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흥, 내 그럴 줄 알았지.”
“응?”
“야, 그 말 하기가 그렇게 힘드냐?”
“아니, 그럼 형도……?”
커다란 널빤지
“탈출을 생각하는 게 너뿐인 줄 아니? 누군 지금 여기가 좋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아냐?”
용운은 기쁜 나머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사나이들의 꿈같은 악수였다. 새로운 힘과 용기가 용운의 온몸으로 뜨겁게 용솟음쳤다.
“야, 남들이 볼라, 조심해!”
피에로가 사방을 둘러보며 빠르게 말했다. 용운은 아차 싶어서 얼른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나가지? 뭘 잡고 건너면 좋을 텐데 말야.”
“내가 얼마 전부터 생각하는 게 있어.”
“응? 그게 뭔데?”
그때 작업 시작을 알리는 사장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따 저녁 때 옥사 뒤로 나와. 알았지?”
피에로는 태연스럽게 휘파람을 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거미 사장이 지나가면서 눈살을 찡그렸다.
그날 저녁 둘은 옥사 뒤에서 다시 만났다.
피에로가 속삭였다.
“커다란 널빤지 하나면 만사 해결인데 말야. 널빤지는 부력감도 좋고 통나무처럼 무디지 않아서 붙잡고 가면 건널 수가 있다고.”
“형, 누가 그걸 몰라? 그런 걸 구할 수가 없으니 문제지.”
“있어.”
“어디 있어?”
“변소 문짝.”
피에로가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말했다.
“응……?”
“왜 그래?”
“아니, 변소 문짝을 뜯어 가잔 말야? 그게 물에 뜨겠어?”
변소문을 배처럼
숫돌로 경첩 갈기
“넌 그래서 아직 엄마 젖을 더 먹어야 된다. 아마 통나무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바다의 배가 되는 거지.”
피에로는 주위를 한번 살피고 나서 말을 이었다.
“밤마다 소변을 보러 가는 척하면서 미리 경첩의 못을 하나씩 빼두는 거야. 문짝이 떨어지지 않도록 위아래 각 한 개씩만 남겨두고 매일 밤 조금씩 조금씩 뺀단 말야. 일이 끝나면 반드시 그때그때 흙칠을 해서 손자국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위아래 한 개씩 남긴 것도 몇 번 빼었다 꼈다 해두는 게 좋아. 나중을 위해서 말야.”
“형, 머리 잘 돌아가는걸.”
“이게 다 영화를 많이 본 덕분이지, 하하.”
피에로가 작은 소리로 웃었다.
“영화처럼 될까?”
“영화는 공상이 아니야. 아무튼 내가 적당한 연장감을 구해 볼 테니까 너도 매일 밤 한두 번씩 나와서 뽑을 생각을 하고 있어. 목표는 왼쪽 마지막 변소야. 살펴보니까 그쪽 문짝이 무척 허술해 뵈더라.”
“그래, 알았어.”
“연장은 쓰고 나서 항상 문틀 위에 올려놓기로 해.”
“알았어. 형, 그럼 빨리 시작하자.”
“그래. 연장부터 구해 놓고 나서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그만 들어가자. 너무 오래 쏙닥거려도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둘은 일단 그렇게 약속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용운은 그날 밤 여느 때보다도 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취침 시간이지만, 눈은 또랑또랑하게 탈출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이 끝없이 설렘으로 타올랐다.
다음날 저녁,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던 피에로가 용운을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용운은 대번에 그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식사를 끝낸 후 둘은 다시 만났다. 옥사 뒤로 돌아들기 무섭게 피에로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보였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숫돌이지. 오늘 작업 시간에 낫을 갈다가 몰래 깨어 왔다.”
“이걸로 어쩌려구?”
“어젯밤에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못을 뺀다는 게 쉬울 것 같지 않더라. 캄캄한 밤에 더듬거리면서 경첩을 잡아제켜야 하는데 그게 잘될 리도 없구.”
“그래서?”
“숫돌 작전이지.”
“응?”
“경첩은 하나의 쇠못을 중심으로 두 개의 쇳조각을 맞물려 놓은 게 아니냐. 그러니까 가운데 끼워진 쇠못의 한쪽 대가리를 갈아 없애고 빼내면 경첩은 쉽게 분리가 되잖아. 변소 문을 닫으면 그 틈새로 경첩의 접히는 부분이 밖으로 튀어나와 갈기에도 편하다는 얘기지.”
“응.”
“그러니까 이걸로 조금씩 갈아 들어가는 거야. 하루에 백 번씩만 문지를 생각을 하자구.”
“백 번씩?”
“더 많이 하면 좋고.”
“알았어. 그럼 오늘부터 시작하지 뭐.”
비밀스런 작업
그날 밤부터 비밀스런 작업이 시작되었다. 변소에 도착하면 다른 칸부터 노크를 해보는 것이 순서였다.
화장실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사람이 있으면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사람이 오곤 하는 바람에 허탕치고 들어온 때도 허다했다.
하지만 둘은 꿈이 있기에 지치지 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