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 세계 접수한 헌트릭스

‘케데헌’ K팝 역사 새로 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 세계에 또 다시 K팝 열풍이 불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이하 케데헌)>의 OST ‘골든(Golden)’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정상에 올랐다. 골든은 공개 후 불과 7주 만에 1위에 오르며 K팝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빌보드는 지난 11일(현지시각) 발표한 차트 예고 기사에서 “‘골든’이 전주 2위에서 한 단계 상승해 8월16일자 ‘핫 100’ 차트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7주 동안 1위를 지켜온 알렉스 워런(Alex Warren)의 ‘오디너리(Ordinary)’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여성 보컬
최초 1위

‘핫100’은 스트리밍, 라디오 방송 횟수(에어플레이), 음원 판매량을 종합해 미국 내 한 주간 가장 인기 있는 곡을 집계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차트다. ‘골든’은 <케데헌> 속 가상 K팝 걸그룹 ‘헌트릭스’의 곡이다.

‘골든’은 지난달 초 81위로 차트에 첫 진입했다. 이후 2주 차에 23위, 3주 차에 6위, 4주 차에 4위, 5·6주 차에 2위를 기록하며 꾸준히 상승했다. 발매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정상에 오른 셈이다. 빌보드 측은 “작품 흥행과 입소문이 맞물려 순위가 가파르게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집계 기간 동안 ‘골든’은 전주 대비 9% 증가한 3170만회의 스트리밍을 기록했다. 라디오 방송 청취자 노출 횟수는 71% 늘어난 840만회로 집계됐다. 음원 판매량도 35% 증가해 7000건에 달했다. 세 부문 모두에서 고른 상승세를 보이며 경쟁 곡을 제쳤다.


특히 스트리밍과 라디오 지표가 동시에 급상승해 비영어권 곡으로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번 1위 달성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핫100’ 1위를 기록한 K팝 곡은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새비지 러브’ ‘라이프 고스 온’ ‘버터’ ‘퍼미션 투 댄스’ ‘마이 유니버스’와 멤버 지민의 ‘라이크 크레이지’, 정국의 ‘세븐’까지 8곡이었다. ‘골든’은 1위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된 아홉 번째 K팝 곡이다.

여성 보컬이 부른 K팝 곡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빌보드는 “‘골든’이 데스티니 차일드 이후 24년 만에 세 명 이상이 부른 여성 보컬 곡으로 정상에 올랐다”고 전했다. ‘골든’은 빌보드 1위에 앞서 지난 1일 발표된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북미와 유럽을 대표하는 두 메인 싱글 차트를 동시에 제패한 K팝 곡은 ‘골든’이 처음이다. 음악 시장 규모와 취향 차이로 양대 차트 동시 1위는 매우 드문 경우다.

오피셜 싱글 차트는 영국 내 스트리밍, 다운로드, 피지컬 판매량을 종합해 집계한다. 이곳에서 정상에 오른 K팝은 과거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기록한 1위, 블랙핑크가 앨범 차트에서 거둔 1위 등이 있었으나, 빌보드 ‘핫100’과 동시 1위에 오른 경우는 없었다.

댄스 팝 장르로 제작된 ‘골든’은 직선적인 멜로디 라인과 시원하게 뻗는 고음, 군무를 염두에 둔 리듬이 특징이다. 가사는 ‘내 안의 빛을 깨운다’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겼다. 후렴의 청량한 보컬과 경쾌한 비트가 어우러져 여름 시즌 특유의 시원함을 준다. 올여름 K팝 시장에서 에 띄는 서머송이 없었다는 점도 ‘골든’의 인기에 힘을 보탰다.

빌보드 핫100 1위···미·영 차트 접수
이재·오드리 누나·레이 아미가 불러


골든의 인기는 SNS를 통해 더욱 빠르게 퍼졌다. 곡의 고음 구간은 가수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기에 일종의 ‘챌린지’처럼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S.E.S. 출신 바다, 다비치 이해리, 마마무 솔라, 엔믹스 릴리, 아이브 안유진, 소향, 에일리, 권진아 등 K팝 가수들이 수많은 커버 영상을 올렸고, 팬들도 ‘골든 챌린지’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커버 영상을 올렸다.

실력 있는 가수들의 챌린지는 곡의 화제성을 배가시켰다. 커버 영상이 바이럴되면서 스트리밍 수치와 라디오 요청량이 동시에 늘었고, 미국 외 지역에서도 곡의 인지도가 급속히 확산됐다.

애니메이션 곡이 ‘핫100’ 정상에 오른 사례는 흔치 않다. 1958년 ‘더 칩멍크 송(The Chipmunk Song)’, 1993년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 2014년 ‘해피(Happy)’, 2016년 ‘캔트 스톱 더 필링!(Can’t Stop the Feeling!)’, 2022년 ‘위 돈트 토크 어바웃 브루노(We Don’t Talk About Bruno)’가 있었고, 이번에 ‘골든’이 여섯 번째로 기록을 남겼다.

특히, 가상 걸그룹의 노래가 ‘핫100’ 정상에 오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음악 업계에서는 ‘골든’의 성공은 곡 자체의 완성도와 영화 속 캐릭터의 서사에서 나온 시너지가 어우러지며 만들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골든의 높은 완성도는 실제 노래를 부른 3인방의 영향이 컸다. 골든은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 작곡가 이재(EJAE), 가수 오드리 누나(Audrey Nuna), 레이 아미(Ray Ami)가 불렀다. 이 세 명은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다.

빌보드는 “헌트릭스의 실제 가수인 이재와 레이 아미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났고, 오드리 누나는 뉴저지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골든’의 주역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건 루미 역을 맡은 이재다. 이재는 곡의 작사·작곡과 보컬을 모두 담당하며, 작품 속 음악적 정체성을 완성한 핵심 역할을 했다.

이재는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시절 아이돌 데뷔를 꿈꿨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이돌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됐다. 인생의 전환점은 홀로 작업하던 그에게 작곡가 신사동호랭이가 손을 내밀어 EXID 정규 1집 수록곡 작업에 참여할 기회를 주면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하니의 솔로곡 ‘Hello’가 탄생했다.

이후 그는 작곡가 앤드류 최를 만나 멘토로 삼아 지도받으며 SM 송캠프에 합류했다. 이 자리에서 탄생한 곡이 바로 레드벨벳의 ‘Psycho’였다. 해당 곡이 글로벌 히트를 기록하며 미국 레코드산업협회(RIAA) 골드 인증까지 받자, 이재는 업계 안팎에서 주목받는 작곡가로 떠올랐다.

줄줄이
챌린지

이후 대형 기획사와의 협업이 이어졌고, 다양한 K팝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KBS 드라마 <99억의 여자> OST 작업에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드라마 음악으로 확장했다. 이후 당시 제작 초기 단계였던 운명의 작품,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합류하게 된다.


이재는 주제곡 ‘골든’과 ‘Your Idol’의 작사·작곡뿐 아니라 극 중 헌트릭스의 리더 루미의 파트를 직접 녹음했다. 루미는 낮에는 세계적인 K팝 스타, 밤에는 악마 사냥꾼으로 활약하는 캐릭터로, 이재는 자신의 과거 경험과 감정을 이 캐릭터에 이입하며 몰입했다고 전했다.

‘골든’의 가사는 내면의 빛을 깨워 자격지심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재는 이 곡에 대해 “어머니가 늘 ‘말이 씨가 된다’고 하셨다. ‘할 수 있다’는 노래를 계속 부르면 언젠가 현실이 될 것 같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골든’은 국내외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그는 가수로서도 세계 무대에 올라서게 됐다.

이재의 과거 서사가 드러나면서 원로 배우 신영균의 외손녀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재는 할아버지의 예술적 DNA를 물려받아 대중문화를 접하면서 성장했다. 이재는 K팝 대표 걸그룹 트와이스, 레드벨벳과의 협업, 그리고 신인 그룹의 프로듀싱까지 맡으며 작곡·프로듀싱 영역에서 꾸준히 활동해 왔다.

하지만 가수라는 꿈에 대한 열망은 놓지 못했다. <케데헌>은 이런 이재의 꿈을 이뤄준 작품이다.

이재와 함께 ‘골든’을 완성한 또 다른 목소리는 오드리 누나다.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R&B, 힙합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인 사운드로 미국 음악시장에서 입지를 다진 아티스트다. 특유의 세련된 음색은 ‘골든’의 후렴 부분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며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마지막 한 명인 레이 아미는 서울 태생의 보컬리스트로, ‘골든’에서 랩과 일부 보컬을 맡았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성장한 한국계 아티스트로, 싱어송라이터와 래퍼로서 활동하며 독특한 보이스 톤과 강약을 오가는 랩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골든’에서는 후렴 전후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랩 파트를 소화하며, 곡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골든’의 세 목소리는 각기 다른 배경과 색깔을 지녔지만, 곡 안에서는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이재의 파워풀한 보컬 위에 오드리 누나의 감각적인 보컬이 색을 더하고, 레이 아미의 톡톡 튀는 강렬한 랩이 곡의 골격을 단단히 했다. 이런 삼중주가 영화 속 헌트릭스의 서사와 맞물리면서, 더 호소력 있는 곡을 완성해냈다.

<케데헌>은 화려한 무대 뒤, 또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케이팝 아이돌의 사투를 그린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K팝 걸그룹 ‘헌트릭스’다. 겉으로는 화려한 아이돌이지만, 무대 밖에서는 인간의 혼을 노리는 악령과 맞서 싸우는 비밀 조직의 일원이다.

영화는 헌트릭스의 콘서트 장면에서 시작해, 이후에는 무대 위 퍼포먼스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보여준다.

눈물 나는
루미 서사

헌트릭스는 세 명의 멤버로 구성돼있으며, 각자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무대에서의 노래와 춤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악령의 힘을 봉인하는 의식의 일부다. 헌트릭스의 노래가 듣는 이의 감정과 공명하면 ‘혼문(魂門)’이 생성되는데, 이 문이 완성되면 악령을 봉인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다.

이 설정은 음악과 판타지를 결합한 영화의 핵심 장치이자, 케이팝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극대화하는 요소다.

이들이 맞서는 주적은 ‘사자 보이즈’다. 헌트릭스와 마찬가지로 5인조 아이돌 그룹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 정체는 저승에 속한 악령들이다. 원래는 다른 악귀들과 함께 헌터들에게 연전연패하던 세력 중 하나였으나, 전략을 바꿔 헌트릭스와 같은 형식의 ‘아이돌 그룹’으로 위장 활동을 시작했다.

‘사자 보이즈’라는 이름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사자(死者)’는 죽은 자, ‘저승사자’는 혼을 인도하는 존재를 뜻한다. 사자 보이즈의 로고는 작중 무대에서 갈기가 벗겨지고, 뾰족한 뿔이 드러나는 사자의 그림이 들어가 있으며, 가까이서 보면 날개 달린 악마의 형상이 숨겨져 있다.

영화 속에서 사자 보이즈는 헌트릭스의 팬덤 일부를 빼앗으며 세력을 빠르게 확장한다. 겉으로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연기하며 팬들을 사로잡지만, 무대 뒤에서는 받은 꽃다발을 바로 버리는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 헌트릭스의 노래가 혼문을 생성하는 데 반해, 사자 보이즈의 노래는 이미 열린 혼문에 균열을 내어 봉인을 무력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두 그룹의 음악이 서로 정반대의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

이 대립 구도는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다. 헌트릭스는 월드투어라는 명목 아래 세계 각지를 돌며 악령들을 사냥하고, 사자 보이즈는 그 뒤를 쫓아다니며 혼문을 파괴한다. 중반부 목욕탕 장면에서는 물귀신 형태의 악귀들이 출몰하자 헌트릭스가 전투에 나서고, 사자 보이즈는 헌트릭스와 결투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리더 루미와 사자 보이즈의 진우가 짧지만 격렬한 격투를 벌이며 서로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 후반부, ‘황금혼문’의 완성을 둘러싸고 긴박감이 고조된다. 황금혼문은 모든 악령의 힘을 봉인하거나, 반대로 개방해 세상을 혼돈에 빠뜨릴 수 있는 결정적 관문이다. 헌트릭스는 이를 완성해 봉인하려 하고, 사자 보이즈와 그 배후 세력은 이를 파괴하려 한다.

남산타워 아래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결전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이 장면에서 두 그룹은 각자 공연을 하듯 노래와 춤을 펼치지만, 그 안에 치열한 전투가 숨겨져 있다. 루미와 진우가 다시 맞붙고, 다른 멤버들 역시 짝을 이뤄 싸우지만, 사자 보이즈는 헌트릭스에게 결정적 타격을 주지 못한 채 밀려났다.

영화 실제 장소들 새 관광 명소로
‘성지순례 코스’ 해외 팬들 북적

이처럼 <케데헌>은 K-POP 특유의 감성과 영화적 판타지를 결합해, 독특한 전개를 보여준다. 세계 각지를 돌며 펼치는 퍼포먼스와 액션, 그 안에 숨은 전투 장면들이 리듬감 있게 이어지고, 두 그룹의 라이벌 구도가 긴장감을 유지한다.

<케데헌>의 제작진은 작품의 콘셉트와 제목에 걸맞은 음악을 구현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사운드트랙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K-POP을 기반으로 구성됐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실제 업계에서 활동 중인 정상급 프로듀서들이 대거 참여했다.

작곡, 프로듀싱에는 테디를 비롯한 더블랙레이블(The Black Label) 소속 제작진이 이름을 올렸고, 린드그렌(Lindgren), 스티븐 커크(Stephen Kirk), 제나 앤드루스(Jenna Andrews) 등 해외 작곡가들도 힘을 보탰다.

오리지널 보컬곡은 총 8곡으로, 골든은 공개 직후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며 화제를 모았다. 음악적 완성도를 유지하기 위해 이안 에이센드래스(Ian Eisendrath)가 전반적인 편곡과 사운드 조율을 담당했고, 트와이스의 ‘Strategy’, 멜로망스의 ‘사랑인가 봐’, 조커스의 ‘오솔길’ 등 기존 인기곡도 장면에 맞춰 삽입됐다.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브라질 출신 영화음악가 마르셀루 자르부스(Marcelo Zarvos)가 맡았다. 자르부스는 서사 전개에 맞춰 전투 장면에는 박진감 있는 리듬을, 무대 장면에는 화려한 편곡을 더해 K-POP 공연의 에너지를 극대화했다.

제작진은 음악이 서사와 세계관을 연결하는 핵심 장치가 되도록 설계했다. 헌트릭스의 무대는 악령 봉인 의식이자 팬들과의 소통 공간으로, 사운드트랙의 모든 곡은 해당 장면의 분위기와 스토리 전개를 반영해 제작됐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실제 장소들은 개봉 직후부터 국내외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작중 헌트릭스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강남 K-POP 스퀘어 전광판, 사자 보이즈의 퍼포먼스 무대로 사용된 명동길, 루미와 진우의 데이트 장면이 연출된 북촌한옥마을과 낙산공원 등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또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와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 남산서울타워는 해외 팬들에게 ‘성지순례 코스’로 불리며 여행사 패키지 상품에 포함되기까지 했다.

한국 공간과
콘텐츠 결합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케데헌>이 “K팝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한국의 실제 공간을 결합한 콘텐츠”라는 점을 흥행 요인으로 꼽는다. 스토리와 음악이 함께 얽힌 장소가 관객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줬고, 결과적으로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imsharp@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