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 돌리는’ 폴리아모리의 세계

“한 명으론 만족 못해”
여러 사람과 동시 관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익숙하지 않은 사랑 방식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다자 연애를 지칭하는 폴리아모리가 다양한 영화, 드라마, 웹툰 등에서 소재로 사용되면서 직접 삶에 투영하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못하다. 이들의 사랑 방식을 불륜, 양다리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세상이 변모하는 만큼 폴리아모리스트들을 위한 제도의 변화가 조만간 올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랑 방식인 폴리아모리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폴리아모리는 일대 다수 혹은 다수 대 다수의 연애 방식을 뜻한다. 폴리아모리는 모든 당사자가 그 사실을 알고 동의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 시선은 냉담하다.

한국 맞아?

폴리아모리는 ‘많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폴리(poly)’와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 ‘아모르(amor)’의 합성어다. 폴리아모리스트, 또는 다자연애자는 한번에 사랑하는 사람의 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대부분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이유로 된다고 한다.

이들은 가족이나 일부일처제 같은 것들은 사랑의 가변성을 제도의 불변성으로 억압해 놓은 결과물로 인식하고, 움직일 수밖에 없는 사랑을 묶은 결과로 필연적으로 불륜이라는 배신을 안기거나, 아니면 그 제도에 스스로를 얽매어 더 이상 아내나 남편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연기하는 가식을 만들게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인 관계에서 굳이 그런 제도들로 자신들을 구속할 이유가 없고, 또 사랑이 여러 명일 수도, 하루에도, 며칠에도 움직여 갔다가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니 느슨한 형태로 풀어놓자고 하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바인 셈이다.

다소 이질적인 연애 개념이지만 이미 여러 차례 영화 소재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

2008년 정윤수 감독 작품 <아내가 결혼했다>가 폴리아모리를 다룬 대표적인 영화로 알려져 있다. 외국 영화로는 2009년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와, 폴리아모리가 중점적 소구는 아니었지만 <파괴자들>에서도 다자간 연애 장면이 등장한다.

또 웹툰 <독신으로 살겠다>에서도 41화에 폴리아모리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소 이질적인 ‘다자 연애’
국내서도 사례 잇달아 충격

폴리아모리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인 누리꾼 A씨는 “단 한 사람으로 나의 모든 게 충족될 수 없다”며 “이 사람이 가진 장점이 있는가 하면 저 사람만이 가진 독특한 뭔가가 있다. 한때 한 사람과 연애해 본 적 있지만 그런 연애 방식은 날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폴리아모리스트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명의 파트너가 있어도 파트너와의 신뢰가 두터우면 질투할 것도 없다”며 “하지만 그게 가능할 정도로 신뢰를 쌓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그만큼 서로 충분히 대화를 나눠야 하고 서로 간의 바운더리가 어디까지인지 계속 대화를 나누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폴리아모리적인 관계를 이어 나가려면 상황이 어렵더라도 열린 대화를 하면서 서로 맞춰 나가야 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마주한 상황을 도피하는 것으로 해결하려해 안타깝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A씨의 말처럼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먼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알려주고 시작하는 게 폴리아모리스트로서의 예의다. 만약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 아예 연애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맞으며, 굳이 그 사람과 사귀고 싶다면 기존의 관계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말고 모두 정리하거나 중단하고 1대 1로 맞춰줘야 한다.

최근의 인터넷 썰이나 방송 사연 등에서 바람을 피운 애인이 갑자기 자신을 폴리아모리스트라고 밝히며 이해해달라 호소했다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서는 폴리아모리(다자연애) 아내와 이혼하고 싶다는 B씨 사연이 전해졌다. B씨는 “말 그대로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는 폴리아모리가 우리 집 아내가 될 줄 몰랐다”고 운을 뗐다.

그는 “우리 부부는 대학 선후배 사이다. 아내가 신입생이었을 때 처음 만나서 연애하다가 결혼했다”며 “스무살 때부터 함께한 사람이라서 저는 아내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상대방 동의는 필수적
“성적 목적 중심과 달라”

이어 “그런데 하루는 아내의 휴대전화로 딸과 함께 티니핑 영상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알림창 하나가 떴다. ‘키 178㎝, 종로 거주, 기혼, 폴리아모리.’ 뭐지 싶어서 눌러봤는데 믿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마주했다”며 “아내는 익명 트위터 계정으로 두 사람과 3년 넘게 관계를 이어왔고, 지금은 세 번째 상대를 찾는 중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아내에게 추궁하자, 아내는 “사생활을 함부로 보면 형사고소 감”이라고 되레 화를 냈다가 결국 실토했다고 한다. 아내는 “난 폴리아모리다. 당신도 사랑하고, 우리 가족도 소중하지만 그 남자들도 사랑한다”고 밝혔다.

B씨는 “어떻게 그런 사랑이 있을 수 있냐? 이해할 수 없다. 전 지금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 아이들이 걱정이지만 신뢰가 무너진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더 고통스럽다. 폴리아모리도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정은영 법무법인 신세계로 변호사는 “폴리아모리는 모든 당사자가 그 사실을 알고 동의해야 한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불륜과 다르고 성적인 목적이 중심인 스와핑과도 다르다”고 했다.

정 변호사는 “폴리아모리라는 이유로도 이혼 청구가 가능하다. 부정 행위를 이유로 하는 재판상 이혼 청구를 하면 된다”며 “양육권은 자녀의 복리가 최우선이라 폴리아모리 신념이 자녀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면 법원이 이를 고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폴리아모리들의 취향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험로가 예상된다. 지난 2020년 진행된 폴리아모리 인식 조사 결과 88%가 폴리아모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들 역시 내 연인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불륜 정당화?

전문가들은 다양한 가족 형태가 이미 공존하고 있고 오랜 결혼 제도의 틀을 깨는 법률이 통과되고 있는 만큼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머지않아 폴리아모리를 위한 다자혼도 인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폴리아모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반대 여론은 불륜 혹은 바람의 정당화라 비판했고 문란한 성적 취향과 정상적이지 않는 관계에 대한 합리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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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