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지?”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봤을 이 대사는 1937년 디즈니의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서 등장하는 상징적인 대사다.
라틴계 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논란이 일었던 디즈니 실사 뮤지컬 영화 <백설공주>가 국내 개봉 직후에도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제작사는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캐스팅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디즈니 팬들과 관객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C주의)이 오히려 작품의 몰입을 방해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국내에 개봉한 <백설공주>는 <미녀와 야수> <알라딘> <인어공주> 등에 이어 디즈니가 올해 선보이는 첫 실사 뮤지컬 영화다. 영화에서는 백설공주(레이첼 지글러 분)가 악한 여왕(갤 가돗 분)으로부터 빼앗긴 왕국을 되찾기 위해 선한 마음과 용기로 맞서나가는 여정을 담았다.
약 2억7000만달러(한화 약 392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백설공주>는 유튜브 예고편 공개 당시부터 ‘싫어요’ 공감수가 100만개를 넘으며 부정적인 여론의 직격탄을 맞았다.
백설공주역을 맡은 레이첼 지글러는 콜롬비아-폴란드계 배우로, 눈처럼 하얀 피부에 피처럼 새빨간 입술, 까만 머리를 가진 소녀로 묘사한 원작 속 백설공주와는 거리가 있는 외모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디즈니는 영국 런던 시사회를 전격 취소하는 초유의 조치를 취했으며, 배우들의 홍보 활동 역시 최소화한 채 조용히 개봉을 강행했다.
그러나 국내 관객들 사이서도 좀처럼 호평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영화를 본 이들은 “배역 때문에 몰입 자체가 안 된다” “공주가 더 이쁘다고 거짓말하는 거울이 제일 악역이다” “<인어공주>의 전례가 있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기치지만 더 확고한 백인 우월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다” “원작대로 안 할거면 망치지나 말아라” 등의 실망 섞인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극 중에서 백설공주는 눈처럼 하얀 피부가 아닌 거센 눈보라가 치던 날 태어났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또 여왕과의 ‘외모 대결’도 내면의 아름다움에 관한 대결로 수정됐다.
설상가상으로, 백설공주 캐스팅에서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며 진보적 행보를 보였으나, 정작 원작의 상징적인 캐릭터인 일곱 난쟁이를 CG로 대체해 왜소증 배우들의 출연 기회를 박탈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는 디즈니가 표면적으로는 다양성을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소수자 커뮤니티를 배제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미국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서도 <백설공주>는 평론가 신선도 지수 46%라는 저조한 점수를 기록하며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로튼 토마토의 평가 지수는 영화나 게임의 신선도로도 불리는데, 긍정적 평가인 신선함(fresh)과 부정적 평가인 썩음(rotten)으로 나눠 총평을 내리는 방식이다.
통상 신선도 지수는 80~90%가 긍정적 평가, 60~70%가 보통의 수준임을 감안하면 <백설공주>의 스코어는 이 영화의 리뷰에 참여한 평론가 대부분이 혹평을 남긴 셈이다.
물론 디즈니 실사 영화의 캐스팅 관련 인종 시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3년 개봉한 <인어공주> 실사판 역시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주인공 아리엘역에 캐스팅되며 원작 팬들의 반발을 샀다. 붉은 머리의 백인 캐릭터로 익숙했던 아리엘의 이미지를 뒤바꾼 이 결정은 국내 흥행서도 참패를 기록하며 66만명이라는 저조한 관객 수를 기록했다.
아시아계 캐스팅에는 유독 박하다는 지적도 있다. 2020년 개봉한 영화 <뮬란>은 주인공 뮬란역에 백인 배우 제니퍼 로렌스를 낙점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후 중국 배우 류이페이를 최종 캐스팅해 논란을 잠재운 바 있다.
이번 <백설공주>를 통해 또 한 번 캐스팅 논란에 휩싸인 디즈니.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명분 아래 원작의 본질적인 메시지와 정체성을 희생하는 방식이 앞으로도 관객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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