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진실 안고 떠난 장제원 전 의원

권력 중심서 의혹 중심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거짓말 같은 죽음에 또 한 번 여론이 웅성이고 있다.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늘 권력 가까이에 있는 인물이었지만, 씻을 수 없는 오명만 남긴 채 떠났다. 그는 보수 정치권의 전략, 윤핵관 권력, 정치적 계파 갈등과 직결됐고, 동시에 자녀의 반복적인 일탈, 거침없는 언사, 국회 내외의 논란으로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의 정치 인생은 권력의 중심서 시작해 의혹의 중심에서 생을 마감했다.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 보수 정치권서 논란과 영향력을 동시에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국회의원을 세 차례나 지냈고, 윤석열정부의 출범 과정에서는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을 맡으며 정치 중심부서 실무와 전략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는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직후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며 예기치 못한 비극적 종결을 맞았다.

윤석열                                                                                                                                                    최측근

1967년 4월13일 부산서 태어난 장제원은 정치 가문서 성장했다. 부친 장성만은 박정희정권 시절 제11·12대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자 학교법인 동서학원 설립자로, 부산지역 정가와 교육계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서울로 유학해 여의도중학교와 여의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같은 대학원서 언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동서학원 산하 대학인 경남정보대학 교수와 동서대학교 부총장 등으로 활동하며 교육 행정 분야서도 경력을 쌓았다.

그의 정치 진출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서 시작됐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부산 사상구에 출마한 그는 여당 후보로서 무난히 당선됐고, 정치권서 비교적 젊은 보수 신예로 주목받았다. 초선 의원 시절부터 언론에 자주 등장했고, 상임위나 본회의서도 날 선 메시지와 직설적인 어조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언론 플레이에 능하고 메시지 설계에 밝은 장제원은 이후 대변인, 전략기획 부총장 등 당내 역할을 맡으며 실무형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2012년 총선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하며 국회를 떠났지만, 정계 은퇴는 아니었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서 탈락한 후 무소속으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복수의 후보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하며 정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자유한국당에 복당했고, 당내 중진들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장했다. 이 시기 그는 보수정당 내부 계파 재편 과정서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을 오가며 노선 갈등의 중심에 서 있었고, 여러 차례 언론과의 인터뷰서 정당 재편과 인재 등용에 관한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선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다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3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중진급 의원 반열에 올랐으며 법제사법위원회, 정무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주요 상임위서 활동했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정치권에 입문하기 시작한 2021년 무렵부터 장제원은 그와 긴밀한 정치적 관계를 형성해 나갔으며, 이는 향후 윤석열 대통령후보 캠프서 실무총괄을 맡게 되는 기반이 됐다.

2015년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피소                                                                                                        당시 찍은 영상 공개 후 극단적 선택

장제원이 윤석열 캠프서 맡았던 역할은 단순한 보좌를 넘었다. 그는 종합상황실 총괄실장을 맡아 전반적인 메시지 기획, 조직 운영, 정책 조율을 관장했으며, 주요 미디어 대응 전략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대선 국면서 그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이라는 언론의 명명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고, 윤석열이 위기 상황에 처할 때마다 이를 수습하거나 반전시킬 메시지를 설계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윤석열이 당선된 이후에는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을 맡아 인수위 구성, 집무실 이전 결정, 청와대 용산 이전 등의 민감한 이슈를 조율했다.


하지만 권력 중심부의 활동은 당내 갈등의 뇌관이 됐다. 2022년 당시 국민의 힘 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와의 공개적 갈등은 대표적인 예였다. 이 대표는 윤핵관 세력이 당무를 장악하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장제원은 이에 직접적인 대응은 피했으나 실질적으로 당내 전략의 설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비공식적 모임인 ‘민들레 모임’을 통해 당권 재편을 시도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정치 경력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는 장남 장용준(예명 노엘)의 반복된 범죄와 사회적 물의였다. 장용준은 2017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힙합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고, 이후 래퍼로 데뷔했으나 2020년 음주 운전 사고를 낸 뒤 무면허 운전과 운전자 바꿔치기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에도 경찰관 폭행 및 추가 음주 운전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았고, 재판서도 반복적으로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았다. 장제원은 아들의 일탈에 대해 여러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으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며 한때 당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윤핵관’                                                                                                                                                     핵심으로

그러나 이후 다시 정치 전면에 복귀하며 ‘책임 회피’ 논란이 일었다. 장제원의 국회 내 활동 역시 논쟁의 중심이었다. 그는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검찰개혁 관련 논의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있어 보수 진영의 강경 입장을 대표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측과의 질의응답 과정서 고성이 오가거나 언론에 회자된 거친 표현들을 사용하면서 언행 논란이 잦았다. 예컨대, 법무부 장관과의 질의 과정서 “국민이 당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써 공방이 벌어졌고, 이는 여야 간 갈등의 소재로 부각됐다.

2023년 이후 윤석열정부의 중반기로 접어들며 그의 공식적인 정치 활동은 다소 감소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는 국회 주요 법안 처리 과정에서는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비공식 라인서 조율자 역할을 했고, 일부 언론은 그가 여전히 윤 전 대통령과의 ‘핫라인’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국민의힘 내 차기 지도 체제 논의, 공천 권력의 이동 과정서 다시 그의 이름이 거론되며 “보이지 않는 권력”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지난달, 그를 둘러싼 상황은 급변했다. 과거 부산디지털대학교 부총장 재직 시절인 2015년, 당시 수행비서 A씨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A씨는 언론 보도서 성폭행 당시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장제원으로 추정되는 목소리와 함께, 피해자 A씨의 휴대전화 촬영 장면이 담겨있었다. 영상 속 내용은 장제원 측의 ‘호텔에 간 적 없다’는 해명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해석됐다.

A씨는 사건 직후 곧바로 해바라기센터를 방문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놨고, 이 과정서 남성의 DNA가 검출되는 등 신체 증거도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관계자들 사이에선 사실상 혐의 입증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오명을                                                                                                                                                    남기다

수사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지난달 31일, 장제원은 서울 강동구 자택 오피스텔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오전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가족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현장에는 자필로 보이는 유서가 남겨 있었고, 경찰은 타살 정황이나 범죄 혐의점은 없다고 밝혔다.

사망 직후 고소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수순에 들어갔고, 유서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장제원은 사망 당일에도 측근들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는 등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 주변에 “혼자 있고 싶다”는 심경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제원의 사망 사실이 알려지자 피해자 측은 지난 1일 오전으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피해자 A씨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같은 날 SNS를 통해 “사정상 기자회견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망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당시는 일부에선 “만우절(4월1일) 거짓말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충격이 컸다. 부친의 부고 소식이 알려진 후 장용준은 팬들과 소통하는 오픈 채팅방에 “이걸 이렇게 말하는 게 맞나 싶어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쓰는 글인데 그래도 걱정들 많이 하는 거 같아서 이렇게 쓴다”며 “당연히 어떻게 괜찮겠냐만 내 걱정은 너무 하지들 말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감히 어떻게 헤아리겠느냐, 이런 말도 안 해도 괜찮다. 잘 보내드리고 오겠다”며 “다행히 이것저것 어린 나이에 많은 경험을 해본 탓에 남들 때문에 내가 무너지거나 할 일 없으니 너무 염려들 말아라”라고도 했다.


비보에 다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빈소를 찾는 등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그의 사망은 정치권에도 즉각적인 충격을 안겼다. 장제원의 빈소에는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으나 애도 표명은 엇갈렸다. 내부에서는 애도의 분위기와 함께 혼란스러운 반응이 뒤섞였다.

윤캠프 실무 총괄                                                                                                                                      민감한 이슈 조율                                                                                                                                      위기 때마다 수습

일부 의원들은 SNS를 통해 “너무 안타깝고 믿기 어렵다”며 애도하는 한편, 장제원의 죽음으로 인해 수사가 종결된 것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로 살 수도 있었으련만. 모욕과 수모를 견딘다는 게 그렇게 어려웠나”라며 “하나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은 주지 않으신다. 이제 다른 세상서 모든 걸 내려놓고 평온하시길 기도한다”고 적었다.

홍 시장과 장제원은 과거 자유한국당 시절 당 대표와 수석대변인으로 함께 호흡을 맞췄으며, 2020년 총선 당시 탈당한 홍 시장의 복당을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등 정치적으로 가까운 관계였다. 또, 2022년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장제원이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며 ‘윤핵관’으로 불리자, 일부 비판 여론에 대해 홍 시장이 “너무 미워하지 말라”며 감싸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장제원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고 미어진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2일 오후 부산 해운대 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장제원의 빈소를 찾아, 윤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신 전달했다.

정 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새벽에 대통령께서 비보를 접하시고 전화로 유가족께 깊은 위로를 전해달라고 하셨다”며 “어젯밤에도 두 차례나 연락을 주셔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장제원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온 힘을 다해 나를 도왔던 사람”이라고 회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은 분위기가 달랐다. 정의당은 공식 논평서 “사건의 본질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피해자의 진술과 고소는 여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진실을 밝힐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유감”이라는 반응이 나왔고, 성폭력 고발 사건에서 피의자의 사망이 ‘사건의 종결’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엇갈린                                                                                                                                                    분위기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고인과 저도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상황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분이 2차적으로 또 피해를 입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장 전 의원을 개인적으로 추모하겠다는 분도 있는데, 아주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사건의 특성상 저는 고인을 조문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서 유일의 야당 의원인 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지만, 피해자가 실체를 밝힐 기회를 잃은 것도 안타깝다”며 조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사고뭉치 아들 장용준은?

장제원 전 의원의 아들이자 래퍼로 활동 중인 장용준(예명 노엘)은 대중에게 음악보다 사건사고로 더 익숙한 이름이 됐다.

2017년 <고등래퍼> 출연 당시 미성년자 신분으로 흡연·음주 사진이 유출되며 논란이 시작됐고, 이후 반복되는 범죄와 무책임한 태도로 여론의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고등학생 시절 방송 출연으로 주목받은 장용준은 방송 종료 직후 술과 담배를 즐기는 사진이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퍼지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프로그램서 하차했고, 장제원은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9년 9월, 장용준은 서울 마포구서 음주 상태로 벤츠 차량을 운전하다 오토바이와 접촉사고를 냈다.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2%로 면허취소 수준이었으며, 현장서 경찰관에게 자신이 운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서 지인에게 운전자를 바꿔치기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고, 아버지 장제원의 신분을 언급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이후 경찰 조사 결과,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했던 사실이 확인됐고, 장용준은 음주 운전, 범인도피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장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아버지로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심정”이라며 재차 사과했고, “성인으로서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여론은 냉담했다.

특히 그가 2008년 국회서 음주 운전 처벌 강화 법안을 발의한 전력이 재조명되며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장용준의 일탈은 단순한 연예계 논란을 넘어 정치권까지 영향을 미쳤다.

장 의원은 과거 공직자 자녀에 대한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었기에, ‘내로남불’ 논란은 피하기 어려웠다.

일각에서는 그가 자녀 문제를 두고 도의적 책임을 회피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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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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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