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명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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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5.12.08 07:18:23
  • 호수 15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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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 글항아리 / 1만6000원

“나연씨,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써요?” 그 한마디에서 이 모든 얘기가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가난의 명세서>는 무슨 돈을 어떻게 얼마나 썼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써놓고 보니 이 이야기는 ‘소비의 목록’이 아닌 ‘가난의 명세서’가 돼있었다.

나연은 노트북 구입비, 엄마 병원비, 전화 영어, 교통비, 여행비, 정신과 진료비 등 지난 10여년의 지출 내역을 탈탈 털어 어떤 빈곤의 서사를 풀어놓는다. 그것은 사람을 삶의 극단으로 내모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빈곤이 아니다. 그보다 끊임없이 생활을 제약하고 자아를 위축되게 만드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빈곤 상태’가 이 책에 적힌 가난이다.

말하자면 어쩐지 ‘진짜 가난’임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가난. 무언가 소명해야 할 것 같은 빈곤.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불완전하고 어중간하고 임시적인 느낌. 그래서 떳떳해지지 못하고 자꾸만 죄스러워지는 마음. 그러나 이 자질구레한 가난의 명세서를 읽어나가다 보면, 그 감정들이야말로 저자의 빈곤 체험을 관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가난은 우리를 어떤 인간으로 만드는가?”

가난을 경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빈곤이 사회적 문제로 다루어질 때 그것은 눈에 띄는 결핍으로 시각화되고, 구조적 문제로 도식화된다. 반면 그것이 누군가의 사적 서사가 되었을 때 드러나는 구체적인 하루하루의 내용, 그 내용이 동세대, 전후세대와 얽히며 종횡으로 만들어낸 삶의 패턴은 그 빈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띤다.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위협, 누군가에게는 생활의 제약, 누군가에게는 부서진 관계, 누군가에게는 희망 없음인 그것을, 이 책의 저자는 ‘유령이 되는 일’이었다고 적는다. 풀어 쓰자면 그에게 가난은 자아가 왜곡되고 위축되고 축소되다 못해 소멸되는 일. 저자에게 빈곤은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 살기’와 관련이 있는 문제였다.


여느 당사자 서사가 그러하듯 이 책도 청년 빈곤의 일상적 풍경을 소상하게 담아낸다. 특유의 발랄하고 수다스러운 문체로. 눈앞에 있는 과자의 최저가를 찾겠다고 네이버와 쿠팡을 들락거리는 소비자, 6만원짜리 운동화도 일시불로 못 사는 빈털터리, 중고 노트북으로 자소서를 쓰고 부업도 하는 취준생, 떠나기 전 ‘기초생활수급자 해외여행 금지’ 국민청원을 찾아보는 여행객, 회사생활을 병행하며 이삭토스트로 대학원 4학기를 버틴 고학생, 뇌출혈로 쓰러진 엄마의 치료비와 간병비를 책임지는 보호자, 병원비가 무서워 정신과 진료를 10년이나 미룬 환자… 그런 ‘빈자’로 사는 동안 ‘나’는 삶의 여러 차원에서 결핍을 지속적으로 감각한다.

언제나 계산하며 살아야 하고, 시간 감각은 ‘지금’에 고정되며, 끊임없이 기대하지 않기를 학습해야 하는 생활. 저자는 이런 생활 속에서 내면에 쌓여온 묵은 감정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화내고, 슬퍼하고, 서러워한다.

자기연민에 빠졌다가 다시 그 연민을 혐오하고, 가난을 멋대로 대상화했다가 또 정체성으로 삼기도 한다. 이 혼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난의 당사자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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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