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026 한국관광 100선 ④남원

전통과 예술, 아날로그 감성이 버무려진 남원 봄 여행

새로운 책장을 넘기듯 봄기운이 깃든다. 시구의 표현을 빌려 제 오시는 봄처녀를 버선발로 맞으러 간 곳은 전라북도 남원이다. 남원에는 춘향전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아날로그 감성에 젖거나, 벚꽃길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예술부터 천문과학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남원 여행을 시작해보자.

남원 중심부를 흐르는 요천의 서쪽에는 광한루원, 동쪽에는 남원관광단지가 자리한다. 광한루 주변엔 여러 관광지와 식당, 카페, 숙박업소가 있어 남원 여행의 출발점이라 할만하다. 요천 강변을 따라 난 길은 3월 말, 4월 초 무렵 벚꽃이 만개해 터널을 이루면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나뭇가지에 가로등처럼 매달린 청사초롱은 밤이면 불을 밝혀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든다.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

광한루원과 남원관광단지 두 곳 모두 ‘2025-2026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먼저 광한루에 올라보자. 문화유산 보호 차원서 방문객의 출입을 제한하던 광한루 내부가 이제는 일반에게도 공개돼 누구나 누각에 올라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광한루에서 바라본 풍경은 삼신섬이 놓인 연못에 노니는 원앙 무리와 그 위를 가로지른 오작교가 그려진 너른 병풍처럼 동양적인 자연미를 풍긴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처음 만난 <춘향전>의 공간적 배경이기 때문에 공원 내에는 춘향전과 관련한 볼거리들이 여럿 있다. 춘향 영정을 모신 춘향사당이 있고 커다란 그네도 설치돼있다. 월매집에 가면 춘향이 방과 이몽룡이 한양으로 떠나기 전날 밤에 춘향이의 치마에 변치 않는 사랑의 약속에 대한 글귀를 적는 장면이 재현돼있다.


광한루원의 야경도 놓칠 수 없다. 6시 이후에는 입장료가 무료여서 잠시 들러 야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야경의 하이라이트는 광한루와 완월정이다. ‘달을 가지고 놀다’라는 뜻을 지닌 완월정 모습은 이름대로 달과 잘 어울린다. 조명을 받아 연못에 반영된 누각의 모습과 주변 색색의 조명이 연출하는 풍경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요천벚꽃길을 걸어 다리를 건너면 남원관광단지를 만난다. 입구서 에스컬레이터를 올라 먼저 만난 곳이 심수관도예전시관이다. 이곳에서 일본에 뿌리내린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심수관은 정유재란 당시인 1598년,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 심당길의 12대손인 심수관 이후 대대로 이어진 도공을 일컫는 이름이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일본으로 납치된 43명의 조선 도공은 큐슈의 사쓰마번의 통제하에 도자기를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도자기는 사쓰마 도자기의 뿌리가 되며 지금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로 꼽히는 사쓰마야키가 됐다. 심수관도예전시관에서는 12대부터 15대 심수관이 만든 도자기 13점과 함께 사쓰마 도자기와 심수관에 관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예술부터 천문과학까지
다양한 이야기 남원의 봄

남원관광단지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춘향테마파크는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춘향뎐>을 촬영하기 위한 세트장으로 지어졌다. 5개 테마로 구성된 전시물을 따라가면 춘향전 이야기의 흐름대로 둘러볼 수 있다. 첫 번째 테마 ‘만남의 장’에서는 사랑의 자물쇠에 들러보자. 포근하게 안긴 듯 자리 잡은 남원 시가지와 그 앞을 흐르는 요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포토 스폿으로 손색이 없지만,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춘향과 몽룡이 재회했을 때 정표의 상징물로 쓰인 옥지환 조형물을 지나면 ‘맹약의 장’이다. 이곳에서는 맹약의 단을 만날 수 있는데 손을 넣으면 사랑가가 흘러나온다. 연인이라면 지나치지 말고 두 사람의 사랑을 다져보자.


‘사랑과 이별의 장’에는 월매집과 부용당이 있다. 부용당은 영화 <춘향뎐>서 춘향과 몽룡이 첫날밤을 보낸 장소다. 관아가 있는 ‘시련의 장’에는 신관 사또가 부임하는 장면과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며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재현돼있다. 전통문화 놀이를 즐길 수 있는 휴게광장이 마련된 ‘축제의 장’이 마지막 테마다.

춘향전의 도시라고만 생각한 남원에서 만난 다소 의외의 여행지가 남원항공우주천문대다. 춘향테마파크와 이웃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실내 테마파크라 해도 좋을 만큼 볼거리,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드론 비행 체험장에는 드론 조종 시뮬레이터와 실제 드론이 준비돼있다. 드론 조종에 미숙하더라도 안전하다.

탑승형 VR 체험장에서는 패러글라이딩VR이나 플라잉젯VR을 타고 하늘을 날아 보거나 자이로VR을 타고 역동적인 스릴을 느껴볼 수 있다. 천장이 돔 형태인 둥근 천체투영실에서는 일반 영화와 4D 영화를 통해 우주인이 되어 달과 화성을 탐사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남원항공우주천문대의 하이라이트는 주관측실이다. 낮에는 태양 관측, 밤에는 천체 관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어른 키보다 큰 망원경으로 태양의 흑점이나 달의 표면, 토성의 고리 등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남원다움관은 남원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는 공간이다. 입구엔 남원의 옛 시내버스와 만화가 신문수의 그림, 캐릭터 조형물이 서 있다. 1970~1980년대 다방과 만화방을 재현한 공간은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행복사진관서 남원 네컷 사진을 찍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가상 공간서 근현대 남원의 주요 명소를 둘러보는 인력거 체험도 빼놓을 수 없다.

명지각 사랑채

명지각 사랑채는 한옥호텔 명지각 1956의 카페 공간이다. 1956년 건축 당시 보기 힘든 물결무늬 형태의 서양식 목기둥을 보존한 인테리어는 최신의 카페 장비와 조화를 이룬다. 명지각 1956은 일제강점기에 ‘명지여관’으로 시작해 1956년 남원 최초의 호텔, 이후 한정식 식당을 거쳐 한옥 호텔로 재탄생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햇살이 드리운 뜰과 한옥의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치유한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화가 김병종이 고향 남원에 자신의 작품과 자료, 도서를 기증해 건립됐다. 콘크리트를 노출해 네모난 상자를 이어 붙여 만든 것 같은 건물 외관은 여느 조각품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뽐낸다. 시즌에 따라 전시작품을 교체하며 전시회가 열려 여러 번 찾아도 매번 새롭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광한루원→심수관도예전시관→춘향테마파크→남원항공우주천문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심수관도예전시관→춘향테마파크→남원항공우주천문대→광한루원→명지각 사랑채
-둘째 날 남원다움관→화인당→조갑녀살풀이명무관→남원시어린이과학체험관→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남원시 문화관광: www.namwon.go.kr/tour/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https://nkam.modoo.at
-남원항공우주천문대: www.instagram.com/namwonspaceobservatory/

문의 전화
-광한루원: 063)625-4861
-남원관광단지: 063)632-1330(남원시종합관광안내센터)
-심수관도예전시관: 063)620-6835
-남원항공우주천문대: 063)620-8986
-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 063)620-5660
-남원다움관: 063)620-5671
-명지각 사랑채: 010)9677-9490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서 KTX, ITX-마음,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해 남원역까지 이동. 남원역 정류장서 남원시내버스 시간표에 표시된 터미널 방향 버스(07:05~20:30)를 타고 남문로사가·삼진약국 정류장서 하차, 광한루원 북문까지 도보 약 6분 또는 삽다리사가 정류장서 하차해 남원관광단지까지 도보 약 13분

*문의: 레츠코레일 1588-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서 고속버스를 이용해 남원공용버스터미널까지 이동. 남원공용버스터미널서 광한루원 북문까지 도보 약 22분 또는 남원관광단지까지 도보 약 17분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호남선)02)6282-0114, 남원공용버스터미널 063)633-0807, 남원여객 063)631-3116

자가운전
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IC 진출→남원교차로서 직진 방향 약 900m→회전교차로서 요천로 방향으로 우회전 후 약 3㎞ 직진→광한루원 주차장

숙박 정보
-남원예촌by켄싱턴: 광한북로 17, 063)636-8001, https://kensington.co.kr/hnw/
-명지각 1956: 고샘길 57, 010)9677-9490, www.stayfolio.com/findstay/myeongjigak/
-더스위트호텔 남원: 주천면 원천로 217, 063)630-7100, www.suites.co.kr/Namwon/Ko


식당 정보
-서남만찬(돌솥오징어볶음): 역재1길 9, 063)634-1670
-장수면옥(물냉면, 시레기국밥): 시청동로 24-8, 063)636-1773
-현식당(추어탕): 의총로 8, 063)626-5163

주변 볼거리
제95회 춘향제 2025년 4월30일~5월6일, 광한루원 일원, www.chunhyang.org, 2025 남원국제드론제전 with 로봇 2025년 10월16일~19일 남원종합스포츠타운 일원, www.nwexpo.net, 남원 화인당, 남원향토박물관, 바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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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적은 아군 ‘물밑 콜라보’

적의 적은 아군 ‘물밑 콜라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각종 쟁점 법안을 연이어 몰아칠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대응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 같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혁신위원장직에서 사퇴하면서 이정부를 든든하게 돕는 ‘언더 찐윤(진짜 친윤)’이란 집단의 존재를 끌어올렸다. 국회는 지난 3일 본회의를 열어 “사외이사를 감사위원으로 선출하면, 최대주주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고, 전자주주총회를 도입해 소액주주의 참여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이재명식 몰아치기 하지만 여야는 다시 신경전을 다시 이을 예정이다. 국회는 오는 14일부터 18일까지 5일 동안 16개 부처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한다. 아울러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임 내내 거부권을 행사했던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농업 4법 ▲상법 추가 개정안 등도 몰아쳐 처리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달 11일엔 “검찰을 폐지하고 그 권한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등이 나눠 갖고, 국가수사위원회를 신설해 통제를 맡긴다”는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윤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은 각각 여야의 수장이었을 당시 서로에게 강성으로 유명했다. 재임 중 소수 여당 배경을 벗어나지 못했던 윤 전 대통령은 받아들일 수 없는 법안에 거부권 행사로 대응했다. 실제로 그는 임기 2년6개월여 동안 거부권을 25회나 행사했다. 거부권 행사 대상 법안엔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자신과 가족의 신상 관련 법안도 포함됐다.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이어지자, 야권에선 지난해 9월 거부권 행사 범위를 제한하는 특별법까지 발의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그러자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과 박찬대 당시 원내대표는 보수 진영에서 ‘줄 탄핵’이라고 비난할 만큼 많은 탄핵소추를 발의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까지 발의했던 탄핵소추는 총 22건이었다. 이후 이 대통령이 조기 대선에서 당선돼 취임한 지난달 3일까지 발의했던 내역은 9건이었다. 이 중 파면된 윤 전 대통령과 현재 탄핵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조지호 경찰청장·손준성 검사에 대한 탄핵 심판 외에 실제로 넘겨진 탄핵 심판 10건 모두 기각됐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탄핵소추권 남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국회가 탄핵소추 사유의 위헌·위법성을 숙고하지 않은 채 정부에 대한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이용했단 우려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국힘 쇄신 막는 진짜 실세 그룹? 태풍 몰아치는데 끝까지 버틴다 또 이 대통령의 대표 재임 당시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올해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대통령실과 검찰의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를 전액 삭감해 0원으로 처리했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이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그러던 민주당은 지난 4일 2차 추가경정예산을 단독 처리했고, 대통령실·검찰·경찰·감사원의 특활비를 절반씩 되살렸다. 국민의힘 송원석 비대위원장은 지난 7일 “대국민 사과도 없이 특활비를 부활시켰다”고 성토했다. 이어 원내 지도부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항의 방문했고,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국민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야당 대표 재임 당시 강경 대응엔 검찰을 앞세운 윤 전 대통령의 이 대통령을 향한 공격도 한몫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에 대한 사법 공세는 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8월 민주당 대표로 당선된 직후부터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대표 취임 4일 후 검찰의 소환장을 받았고, 그로부터 1주가 지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됐다. 검찰은 지난 2023년 2월과 9월엔 각각 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대통령은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돼 구속영장 실질심사까지 받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민주당에서 이 대통령 체포에 찬성했던 이탈표는 최소 29표로 예상돼 큰 파문이 있었다. 이 대통령으로선 “윤석열정부가 나를 구속하기 위해 민주당 내부 계파 갈등까지 이용했다”고 판단할 개연성이 있다. 실제로 민주당의 일명 ‘줄 탄핵’은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 이전에 탄핵소추가 가결됐던 사람은 지난 2023년 2월 탄핵 소추됐던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밖에 없다. 지난 2023년 9월부터 시작된 민주당의 ‘몰아치기’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이 몰아치기는 김민석 총리 인사청문회 정국 당시 홀로 김 총리와 관련된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했던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에 대해서도 이어졌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지난달 20일 “주 의원 부친 주대경 전 검사는 공안 사건을 조작했던 전력이 있다”며 “주 전 검사는 지난 1986년 민주교육 쟁취 투쟁위원회를 이적단체라고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또 주 의원이 급성간염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에 대한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강 의원은 “주 의원은 32년째 B형 간염 치료 중이라는데, 술을 즐긴다”며 “병역은 면제받았으면서, 검사 임용에도 문제없고, 술도 즐기는 효자 바이러스”라고 비난했다. 무뎌진 칼날 사라진 야당 아울러 주 의원의 재산에 대해서도 “검사 17년·변호사 2년 반·윤 전 대통령의 법률비서관 1년 반 동안 재산 70억원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도 “주 의원 아들이 예금 7억원 이상을 갖고 있다”며 “국회의원 아빠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느냐”고 비판했다. 국회 공보에 게재된 주 의원과 가족 명의 재산은 약 70억원이고, 주 의원 아들은 지난 2022년 기준 예금 7억8000만원을 보유한 것으로 신고됐다. 국민의힘은 주 의원을 거의 도와주지 못했고, 주 의원도 당의 도움은 기대하지 않았는지, 민주당의 공세에 홀로 대응했다. 민주당의 주 의원 공격은 ‘메신저 공격’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었다. 따라서 주 의원 홀로 대응하는 것에 대해선 “야당이 사라졌다”는 일각의 자조가 있었다. 김 총리에 대한 인사 검증과 반격은 주 의원 홀로 대응할 사안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정치적 공세로 해석하기 어렵다. “야당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민주당도 이에 자신 있게 파고들어 주 의원에 대한 공세를 당 차원에서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 패배 이후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준석 전 대표가 선거를 지휘했던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선거에서 이긴 적이 없다. 국민의힘의 내부 결함은 윤 전 대통령이 ‘고분고분한 여당 대표’를 원해 수시로 당 대표들을 몰아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견고한 구조로 자리 잡았다. 윤 전 대통령은 문재인정부 시절 검찰총장이었고, 국민의힘 권성동 전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가 주도해 대선후보로 옹립한 외부인이었다. 비대위원장과 당 대표를 지내면서 친한(친 한동훈)계라는 계보를 형성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원래는 외부인이었다. 김문수 전 대선후보는 오랜 경력을 가진 내부인이지만, 탈당 후 자유통일당을 창당해 활동했던 이력이 있다. 아울러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강성 보수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친윤계에 의해 사실상 급히 옹립된 대선후보였다. 송언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은 이후 비대위 산하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지난 8일 임명 8분 만에 사퇴했다. 사퇴한 이유 중 하나는 인적 청산 시도가 가로 막힌 것이었다. 안 의원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를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강제로 교체하려고 했던 원흉으로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 전 원내대표를 지목해, 이들을 청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친윤계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안 의원은 이 과정을 밝히면서 혁신위원장을 사퇴한 후 다음 달 19일 예정된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권 전 비대위원장은 같은 날 “당을 내분에 몰아넣는 비열한 행태를 보인다”고 비난했고, 권 전 원내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 의원이 혁신의 대상이고, 분열의 언어로 혼란을 조장했다”고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드러난 국민의힘 내 숨겨진 핵심 그룹은 ‘언더 찐윤’이다. 일각에선 “안 의원이 쌍권을 몰아낸 후 송 비대위원장과 영남권 초·재선급 의원들을 정리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 전 대통령과 강하게 밀착했던 영남권 초재선급 의원 그룹을 일컬어 ‘언더 찐윤’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실체 ‘언더 찐윤’은 국민의힘을 탈당해 민주당으로 옮긴 김상욱 의원이 처음 언급했다. 김 의원은 지난달 5일 뉴스1TV ‘팩트앤뷰’에 출연해 “국민의힘 내 친윤 성향 의원은 약 60명”이라며 “이 중 이름이 알려진 의원들이 아닌 ‘언더 찐윤’도 20~30명”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들에 대해 “이들은 나서는 걸 싫어하고, 각 지역구에서 왕으로 행세하면서 기득권을 지키는 데 관심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어 “언론에 노출되는 의원들은 언더 찐윤의 도구로 활용된다”며 “윤 전 대통령도 언더 찐윤의 도구였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지난 2월 <일요시사>와의 만났을 당시엔 이들에게 ‘기득권 카르텔’이란 이름을 붙여 성토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지난 2일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김 의원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이날 “국민의힘엔 여전히 절대로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완전한 영향력을 행사·지배할 수 있는 친윤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시절 친한계 소속이었던 김 의원과 사이가 좋을 수 없는 친한계 관계자들도 김 의원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국민의힘 윤희석 전 대변인은 지난 7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언더 찐윤은 당연히 실재한다”며 “마음에 안 드는 지도부에 대해선 당헌·당규를 토대로 무너트리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둘째 줄부터 셋째 줄까지 앉은 의원들까지 언더 찐윤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함께 출연한 송영훈 전 대변인도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런 그룹이 있다고 본다”고 거들었다. 한나라당 신지호 전 의원도 지난 9일 채널A 라디오 <정치 시그널>에 출연해 “언더 찐윤에도 몇몇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함께 출연한 김 전 원내대표는 “권 전 원내대표와 나경원 의원 등 전면에 나선 친윤계 의원은 안티가 많다”며 “그들 대신 실질적으로 친윤계를 움직이는 세력의 중심엔 몇몇 선수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같은 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언더 찐윤을 일컬어 “직접 만나보면, 나쁘거나 사악한 사람들이 아니”라며 “영혼이 없는 식민지 관료형”이라고 비판했다. ‘언더 찐윤’의 정체를 처음 거론한 김 의원은 지난 8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 일부 의원은 저에게 연락해 언더 찐윤 때문에 당이 혁신을 못 한다는 답답함을 토로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언더 찐윤 의원들의 특성을 다시 정리해 제시했다. 이어지는 강 대 강 충돌 대통령 진짜 믿는 구석? 김 의원에 따르면, 언더 찐윤 의원들은 지역의 왕으로 군림하면서, 당권을 잡아 지역구 공천을 받은 후 의원직과 이권을 유지하는 것에 집착한다. 그러면서 언론에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당직에 올라 책임지는 것을 싫어한다. 지역구 행사에만 열심히 다니고, 발의할 법안 구성은 공무원을 호출해 맡긴다. 공통의 이해관계 때문에 당의 공천을 받는 것이 중요해서 공천에 관해선 똘똘 뭉친다. 아울러 이들은 국민의힘의 연이은 선거 패배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도 우리 지역을 탄탄하게 지켰으니 잘하고 있는 것”이라며 “윤 전 대통령과 수도권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못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누군지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게 이어지고 있다. 김 의원과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국민의힘의 텃밭을 지역구로 둔 의원 ▲의정 활동보단 지역구에서의 접촉에 더 집착하는 의원 ▲언론에 잘 등장하지 않는 의원 등 특징이 있다. 그래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이 특징들을 조합해서 확인되지 않은 언더 찐윤 명단을 만들어 공유하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언더 찐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힘의 혁신을 방해하면서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현 정국에서 사실상 야당은 2개밖에 없다. 의원 3석 규모의 개혁신당은 규모가 지나치게 작아서 정국에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다. 107석 규모의 국민의힘이 침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은 거칠 것이 없다. 여기에 이 대통령 특유의 몰아치는 정국 운영 방식까지 가미되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은 독주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치와 헌법은 촘촘한 상호 견제로 구성된다. 따라서 야당이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국가 전체에 악영향을 준다. 친한계 소속인 국민의힘 진종오 의원과 송 전 대변인·박상수 전 대변인은 지난 9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친한계 모임 ‘언더73 일동’ 명의로 “언더 찐윤은 혁신위 출범 같은 꼼수로 지금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며 “변화와 쇄신의 과정에선 인적 청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너지는 상호 견제 그러면서 ▲전 당원투표로 당론 결정 ▲시·도당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시·도당 위원장 선출 ▲당원소환제 대상을 모든 당직으로 확대 ▲원내대표 선출에 전 당원투표 결과 반영 등 언더 찐윤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개혁안을 주장했다. 김 의원이 언급하기 시작하고, 안 의원이 하늘 위로 쏘아 올린 대포는 수면 아래 잠들어 있는 국민의힘의 진짜 주인을 드러내고 있다. 만약 이들이 수면 위에 드러나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사라지면, 제일 아쉬워할 사람들은 이정부와 민주당일 것이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