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조국-한동훈 같은 듯 다른 운명

긁고 긁히는 두 비주류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붙었다. 이들은 하루가 멀다고 설전을 벌이지만 여야의 태도는 미지근하다. 한번 정치에 발을 들인 이상 이대로 잊힐 수는 없다. 호시절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박 터지는 여의도에 좀처럼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지만 두 사람은 어딘가 닮아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는 서울대학교 법대 출신으로 82학번,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92학번이다. 조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한 전 대표는 윤석열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내는 등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모두 하락세

정치 입문 계기 역시 전직 대통령들의 역할이 컸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황태자’ 타이들을 달았고 조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의 ‘아픈 손가락’으로 친문(친 문재인)계의 도움을 받았다. 정치 입문 후에는 패션, 소품 등이 화제가 되는 ‘셀럽 정치인’으로 비치기도 했다.

국민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정치적으로 오래 가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 전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불법’이라고 주장해 친윤(친 윤석열)계의 뭇매를 맞고 당 대표 선출 146일 만에 사퇴했다. 조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형을 확정받아 결국 발목을 잡혔다.


두 사람 모두 정치 입문과 동시에 팬덤을 형성하며 광폭 행보를 보였지만 올라가는 속도만큼 빠르게 비주류로 전락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윤정부 당시 여당의 수장이었지만 세력 확보에 실패했다. “여의도에서는 배지 없으면 될 일도 안 된다”는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한 전 대표는 당의 중심이면서도 정치판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간간이 유튜브와 페이스북으로 근황을 알리던 한 전 대표는 지난달 ‘쿠팡 새벽 배송’ 논란을 시작으로 토론 정치에 나섰다. 이후 각종 사안에 대해 현역 의원을 지목하며 ‘끝장 토론’을 제안했고 라디오 등 매체를 통해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 대표는 대장동 항소 포기 사건에 조 전 위원장을 끌어들였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부 법무부 장관을 나열하며 토론을 요청하던 한 전 대표가 특히 조 대표를 콕 집어낸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오픈북 해도 되고, 셋이 와도 되고, 증언 거부권 써도 된다. 단 위조 서류는 안 된다”며 조국 사태를 비꼬았다. 한 전 대표는 “대장동 일당 편 전직 교수 조국 씨, 불법 항소 포기 사태 ‘대장동 일당 편 VS 국민 편’으로 누구 말이 맞는지, 시간 장소 다 맞출 테니 야수답게 국민 앞에서 공개 토론하자”고 밝혔다.

대장동·론스타 띄우는 한, 공허한 외침
국힘 엎고 ‘신흥 보수’ 개편만이 살길

이에 조 대표는 마찬가지로 SNS를 통해 “한동훈씨가 국민의힘 내에서도 전망이 없는 상태라 ‘긁힌 상태’ 같다”고 받아치면서 설전이 시작됐다. 조 대표는 “(한 전 대표가) 다시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안한다. 나를 공격하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으니까 재미를 붙인 것 같다”며 “한동훈씨의 칭얼거림에 응할 생각은 없다”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한동훈씨는 자신의 동지였던 강백신, 엄희준 등 ‘친윤 정치검사’들이 이 대표를 표적으로 삼는 수사를 보고받고 독려했을 것”이라며 “향후 대장동 수사 과정에서 대장동 사건과 한 전 대표의 연관성을 밝혀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한 전 대표가 정치권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친윤 세력이 비주류가 돼야 한다. 이들을 몰아내고 국민으로부터 ‘진짜 보수’라는 인정을 받아야 신흥 주류로 떠오르지만 당내 TK(대구·경북)를 꽉 잡은 친윤계가 건재한 지금 어느 곳에도 한 전 대표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정가으 한 관계자는 “장동혁·송언석 체제에서는 한 전 대표가 끼어들 틈이 없다”며 “친한(친 한동훈)계라고 불리는 이들이 라디오에서 한 전 대표는 다시 띄워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한 전 대표의) 팬덤을 제외한 보수 지지층의 반발은 심해질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론스타 승소에 대한 공을 놓고 한 전 대표가 목소리를 키웠지만 무안할 정도로 국민의힘이 받아주지 않고 있다. 본인들이 쫓아낸 사람을 치켜세우기가 민주당에 주도권을 뺏기는 것보다 싫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 대표의 반대쪽에 서있는 조 대표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비례 2번으로 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입성했지만 ‘보복 정치’ 프레임과 더불어 군소 정당이라는 한계에 부딪혔다. 탄핵 정국 이후에는 의제 설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혁신당이 내년에 치러질 지방선거(이하 지선)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조국도 못 살린다” 길 잃은 혁신당
지선 사활…조·한 부산 빅매치 성사?

혁신당은 다시 한번 호남으로 눈을 돌렸다. 조 대표는 전당대회 첫 일정으로 전남도의회를 찾아 “저와 혁신당은 강력하고 단단한 맷집, 빠른 돌진 능력을 가진 코뿔소처럼 내란 극복과 정치개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겠다”며 지역 발전과 도민 중심 민생 정치를 약속했다.

이날 조 대표는 혁신당이 정의당과 다르다며 차별을 뒀다. 그는 혁신당의 진로와 관련해 “민주당과 협력하면서도 민주당이 반대하거나 머뭇거리는 정책은 계속 주장해 왔다”며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꼭 민주당의 노선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의원 중에 ‘혁신당이 정의당처럼 될 것’이라고 저주하거나 예언하는 분도 있다”며 “지난 대선에서 독자 후보를 내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우리는 내지 않았다. 정의당과는 다르다”고 거듭 강조했다.

내년 지선에 조 대표가 직접 출마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내년 지선서) 조 전 대표가 어디든 출마할 것”이라며 “‘국힘 광역단체장 제로’라는 목표 달성에 어떤 게 좋은 방법일지를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부산시장 선거까지도 열어 뒀느냐”는 진행자의 물음에 신 의원은 “어디든, 다 열어둘 수 있다”고 답했다.

친한계 역시 한 전 대표의 부산 출마 가능성을 띄웠다.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 때 부산 북구갑을 놓고 “조 대표가 국회에 들어가고 싶어 내심 탐을 내는 것 같다”며 “그렇다면 조 대표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한 전 대표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조 의원은 “(한동훈 대 조국 빅매치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면서도 “한 전 대표가 그런 표현(출마 여부)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언론이나 정치인들끼리 하는 이야기로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신중론을 내세웠다.

한 전 대표와 조 대표가 동분서주하지만 일단 한번 여의도를 벗어나면 다시 발을 딛기 어려운 만큼 정치 세력 확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무부 장관’ 타이틀을 내세운 채 치고 박는 싸움 또한 비주류의 대결인 만큼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설명이다.

파급력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출마를 하든 안 하든 지선을 앞두고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시기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지분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제 뜻을 언론에 알려 보도되는 걸 목적으로 퍼포먼스하고 몸부림 치는 것 아니겠느냐? 그 행동이 합리성을 취할 때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여기에 함께 하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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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