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026 한국관광 100선 ④남원

전통과 예술, 아날로그 감성이 버무려진 남원 봄 여행

새로운 책장을 넘기듯 봄기운이 깃든다. 시구의 표현을 빌려 제 오시는 봄처녀를 버선발로 맞으러 간 곳은 전라북도 남원이다. 남원에는 춘향전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아날로그 감성에 젖거나, 벚꽃길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예술부터 천문과학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남원 여행을 시작해보자.

남원 중심부를 흐르는 요천의 서쪽에는 광한루원, 동쪽에는 남원관광단지가 자리한다. 광한루 주변엔 여러 관광지와 식당, 카페, 숙박업소가 있어 남원 여행의 출발점이라 할만하다. 요천 강변을 따라 난 길은 3월 말, 4월 초 무렵 벚꽃이 만개해 터널을 이루면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나뭇가지에 가로등처럼 매달린 청사초롱은 밤이면 불을 밝혀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든다.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

광한루원과 남원관광단지 두 곳 모두 ‘2025-2026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먼저 광한루에 올라보자. 문화유산 보호 차원서 방문객의 출입을 제한하던 광한루 내부가 이제는 일반에게도 공개돼 누구나 누각에 올라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광한루에서 바라본 풍경은 삼신섬이 놓인 연못에 노니는 원앙 무리와 그 위를 가로지른 오작교가 그려진 너른 병풍처럼 동양적인 자연미를 풍긴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처음 만난 <춘향전>의 공간적 배경이기 때문에 공원 내에는 춘향전과 관련한 볼거리들이 여럿 있다. 춘향 영정을 모신 춘향사당이 있고 커다란 그네도 설치돼있다. 월매집에 가면 춘향이 방과 이몽룡이 한양으로 떠나기 전날 밤에 춘향이의 치마에 변치 않는 사랑의 약속에 대한 글귀를 적는 장면이 재현돼있다.


광한루원의 야경도 놓칠 수 없다. 6시 이후에는 입장료가 무료여서 잠시 들러 야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야경의 하이라이트는 광한루와 완월정이다. ‘달을 가지고 놀다’라는 뜻을 지닌 완월정 모습은 이름대로 달과 잘 어울린다. 조명을 받아 연못에 반영된 누각의 모습과 주변 색색의 조명이 연출하는 풍경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요천벚꽃길을 걸어 다리를 건너면 남원관광단지를 만난다. 입구서 에스컬레이터를 올라 먼저 만난 곳이 심수관도예전시관이다. 이곳에서 일본에 뿌리내린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심수관은 정유재란 당시인 1598년,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 심당길의 12대손인 심수관 이후 대대로 이어진 도공을 일컫는 이름이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일본으로 납치된 43명의 조선 도공은 큐슈의 사쓰마번의 통제하에 도자기를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도자기는 사쓰마 도자기의 뿌리가 되며 지금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로 꼽히는 사쓰마야키가 됐다. 심수관도예전시관에서는 12대부터 15대 심수관이 만든 도자기 13점과 함께 사쓰마 도자기와 심수관에 관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예술부터 천문과학까지
다양한 이야기 남원의 봄

남원관광단지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춘향테마파크는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춘향뎐>을 촬영하기 위한 세트장으로 지어졌다. 5개 테마로 구성된 전시물을 따라가면 춘향전 이야기의 흐름대로 둘러볼 수 있다. 첫 번째 테마 ‘만남의 장’에서는 사랑의 자물쇠에 들러보자. 포근하게 안긴 듯 자리 잡은 남원 시가지와 그 앞을 흐르는 요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포토 스폿으로 손색이 없지만,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춘향과 몽룡이 재회했을 때 정표의 상징물로 쓰인 옥지환 조형물을 지나면 ‘맹약의 장’이다. 이곳에서는 맹약의 단을 만날 수 있는데 손을 넣으면 사랑가가 흘러나온다. 연인이라면 지나치지 말고 두 사람의 사랑을 다져보자.


‘사랑과 이별의 장’에는 월매집과 부용당이 있다. 부용당은 영화 <춘향뎐>서 춘향과 몽룡이 첫날밤을 보낸 장소다. 관아가 있는 ‘시련의 장’에는 신관 사또가 부임하는 장면과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며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재현돼있다. 전통문화 놀이를 즐길 수 있는 휴게광장이 마련된 ‘축제의 장’이 마지막 테마다.

춘향전의 도시라고만 생각한 남원에서 만난 다소 의외의 여행지가 남원항공우주천문대다. 춘향테마파크와 이웃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실내 테마파크라 해도 좋을 만큼 볼거리,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드론 비행 체험장에는 드론 조종 시뮬레이터와 실제 드론이 준비돼있다. 드론 조종에 미숙하더라도 안전하다.

탑승형 VR 체험장에서는 패러글라이딩VR이나 플라잉젯VR을 타고 하늘을 날아 보거나 자이로VR을 타고 역동적인 스릴을 느껴볼 수 있다. 천장이 돔 형태인 둥근 천체투영실에서는 일반 영화와 4D 영화를 통해 우주인이 되어 달과 화성을 탐사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남원항공우주천문대의 하이라이트는 주관측실이다. 낮에는 태양 관측, 밤에는 천체 관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어른 키보다 큰 망원경으로 태양의 흑점이나 달의 표면, 토성의 고리 등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남원다움관은 남원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는 공간이다. 입구엔 남원의 옛 시내버스와 만화가 신문수의 그림, 캐릭터 조형물이 서 있다. 1970~1980년대 다방과 만화방을 재현한 공간은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행복사진관서 남원 네컷 사진을 찍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가상 공간서 근현대 남원의 주요 명소를 둘러보는 인력거 체험도 빼놓을 수 없다.

명지각 사랑채

명지각 사랑채는 한옥호텔 명지각 1956의 카페 공간이다. 1956년 건축 당시 보기 힘든 물결무늬 형태의 서양식 목기둥을 보존한 인테리어는 최신의 카페 장비와 조화를 이룬다. 명지각 1956은 일제강점기에 ‘명지여관’으로 시작해 1956년 남원 최초의 호텔, 이후 한정식 식당을 거쳐 한옥 호텔로 재탄생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햇살이 드리운 뜰과 한옥의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치유한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화가 김병종이 고향 남원에 자신의 작품과 자료, 도서를 기증해 건립됐다. 콘크리트를 노출해 네모난 상자를 이어 붙여 만든 것 같은 건물 외관은 여느 조각품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뽐낸다. 시즌에 따라 전시작품을 교체하며 전시회가 열려 여러 번 찾아도 매번 새롭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광한루원→심수관도예전시관→춘향테마파크→남원항공우주천문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심수관도예전시관→춘향테마파크→남원항공우주천문대→광한루원→명지각 사랑채
-둘째 날 남원다움관→화인당→조갑녀살풀이명무관→남원시어린이과학체험관→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남원시 문화관광: www.namwon.go.kr/tour/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https://nkam.modoo.at
-남원항공우주천문대: www.instagram.com/namwonspaceobservatory/

문의 전화
-광한루원: 063)625-4861
-남원관광단지: 063)632-1330(남원시종합관광안내센터)
-심수관도예전시관: 063)620-6835
-남원항공우주천문대: 063)620-8986
-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 063)620-5660
-남원다움관: 063)620-5671
-명지각 사랑채: 010)9677-9490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서 KTX, ITX-마음,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해 남원역까지 이동. 남원역 정류장서 남원시내버스 시간표에 표시된 터미널 방향 버스(07:05~20:30)를 타고 남문로사가·삼진약국 정류장서 하차, 광한루원 북문까지 도보 약 6분 또는 삽다리사가 정류장서 하차해 남원관광단지까지 도보 약 13분

*문의: 레츠코레일 1588-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서 고속버스를 이용해 남원공용버스터미널까지 이동. 남원공용버스터미널서 광한루원 북문까지 도보 약 22분 또는 남원관광단지까지 도보 약 17분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호남선)02)6282-0114, 남원공용버스터미널 063)633-0807, 남원여객 063)631-3116

자가운전
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IC 진출→남원교차로서 직진 방향 약 900m→회전교차로서 요천로 방향으로 우회전 후 약 3㎞ 직진→광한루원 주차장

숙박 정보
-남원예촌by켄싱턴: 광한북로 17, 063)636-8001, https://kensington.co.kr/hnw/
-명지각 1956: 고샘길 57, 010)9677-9490, www.stayfolio.com/findstay/myeongjigak/
-더스위트호텔 남원: 주천면 원천로 217, 063)630-7100, www.suites.co.kr/Namwon/Ko


식당 정보
-서남만찬(돌솥오징어볶음): 역재1길 9, 063)634-1670
-장수면옥(물냉면, 시레기국밥): 시청동로 24-8, 063)636-1773
-현식당(추어탕): 의총로 8, 063)626-5163

주변 볼거리
제95회 춘향제 2025년 4월30일~5월6일, 광한루원 일원, www.chunhyang.org, 2025 남원국제드론제전 with 로봇 2025년 10월16일~19일 남원종합스포츠타운 일원, www.nwexpo.net, 남원 화인당, 남원향토박물관, 바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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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