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026 한국관광 100선 ④남원

전통과 예술, 아날로그 감성이 버무려진 남원 봄 여행

새로운 책장을 넘기듯 봄기운이 깃든다. 시구의 표현을 빌려 제 오시는 봄처녀를 버선발로 맞으러 간 곳은 전라북도 남원이다. 남원에는 춘향전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아날로그 감성에 젖거나, 벚꽃길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예술부터 천문과학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남원 여행을 시작해보자.

남원 중심부를 흐르는 요천의 서쪽에는 광한루원, 동쪽에는 남원관광단지가 자리한다. 광한루 주변엔 여러 관광지와 식당, 카페, 숙박업소가 있어 남원 여행의 출발점이라 할만하다. 요천 강변을 따라 난 길은 3월 말, 4월 초 무렵 벚꽃이 만개해 터널을 이루면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나뭇가지에 가로등처럼 매달린 청사초롱은 밤이면 불을 밝혀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든다.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

광한루원과 남원관광단지 두 곳 모두 ‘2025-2026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먼저 광한루에 올라보자. 문화유산 보호 차원서 방문객의 출입을 제한하던 광한루 내부가 이제는 일반에게도 공개돼 누구나 누각에 올라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광한루에서 바라본 풍경은 삼신섬이 놓인 연못에 노니는 원앙 무리와 그 위를 가로지른 오작교가 그려진 너른 병풍처럼 동양적인 자연미를 풍긴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처음 만난 <춘향전>의 공간적 배경이기 때문에 공원 내에는 춘향전과 관련한 볼거리들이 여럿 있다. 춘향 영정을 모신 춘향사당이 있고 커다란 그네도 설치돼있다. 월매집에 가면 춘향이 방과 이몽룡이 한양으로 떠나기 전날 밤에 춘향이의 치마에 변치 않는 사랑의 약속에 대한 글귀를 적는 장면이 재현돼있다.


광한루원의 야경도 놓칠 수 없다. 6시 이후에는 입장료가 무료여서 잠시 들러 야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야경의 하이라이트는 광한루와 완월정이다. ‘달을 가지고 놀다’라는 뜻을 지닌 완월정 모습은 이름대로 달과 잘 어울린다. 조명을 받아 연못에 반영된 누각의 모습과 주변 색색의 조명이 연출하는 풍경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요천벚꽃길을 걸어 다리를 건너면 남원관광단지를 만난다. 입구서 에스컬레이터를 올라 먼저 만난 곳이 심수관도예전시관이다. 이곳에서 일본에 뿌리내린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심수관은 정유재란 당시인 1598년,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 심당길의 12대손인 심수관 이후 대대로 이어진 도공을 일컫는 이름이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일본으로 납치된 43명의 조선 도공은 큐슈의 사쓰마번의 통제하에 도자기를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도자기는 사쓰마 도자기의 뿌리가 되며 지금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로 꼽히는 사쓰마야키가 됐다. 심수관도예전시관에서는 12대부터 15대 심수관이 만든 도자기 13점과 함께 사쓰마 도자기와 심수관에 관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예술부터 천문과학까지
다양한 이야기 남원의 봄

남원관광단지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춘향테마파크는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춘향뎐>을 촬영하기 위한 세트장으로 지어졌다. 5개 테마로 구성된 전시물을 따라가면 춘향전 이야기의 흐름대로 둘러볼 수 있다. 첫 번째 테마 ‘만남의 장’에서는 사랑의 자물쇠에 들러보자. 포근하게 안긴 듯 자리 잡은 남원 시가지와 그 앞을 흐르는 요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포토 스폿으로 손색이 없지만,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춘향과 몽룡이 재회했을 때 정표의 상징물로 쓰인 옥지환 조형물을 지나면 ‘맹약의 장’이다. 이곳에서는 맹약의 단을 만날 수 있는데 손을 넣으면 사랑가가 흘러나온다. 연인이라면 지나치지 말고 두 사람의 사랑을 다져보자.


‘사랑과 이별의 장’에는 월매집과 부용당이 있다. 부용당은 영화 <춘향뎐>서 춘향과 몽룡이 첫날밤을 보낸 장소다. 관아가 있는 ‘시련의 장’에는 신관 사또가 부임하는 장면과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며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재현돼있다. 전통문화 놀이를 즐길 수 있는 휴게광장이 마련된 ‘축제의 장’이 마지막 테마다.

춘향전의 도시라고만 생각한 남원에서 만난 다소 의외의 여행지가 남원항공우주천문대다. 춘향테마파크와 이웃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실내 테마파크라 해도 좋을 만큼 볼거리,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드론 비행 체험장에는 드론 조종 시뮬레이터와 실제 드론이 준비돼있다. 드론 조종에 미숙하더라도 안전하다.

탑승형 VR 체험장에서는 패러글라이딩VR이나 플라잉젯VR을 타고 하늘을 날아 보거나 자이로VR을 타고 역동적인 스릴을 느껴볼 수 있다. 천장이 돔 형태인 둥근 천체투영실에서는 일반 영화와 4D 영화를 통해 우주인이 되어 달과 화성을 탐사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남원항공우주천문대의 하이라이트는 주관측실이다. 낮에는 태양 관측, 밤에는 천체 관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어른 키보다 큰 망원경으로 태양의 흑점이나 달의 표면, 토성의 고리 등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남원다움관은 남원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는 공간이다. 입구엔 남원의 옛 시내버스와 만화가 신문수의 그림, 캐릭터 조형물이 서 있다. 1970~1980년대 다방과 만화방을 재현한 공간은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행복사진관서 남원 네컷 사진을 찍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가상 공간서 근현대 남원의 주요 명소를 둘러보는 인력거 체험도 빼놓을 수 없다.

명지각 사랑채

명지각 사랑채는 한옥호텔 명지각 1956의 카페 공간이다. 1956년 건축 당시 보기 힘든 물결무늬 형태의 서양식 목기둥을 보존한 인테리어는 최신의 카페 장비와 조화를 이룬다. 명지각 1956은 일제강점기에 ‘명지여관’으로 시작해 1956년 남원 최초의 호텔, 이후 한정식 식당을 거쳐 한옥 호텔로 재탄생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햇살이 드리운 뜰과 한옥의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치유한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화가 김병종이 고향 남원에 자신의 작품과 자료, 도서를 기증해 건립됐다. 콘크리트를 노출해 네모난 상자를 이어 붙여 만든 것 같은 건물 외관은 여느 조각품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뽐낸다. 시즌에 따라 전시작품을 교체하며 전시회가 열려 여러 번 찾아도 매번 새롭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광한루원→심수관도예전시관→춘향테마파크→남원항공우주천문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심수관도예전시관→춘향테마파크→남원항공우주천문대→광한루원→명지각 사랑채
-둘째 날 남원다움관→화인당→조갑녀살풀이명무관→남원시어린이과학체험관→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남원시 문화관광: www.namwon.go.kr/tour/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https://nkam.modoo.at
-남원항공우주천문대: www.instagram.com/namwonspaceobservatory/

문의 전화
-광한루원: 063)625-4861
-남원관광단지: 063)632-1330(남원시종합관광안내센터)
-심수관도예전시관: 063)620-6835
-남원항공우주천문대: 063)620-8986
-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 063)620-5660
-남원다움관: 063)620-5671
-명지각 사랑채: 010)9677-9490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서 KTX, ITX-마음,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해 남원역까지 이동. 남원역 정류장서 남원시내버스 시간표에 표시된 터미널 방향 버스(07:05~20:30)를 타고 남문로사가·삼진약국 정류장서 하차, 광한루원 북문까지 도보 약 6분 또는 삽다리사가 정류장서 하차해 남원관광단지까지 도보 약 13분

*문의: 레츠코레일 1588-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서 고속버스를 이용해 남원공용버스터미널까지 이동. 남원공용버스터미널서 광한루원 북문까지 도보 약 22분 또는 남원관광단지까지 도보 약 17분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호남선)02)6282-0114, 남원공용버스터미널 063)633-0807, 남원여객 063)631-3116

자가운전
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IC 진출→남원교차로서 직진 방향 약 900m→회전교차로서 요천로 방향으로 우회전 후 약 3㎞ 직진→광한루원 주차장

숙박 정보
-남원예촌by켄싱턴: 광한북로 17, 063)636-8001, https://kensington.co.kr/hnw/
-명지각 1956: 고샘길 57, 010)9677-9490, www.stayfolio.com/findstay/myeongjigak/
-더스위트호텔 남원: 주천면 원천로 217, 063)630-7100, www.suites.co.kr/Namwon/Ko


식당 정보
-서남만찬(돌솥오징어볶음): 역재1길 9, 063)634-1670
-장수면옥(물냉면, 시레기국밥): 시청동로 24-8, 063)636-1773
-현식당(추어탕): 의총로 8, 063)626-5163

주변 볼거리
제95회 춘향제 2025년 4월30일~5월6일, 광한루원 일원, www.chunhyang.org, 2025 남원국제드론제전 with 로봇 2025년 10월16일~19일 남원종합스포츠타운 일원, www.nwexpo.net, 남원 화인당, 남원향토박물관, 바래봉

<webmast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