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입학생 30만명 붕괴 현주소

줄어드는 아이 죽어가는 학교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올해로 초등학교 입학생이 30만명 아래로 추락하며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줄어드는 학령인구에 전국 곳곳에서 폐교만 더 늘어날 모양새다. 안 그래도 폐교 활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 갈수록 태산인 형국이다.

‘초등생 59만8000명, 27년만에 절반으로’. 지난 2010년에 보도됐던 기사 제목이다. 불과 16년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초등학생 입학생 수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속도가 약 두 배 가까이 가속화된 것이다.

절체절명
폐교 위기

교육부가 공개한 ‘2025년 초중고 학생 수 추계 보정 결과(2026~2031년)’에 따르면, 올해 전국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 수는 29만8178명으로 추산됐다.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30만명 아래로 내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부는 당초 2027년에야 30만명 선이 무너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주민등록 인구와 취학률 등 변수를 반영해 감소 시점을 1년 앞당겼다.

초등학교 입학생 수는 장기간 지속해서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최근 들어 감소 폭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수는 1999년 71만3500명에서 2000년 69만9032명으로 줄어들며 처음으로 70만명 선이 붕괴됐다.


이후 2008년 53만4816명에서 2009년 46만8233명으로 급감한 뒤 한동안 40만명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감소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수는 2023년 40만1752명에서 2024년 35만3713명, 지난해 32만4040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20만명대까지 내려왔다. 2023년과 올해 추산치를 비교하면 불과 3년 사이 10만명 이상 감소한 수치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입학생 수 감소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추계에서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수는 2027년 27만7674명, 2028년 26만2309명, 2029년 24만7591명, 2030년 23만2268명, 2031년에는 22만481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초등학생 전체 수 역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전체 초등학생 수는 221만7429명으로 추계됐으며, 2028년에는 200만명 선이 무너질 것으로 예측됐다. 2031년에는 152만8362명까지 감소해 올해보다 약 31%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줄줄이 폐교…올해 더 가속화
오는 3월에도 32곳 중지 예정

학령인구 감소가 이어지면서 전국에서 문을 닫은 학교 수는 이미 4000곳을 넘어섰다. ‘폐교 재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까지 전국 초·중·고등학교 가운데 폐교된 학교는 총 4008곳으로 집계됐다.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교가 3674곳으로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어 중학교 264곳, 고등학교 70곳 순이다. 폐교는 대부분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폐교는 최근 들어 더욱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폐교된 학교는 158곳이며, 향후 5년 동안에도 107곳이 추가로 문을 닫을 것으로 전망됐다. 지역별로는 전북이 16곳으로 가장 많은 폐교 예정 학교를 기록했고, 전남 15곳, 경기 12곳, 충남 11곳 순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외곽과 비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학생 수 감소가 두드러지면서 폐교가 집중되는 양상이다.

부산에서는 올해만 초등학교 3곳이 폐교됐다. 괘법초등학교와 봉삼초, 신선초는 올해 졸업식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괘법초의 경우 개교 당시 1200명이 넘던 전교생이 올해 52명까지 줄어든 끝에 폐교가 결정됐다. 마지막 졸업장을 받은 학생은 8명에 불과했다. 남은 재학생들은 인근 학교로 전학 갔다.

경북 지역에서는 폐교 규모가 더욱 크다. 경북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3월1일자로 유치원 18곳, 초등학교 13곳, 중학교 5곳 등 모두 36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초등학교의 경우 분교를 포함해 다수 학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신입생을 한 명도 받지 못한 학교가 수십곳에 이른다.

경기도는 올해 3월 포천 삼정초등학교, 여주 이포초 하호분교장, 화성 장안초 석포분교장, 가평 목동초 명지분교장 등 4곳이 폐교됐다. 경기도는 신도시 개발로 학교 신설도 병행하고 있지만, 학생 수 감소 지역에서는 폐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강원 지역의 상황도 비슷하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춘천 남산초 서천분교장과 정선 예미초 운치분교장이 문을 닫았다. 강원도에서는 1980년대 이후 폐교가 누적되며 지금까지 450곳이 넘는 학교가 사라졌다. 특히 정선과 인제, 홍천 등 일부 지역에서는 1990년대 초반에 폐교된 분교들이 여전히 지역 곳곳에 남아 있다.

대책 없는…
산 넘어 산
 

대도시 역시 예외는 아니다. 대구에서는 월곡초등학교가 졸업식과 동시에 폐교식을 치렀고,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는 1기 신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청솔중학교가 지난해 문을 닫았다. 경기 수원에서는 창용중학교가 2028년 폐교를 앞두고 있다. 서울에서도 일부 초등학교는 한 학년 입학생 수가 10명 안팎에 그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폐교 이후 학교 활용 여부다. 폐교 수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문을 닫은 학교가 모두 새로운 용도를 찾은 것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상당수 폐교는 매각이나 대부, 자체 활용이 이뤄지지 않은 채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폐교된 4008곳 가운데 376곳은 현재 활용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266곳은 10년 이상 미활용 상태며, 82곳은 30년 넘게 방치된 것으로 조사됐다.

강원 지역은 지난해 기준 도내 폐교 489곳 가운데 48곳이 활용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 이 중 11곳은 30년 이상 방치된 상태다. 정선 봉양초 덕산분교장(1990년 폐교), 정선 여량초 자개분교장(1991년), 인제초 군량분교장(1993년), 홍천 화계초 화양분교장(1994년) 등은 폐교 이후 수십년이 지났지만 뚜렷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했다.

경기 지역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교육청이 관리 중인 폐교 103곳 가운데 실제로 활용 중인 곳은 72곳에 그쳤다. 15곳은 활용을 추진 중이며, 5곳은 미활용 상태로 남아 있다. 행정 절차를 진행 중인 학교도 11곳에 달한다. 지난해 폐교된 학교 8곳 가운데 절반 역시 활용 방안이 확정되지 않았다.


도심이라고 해서 상황이 나은 것도 아니다. 대구 중구에 위치한 옛 경신정보과학고등학교는 2018년 폐교된 이후 8년 넘게 사실상 방치돼있다. 해당 건물은 건축물대장에 등재돼있지 않아 지자체 차원의 공공시설 활용도 어려운 상황이다.  

활용은
제자리
 

현재 일부 부지는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학교 건물 자체는 닫힌 채 남아 있다. 경남에도 교육청이 보유한 폐교 가운데 활용되지 못한 학교가 많다. 경남 지역 누적 폐교 587곳 중 218곳은 교육청이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60곳은 아직 활용되지 않고 있다.

봉림중학교와 진해여자중학교 등 도심 폐교 부지를 두고도 활용 방안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수립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토록 폐교 활용이 이뤄지지 않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이는 행정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상 폐교 재산은 교육·문화·복지 등 공익 목적 중심으로 활용이 제한된다. 폐교 직전까지 학교가 운영되는 경우 사전 활용 계획을 수립하기 어렵다는 점도 원인 중 하나다.

이로 인해 폐교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유휴 상태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폐교 이후 오랜 기간 방치되는 학교가 적지 않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폐교를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활용한 사례도 있다. 교육시설과 기록관, 체험 공간, 주거시설 등 활용 형태도 다양하다. 서울에서는 폐교된 중학교 부지를 교육시설로 전환한 사례가 있다.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공진중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2020년 폐교됐다.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부지를 생태환경 교육관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현재 공사를 진행 중이다. 연면적 6783㎡, 지상 4층 규모로 조성되는 교육관에는 기후 위기, 생물 다양성, 에너지 등을 주제로 한 생태환경 교육 프로그램 약 40개가 운영될 예정이다.

“용도 제한으로 활용 어려워”
4008곳 가운데 376곳 그대로

충남 예산에서는 폐교를 기록 보존 공간으로 재활용했다. 예산군 대흥면에 위치한 옛 대률초등학교는 ‘충청남도교육청기록원’으로 탈바꿈했다. 이 시설은 전국 최초로 교육 분야 기록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록원으로, 교육청과 학교, 교육지원청 등에 분산돼있던 교육 기록물을 집중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기록원에는 약 53만권 분량의 교육 기록물이 이관될 예정이며, 보존 서고와 디지털 콘텐츠 연구 공간, 구술 채록 공간 등을 갖췄다.

강원 삼척에서는 폐교를 교육·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삼척시는 옛 도계초 소달분교장을 리모델링해 ‘소달 배움터’를 조성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이 시설은 교육발전특구 시범사업의 거점 공간으로, 감각활동실과 발달놀이실, 베이킹실, 영어 체험 공간, 도서실 등을 갖췄다.

향후 연령과 발달 단계에 맞춘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같은 지역에서는 관광·체험 시설로의 전환도 추진되고 있다. 삼척 노곡면에 위치한 옛 노곡분교는 리조트형 시설로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총사업비 82억원을 투입해 게스트하우스와 펜션, 캠핑 사이트, 운동장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으로, 폐교 부지를 지역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다.

주거 공간으로 활용한 곳도 있다. 제주에서는 폐교 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기존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주거시설과 함께 교육시설, 공원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폐교를 지역 정주 공간으로 활용하는 첫 사례다.

이 밖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폐교를 노인 여가시설, 체험학습장, 방과후 거점센터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갤러리나 문화 공간, 주민 편의시설로 전환된 사례도 전국 곳곳에서 확인된다.

다만 이 같은 활용 사례가 있지만 적극적인 활용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활용 속도는 더딘 반면에 폐교가 늘어나는 속도는 올해부터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감소 추세

교육부의 ‘2026년 시도별 공·사립 초중고 폐교 예정 현황’에 따르면 오는 3월에도 전국 32개 학교가 추가로 문을 닫는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교 26곳, 중학교 5곳, 고등학교 1곳이다. 지역별로는 전북, 경남, 전남, 부산, 대구, 경기 등으로 전국 곳곳에서 폐교가 예정돼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며 “폐교가 늘어나는 만큼 활용 범위가 유연하게 적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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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