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보이그룹 최초 커밍아웃 배인

당당히 흔든 무지개 깃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한때 성 정체성에 대해 숨죽였던 아이돌계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타인에 의해 강제로 밝혀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당당히 나서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모두가 이성애자임을 전제하고 침묵하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있는 그대로’를 외치며 목소리를 낸다.

그룹 저스트비(JUST B)의 멤버 배인이 커밍아웃을 하며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저스트비는 2021년 데뷔한 6인 보이그룹이다. 지난 3월 디지털 앨범 ‘저스트 오드’를 발매했으며, 현재는 월드투어 중에 있다. 지난 4월2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저스트비 월드투어 ‘저스트 오드(JUST ODD)’ 공연 무대에서 배인은 “나는 LGBTQ 커뮤니티의 일원인 것이 자랑스럽다”며 성소수자임을 밝혔다.

“LGBTQ
일원이다”

LGBTQ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의 첫 글자를 따 만들어진 약어로서 성소수자를 의미한다. 이 발언과 함께 배인은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흔들었고, 미국 팝스타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를 열창하며 무대를 이어갔다. 팬들은 그의 용기 있는 고백에 환호로 응답했다.

‘본 디스 웨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곡으로, 성별, 인종,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지지와 포용을 상징하는 노래로 알려져있다. 콘서트 이후 배인의 커밍아웃이 각종 SNS와 팬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고,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배인의 커밍아웃은 K팝 남자 아이돌 중 최초다. 앞서 걸그룹 와썹 출신 지애가 양성애자임을, 하이브의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 멤버 라라가 동성애자임을 밝힌 바 있으나, 한국 국적의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가 성소수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인은 이후 SNS를 통해 “게이로서 LGBTQ 커뮤니티의 일원임이 자랑스럽다”고 다시 한번 밝히며, “레이디 가가는 내게 다르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내가 나 자신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덧붙이며 진심을 전했다.

커밍아웃 이후 배인은 홍석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배인은 홍석천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선배님의 따뜻한 응원과 마음 깊은 조언을 기사로 접하고 큰 울림을 느꼈다”며 “선배님께서 25년 전 누구보다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주셨기에 저도 지금 이 자리에서 작은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가는 길에도 두려움이 있지만, 선배님이 등대처럼 앞에서 빛을 밝혀준 덕분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저도 선배님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홍석천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메시지를 공개하며 “축하하고 응원할게”라고 화답했다.

저스트비 월드투어 미국서 중 깜짝 고백
“나는 자랑스러운 성소수자” 뜨거운 환호

한국서 ‘동성애자’라고 하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홍석천이다. 당시 보수적이던 한국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힌 인물이기 때문이다. 연예계에서 성소수자 연예인이 당당히 커밍아웃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홍석천의 노력이 있었다.

홍석천은 2000년 커밍아웃 이후 방송 활동이 중단됐고, 약 2년간 공백기를 겪었다. 당시 그는 방송 녹화 중 성소수자임을 밝혔고, 이후 <여성중앙>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식 커밍아웃했다. 하지만 이후 모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며 불나방처럼 달려들었고, 가족과 주변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일간스포츠>는 “홍석천, 나는 호모다”라는 제목의 1면 기사를 내보냈다. 홍석천은 시드니 올림픽 응원단으로 출국하던 중 언론에 의해 기사화되며 커밍아웃이 일파만파 퍼졌다. 그는 “기자들이 호텔 방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숨겨놓고 접근해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홍석천은 현재 방송에서 당당히 스스로 성소수자의 아이콘임을 밝히며 밝은 모습으로 당당히 여러 방송에 출연하고 있지만, 이 자리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홍석천은 과거 SBS플러스 예능 프로그램 <김수미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 출연해, 2000년 커밍아웃 당시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그 때가 서른이었다. 사람들이 왜 잘 나가는데 굳이 커밍아웃을 하냐고 했고, 저를 협박했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숨기고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3년 사귄 친구와 이별한 뒤, 평생 진실되게 살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홍석천
그때는…

이어 “커밍아웃을 결심했을 때, 서울에 와서 나와 같은 친구들을 찾으려 탑골공원까지 비를 맞으며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며 학창시절부터 느껴온 다른 정체성에 대한 고립감을 털어놓았다.

홍석천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다르다는 걸 느꼈고, “내가 잘못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길이 보이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대학 시절에는 여자친구도 있었지만, 관계가 진전되지 않았다고 한다. “연인과 스킨십이 없었다. 나름 노력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커밍아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었다. 홍석천은 ‘숨기며 사는 삶’에 대한 절망감과 진실된 관계를 맺고 싶다는 간절함 속에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커밍아웃을 했지만, 당시 프로그램 담당 PD가 제 미래를 걱정해 방송분을 편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녹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통해 소문이 퍼졌고, 한 기자가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후 한 월간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이 알려졌다.

가족들과의 갈등도 깊었다. 홍석천은 “부모님은 커밍아웃 사실을 듣고 너무 놀라셨고, 같이 농약을 먹고 죽자고 하셨다. 그 시절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지금보다 심했기에, 부모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누나들에게는 3년 전에 먼저 고백했지만, 큰 누나는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했었다고 털어놨다.

홍석천은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던 순간도 밝혔다. 그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누나와 싸우고 자살하려고 했었다. 죽기 전에 전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세 번 만에 전화를 받았다. 장례식에도 오지 않겠다는 전 애인의 말이 웃기게 들리면서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멤버들에게
2년 전 고백

이후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이 맛있는 걸 두고 왜 죽으려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았다고 회상했다.

또, 홍석천은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도 커밍아웃 이후 겪었던 심리적 부담과 불면증에 대해 털어놓은 바 있다. 그는 SNS를 통해 동료 LGBTQ+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면서 하루에 100건 넘는 연락을 받기도 했고,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까지 받아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짧게 답장하거나 답장 속도가 느리면 “저는 살 의미가 없어요”라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심리적 고통을 털어놨다. 당시 방송에서 오은영 박사는 이를 듣고 “심각한 문제다. 전문가가 아니면 상담을 멈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석천은 가족들에게서 진정한 인정을 받지 못한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커밍아웃 후 15년이 지나도 부모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인정받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날 부모님이 “선 한번 볼래?”라고 물었고, 홍석천이 “누가 저 같은 사람한테 딸을 주겠냐”고 하자 “네가 어디가 어때서?”라며 화를 냈던 일을 꺼냈다.


홍석천은 이때 “나는 아직도 가족들에게 완전히 인정받지 못했구나”라는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홍석천은 지난 25일 <엑스포츠>와의 인터뷰서 “연예계 후배 중 커밍아웃 사례가 나온 건 나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자 반가운 소식”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본인을 ‘게이 선배’라고 칭하며 “배인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커밍아웃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을지 공감한다”고 말했다.

특히 홍석천은 “커밍아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 이후 버텨내는 시간은 더 큰 용기를 요구한다”며 “나 역시 2000년 커밍아웃 이후 전국민의 99%가 등을 돌린 듯한 상황을 겪었지만, 끝내 버텨냈다”고 돌아봤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보석함>에 배인을 초대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빛·길이 되어준 선배”
홍석천에 감사 메시지

홍석천은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다 못 나눌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배인과 나의 커밍아웃에는 25년의 간극이 있지만, 개인이 감내해야 할 무게는 여전히 비슷하다”며 “다만 사회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기에, 본인 스스로를 단단히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배인의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에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자, 배인은 영국 패션매거진 <Dazed>와의 인터뷰서 “처음에는 커밍아웃을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고민하는 동안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내 삶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커밍아웃은 감정이 가장 진솔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할 용기가 있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저스트비 멤버들과 소속사에는 이미 2년 전 커밍아웃을 했으며, 멤버들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솔직한 고백을 나눴다고도 밝혔다. 베인은 처음에 멤버 지오누에게 성적 지향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후 멤버들이 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9년 지기 친구 지민이 “동성애자냐”고 물으며, “만약 그렇다면 굳이 숨길 필요 없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인은 당시 멤버들에게 커밍아웃 할 생각이 없었지만, 지민의 말에 용기를 내 고백했다.

배인은 “멤버들은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차분하고 따뜻하게 저를 맞아줬고,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여 줬다”며 “내 앞에서 놀란 기색을 감추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이 저에게는 큰 위안이 됐다”고 전했다. 회사 대표도 “앞으로 다양한 길이 열릴 것”이라며 지지를 보냈다.

배인은 커밍아웃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K팝 업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며 “그저 내 진짜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라고 밝혔다.

배인은 앨범에 담긴 메시지에 대해 “저스트비의 솔직하고 대담한 앨범 ‘저스트 오드’는 우리 자신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마음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솔로 무대에서 ‘Born This Way’를 선택한 이유도 그 메시지와 진심이 닿아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배인은 “팬들의 사랑이 진짜 나로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줬다. 마지막 LA 공연에서 커밍아웃을 결심한 것도 그런 믿음 덕분이었다”고 밝혔다.

용기의 원천
팬들의 사랑

한편, 소속사 블루닷엔터테인먼트는 “개인 사생활”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놨다.

공연 직후 같은 그룹 저스트비의 멤버 시우는 팬 소통 플랫폼을 통해 “병희 멋지더라. 용기에 박수. 나도 무대 뒤에서 지켜보는데 눈물 나오더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많이 어렵고 힘들었던 걸 아니까 더 눈물 났다. 병희 이미 안아줬지, 너무 행복한 투어였다”고 덧붙였다.

팀 내 멤버들의 지지는 배인이 더욱 큰 용기를 내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배인은 “내 커밍아웃은 나 혼자만의 결단이 아니었다. 함께 해준 이들의 믿음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아이돌 양성애 고백

과거 커밍아웃은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아이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부 아이돌들이 용기 있게 커밍아웃을 선언하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걸그룹 와썹 출신 지애는 2021년 SNS를 통해 양성애자임을 고백했다.

그는 “나는 남자와 여자를 사랑한다”며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생겨 행복하다”고 당당히 밝혔다.

이어 지난달 24일에는 하이브의 글로벌 걸그룹 캣츠아이 멤버 라라가 팬 커뮤니티 위버스를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했다.

라라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며 가족에게 먼저 커밍아웃했음을 전했고, 유색 인종으로서 느꼈던 이중의 부담감도 털어놨다.

그는 “삶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팬들의 지지에 감사하다”며 “내 성 정체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라라는 과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 성 정체성이 데뷔에 불리하게 작용할까 두려웠던 심경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성소수자 아이돌들이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연예계 내 다양성과 포용성 확대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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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과 상복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여의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정기국회 종료까지 겨우 한 달 남았지만 여야 간의 파열음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의 폭주에 맞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고성과 퇴장이 난무하던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종합감사만 남긴 채 막바지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건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된 건 김현지·조희대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김현지 제1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사퇴 압박에도 꼿꼿하게 버티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국감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지 조희대 오는 6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 김 실장 이름을 증인으로 올렸지만 끝내 불발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을 증인으로 불러 모든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라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김 실장이 국감 당일 오전 또는 오후 1시까지만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고 ‘반반 출석’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김현지 증인 출석을 놓고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이라고 하는데 국감이 치킨인가? 반반 출석하게”라며 “김 실장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이 ‘김현지 흔들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이후 사법개혁을 처리하겠다”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그어줬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번 사법개혁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전횡을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정상화법이다. 사법 독립성과 책임성을 두텁게 하고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법부 장악 논란을 사전에 잠재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외면할 경우 탄핵을 포함한 모든 법적·정치적 수단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사람의 이름은 오는 12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를 넘겨서도 호명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해 상대편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봤는데 조희대라는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생겼다. 민주당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내란 세트’로 묶어서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내란이라는 키워드만큼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민주당은 부동산 실책이 뼈아프다. 그걸 덮기 위해 조 대법원장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추경호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이제 그쪽을 노리지 않겠나? 여아가 머리채만 안 잡았지, 아마 역대급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 ‘사이좋게’ 하나씩 쥔 약점 특검 앞 권성동·추경호 운명은? 추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첫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함으로써 고의로 표결을 방해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날 추 의원은 조은석 내란특검에서 진행되는 1차 피의자 소환조사에 응해 “무도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당하게 특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첫 재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각종 악재가 국민의힘을 단단히 휘감자 부동산으로 한차례 휘청한 민주당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여론조사 대납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대질이 오는 8일 예정돼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판까지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놓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정부 출범 후 첫 예산 심사로 국민의힘은 지역사랑 상품권 등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역 화폐를 겨냥해 맹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주도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고, 지난 8월 정부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포퓰리즘’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5일 있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고 17일에는 소위원회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가동된다. 각 소위의 논의를 거친 예산안은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2일이지만 늘 그렇듯 여야의 예산 샅바싸움으로 해당 날짜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줬을 때 8.1% 늘어난 규모다. 이 대통령은 초혁신 경제 분야 등에 큰 폭으로 투자해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이 의결되던 날 이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역대급 규모 쩐의 전쟁 이어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AI 투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강조한 만큼 예산 역시 이에 맞춰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자동차·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 등 ‘피지컬 AI’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이다. 역대 규모인 이번 예산 중 10조6000억원이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26조2000억원으로 책정된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연대경제 기반 구축’ 부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부는 24조원 규모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국비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24조원은 총 발행되는 상품권의 액면가이며 이 중 3~7%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4000억원으로 도합 4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또 정부는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 230만개 사에 경영안정 바우처 2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민 부담 가중 청구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됐다. 조세감면까지 포함하면 실질 지출은 무려 808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원, 2029년에는 무려 1789조 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 2029년에는 58%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33.9%에서 46.8%로 뛰어올랐는데 이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나랏빚을 통제하기는커녕,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릴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거짓 선동”이라며 민생 최우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반박했다. ‘올려’ ‘내려’ 본회의 난타전 쟁점 법안 처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위한 법 왜곡죄를,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부동산을 겨냥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각각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판·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등 잘못된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해 기소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법 왜곡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번달 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도 MBC 라디오를 통해 “특위에서 낸 5대 개혁안은 상당한 공감대가 이미 이뤄져 있다”며 “당내, 국민적으로 그리고 법원과도 대법관 증원 문제 빼고는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법사위 논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 골든타임을 절대로 실기하지 않고 연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며 힘을 실었다. 헌법 제84조이자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대통령 재판중지법’에도 군불을 땠다. 법사위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 고 물은 데 대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을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법안이 당론은 아니라면서도 향후 사법부의 행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지난 국감에서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라셨을 것”이라며 “벌써 몇 달째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부동산? 마음은 지선 노발대발 ‘쇼츠각’ 잡는 의원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힘은 막아낼 도리가 없다. 대신 국민의힘은 부동산 규제를 파고들면서 이정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인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부담하는 규제다. 앞서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당 차원의 결정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크자 신중론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의 갈지자 부동산 행보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국민적 비난과 여론의 뭇매로 궁지에 몰리자 이제야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 온 재초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이미 김은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놨다. 정기국회에서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 처리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감에서 재초환 유지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여야 간 이견만 커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폐지는 투기 광풍을 불러올 조치기 때문에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장관은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를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는 국민의힙 요구에 대해 “원내 중심의 대화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더 이상 부동산 문제로 자책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만큼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입장을 보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의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흐르는 만큼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26일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감 도중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 법안 70여건을 일괄 처리하면서 협치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앞서 민주당은 APEC 주간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향해 “무정쟁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경제 참사·부동산 참사를 덮기 위한 침묵 강요이자 정치적 물타기”라고 오히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정부와 민주당이 독선과 독재를 멈추고 정치를 회복시키면 정쟁은 없어진다”고 훈수했다. 손 내밀어도 고개만 팽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외교 성과를 띄우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구분해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회를 자기 정치의 장으로 쓰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 영향이 크다. 선거를 앞뒀는데 어떤 정당이든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