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입학생 30만명 붕괴 현주소

줄어드는 아이 죽어가는 학교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올해로 초등학교 입학생이 30만명 아래로 추락하며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줄어드는 학령인구에 전국 곳곳에서 폐교만 더 늘어날 모양새다. 안 그래도 폐교 활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 갈수록 태산인 형국이다.

‘초등생 59만8000명, 27년만에 절반으로’. 지난 2010년에 보도됐던 기사 제목이다. 불과 16년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초등학생 입학생 수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속도가 약 두 배 가까이 가속화된 것이다.

절체절명
폐교 위기

교육부가 공개한 ‘2025년 초중고 학생 수 추계 보정 결과(2026~2031년)’에 따르면, 올해 전국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 수는 29만8178명으로 추산됐다.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30만명 아래로 내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부는 당초 2027년에야 30만명 선이 무너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주민등록 인구와 취학률 등 변수를 반영해 감소 시점을 1년 앞당겼다.

초등학교 입학생 수는 장기간 지속해서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최근 들어 감소 폭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수는 1999년 71만3500명에서 2000년 69만9032명으로 줄어들며 처음으로 70만명 선이 붕괴됐다.

이후 2008년 53만4816명에서 2009년 46만8233명으로 급감한 뒤 한동안 40만명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감소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수는 2023년 40만1752명에서 2024년 35만3713명, 지난해 32만4040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20만명대까지 내려왔다. 2023년과 올해 추산치를 비교하면 불과 3년 사이 10만명 이상 감소한 수치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입학생 수 감소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추계에서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수는 2027년 27만7674명, 2028년 26만2309명, 2029년 24만7591명, 2030년 23만2268명, 2031년에는 22만481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초등학생 전체 수 역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전체 초등학생 수는 221만7429명으로 추계됐으며, 2028년에는 200만명 선이 무너질 것으로 예측됐다. 2031년에는 152만8362명까지 감소해 올해보다 약 31%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줄줄이 폐교…올해 더 가속화
오는 3월에도 32곳 중지 예정

학령인구 감소가 이어지면서 전국에서 문을 닫은 학교 수는 이미 4000곳을 넘어섰다. ‘폐교 재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까지 전국 초·중·고등학교 가운데 폐교된 학교는 총 4008곳으로 집계됐다.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교가 3674곳으로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어 중학교 264곳, 고등학교 70곳 순이다. 폐교는 대부분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폐교는 최근 들어 더욱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폐교된 학교는 158곳이며, 향후 5년 동안에도 107곳이 추가로 문을 닫을 것으로 전망됐다. 지역별로는 전북이 16곳으로 가장 많은 폐교 예정 학교를 기록했고, 전남 15곳, 경기 12곳, 충남 11곳 순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외곽과 비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학생 수 감소가 두드러지면서 폐교가 집중되는 양상이다.

부산에서는 올해만 초등학교 3곳이 폐교됐다. 괘법초등학교와 봉삼초, 신선초는 올해 졸업식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괘법초의 경우 개교 당시 1200명이 넘던 전교생이 올해 52명까지 줄어든 끝에 폐교가 결정됐다. 마지막 졸업장을 받은 학생은 8명에 불과했다. 남은 재학생들은 인근 학교로 전학 갔다.

경북 지역에서는 폐교 규모가 더욱 크다. 경북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3월1일자로 유치원 18곳, 초등학교 13곳, 중학교 5곳 등 모두 36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초등학교의 경우 분교를 포함해 다수 학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신입생을 한 명도 받지 못한 학교가 수십곳에 이른다.

경기도는 올해 3월 포천 삼정초등학교, 여주 이포초 하호분교장, 화성 장안초 석포분교장, 가평 목동초 명지분교장 등 4곳이 폐교됐다. 경기도는 신도시 개발로 학교 신설도 병행하고 있지만, 학생 수 감소 지역에서는 폐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강원 지역의 상황도 비슷하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춘천 남산초 서천분교장과 정선 예미초 운치분교장이 문을 닫았다. 강원도에서는 1980년대 이후 폐교가 누적되며 지금까지 450곳이 넘는 학교가 사라졌다. 특히 정선과 인제, 홍천 등 일부 지역에서는 1990년대 초반에 폐교된 분교들이 여전히 지역 곳곳에 남아 있다.

대책 없는…
산 넘어 산
 

대도시 역시 예외는 아니다. 대구에서는 월곡초등학교가 졸업식과 동시에 폐교식을 치렀고,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는 1기 신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청솔중학교가 지난해 문을 닫았다. 경기 수원에서는 창용중학교가 2028년 폐교를 앞두고 있다. 서울에서도 일부 초등학교는 한 학년 입학생 수가 10명 안팎에 그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폐교 이후 학교 활용 여부다. 폐교 수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문을 닫은 학교가 모두 새로운 용도를 찾은 것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상당수 폐교는 매각이나 대부, 자체 활용이 이뤄지지 않은 채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폐교된 4008곳 가운데 376곳은 현재 활용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266곳은 10년 이상 미활용 상태며, 82곳은 30년 넘게 방치된 것으로 조사됐다.

강원 지역은 지난해 기준 도내 폐교 489곳 가운데 48곳이 활용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 이 중 11곳은 30년 이상 방치된 상태다. 정선 봉양초 덕산분교장(1990년 폐교), 정선 여량초 자개분교장(1991년), 인제초 군량분교장(1993년), 홍천 화계초 화양분교장(1994년) 등은 폐교 이후 수십년이 지났지만 뚜렷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했다.

경기 지역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교육청이 관리 중인 폐교 103곳 가운데 실제로 활용 중인 곳은 72곳에 그쳤다. 15곳은 활용을 추진 중이며, 5곳은 미활용 상태로 남아 있다. 행정 절차를 진행 중인 학교도 11곳에 달한다. 지난해 폐교된 학교 8곳 가운데 절반 역시 활용 방안이 확정되지 않았다.

도심이라고 해서 상황이 나은 것도 아니다. 대구 중구에 위치한 옛 경신정보과학고등학교는 2018년 폐교된 이후 8년 넘게 사실상 방치돼있다. 해당 건물은 건축물대장에 등재돼있지 않아 지자체 차원의 공공시설 활용도 어려운 상황이다.  

활용은
제자리
 

현재 일부 부지는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학교 건물 자체는 닫힌 채 남아 있다. 경남에도 교육청이 보유한 폐교 가운데 활용되지 못한 학교가 많다. 경남 지역 누적 폐교 587곳 중 218곳은 교육청이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60곳은 아직 활용되지 않고 있다.

봉림중학교와 진해여자중학교 등 도심 폐교 부지를 두고도 활용 방안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수립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토록 폐교 활용이 이뤄지지 않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이는 행정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상 폐교 재산은 교육·문화·복지 등 공익 목적 중심으로 활용이 제한된다. 폐교 직전까지 학교가 운영되는 경우 사전 활용 계획을 수립하기 어렵다는 점도 원인 중 하나다.

이로 인해 폐교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유휴 상태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폐교 이후 오랜 기간 방치되는 학교가 적지 않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폐교를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활용한 사례도 있다. 교육시설과 기록관, 체험 공간, 주거시설 등 활용 형태도 다양하다. 서울에서는 폐교된 중학교 부지를 교육시설로 전환한 사례가 있다.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공진중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2020년 폐교됐다.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부지를 생태환경 교육관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현재 공사를 진행 중이다. 연면적 6783㎡, 지상 4층 규모로 조성되는 교육관에는 기후 위기, 생물 다양성, 에너지 등을 주제로 한 생태환경 교육 프로그램 약 40개가 운영될 예정이다.

“용도 제한으로 활용 어려워”
4008곳 가운데 376곳 그대로

충남 예산에서는 폐교를 기록 보존 공간으로 재활용했다. 예산군 대흥면에 위치한 옛 대률초등학교는 ‘충청남도교육청기록원’으로 탈바꿈했다. 이 시설은 전국 최초로 교육 분야 기록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록원으로, 교육청과 학교, 교육지원청 등에 분산돼있던 교육 기록물을 집중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기록원에는 약 53만권 분량의 교육 기록물이 이관될 예정이며, 보존 서고와 디지털 콘텐츠 연구 공간, 구술 채록 공간 등을 갖췄다.

강원 삼척에서는 폐교를 교육·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삼척시는 옛 도계초 소달분교장을 리모델링해 ‘소달 배움터’를 조성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이 시설은 교육발전특구 시범사업의 거점 공간으로, 감각활동실과 발달놀이실, 베이킹실, 영어 체험 공간, 도서실 등을 갖췄다.

향후 연령과 발달 단계에 맞춘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같은 지역에서는 관광·체험 시설로의 전환도 추진되고 있다. 삼척 노곡면에 위치한 옛 노곡분교는 리조트형 시설로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총사업비 82억원을 투입해 게스트하우스와 펜션, 캠핑 사이트, 운동장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으로, 폐교 부지를 지역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다.

주거 공간으로 활용한 곳도 있다. 제주에서는 폐교 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기존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주거시설과 함께 교육시설, 공원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폐교를 지역 정주 공간으로 활용하는 첫 사례다.

이 밖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폐교를 노인 여가시설, 체험학습장, 방과후 거점센터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갤러리나 문화 공간, 주민 편의시설로 전환된 사례도 전국 곳곳에서 확인된다.

다만 이 같은 활용 사례가 있지만 적극적인 활용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활용 속도는 더딘 반면에 폐교가 늘어나는 속도는 올해부터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감소 추세

교육부의 ‘2026년 시도별 공·사립 초중고 폐교 예정 현황’에 따르면 오는 3월에도 전국 32개 학교가 추가로 문을 닫는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교 26곳, 중학교 5곳, 고등학교 1곳이다. 지역별로는 전북, 경남, 전남, 부산, 대구, 경기 등으로 전국 곳곳에서 폐교가 예정돼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며 “폐교가 늘어나는 만큼 활용 범위가 유연하게 적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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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