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대전 초등생 피살사건 김하늘

아무 죄 없는 아이를…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한 어린아이의 죽음에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이제 갓 초등학교를 입학해 즐거운 학교생활을 시작해야 할 아이가 믿어야 할 선생님의 손에 세상을 떠나게 됐다. 피해자 김하늘양은 8세의 어린 나이에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서 한 아이의 생명이 희생된 현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지난 10일, 대전 서구 관저동 한 초등학교서 초등학생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전과학수사연구소는 이날 피해자 김하늘양의 시신을 부검했다. 김양의 사인은 ‘다발성 예기 손상에 의한 사망’으로 확인됐다. 즉,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여러 곳이 찔려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계획적 범죄
3번 경고음

당초 김양 유족은 부검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으나,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선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양은 지난 10일 오후 5시50분경 학교 내 시청각실서 교사 A씨와 함께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오후 7시경 숨졌다. 이날 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김양의 친할머니였다.

오후 5시쯤 김양의 아버지로부터 손녀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은 할머니는 즉시 김양을 찾기 위해 나섰다. 할머니는 “하늘이는 학교 정규수업을 마친 후 오후 4시20분까지 돌봄교실에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서 “하교 후 학원에 있어야 할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찾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아버지는 휴대전화 앱을 이용해 김양의 위치를 추적했고, 앱에 표시된 위치는 다름 아닌 학교였다. 이에 아버지는 즉시 경찰에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학교 외부를 수색했고, 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교내서 김양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사건이 발생한 학교 2층 시청각실 내 창고는 외부서 내부가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학교 측은 처음에는 김양이 교내에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2층을 홀로 살펴보던 할머니가 시청각실로 들어갔다가 우연히 A씨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손녀를 찾던 중 돌봄교실 옆 시청각실로 들어갔다”며 “비품 창고까지 확인하려 했는데 안이 너무 어두웠다.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는 순간, 피 묻은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할머니가 A씨에게 김양을 봤냐고 묻자, 그는 “없어요. 나는 몰라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A씨의 머리맡에 손녀의 가방이 놓여 있는 것을 본 할머니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 침착하게 뒤로 물러난 뒤, 곧바로 밖으로 나와 경찰과 김양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 상황을 전했다.

할머니는 “그 사이 여자가 문을 잠갔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발로 문을 걷어차 강제로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119 구급대가 출동해 쓰러져 있던 김양과 A씨를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다. 현장의 참혹한 상황을 본 경찰은 김 양의 할머니에게 아이를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손녀가 숨졌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아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며 허망한 심정을 전했다.

경찰은 지난 11일 살인 혐의를 받는 교사 A씨에 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밝혔다. A씨는 아직 중환자실서 치료 중이며,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 조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경찰은 A씨가 목 부위 봉합 수술을 받기 전 피의자 진술을 확보했다.


“어떤 아이든 함께 죽을 생각”
선생님의 끔찍한 진술 충격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범행을 인정하며 “교무실에 있기 싫어 잠겨있던 시청각실을 열어뒀다”며 “돌봄교실서 수업이 끝난 후,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함께 죽을 생각으로 맨 마지막에 남은 아이에게 책을 준다고 해 시청각실로 데려왔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범행 당일 오후 학교 근처 마트서 흉기를 미리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사건 당일 오후, 학교서 약2㎞ 떨어진 주방용품 가게서 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흉기의 길이는 28㎝였다”고 밝혔다. A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복직 후 3일 만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교감이 수업을 못 하게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사건 발생 직전까지 약 6개월간 질병 휴직을 했다가 복직한 지 불과 20여일 만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이번 사건이 계획된 범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A씨가 사건 당일 마트서 흉기를 미리 구매한 점과, 할머니가 최초로 현장을 발견했을 당시 가해 교사에게 자해 흔적이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김 양의 할머니는 “시청각실 문이 잠겨있었는데 경찰이 강제로 개방했을 때, A씨는 이미 피투성이였다. 들킨 후 자해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사건 당시 딸의 위치를 추적할 때 사용한 애플리케이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하늘이의 휴대폰에 부모 보호 앱을 설치해뒀기 때문에 전화를 걸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아이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오후 4시50분쯤부터 아이 휴대폰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를 확인하면서 현장으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4시50분부터 들었을 때 하늘이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나이 든 여성이 달리기한 뒤 숨을 헉헉거리는 소리, 서랍을 여닫는 소리, 가방 지퍼를 여는 소리 등이 들렸다”며 당시의 녹취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다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A씨는 2018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해 12월9일엔 질병 휴직을 신청했으며, 휴직 기간 동안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휴직 당시 제출한 진단서에는 “5년 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반복해 왔으며, 지난해부터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9월 이후 증상이 악화됐다. 심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려 최소 6개월간 안정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를 근거로 A씨는 지난해 12월9일부터 6개월간 질병 휴직에 들어갔다. 그러나 불과 20여일 만에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

휴직 당시
진단서 보니…

복직 당시 제출한 진단서에는 “12월 초에 심했던 잔여 증상이 현재는 거의 사라져 정상 근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기재돼있었다. 문제는 이 두 개의 진단서가 같은 병원의 동일한 의사에 의해 발급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즉,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같은 의사로부터 정반대의 소견을 받은 것이다.

A씨는 복직 후, 의사의 소견과는 달리 이상행동을 보였다. 그는 “왜 내가 이렇게 불행해야 하느냐”며 혼잣말을 반복하는 등 피해망상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 주변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사건 발생 나흘 전에는 동료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당시 A씨는 웅크린 채 앉아있었고, 이를 걱정한 동료 교사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갑자기 헤드록을 걸고 손목을 강하게 붙잡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 상황은 주변 동료 교사들이 말려야 할 정도로 심각했으나, 경찰 신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학교 측은 A씨의 상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에게 다시 휴직을 강하게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A씨의 문제 행동과 관련해 대전시교육청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교육청은 같은 병력으로는 추가 휴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시교육청 초등담당 장학 관계자는 “학교 측이 대전서부교육지원청에 해당 사안을 보고해, 지난 10일 오전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해 사실 조사를 진행했다”며 “조사 후 장학사는 학교 측에 해당 교사의 분리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뒤 돌아갔으나, 결국 그날 오후 사건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당사자를 직접 조사할 경우 자극할 우려가 있어 면담은 진행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현행 교육공무원법에 따르면, 휴직 교사는 기간 만료 후 30일 이내에 복귀 신고만 하면 자동으로 복직할 수 있다. 문제는 복직 심사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각 지역 교육청마다 내부 지침이 다르다 보니, 어떤 곳은 단순한 서류 검토만으로, 또 어떤 곳은 면담 한 번으로 복직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김양의 죽음을 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고 지적한다. 복직 직후 나타난 이상행동, 학부모들의 문제 제기, 동료 교사들의 반복된 이상 행동 보고 등 세 차례의 경고 신호를 무시한 결과 비극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공무원법 제44조에 따르면, 교사가 정신적 또는 신체적 문제가 명백할 경우 임용권자가 직권으로 휴직을 명령할 수 있다. 또, 제45조에는 정신 건강 문제가 의심될 경우 최대 5년까지 휴직이 가능하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정신질환이 있는 교원이 교직 수행이 가능한지 심의하고, 필요할 경우 교육감이 직권으로 휴·면직을 권고할 수 있는 ‘질환교원심의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교육 당국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쁜 별’
애도 물결

결국 법적 장치가 마련돼있었음에도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점이 이번 사건의 핵심 문제라는 것이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정신질환 이력이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이에 대한 편견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지난 11일 엑스(구 트위터)에 “우울증은 죄가 없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나 교수는 해당 글에서 “가해자는 응당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면서도 “아직 아무것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서 언론이 우울증 휴직 전력을 앞다퉈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죄는 죄인에게 있지, 우울증이 죄는 아니다”라며, “우울증 휴직 이력을 강조하는 보도는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강화해, 정작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게 만들고, 한국의 정신건강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현재 한국의 우울증 치료율은 10%에 불과하다. 즉, 10명 중 9명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언론이 정신질환을 자극적으로 보도할 경우, 치료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사람의 생명은 의사만이 살리는 것이 아니다. 펜으로도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다”며, 신중한 보도를 당부했다.

나 교수는 “같은 나이 딸을 둔 아버지로서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피해자 유가족의 감정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가해 여교사의 우울증을 앞세운 보도에 대해 나 교수와 비슷한 의견을 냈다. 백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오늘 오전 환자들이 ‘회사에서 나를 살인자로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많이 전해왔다”며 “우울증이 있을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국내 현실인 만큼 여론이 이런 방식으로 조성되는 것이 무척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언론에 가해자의 진단명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정신 건강 관련 자문을 담당하는 지원단은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특정 진단명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편견을 가중시킬 뿐,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사실에 기반해 사건의 사회 구조적 요인과 개선 방안에 집중해 주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막을 기회 3번 있었다”
병력 언급 편견만 가중

이어 “범죄 행위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하며, 유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원단은 정신 건강 보도와 관련한 권고 기준으로 기사 제목에 정신질환을 언급하는 것을 지양할 것, 정신 질환을 범죄 동기나 원인과 연결하는 데 신중을 가할 것을 제안했다.

김양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김양의 아버지는 딸이 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을 특히 좋아했다고 전했다. 그는 “하늘이의 꿈이 장원영이었다. 생일 선물로 아이브 포토카드를 받길 원했고, 특히 장원영 카드만 원했다”며 “어떤 프로그램이든 장원영이 나오면 늦게 자더라도 본방 사수를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동생이 뽀로로를 보고 싶어해도 무조건 장원영을 봐야 하는 아이였다”며 “장원영양이 하늘이가 가는 길에 따뜻한 인사 한마디를 건네준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한 그룹 아이브는 김양의 빈소에 근조화환을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화환에는 “가수 아이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황선홍 K1 대전시티즌 감독도 김양의 빈소를 찾아 추모했다. 생전 김양은 축구 팬인 아버지와 함께 대전시티즌 서포터즈로 활동해 왔다. 홈 경기 때마다 대전월드컵경기장을 찾아 응원했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던 김양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축구계도 깊은 애도를 표했다.

빈소를 찾은 황 감독은 “하늘이가 너무 어리고,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라 더 가슴이 아프다”며 “좋은 곳에서 편안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애도했다. 축구 팬들도 추모의 뜻을 전했다. ‘대전하나시티즌 팬’ ‘대전 붉은악마’ 등의 이름으로 근조화환이 보내졌다.

김양의 빈소에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육종명 대전 서부경찰서장,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방문해 조의를 표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빈소서 기자들과 만나 “제가 바라는 건 앞으로 우리 하늘이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신질환을 앓는 교사들의 치료와 저학년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할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교육부는 교원이 정신질환 등으로 정상적인 교직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직권 휴직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는 ‘하늘이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늘이 법
입법 추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정신질환이 있는 교원이 일정 절차를 거쳐 직권 휴직을 받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늘이법은 교직 수행이 어려운 교사를 학생들과 분리하고, 복직 시 정상 근무 가능 여부를 엄격히 심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부총리는 폭력성 등 특이 증상을 보이는 교원에 대한 긴급 개입 제도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법 개정으로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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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