로 안마를 하고 그 뒤 1시간 동안 젊고 예쁜 아가씨로 서비스한다"고 대답했다. 억지로라도 자세한 설명을 이끌어 내기 위해 "아가씨와의 시간은 모든 것이 자유로운 것이냐"고 묻자 "자세를 바꿔가며 자유롭게 즐길 수 있지만 콘돔은 꼭 사용해야 한다"며 "단아하고 우아한 스타일, 귀엽고 애교 있는 스타일 등 원하는 아가씨 스타일을 말해 달라. 그러면 최대한 준비 하겠다"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가격도 원래 20만원인데 19만원까지 깎아 주겠다고 선심 쓰듯 말했다.


이처럼 홍대 일대에 분포된 마사지 업소 중 대부분은 퇴폐마사지였다. 특히 같은 건물에 유흥주점이 있으면 100%였다. 물론 그중에는 2∼3만원대 가격으로 건전마사지 및 정통마사지를 제공하는 곳 역시 더러 있었다. 이런 업소들은 '정통' 또는 '건전'이란 단어를 강조했다.

"아가씨 스타일
말씀만 하세요"

마지막으로 기자는 오피스방 잠입 취재했다. 취재를 나서기 전 오피ㅇㅇ라는 사이트를 통해 미리 두 곳을 예약했다.

약속 시각이 되어 홍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ㅇㅇ오피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하철 2번 출구 근처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 건물에 들어오면 다시 전화를 걸어 달라고 말했다. 해당 오피스텔 건물 2층은 ㅇㅇㅇㅇ어학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로비에 도착해 다시 전화를 걸자 그는 15층에 위치한 방으로 가라고 알려왔다. 다짜고짜 선불부터 요구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며 벨을 눌렀다.

한 아가씨가 문을 열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선 결제부터 강요하지 않은 덕에 아가씨와 15분 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가씨가 대기하고 있던 방은 호텔 객실에 비견 될 정도로 깔끔한 편이었다. 다만 테이블 위에 놓인 스탠드 조명만 켜두고 있어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방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더블베드에는 이불 대신 일회용 침대 시트와 방수 시트가 이중으로 깔려 있었다.


아가씨는 기자를 소파로 이끈 후 "따뜻한 거줄까? 담배는 안 피워 오빠?"라며 갑자기 애교 섞인 목소리에 반말로 물어왔다. 그리곤 싱크대 쪽에 서서 차를 타기 시작했다.

이름과 나이를 물으니 아가씨는 "이름은 나영(가명)이고 26살"이라고 대답했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자 그는 "내가 마음에 안 들고 어린 애 만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전화하면 된다"라고 귀띔했다.           

젊음의 거리서 욕망의 성지로 변질
마사지·립카페·오피스방 성업 중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했느냐"고 물었다. 아가씨는 "7월부터 나왔으니까…" 라며 말끝을 흐렸다.

"돈 얼마씩 나눠 갖냐?”라고 물으니 아가씨는 까르르 웃더니 "그게 왜 궁금하냐. 14만원 중 9만원 내가 갖는다"라고 대답했다. 벌어들이는 금액의 70% 정도는 본인이 가져간다는 말이었다.

"하루에 몇 타임 뛰어요?"

"하루에 4개 정도. 8시쯤부터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해요. 뭐 일찍 끊길 때도 있지만 기다리다 보면 보통 4시까지 손님이 있더라고요."

"여기 있는 방들 전부 오피스방이에요?"

"에이 아니죠, 사람 사는 곳도 있고 사무실도 있고 학원도 있고 별게 다 있어요. 이 방은 내가 야간에 전담해서 사용하고 주간에는 또 따로 있고요. 방을 놀릴 순 없으니까."

"주로 어떤 사람들이 와요?"

"평일엔 직장인이 많이 오고 주말엔 학생들이 많이 오고 종종 군인들도 오고요."

"무슨 요일에 손님이 가장 많나요?"

"주말이랑 평일이랑 크게 차이는 없어요. 금토에 예약이 많긴 하지만요. 그만큼 취소도 많이 하고요. 클럽에서 놀다가 허탕치고 오는 애들도 많더라고요."

홍대 앞 클럽에서 '원나잇'에 성공하지 못한 남성들이 오피스방까지 찾고 있음을 아가씨의 입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에 못해도
4탕은 뛰어요"

착잡함을 느끼며 홍대 클럽 일대를 다시 찾았다. 길바닥에는 오피스방 관계자의 폰번호가 적힌 전단지가 날아다녔다. 자정이 되자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친 애정행각을 벌이는 남녀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술에 취해 길바닥에 주저앉은 여성들과 실려 가는 여성들을 목격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낮보다 밝은 홍대 앞 밤 풍경. '문화'가 퇴조한 자리를 '욕망'이 채워가고 있었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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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