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빈자들의 친구’ 프란치스코 발자취

평생 가난과 고통 함께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빈자들의 친구’이자 ‘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린 프란치스코 교황이 88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청빈과 포용, 평화를 외치며 가톨릭의 틀을 깨고 약자의 곁을 지켰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화려함을 거부하고 ‘Franciscus’라는 교황명만 남긴 채 떠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1일(현지시각) 향년 88세로 선종했다. 2013년 제266대 교황으로 즉위한 그는 지난 12년간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끌며 청빈과 개혁, 그리고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왔던 인물이다.

케빈 페렐 교황청 궁무처장 추기경은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전 7시35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며 그의 선종 소식을 전했다. 페렐 추기경은 “그는 삶 전체를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앙과 용기, 보편적 사랑으로 복음의 가치를 실천했고, 특히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
추모 물결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인은 뇌졸중과 그에 따른 심부전이었다. 안드레아 아르칸젤리 바티칸 보건위생국장은 교황이 뇌졸중으로 혼수 상태에 빠진 뒤 회복 불가능한 심부전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발표했다. 교황은 평생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아왔으며, 지난 2월 폐렴 진단 이후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해 고용량 산소 치료와 수혈을 받았다. 38일간의 입원 끝에 3월 퇴원했지만, 건강은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절대 안정이 필요했던 상황서도 교황은 신자들과의 만남을 멈추지 않았다. 부활절을 앞두고 로마 시내 교도소를 방문하고 미국 부통령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으며, 선종 전날인 지난 20일에는 성 베드로 광장서 열린 부활절 미사에 참석했다.


이날 교황은 마지막 강복 ‘우르비 에트 오르비(로마와 전 세계에)’를 전하며 디에고 라벨리 대주교가 대독한 전체 연설문을 통해 가자 지구 전쟁 등 세계 곳곳의 참상을 언급했다. 그의 육성으로 남긴 마지막 말은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행복한 부활절을 기원한다”였다.

영국 신문 <더타임스>에 따르면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 사이에서는 이번이 교황의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당시 교황의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그가 심각한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대중 앞에 서려 했다고 전했다.

말하는 것도 힘들어했고, 얼굴엔 고통스러운 표정이 스쳤지만, 그는 군중 속 아기들의 손을 잡고 축복을 건넸다. 퇴장하며 손을 흔든 인사는 그의 마지막 작별 인사로 남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은 청빈과 검소함 그 자체였다. 1936년 12월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시절 양말공장서 청소와 사무보조를 하며 가족을 도왔다. 오전에는 공장서 일하고 오후에는 식품화학을 공부하며 공업학교를 다녔다.

소박한 삶과 검소한 정신은 이 시절부터 그의 삶에 깊이 자리 잡았다.

원래 화학 기술자가 되려 했지만, 17세 때 산호세 플로레스 성당 고백실서 신의 부름을 받고 성직자의 길을 결심했다.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1980년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을 거쳐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2001년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아픈 몸 이끌고 마지막 연설
“행복한 부활절 기원” 인사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된 이후 그는 고급 승용차 대신 지하철을 이용했고, 시내의 작은 아파트서 생활했다. 교황으로 선출된 후에도 자국 신도들에게 “로마로 오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라”고 당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검소함은 그의 교황명 선택서도 드러난다. 2013년 3월13일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며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했는데, 이는 ‘빈자들의 친구’로 불린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서 따온 것이다. 전임 교황들이 사용하던 이름 대신, 가난한 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즉위 이후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청빈한 삶은 계속됐다. 화려한 바티칸 교황 전용 숙소 대신 교황청 사제들의 기숙사인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거주했고, 금 십자가 대신 낡은 철제 십자가를 착용했다. 교황의 상징인 빨간 구두 대신 평범한 검은색 구두를 신었다.

교황청서 무보수로 봉사하며 월급도 받지 않았다. 이는 예수회 성직자로서 평생 청빈한 삶을 살겠다는 ‘가난 서약’에 따른 것이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국빈 의전 차량 대신 기아의 ‘소울’을 타고 이동하며 검소함을 보여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보적 개혁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보수적 전통이 강한 가톨릭계서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2013년에는 동성애자 사제에 대한 질문에 “그들이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선한 의지를 갖추고 있다면 내가 누구라고 그들을 판단하겠는가”라고 답했다.

이 발언은 오랫동안 소외됐던 성소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2014년 주교 시노드서 동성애와 이혼, 재혼을 포용하는 내용이 최종 보고서에 실리지 못하자, 그는 “하느님은 우리를 계속 놀라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여시고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인도하신다”고 말하며 교회의 열린 태도를 촉구했다.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허용했으며, 여성을 교황청 장관에 최초로 임명하고, 낙태 여성과 재혼자가 성체성사에 참여 가능하도록 추진하는 등 가톨릭 교회의 개혁을 이끌었다. 이 과정서 보수층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적 위선을 지적하고 신앙의 문을 ‘모든 이들’에게 열고자 했다. 그는 과학과 종교의 융합에도 앞장섰다. 2014년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 회의서 ‘빅뱅 이론’을 긍정하며, 통상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과학계와 종교계의 융화를 강조했다.

사회 정의와 인권을 강조한 교황은 정치적 사안에도 목소리를 냈다. 2017년 미국과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추진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악을 선으로 극복하라”며 관용의 자세를 촉구하고 국수주의와 외국인 혐오에 반대했다.

청빈의 상징
개혁 아이콘

2014년 한국 방문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했다. 그는 유족으로부터 받은 노란 리본을 달았고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이 같은 태도는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민은 종종 그를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에 직면하게 했다. 그러나 교황은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모든 것을 다 같이 공유한다. 이것은 공산주의가 아닌 순수한 기독교 상태”라고 일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자취는 약자 보호와 평화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그는 가톨릭 교회가 성 논쟁서 벗어나 현대 사회의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도소 수감자의 발을 씻어주고, 이혼·재혼 신자와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다가가는 등 관심의 범위를 넓혔다.

그는 세계 곳곳서 평화를 위한 행보를 이어갔다. 2015년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2017년에는 로힝야족 추방 사태가 발생한 미얀마를 찾아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2021년에는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해 무장 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022년부터 교황은 지속적으로 평화를 촉구했다. 2023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하자 민간인 희생을 막기 위한 호소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강론서도 “가자 지구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전쟁 당사자들에게 휴전과 인질 석방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가난한 이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사 개혁에도 적극적이었다. 특정 교구장이 자동으로 추기경이 되는 관행을 깨고, 가톨릭 교세가 강하지 않은 지역서도 추기경을 임명했다. 한국의 유흥식 추기경 역시 이 같은 개혁 인사의 일환이었다.

교황은 한반도 평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2014년 아시아 첫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했으며, 이후 방북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지만 끝내 성사되지는 못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그의 두 번째 방한이 기대됐으나, 이번 선종으로 차기 교황에게 넘겨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몇 년간 건강악화로 고통받았다. 2021년 결장 협착증 수술, 2023년 탈장 수술을 받았으며, 오른쪽 무릎 악화로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존했다. 젊은 시절 폐 일부를 절제한 탓에 겨울철이면 호흡기 질환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임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나는 건강하다. 그저 늙었을 뿐”이라며 교황직을 끝까지 수행했다.

대한민국과
특별한 인연

그의 유언은 청빈함의 상징이었다. 교황청이 공개한 유언에 따르면 그는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지하에 특별한 장식 없이 안장되길 원했다. 비문에는 ‘프란치스코(Franciscus)’라는 이름만 새겨지길 바랐다.

유언 작성일은 2022년 6월29일로, 교황은 도면까지 첨부해 묘소 위치를 지정했다. 장례 비용도 후원금을 통해 미리 마련해뒀다.

그는 “나의 육신이 부활의 날을 기다리며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안치되기를 요청한다”고 남겼다. 교황은 평생 복된 성모 마리아께 자신을 맡겨왔다며, 이곳에 안식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는 그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진행됐다. 통상 교황의 장례는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서 거행되지만, 그는 장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도록 전례서를 직접 개정했다. 시신을 삼중관이 아닌 목관 하나에 안치하고, 선종 확인도 개인 예배당서 진행하도록 했다.

일반 대중의 조문을 받도록 했으며, 바티칸 외부에 안장될 수 있도록 규정까지 변경했다.

교황의 공식 장례 예식은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 마련된 관에 유해를 안치하면서 시작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이 아닌 장소에 묻히는 드문 사례로 남게 됐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안장된 마지막 교황은 1669년 클레멘트 9세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에 전 세계는 깊은 애도를 표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잇따라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미국 신문 <워싱턴포트스>(<WP>)에 따르면 그의 죽음으로 가톨릭 교회가 갈림길에 섰다고 진단했다. <WP>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죽음으로 가톨릭 교회의 한 시대가 마무리됐다”고 평가하며, 그의 대의명분이 서구 사회서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혐오와 민족주의가 다시 득세하는 시대에, 신앙의 문을 모든 이들에게 열고자 했던 영적 지도자였다. 그는 가톨릭 교회가 분열과 향후 방향성에 대한 차이를 드러낸 채 새로운 길 앞에 서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톨릭 보수·진보 ‘내전 10년’
‘콘클라베’ 앞두고 다시 갈림길

오스트리아 수녀 브리기테 탈하머는 성베드로 광장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와 정의, 사람들의 존엄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도덕적 목소리였다”며 “이제 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WP>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이 ‘실질’보다는 ‘스타일’과 ‘어조’의 변화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동성애와 사제 결혼 등에 대한 가톨릭 교리의 근본적 변화는 이루지 않았지만, 교회의 태도와 방향성을 바꿨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가톨릭 교회는 차기 교황 선출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앞두고 있다. 콘클라베는 선종일로부터 15~20일 내에 열릴 예정이며, 이번 선거는 가톨릭 역사상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콘클라베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은 135명으로 최대 규모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교황청 주요 직책을 맡아온 추기경들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명망 높은 인물들이 차기 교황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명확한 후계자는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의외의 인물이 선출되거나, 표가 갈려 선거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교황청 출입 전문기자 마르코 폴리티는 “이번 교황 선거는 다른 때보다 새 교황이 콘클라베 전이 아니라, 콘클라베 과정서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가톨릭 교회는 극보수주의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맞서 10년 넘게 ‘내전’을 겪은 끝에 이 선거를 맞이했다”며 “이번에는 유력 후보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는 한국인 최초 교황청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다. 그는 차기 교황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가까이서 보좌해 온 인물로 평가된다. 유 추기경은 교황의 선종 직후 “그분의 죽음서 희망과 부활을 봤다”며 “평화롭길 바라셨던 교황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추모했다.

그는 교황이 한국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 깊은 애정을 가졌음을 강조하며, 교황의 발자취를 잇겠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유산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의 역할을 넘어선다. 그는 약자의 대변자였고, 사회 정의와 평화를 외쳤으며, 종교와 과학의 융합을 시도한 인물이었다. ‘빈자들의 친구’ ‘개혁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처럼, 그의 발자취는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됐다.

그가 남긴 말들은 여전히 세계인의 가슴에 남아 있다.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 “악을 선으로 극복하라” “모든 이들, 모든 이들, 모든 이들”등 모두에게 신앙의 문을 열겠다는 그의 다짐은 가톨릭 교회를 넘어 전 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걸음은 멈췄지만, 그가 남긴 가치와 정신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이제 그의 유산을 어떻게 계승할지 선택하는 기로에 서 있다. 보수와 진보, 전통과 개혁 사이서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다음 교황
5월 결정

그의 마지막 유언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화려함을 거부하고 단순함을 택했다. 바티칸 중심이 아닌, 자신이 사랑한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지하에 교황명만 남긴 채 영면에 들었다. 이는 그가 평생 강조해 온 겸손과 청빈의 상징이자, 모든 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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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는 한때 ‘짝패’였다. 장 대표는 용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에 몰두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의 욕망 ‘용꿈’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조건은 “다음날까지 정치 생명을 걸고 재신임·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정치 생명을 건 재신임·사퇴 요구’가 있으면, 곧바로 전 당원투표를 시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요구 기간 불과 이틀 지난 6일까지 장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국민의힘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반응이 없었으니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에 대한 당내 친한(친 한동훈)계·소장파의 비판이 시작된 시점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한 지난달 29일이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 제명 조치도 지난 9일 확정됐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현직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장 대표 등을 공개 비판해 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김 전 최고위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다. 김 전 최고위원이 탈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 제명 처리됐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면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는 국민의힘을 이끌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ARS 여론조사(휴대전화 가상번호 100%)에 따르면, 오 시장은 33.3%의 지지를 얻어 47.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보다 14.2%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참조할 수 있다. 친한계는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친 수도권·부산 내 보수 성향 엘리트 집단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부터 총선에서 연패한 탓에 당내 수도권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줄었다. 양당 체제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집단 탈당 후 창당’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바른정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 등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 실험은 모두 실패했다. 현 시점에선 국회 의석 3석을 보유한 개혁신당만이 유일한 원내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4개월여 앞둔 선거가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궐선거란 사실도 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지휘해 연이어 이긴 경험이 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선거를 지휘해 이긴 경험이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24년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총선을 지휘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 제명을 사실상 주도한 장 대표에 대해선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란 정치 실험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한 전 대표의 선거 지휘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토대로 강행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고 중앙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만, 그래도 선거는 선거다. 지역 기반을 확보하는 선거가 중요하지 않을 리는 없다. 통상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빅텐트 설치 등 이합집산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당내 계파 중 하나를 와해시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 대표가 개혁신당을 창당한 시점은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지난 2024년 1월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탈당 후 개혁신당으로 옮긴 현역 의원은 허은아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 1명이었다. 그리고 개혁신당이 거둔 의석은 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 등 총 3석이라서 정치 구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 제명 후 오 반발 “장 물러나 책임져야” 하나뿐인 꿈…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장 대표의 한 전 대표 등 제명 및 오 시장과의 갈등은 “국민의힘이 수도권 내 지방선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만큼 집요하다. 선거에선 어제 없던 조직이라도 오늘 만들어서 돌려야 하고, 어제의 원수와도 악수해서 표로 바꿔야 한다. 일정한 영향력을 당내 구성원을 내쫓아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감수하는 선택은 “의아하다”는 의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지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수도권 패배·중도층 표심 공략 실패 여파로 총선에서 연패했다.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면서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김민수 최고위원조차 지난 9일 보수 유튜버들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자유 유튜브 총연합회 토론회’에 출연해 “윤 어게인을 외쳐선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중도층을 설득해야 하는데, 부정선거론을 10년 동안 외쳐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을 그가 현실적으로 외면할 순 없으리라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우파의 짠물 지지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윤 어게인·탄핵 반대 구호로 그들의 성원을 받았으니, 노선을 바꾸더라도 그들이 따라올 것이란 기대감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충남 보령·서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 초선 의원 임기 4년도 마치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장 대표를 파격적으로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지난 2024년 전당대회에선 한 전 대표와 장 대표가 나란히 당 대표와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엔 장 대표도 있었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는 이때까진 누가 보더라도 ‘짝패’였다. 그로부터 1주가 지난 12월11일에 이르러, 이들은 명백한 결별 신호를 언론·대중에게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와 달리 장 대표는 반대했고, 굳게 입술을 다문 채 당 대표실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3일 후 장 대표는 가장 먼저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누구나 아는 승리 공식 장 대표는 지난해 2월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강경 보수 전향을 선언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차별화하면서 강경 보수의 지지를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선 강경 보수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 사무총장엔 통상 3선 의원이 발탁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된 후 약 1년6개월이 지난 장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것은 한 전 대표의 파격 인선으로 해석됐다. 이후 장 대표는 원내 수석대변인·수석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12월 이후엔 정치적 원수가 돼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다. 장 대표의 변화에 대해선 “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은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 대표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충청에서 몇 안 되는 용꿈 꾸는 분’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용꿈을 꾸는 사람답게 유연한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당 대표 당선 이후엔 굉장히 유연하게 노선을 바꿔 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한동훈’이란 이름 석 자 앞에선 유연하지 못하단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성은 3~5세에 이르러 처음 만나는 이성인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된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서 아버지가 우월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거세할 것”이란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아버지의 거세 시도를 막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공포는 선망으로 바뀐다. 이를 일컬어, 프로이트는 ‘초자아 형성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불행한 신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 때문에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는 전형적 구조로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신화의 구조를 토대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무의식 구조를 규정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반대했고,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치적 절정을 누렸다.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절정은 장 대표의 ‘용꿈’과 결정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가 날아오를수록 장 대표의 용꿈은 거세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용꿈도 날아오르려는 욕망이다. 두 사람 모두 날아오를 순 없다. 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했던 장 대표는 하루아침에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절정·비상 거세 공포 장 대표의 용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한동훈’이란 압도적인 권위를 극복해야 한다. 당내 가장 막강한 그룹으로 거론되는 언더 찐윤엔 자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대권주자가 없다.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의힘이란 어머니를 차지해야 한다. 장 대표의 용꿈은 한 전 대표라는 ‘이미 결별한 정치적 아버지’를 제거해야 이룰 수 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한동훈의 측근이란 옛 흔적을 완전히 부순 후 독립적인 용꿈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또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언더 찐윤이란 막강한 집단도 굴복시켜야 한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해 12월 장 대표 앞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잘못됐단 인식을 갖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아무리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니 백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마비가 비상계엄의 원인이란 얘기를 더는 하면 안 된다”며 “몇 달 동안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도 되니, 지방선거에서 이겨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 보수를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평가받는 장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후 장 대표는 한동안 “언더 찐윤이 장 대표를 2월에 실각시킨 후,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 최고위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길 것”이란 소문에 시달렸다. 언더 찐윤은 “국민의힘의 텃밭 대구·경북·강원에서 토호들과 밀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장 대표는 윤 의원의 비판을 받는 등 구 친윤계로부터도 압박당하는 상황에서 당내 소수 계파 친한계 수장인 한 전 대표 제명에 더욱 집중했다. 이는 하향 전치란 심리학적 개념이 성립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전치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표출하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특히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을 일컬어 하향 전치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 ‘화풀이’라고 한다. 장 대표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삼각형 구도로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사용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욕망의 주체·대상·체계는 상호 의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지라르가 규정한 욕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거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도 포함한다. 이를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 압박에 제명 더 집착…화풀이? 한은 장의 희생양…전한길도 장 노리나 이 대표 주장대로, 장 대표가 처음부터 용꿈을 염두에 두고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라면,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와 함께 ‘짝패’를 구성하면서 자신의 용꿈도 아울러 키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반대 및 해제 참여로 정치적 절정에 오른 한 전 대표가 먼저 대권이나 보수 진영 주도권을 차지한다면, 장 대표로서는 “한 전 대표가 있는 한, 내 욕망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갑자기 한 전 대표와 결별한 후 강경하게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을 외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한 전 대표가 ▲언더 찐윤 ▲강경 보수 ▲장 대표 등과 두루 갈등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라르는 “한 집단의 갈등은 내부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대상을 희생시켜 해소한 후 단결한다”고 주장했다. 지라르는 이 과정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이후 전한길씨·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를 당에 유입시켜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공백을 채우고 언더 찐윤과 맞설 세력으로 양성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두 유튜버를 통해 한 전 대표 고유의 영향력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씨는 지난 8일 자신의 팬카페 ‘자유한길단’에 “장 대표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전씨는 이 글을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란 세력·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박성훈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인지 3일 안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답변 요구에 침묵한다면, 박 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렇다면 장 대표는 당원·윤 전 대통령을 함께 배신한 것이므로 이후 일어날 일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한 것처럼, 전씨가 장 대표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단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장 대표 주도로 ‘희생양’이 된 것처럼, 장 대표가 전씨 주도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단 압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씨의 요구에 대해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면서 침묵했다. 직설적인 욕망의 덫 장 대표의 정치 행위는 직설적이어서 ‘용꿈’이란 욕망이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국민의힘의 바닥 지지 기반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윤 의원도 장 대표를 비판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용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는 ‘욕망의 덫’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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