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보이그룹 최초 커밍아웃 배인

당당히 흔든 무지개 깃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한때 성 정체성에 대해 숨죽였던 아이돌계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타인에 의해 강제로 밝혀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당당히 나서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모두가 이성애자임을 전제하고 침묵하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있는 그대로’를 외치며 목소리를 낸다.

그룹 저스트비(JUST B)의 멤버 배인이 커밍아웃을 하며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저스트비는 2021년 데뷔한 6인 보이그룹이다. 지난 3월 디지털 앨범 ‘저스트 오드’를 발매했으며, 현재는 월드투어 중에 있다. 지난 4월2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저스트비 월드투어 ‘저스트 오드(JUST ODD)’ 공연 무대에서 배인은 “나는 LGBTQ 커뮤니티의 일원인 것이 자랑스럽다”며 성소수자임을 밝혔다.

“LGBTQ
일원이다”

LGBTQ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의 첫 글자를 따 만들어진 약어로서 성소수자를 의미한다. 이 발언과 함께 배인은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흔들었고, 미국 팝스타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를 열창하며 무대를 이어갔다. 팬들은 그의 용기 있는 고백에 환호로 응답했다.

‘본 디스 웨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곡으로, 성별, 인종,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지지와 포용을 상징하는 노래로 알려져있다. 콘서트 이후 배인의 커밍아웃이 각종 SNS와 팬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고,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배인의 커밍아웃은 K팝 남자 아이돌 중 최초다. 앞서 걸그룹 와썹 출신 지애가 양성애자임을, 하이브의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 멤버 라라가 동성애자임을 밝힌 바 있으나, 한국 국적의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가 성소수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인은 이후 SNS를 통해 “게이로서 LGBTQ 커뮤니티의 일원임이 자랑스럽다”고 다시 한번 밝히며, “레이디 가가는 내게 다르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내가 나 자신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덧붙이며 진심을 전했다.

커밍아웃 이후 배인은 홍석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배인은 홍석천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선배님의 따뜻한 응원과 마음 깊은 조언을 기사로 접하고 큰 울림을 느꼈다”며 “선배님께서 25년 전 누구보다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주셨기에 저도 지금 이 자리에서 작은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가는 길에도 두려움이 있지만, 선배님이 등대처럼 앞에서 빛을 밝혀준 덕분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저도 선배님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홍석천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메시지를 공개하며 “축하하고 응원할게”라고 화답했다.

저스트비 월드투어 미국서 중 깜짝 고백
“나는 자랑스러운 성소수자” 뜨거운 환호

한국서 ‘동성애자’라고 하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홍석천이다. 당시 보수적이던 한국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힌 인물이기 때문이다. 연예계에서 성소수자 연예인이 당당히 커밍아웃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홍석천의 노력이 있었다.

홍석천은 2000년 커밍아웃 이후 방송 활동이 중단됐고, 약 2년간 공백기를 겪었다. 당시 그는 방송 녹화 중 성소수자임을 밝혔고, 이후 <여성중앙>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식 커밍아웃했다. 하지만 이후 모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며 불나방처럼 달려들었고, 가족과 주변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일간스포츠>는 “홍석천, 나는 호모다”라는 제목의 1면 기사를 내보냈다. 홍석천은 시드니 올림픽 응원단으로 출국하던 중 언론에 의해 기사화되며 커밍아웃이 일파만파 퍼졌다. 그는 “기자들이 호텔 방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숨겨놓고 접근해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홍석천은 현재 방송에서 당당히 스스로 성소수자의 아이콘임을 밝히며 밝은 모습으로 당당히 여러 방송에 출연하고 있지만, 이 자리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홍석천은 과거 SBS플러스 예능 프로그램 <김수미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 출연해, 2000년 커밍아웃 당시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그 때가 서른이었다. 사람들이 왜 잘 나가는데 굳이 커밍아웃을 하냐고 했고, 저를 협박했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숨기고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3년 사귄 친구와 이별한 뒤, 평생 진실되게 살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홍석천
그때는…

이어 “커밍아웃을 결심했을 때, 서울에 와서 나와 같은 친구들을 찾으려 탑골공원까지 비를 맞으며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며 학창시절부터 느껴온 다른 정체성에 대한 고립감을 털어놓았다.

홍석천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다르다는 걸 느꼈고, “내가 잘못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길이 보이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대학 시절에는 여자친구도 있었지만, 관계가 진전되지 않았다고 한다. “연인과 스킨십이 없었다. 나름 노력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커밍아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었다. 홍석천은 ‘숨기며 사는 삶’에 대한 절망감과 진실된 관계를 맺고 싶다는 간절함 속에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커밍아웃을 했지만, 당시 프로그램 담당 PD가 제 미래를 걱정해 방송분을 편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녹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통해 소문이 퍼졌고, 한 기자가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후 한 월간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이 알려졌다.

가족들과의 갈등도 깊었다. 홍석천은 “부모님은 커밍아웃 사실을 듣고 너무 놀라셨고, 같이 농약을 먹고 죽자고 하셨다. 그 시절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지금보다 심했기에, 부모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누나들에게는 3년 전에 먼저 고백했지만, 큰 누나는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했었다고 털어놨다.

홍석천은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던 순간도 밝혔다. 그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누나와 싸우고 자살하려고 했었다. 죽기 전에 전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세 번 만에 전화를 받았다. 장례식에도 오지 않겠다는 전 애인의 말이 웃기게 들리면서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멤버들에게
2년 전 고백

이후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이 맛있는 걸 두고 왜 죽으려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았다고 회상했다.

또, 홍석천은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도 커밍아웃 이후 겪었던 심리적 부담과 불면증에 대해 털어놓은 바 있다. 그는 SNS를 통해 동료 LGBTQ+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면서 하루에 100건 넘는 연락을 받기도 했고,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까지 받아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짧게 답장하거나 답장 속도가 느리면 “저는 살 의미가 없어요”라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심리적 고통을 털어놨다. 당시 방송에서 오은영 박사는 이를 듣고 “심각한 문제다. 전문가가 아니면 상담을 멈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석천은 가족들에게서 진정한 인정을 받지 못한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커밍아웃 후 15년이 지나도 부모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인정받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날 부모님이 “선 한번 볼래?”라고 물었고, 홍석천이 “누가 저 같은 사람한테 딸을 주겠냐”고 하자 “네가 어디가 어때서?”라며 화를 냈던 일을 꺼냈다.


홍석천은 이때 “나는 아직도 가족들에게 완전히 인정받지 못했구나”라는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홍석천은 지난 25일 <엑스포츠>와의 인터뷰서 “연예계 후배 중 커밍아웃 사례가 나온 건 나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자 반가운 소식”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본인을 ‘게이 선배’라고 칭하며 “배인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커밍아웃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을지 공감한다”고 말했다.

특히 홍석천은 “커밍아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 이후 버텨내는 시간은 더 큰 용기를 요구한다”며 “나 역시 2000년 커밍아웃 이후 전국민의 99%가 등을 돌린 듯한 상황을 겪었지만, 끝내 버텨냈다”고 돌아봤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보석함>에 배인을 초대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빛·길이 되어준 선배”
홍석천에 감사 메시지

홍석천은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다 못 나눌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배인과 나의 커밍아웃에는 25년의 간극이 있지만, 개인이 감내해야 할 무게는 여전히 비슷하다”며 “다만 사회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기에, 본인 스스로를 단단히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배인의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에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자, 배인은 영국 패션매거진 <Dazed>와의 인터뷰서 “처음에는 커밍아웃을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고민하는 동안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내 삶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커밍아웃은 감정이 가장 진솔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할 용기가 있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저스트비 멤버들과 소속사에는 이미 2년 전 커밍아웃을 했으며, 멤버들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솔직한 고백을 나눴다고도 밝혔다. 베인은 처음에 멤버 지오누에게 성적 지향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후 멤버들이 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9년 지기 친구 지민이 “동성애자냐”고 물으며, “만약 그렇다면 굳이 숨길 필요 없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인은 당시 멤버들에게 커밍아웃 할 생각이 없었지만, 지민의 말에 용기를 내 고백했다.

배인은 “멤버들은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차분하고 따뜻하게 저를 맞아줬고,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여 줬다”며 “내 앞에서 놀란 기색을 감추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이 저에게는 큰 위안이 됐다”고 전했다. 회사 대표도 “앞으로 다양한 길이 열릴 것”이라며 지지를 보냈다.

배인은 커밍아웃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K팝 업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며 “그저 내 진짜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라고 밝혔다.

배인은 앨범에 담긴 메시지에 대해 “저스트비의 솔직하고 대담한 앨범 ‘저스트 오드’는 우리 자신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마음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솔로 무대에서 ‘Born This Way’를 선택한 이유도 그 메시지와 진심이 닿아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배인은 “팬들의 사랑이 진짜 나로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줬다. 마지막 LA 공연에서 커밍아웃을 결심한 것도 그런 믿음 덕분이었다”고 밝혔다.

용기의 원천
팬들의 사랑

한편, 소속사 블루닷엔터테인먼트는 “개인 사생활”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놨다.

공연 직후 같은 그룹 저스트비의 멤버 시우는 팬 소통 플랫폼을 통해 “병희 멋지더라. 용기에 박수. 나도 무대 뒤에서 지켜보는데 눈물 나오더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많이 어렵고 힘들었던 걸 아니까 더 눈물 났다. 병희 이미 안아줬지, 너무 행복한 투어였다”고 덧붙였다.

팀 내 멤버들의 지지는 배인이 더욱 큰 용기를 내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배인은 “내 커밍아웃은 나 혼자만의 결단이 아니었다. 함께 해준 이들의 믿음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아이돌 양성애 고백

과거 커밍아웃은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아이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부 아이돌들이 용기 있게 커밍아웃을 선언하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걸그룹 와썹 출신 지애는 2021년 SNS를 통해 양성애자임을 고백했다.

그는 “나는 남자와 여자를 사랑한다”며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생겨 행복하다”고 당당히 밝혔다.

이어 지난달 24일에는 하이브의 글로벌 걸그룹 캣츠아이 멤버 라라가 팬 커뮤니티 위버스를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했다.

라라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며 가족에게 먼저 커밍아웃했음을 전했고, 유색 인종으로서 느꼈던 이중의 부담감도 털어놨다.

그는 “삶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팬들의 지지에 감사하다”며 “내 성 정체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라라는 과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 성 정체성이 데뷔에 불리하게 작용할까 두려웠던 심경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성소수자 아이돌들이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연예계 내 다양성과 포용성 확대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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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