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배달의민족의 모회사 ‘딜리버리히어로’가 자체 개발한 배차 플랫폼 ‘로드러너’의 전국 확대를 내년부터 추진할 예정인 가운데, 이를 둘러싼 폭풍이 거세다. 현재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행 중이지만 라이더, 음식 점주 등 플랫폼의 실사용자들이 한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로드러너는 딜리버리히어로(이하 DH)가 개발한 AI 기반 자동배차·정산 시스템이다. 배민커넥트처럼 배달기사가 콜을 수락하는 구조가 아니라, 시스템이 위치·거리·등급 등을 종합해 자동으로 배차한다. 기사들은 사전에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로그인하고, 배차된 주문을 수행한다.
효율성 때문?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이 2019년부터 운영해 온 ‘배민커넥트’는 시간제 또는 건당 수당으로 일할 수 있는 단시간 근로형 시스템이다. 일정한 보호장치와 자동 정산 시스템을 갖춰 ‘아르바이트형’ 배달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로드러너는 “프리랜서형”을 표방하면서도 통제는 더 강한 구조다.
라이더는 일주일 단위로 근무 스케줄을 예약해야 하며, 등급(그룹)에 따라 좋은 시간대를 배정받는다. 등급은 AI 알고리즘이 결정하며, 수락률·이탈률·근무 태도 등이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다.
문제는 등급이 낮으면 근무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점이다.
화성시의 한 라이더는 “등급이 떨어지면 새벽이나 한밤중 같은 비인기 시간대밖에 배정받지 못한다”며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다”고 말했다.
이 같은 등급제는 자율성을 내세운 ‘프리랜서’와 달리, 사실상 관리·감독이 강화된 근로형 구조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케줄 강제와 알고리즘 평가로 인해 노동 통제성이 높아졌지만, 정작 법적으로는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형성되는 셈이다.
로드러너에 대한 가장 큰 반발은 ‘통제형 시스템’과 ‘불투명한 정산’ 때문이다. 라이더유니온이 화성·오산 지역 배달 노동자 16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0.7%가 “로드러너가 도입되면 일을 중단하겠다”고 답했다. ‘문제가 있으면 근무시간을 줄이겠다’는 응답도 25.9%에 달했다.
라이더들은 기존 배민커넥트에서는 자유롭게 앱을 켜고 끌 수 있었지만, 로드러너에선 근무시간을 사전에 예약해야 하며, 노쇼(무단 결근)나 수락률 저하로 등급이 낮아지면 스케줄 선택권이 사라진다고 지적한다. 이는 사실상 ‘예약근무제’에 가깝다.
정산 문제도 반복되고 있다. 로드러너에서는 배달 전 안내된 금액보다 적게 정산되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예를 들어 9000원으로 표시된 배달을 완료했는데 실제 정산은 4000원으로 처리되는 식이다. 고객센터에 직접 문의하면 차액을 지급받을 수 있으나, 자동 보정은 이뤄지지 않는다.
내년 전국 추진 예정
다 반대…예정된 실패?
라이더유니온 조사에서 “배민커넥트 대비 정산이 부정확하다”는 응답은 87.1%, “직접 오류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77.8%였다. 한 라이더는 “매번 차액을 확인해 문의하기 어렵다. 일일이 항의해야 겨우 보정받는다”며 “이런 구조는 고의든 실수든 불신을 키운다”고 말했다.
시스템 품질 문제도 지적된다. 로드러너는 초기엔 자체 지도를 사용했지만 거리 계산 오류와 길찾기 버그가 심해 “그림판 지도 같다”는 불만이 나왔다. 최근 네이버 지도로 바뀌면서 개선됐지만, 기사들은 여전히 배차 지연과 거리 불일치 문제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로드러너는 이번에 처음 도입된 시스템은 아니다. 2020년, DH가 요기요를 운영하던 당시 로드러너와 유사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당시에도 동일한 문제, 즉 배차 불투명·등급제 불만·정산 오류 문제가 불거졌다. 기사들은 “같은 거리인데 매번 금액이 다르다” “이유도 모르는 채 등급이 떨어진다”고 항의했고, 점주들은 “배달 지연으로 고객 이탈이 늘었다”고 반발했다.

결국 DH는 2021년 로드러너 시스템을 철회했다. 당시 실패 이유로 언급된 것은 한국형 배달 환경의 특수성이었다. 그 중 가장 큰 요인은 라이더의 유연한 근무 방식이 작동하는 한국 시장에서, 일방적인 통제형 시스템은 쉽게 거부감을 낳는다는 점이었다.
이후 DH가 배민을 인수하면서 요기요는 매각됐고, 요기요는 자체적으로 ‘로지요’를 개발해 배차 시스템을 전면 전환했다. 그러나 완성도 부족으로 시장 반응은 미미했다. 요기요의 로드러너 실패는, 시스템 효율보다 현장 적합성이 우선돼야 함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H가 같은 시스템을 다시 들고 나온 이유는 ‘글로벌 통합’과 ‘수익 구조 재편’인 것으로 예측된다. DH는 유럽·아시아·중동 등 세계 70여개국에서 운영 중인 배달 플랫폼을 하나의 기술 구조로 통합하려 하고 있다.
“등급 떨어지면 배달 불가”
확대 조짐에 기사 집단 반발
로드러너는 그 핵심 기술이다. 각국 지사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시스템을 유지하면 관리 비용이 커지고, 본사 입장에서는 수익 회수 구조가 복잡해진다.
한국 시장의 규모는 DH 전체 매출의 약 40%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DH는 배민의 기술·인력·운영을 본사 시스템으로 일원화해 관리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현장 상황과 사용자 피드백이 배제되면서 “본사 이익을 위한 일방적 통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DH는 로드러너 외에도 배민 내부의 데이터 분석, 상담 툴, 고객센터 시스템까지 DH 툴로 교체 중이다. 노조 측은 “공정 입찰 없이 도입된 DH 설루션의 사용료가 결국 본사로 송금되는 구조”라며 “내부 비용 절감이 아닌 해외 송금 창구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됐다. DH는 2023년 배민으로부터 4127억원의 배당금을, 2024년에는 5372억원 상당의 자사주 소각 이익을 얻었다. 여기에 거래 수수료 명목 645억원이 추가로 지급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수수료가 시장가보다 높다면 부당 지원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배민 입장에서는 로드러너를 통해 인건비 절감·운영 인력 축소·본사 로열티 통합이라는 세 가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하지만 기사와 점주의 입장에서는 안정성과 신뢰가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DH는 자회사들을 통해 세계 각국에 로드러너를 적용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유사한 논란이 뒤따랐다. 2023년 터키의 DH 자회사 ‘Yemeksepeti’에서는 라이더들이 휴식권 보장, 등급 하락 시 계정 정지 중단, 정산 오류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푸드팬다(Foodpanda)’ 역시 배차 알고리즘 불만으로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다.
유럽에서는 규제까지 도입됐다. 네덜란드·스페인·스웨덴 등은 자동배차 시스템을 ‘노동 통제 수단’으로 보고, 단가 결정 기준 공개 의무를 법으로 명시했다. 2024년 발효된 EU 플랫폼노동지침은 로드러너형 시스템처럼 자동화된 통제 구조를 적용할 경우, 운영사는 근로자 보호 의무를 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일방적 결정
즉, 로드러너의 논란은 효율화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구조 자체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알고리즘이 일방적으로 근무 조건과 수입을 결정하면서, “AI가 관리자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배민의 로드러너 도입은 표면상 ‘글로벌 기술 표준화’가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비용 절감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이번 재도입은 실패를 반복하는 형태라는 비판이 거세다. 전문가들은 “배민이 강조하는 ‘효율화’는 DH의 경영 논리에는 부합하지만, 플랫폼을 지탱하는 기사와 점주들의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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