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용등급이 뚝 떨어졌다. 원인은 ‘5건’의 대출과 ‘1억1000만원’의 채무. 하지만 당사자는 그런 대출을 받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1억원가량의 채무는 어디서 나온 걸까? 나도 모르는 채무에 발만 동동 구르다가 알게 된 사실은, 신용보증재단에서 받았던 보증서가 채무로 잡히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용보증재단은 신용도가 낮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보증을 제공하는 공공기관이다. 쉽게 말해, 대출 실행에 앞서 해당 차주가 원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대신 갚겠다는 보증을 서주는 것이다. 이때 발급되는 문서가 ‘신용보증서’다.
승인 거절?
보증서란 말 그대로 ‘보증’일 뿐, 실제 대출 실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출은 금융기관이 자체 심사를 거쳐 결정하며, 신용보증재단은 보증서 발급 이후 실제 대출이 이뤄지는지 여부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보증서를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대출이 실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출을 신청하지 않거나, 보증서를 발급받았음에도 금융권에 따라 대출이 거절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최근, 대출을 받지 않았음에도 보증서가 신용평가에 반영돼 불이익을 받은 사례가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만난 A씨는 얼마 전, 차량을 할부로 구매하려다 카드 결제 승인이 거절되는 일을 겪었다. 이상함을 느낀 A씨는 카드사에 문의했고, 본인도 모르는 채무가 존재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신용평가 등급이 낮게 책정된 탓에 결제 승인이 거절된 것이다. A씨는 카드사로부터 “5건의 대출과 1억1000만원의 채무가 있다”는 설명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A씨는 이 가운데 3건을 제외한 나머지 2건에 대해서는 실제 대출을 받은 적이 없었다.
A씨는 자신의 신용정보를 추적한 끝에 해당 금액이 과거 신용보증재단에서 발급받은 보증서에서 비롯됐음을 확인했다. 실제 대출은 실행되지 않았지만, 보증서 발급 과정이 신용정보에 ‘대출’로 인식돼 채무로 반영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는 각 기관에서 ‘신용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에 발생한 문제로 확인됐다. 신용정보 전달 과정을 살펴보면, 보증서 발급 시 신용보증재단이 한국신용정보원에 해당 정보를 등록하고, 신용정보원은 이를 CB사(신용평가사)에 그대로 전달한다.
CB사는 이 정보와 함께 기존의 신용점수를 더해 카드사에 넘긴다. 카드사에서는 제공받은 정보를 토대로 자체적으로 신용평가를 내리게 된다.
문제는 일부 카드사에서는 보증서를 실제 채무로 오인해 신용평가에 반영했다는 점이다. A씨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B 카드와 C 카드는 보증서를 채무로 간주해 신용평가에 반영했다. 반면, D 카드와 E 카드는 보증서를 평가에서 제외했다.
신용평가 과정서 채무로 오인
CB사서 받은 정보 그대로 반영
국민카드 담당자는 “고객님의 개인 신용점수가 양호했기 때문에 별도 문제없이 승인됐다”며 “실제 대출 실행이 없는 보증서는 내부 평가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 카드도 “보증서는 대출 실행의 전제조건이지, 채무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신용등급 산정에는 반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B 카드와 C 카드는 CB사로부터 받은 정보를 신용평가에 그대로 반영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요약된 ‘대출 5건, 채무 1억1000만원’이라는 정보만 보고 자동으로 승인 여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보증서가 대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CB사에서 보낸 요약 정보에 포함돼 채무로 오인된 것이다.
B 카드 담당 직원은 “CB사에서 요약해서 한 줄로 정리된 정보를 시스템에 띄워준다. 그리고 내용을 자세히 보려면 클릭해서 열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요약된 형태로 보이는 정보가 먼저 뜨는 시스템 구조고, 상세 내역을 살펴보지 않으면 보증서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는 의미다.
CB사인 나이스(NICE)는 보증서 정보가 포함된 신용정보를 한국신용정보원에서 그대로 전달받았고, 이 정보에 기존 신용점수를 더해 카드사에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A씨가 직접 문의한 결과, 나이스 측은 “보증서 정보를 편집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넘겼다”며 “우리는 점수를 가공하지 않으며, 보증서 여부를 평가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신용정보원에서 받은 정보와 함께 기존 신용점수를 카드사에 전송할 뿐이라는 입장이다.
A씨는 이 문제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도 제기했다. 그러나 금감원 지역지원센터와 본청의 입장이 엇갈렸고, 담당 부서에서도 명확한 설명이나 대응책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관마다 신용정보 처리 방식은 다르며, 금융 당국이 개입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면서도 “사실관계 확인을 토대로 가이드라인 개정이나 제도 개선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 실질적인 조치는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A씨는 “신용보증재단을 통한 보증서 발급은 전국의 수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활용하는 제도다. 보증서만으로 신용에 영향을 받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유사한 피해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아무도 몰랐나
이후, B 카드 관계자는 “한국신용정보원에서 전달받은 정보를 CB사가 그대로 전송했고, 그 정보가 카드사 시스템에 자동 반영되면서 승인이 거절됐다”며 “보증서 발급에 따른 정보까지 함께 전달됐지만, 실제 대출 여부와 무관하게 채무로 인식된 부분은 내부 시스템 문제로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는 이런 정보가 승인 심사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내부 시스템을 변경하고, 불필요한 정보가 자동 반영되지 않도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힌 상태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위기의 지역신보
코로나19 유예 종료와 내수 경기침체 속에 소상공인의 자금 사정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대출 만기 연장이 끝나고 원리금 상환이 본격화되면서, 지역신용보증재단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은행에서 직접 대출이 어려운 소상공인을 대신해 보증을 제공하는 지역신용보증재단은 최근 몇 년간 보증 규모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과도한 보증 확대에 따라 대신 갚은 금액도 급증하면서 중앙회는 자본잠식 우려에 직면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의 출연료율을 인상하고 특별출연금도 늘렸지만, 재정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문제는 지역신용보증재단이 보증 실적에 따라 중앙회로부터 더 많은 재원을 지원받는 구조에 있다.
이로 인해 일부 재단은 손실 관리보다는 보증 확대에 치중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대손실률과 운영성과에 따라 출연금과 보증 규모를 차등 배분하는 방식 등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역신용보증재단이 본연의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재정 건전성 확보가 전제돼야 하며, 정부와 금융당국의 지속적인 재정 지원과 함께 성과 중심의 관리체계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