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정경석 변호사는 미국 사법의 디스커버리 제도를 활용해 사이버 레커 탈덕수용소·뻑가의 신원을 파악했다. 정 변호사는 이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허위 사실 유포·확산을 초기에 막을 방법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경석 변호사(법무법인 리우)는 아이브 장원영·BJ 과즙세연을 대리해 이들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사이버 레커 탈덕수용소·뻑가의 신원을 파악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지난달 <사이버 렉카 전쟁>을 출간한 정 변호사는 “명예훼손·공갈 등 범죄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기술 발달로 인해 더 지능화됐다”고 우려했다. 다음은 정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사이버 렉카 전쟁>을 출간한 계기는?
▲원래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에 관한 책을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익명 유튜버의 신원을 파악한 최초의 사례다. 그래서 신원을 파악했던 법적 절차 관련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이후 진행된 관련 사건과의 관계도 정리하고 싶었다.
-법을 어긴 구글(유튜브 포함) 이용자 신원 파악이 특히 어려운 이유는?
▲네이버·카카오 운영 주체는 국내 사업자라서 법원의 사실 조회·문서 제출 명령을 통해 이용자의 가입 당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구글은 미국 사업자다. 국내 법원 문서를 해외로 보낼 수 없다. 고소해도 수사권이 미치지 않고, 표현의 자유 등 이유로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다.
남은 방법은 우리나라·미국 모두 가입한 헤이그 증거 협약을 통해 국가 간 사법 공조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보를 받더라도 끝내 신원을 특정하지 못한 채 실패한 사례들이 많다. 그래서 미국 법원에 직접 디스커버리를 신청해서 얻은 명령을 통해 구글로부터 정보를 받는 것이었다.
그 정보를 토대로 국내 통신사·지방자치단체의 조회를 거쳐 신원을 특정할 수 있었다.
“뻑가, 미 법원 설득 믿고 의견서 제출”
“디스커버리 도입되면 대체 수단 확대”
-유튜버 뻑가는 미국 법원에 미국 수정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미국 법원에 자신의 계정 정보 공개를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없다. 그래서 허위 사실이 아니면 표현의 자유가 보호된다. 하지만 실체 판단은 미국이 아닌 한국 법원이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미국 수정헌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뻑가는 “미국 법원을 설득하면, 자신의 신상 정보가 한국에선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미국 법원도 “미국과 한국에서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는 서로 다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저희는 미국 법원의 결정에 따라 구글이 준 정보를 토대로 뻑가를 특정했다. 그러자 뻑가는 “위법하게 개인 정보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미국 법원에 계속 이의 신청을 했지만, 결국 기각됐다. 미국 법원이 판단했던 것은 개인 정보 제공 여부였다.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는 어떤 제도인가?
▲미국 사법제도엔 본안 심리(Trial) 전에 진행하는 다양한 변론준비절차(Pre-trial)가 있다. 우리 법원의 준비절차와 달리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절차를 진행한다. 미국에선 변호사와의 대면 조사를 의미하는 선서 증언(Deposition)과 소환·문서 제출 명령(Subpoena)이 사전에 진행된다.
이게 디스커버리(증거 개시) 제도를 구성한다. 저희는 소환·문서 제출 명령을 이용했다.
두 제도는 한국인이 이용할 수 없어서 원칙적으로는 헤이그 증거 협약에 따라 증거 조사를 맡겨야 한다. 하지만 미국 연방법 제1782조엔 외국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사건에 대해 미국 법원이 디스커버리 제도를 지원하는 ‘해외에서 진행 중인 법적 절차(Foreign Proceeding)’가 규정돼있다. 이를 통해 소환장을 받아 보낸 후 정보를 확보했다.
-유튜브 법률지원팀은 영상 삭제 불가 통지를 하면서 디스커버리 제도를 ‘제3자 소환’이라고 표현한다. 일반인이 제3자 소환의 의미를 금방 파악할 수 있겠는가?
▲제3자 소환은 ‘Subpoena’를 번역한 표현이다. 이렇게 번역하면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 법조인도 이해하기 어렵다. 저는 정보공개 명령이라고 번역했다. 재판 진행 전 증거를 조사하기 위해 문서 제출 명령을 하거나 증인신문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선 저커버그와 분쟁 상대방이 재판 진행 전에 공방하는 묘사가 나온다. 이게 선서 증언이다.
“점점 더 지능화…조기 차단 필요”
“법원 통해 신원 파악할 수 있어야”
-우리 사법부도 디스커버리 제도를 연구했다. 디스커버리 제도의 장점은?
▲본안 심리에 들어가기 전에 증인신문·증거 수집을 할 수 있게 되면, 재판 기간을 줄일 수 있다. 당사자·변호인의 참여도 활발해진다. 미국에선 소송 준비 절차 진행 중 디스커버리를 통해 해결되는 사례가 많다. 디스커버리 절차에 드는 시간·노력·비용 등 때문에 합의를 하는 것이다.
양측이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실체적 진실도 빠르게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의 흐름을 미리 파악해 합의가 진행될 수도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대체적 분쟁 해결 수단이 더 활성화될 수도 있다.
-사이버 레커들은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주장이 대중의 호응을 얻어 많은 부를 얻는 비결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주장이 가짜 뉴스와 연관돼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두는 것 같다. 반대로 표현의 자유란 큰 가치가 있어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다. 표현의 자유와 가짜 뉴스 근절이 조화할 수 있는 부분을 반드시 찾아야 할 것 같다. 최근엔 과거와 달리 허위 사실 유포·조롱·경멸 등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이버 레커들은 “인터넷에 이미 유포된 내용을 전달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면서 이런 내용을 진실로 믿는다. 이어 악플 등이 생산되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유튜버 쯔양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명예훼손·공갈 등 사이버 레커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국가적 문제가 된 것 같다. 이들의 범죄를 막는 데 필요한 제도적 보완점이 있다면?
▲공갈·협박은 기존 법리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행위를 한 유튜버는 처벌을 받았고, 처벌 수위도 높아졌다. 제가 취급했던 것은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모욕·업무방해 등을 저지른 익명 유튜버의 신원 파악이었다. 이들이 유포하는 허위 사실은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씻을 수 없는 낙인으로 남는다.
특히 인터넷에선 정보 확산이 더 빠르다. 아울러 사생활 공개 관련 공갈도 과거보다 지능화됐다. 이젠 가상화폐를 통해 금품을 받는 등 드러나지 않는 수단을 활용한다. 최근엔 딥 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기 힘든 내용도 퍼지고 있다. 이런 내용이 퍼지면, 사람들은 가짜도 진짜라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허위 사실 유포·확산을 초기에 막을 방법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 같다. 피해자의 신고가 있으면 빨리 유포를 차단하거나, 국내 법원을 통해 익명 유포자의 신원을 더 빠르게 확인하는 방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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