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고 고인’ 민주당 소장파의 위기

눈만 끔뻑끔뻑 ‘존재감 제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내 다양성이 사라졌다. 정치 환경, 뉴미디어, 공천권 등 다양한 요인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거대 양당 체제에서 소장파는 옛말이 된 것일까? 조금이라도 튀는 목소리가 나올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좌표를 찍고 총공격에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에서 연일 악재가 터지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틈새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내란 청산과 개혁을 필두로 전진하는 민주당의 앞길을 막을 자가 없다. 이 모든 게 ‘국민의 뜻’이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민주당의 목소리가 한 갈래로 모이고 있다.

튀었더니
바로 응징

‘더 센 3대 특검법’이 민주당 주도로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본격적으로 국민의힘을 향한 압박이 시작됐다. 국민의힘을 겨냥한 내란 정당 해산 심판 청구에도 다시 군불을 땠다. 여기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조기 대선이 치러지기 직전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과 만나 “이재명 사건은 대법원에서 알아서 처리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민주당은 전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이라는 표적에 힘을 집중시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눈을 돌린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통일된 의견을 주장하면서 당의 다양성이 사라졌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특히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듯한 행보가 계속되면서 조금이라도 튀는 목소리에는 너도나도 곧바로 날을 세우기 일쑤다.

그 중심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민주당 초선 곽상언 의원이 있다. 앞서 곽 의원은 “찬성 혹은 반대할 충분한 근거가 없었다”며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회유 의혹을 받는 박상용 검사의 탄핵소추안에 기권표를 던지고 원내부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민주 진영 커뮤니티에는 “장인이 왜 부엉이바위에 올라갔는지 곱씹으라” 등 곽 의원을 저격하는 글이 도배됐다.

그런 곽 의원이 이번에는 구독자 200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이자 민주 진영의 ‘금단의 영역’과도 같은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뉴스 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김어준 생각이 민주당 교리…정당 기능마저 넘긴 집권여당’이라는 제목의 언론 보도를 공유하며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특정인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민주적 결정이라고 한다”며 “오랫동안 제가 가진 정치적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한다”고 꼬집었다.

김어준 저격 곽, 사법개혁 꼬집은 박
초선의 용기 VS 분탕질…갈라진 여론

이에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여당 의원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 “말을 바로 하라. 누가 머리를 조아리나”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자 곽 의원은 또다시 SNS를 통해 “국가 정책 결정에까지 개입하고 좌지우지한다”며 “원래의 순기능은 이미 소멸할 정도로 정치 유튜브의 역기능은 원래의 순기능을 압도한다”고 주장했다.

당론에 맞서 홀로 반대 의견을 낸 초선 의원은 또 있다. 박희승 의원은 당의 내란특별재판부(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추진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공개 반대했다.

박 의원은 법관 출신으로 이재명 대통령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며 민주당이 당론으로 주장하는 사법개혁에 신중론을 펼치는 인물이다. 그는 ‘3대 특검 대응 특위’ 회의에서 “국회가 직접 나서서 법원을 공격하고 법안을 고치는 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계엄을 발동해 총칼을 들고 들어온 것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헌법 제101조에 따르면 사법권은 법원에 있고, 특별재판부를 개헌 없이 국회 논의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재판이 진행되면 법안에 대해 (재판부가) 위헌 법률 심판 제청에 들어갈 텐데, 이는 헌법 정리가 되지 않고서는 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더 신중해야 할 건 우리가 내란 재판을 해서 처벌을 정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해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 두고두고 시비가 될 수 있다”며 “재판 구성 자체가 위헌이 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당이) 자꾸 법원을 난상 공격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해당 발언을 놓고 거센 비판이 오가자 결국 박 의원은 “윤석열의 계엄에 비유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의 뜻을 밝히자 당내 비판은 사그라들었지만 지역구가 호남인 만큼 민주당 당원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소신 발언과 분탕질은 구분해야 한다”는 비판도 빗발쳤다.

당내 주류 세력이 아닌 초·재선 의원이 주류에 맞서는 이른바 ‘소장파’는 한국 정치 역사의 흐름과 늘 함께해 왔다.

1980년대에는 ‘꼬마 민주당’에서 활동한 김영삼(YS)·김대중(DJ)계 초선들이 개혁과 쇄신을 외쳤다. 2000년대 보수정당에서는 ‘남정원(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정병국 전 대표·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새천년민주당에서는 ‘천·신·정(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신기남 전 의원·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열기 위해 힘을 모았다.

소신과
분탕질

2010년 이후에도 초선 또는 젊은 의원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 세력이 생겼지만 친이(친 이명박)·친박(친 박근혜) 간의 계파 갈등, 정치 진영의 변화 등으로 금세 잊혀지거나 도태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한때 ‘청년 정치’ 붐에 힘입어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대표), 민주당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 등 30대 정치인이 중요 직을 맡았으나 당내 기득권 세력에 막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 대통령이 민주당 당 대표이던 2020년대에는 ‘팬덤 정치’와 ‘제왕적 구조’를 비판하던 비명(비 이재명)계가 있었다. 현직이던 김종민·조응천·윤영찬·이원욱 등이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원칙과 상식’이라는 정치 모임을 만들었고 윤 전 의원을 제외한 3인은 미래대연합을 창당했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 소장파로 분류된 민주당 이탄희 전 의원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위성정당 방지법 도입’을 꾸준히 주장했지만 현실 정치에 회의감을 느낀 후 지난 22대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전 의원은 “선거법만 지켜달라. 퇴행만은 안 된다. 한번 퇴행하면 양당이 선거법을 재개정할 리가 없고, 한 정당이 개정하려고 해도 상대 정당이 반대할 것”이라고 밝힌 뒤 정치권을 떠났다.

마찬가지로 21대 의원이자 미래학자 출신인 홍성국 전 의원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대전환의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난 4년간 우리 사회는 한 발짝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했다”며 ‘후진적인 정치 구조’를 비판했다. 홍 전 의원은 “이 같은 현실을 바꿔보려고 노력했으나 무위에 그쳤다”며 출마 기회를 내려놨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조기 대선으로 정권을 탈환한 민주당은 윤석열 부부를 비롯한 ‘내란 세력 청산’에 화력을 집중시켰고 강성인 정청래 지도부가 출범하면서 소장파가 탄생하기는커녕, 소신 발언조차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금 민주당은 이견을 제시하는 개혁가보다는 내란 정당과 맞서기 위한 공격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튜브 팬덤
공천과 정치

이 같은 분위기를 주도한 데에는 정치와 뉴미디어의 결합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커져 버린 미디어의 영향력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민주당은 당원 중심 정당이다. 팬덤 정치, 당원 중심 같은 민주당 특성을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흑백논리에 빠지기 쉽다. 조금만 반대되는 의견을 내비쳐도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싹을 잘라버릴 듯 공격해대니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지지층은 단순히 팬덤을 넘어 의제 설정이 가능한 집단이 됐고, 이로 인해 지도부를 향해 쉽게 쓴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가 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민주당은 이재명-정청래 지도부를 거치면서 당원 중심 정당으로 거듭났다. 당원의 권력은 자연스럽게 강화됐다.이들은 의원을 감시하는 역할을 자처하며 온라인 공간에 모였고 이곳에서 촉발된 이슈는 레거시 미디어보다 빠르게 여론을 형성하는 데 이르렀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4년 뒤의 정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심리가 여의도 바닥에 깔린 것이다.


소장파로 불리는 세력이 쪼그라든 배경에는 ‘기승전 공천’이 되어버린 정치 생태계가 원인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정치권 관계자는 “배지를 단 사람들은 재선이 목표다. 여야를 떠나서 현실적으로 봤을 때 지금은 공천이 정치권을 완전히 장악해 다른 목소리를 내면 죽는 지경이 됐다”며 “외국을 보면 정치인이 정치판을 떠나더라도 다른 직업을 구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은 배지가 떨어지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다들 목숨을 걸고 공천을 사수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초선들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의원들이 어떻게 잘려 나가는지 두 눈으로 지켜봤다.

민주당 지지층이 밀집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비롯한 이 대통령 팬카페에서는 ‘수박 명단’ ‘공천 살생부’가 돌았고 비명계 의원들은 시스템 공천으로 인한 ‘공천 학살’을 주장했지만 이 대표는 “친명, 반명을 나누는 것은 갈라치기”라고 일축했다.

소장파와 ‘자기 정치를 하기 위한 세력’이 불분명하게 뒤섞이면서 ‘수박(겉은 파란 민주당, 속은 빨간 국민의힘)’으로 뭉뚱그려 도마 위로 던져졌다.

소신 선배들 결말 “춥거나 외롭거나”
지선 앞두고 더욱 단단해질 단일대오

결국 총선을 앞두고 이낙연계 등 비명계 인사를 중심으로 탈당 러시가 이어졌다. 이들은 민주당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꾸렸지만 대부분 원내 진입에 실패해 배지를 내려놓고 야인이 됐다.

수박, 혹은 배신자 프레임은 한번 씌워지면 벗겨내기 힘들다. “특히 이재명정부에서는 한번 수박으로 낙인이 찍히면 어떤 직책을 맡기도 전부터 ‘나 수박 아니오’라고 해명하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온다.

친명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조차도 수박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정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하자, 강성 지지층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출 투표에서 추미애 의원이 아닌 우원식 의원이 당선되자 그를 ‘왕수박’이라고 부르던 때도 있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치 세력이든 언론이든 시민 사회든, 강한 목소리로 특정인을 지지하는 집단이 오래 권력을 잡으면 100% 고이고 썩을 수밖에 없다. 정치의 모순점이 생겨날 여지는 지금도 충분하다. 이를 지적하기 위한 비판의 목소리가 작게나마 들리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당내는 물론 당 밖에서도 쓴소리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치권에 오래 몸담은 한 관계자는 “당이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간다면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어야 하는데 다 똑같은 이야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나오는 문제 제기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민주당이) 다음에도 집권할 수 있다. 기득권과 기득권의 싸움을 국민이, 특히 중도층이 어떻게 바라보겠느냐”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백왕순 모자이크민주주의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민주주의가 확장되기는커녕 후퇴와 축소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비대한 권력
쪼개기가 답

백 대표는 “대의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가 혼재되고 당원이 중심이 되면서 정치판에 변화가 생겼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독재로 갈 수밖에 없고, 과도기인 만큼 힘의 논리에 의해 의제가 쏠린다”며 “현 상황만 놓고 본다면 소장파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개헌과 선거법, 정당법 개정을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를 실현해 다당제 구조를 만들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다. 소장파는 끝났다. ‘소장파다, 아니다’의 문제를 넘어 진영별로 나눠지고 있기 때문에 다당제를 도입해 소장파 역할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를 바 없는 국민의힘 ‘한때’ 소장파의 말로

소장파가 사라지는 현상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탄핵 정국 당시 국민의힘 김재섭·김상욱·김소희·김예지·우재준 의원 등이 보수 소장파로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직후 국회 소통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과 여당이 어떤 명분을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비상계엄을 합리화하지 못한다”며 탄핵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기 대선이 끝나자 이들의 목소리는 시들해졌다.

새롭게 뭉치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졌고 김상욱 의원은 탈당 후 민주당으로 이적했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재섭 의원 등이 새로운 소장파로 떠올랐지만 역시나 기득권에 묻혔다.

이들은 지도부를 향해 “전한길씨를 제명하라” 등의 요구를 했지만 친윤(친 윤석열) 세력에 가로막혀 당으로부터 힘을 받지 못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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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