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대전 초등생 피살사건 김하늘

아무 죄 없는 아이를…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한 어린아이의 죽음에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이제 갓 초등학교를 입학해 즐거운 학교생활을 시작해야 할 아이가 믿어야 할 선생님의 손에 세상을 떠나게 됐다. 피해자 김하늘양은 8세의 어린 나이에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서 한 아이의 생명이 희생된 현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지난 10일, 대전 서구 관저동 한 초등학교서 초등학생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전과학수사연구소는 이날 피해자 김하늘양의 시신을 부검했다. 김양의 사인은 ‘다발성 예기 손상에 의한 사망’으로 확인됐다. 즉,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여러 곳이 찔려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계획적 범죄
3번 경고음

당초 김양 유족은 부검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으나,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선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양은 지난 10일 오후 5시50분경 학교 내 시청각실서 교사 A씨와 함께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오후 7시경 숨졌다. 이날 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김양의 친할머니였다.

오후 5시쯤 김양의 아버지로부터 손녀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은 할머니는 즉시 김양을 찾기 위해 나섰다. 할머니는 “하늘이는 학교 정규수업을 마친 후 오후 4시20분까지 돌봄교실에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서 “하교 후 학원에 있어야 할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찾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아버지는 휴대전화 앱을 이용해 김양의 위치를 추적했고, 앱에 표시된 위치는 다름 아닌 학교였다. 이에 아버지는 즉시 경찰에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학교 외부를 수색했고, 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교내서 김양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사건이 발생한 학교 2층 시청각실 내 창고는 외부서 내부가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학교 측은 처음에는 김양이 교내에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2층을 홀로 살펴보던 할머니가 시청각실로 들어갔다가 우연히 A씨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손녀를 찾던 중 돌봄교실 옆 시청각실로 들어갔다”며 “비품 창고까지 확인하려 했는데 안이 너무 어두웠다.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는 순간, 피 묻은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할머니가 A씨에게 김양을 봤냐고 묻자, 그는 “없어요. 나는 몰라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A씨의 머리맡에 손녀의 가방이 놓여 있는 것을 본 할머니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 침착하게 뒤로 물러난 뒤, 곧바로 밖으로 나와 경찰과 김양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 상황을 전했다.

할머니는 “그 사이 여자가 문을 잠갔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발로 문을 걷어차 강제로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119 구급대가 출동해 쓰러져 있던 김양과 A씨를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다. 현장의 참혹한 상황을 본 경찰은 김 양의 할머니에게 아이를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손녀가 숨졌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아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며 허망한 심정을 전했다.

경찰은 지난 11일 살인 혐의를 받는 교사 A씨에 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밝혔다. A씨는 아직 중환자실서 치료 중이며,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 조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경찰은 A씨가 목 부위 봉합 수술을 받기 전 피의자 진술을 확보했다.


“어떤 아이든 함께 죽을 생각”
선생님의 끔찍한 진술 충격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범행을 인정하며 “교무실에 있기 싫어 잠겨있던 시청각실을 열어뒀다”며 “돌봄교실서 수업이 끝난 후,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함께 죽을 생각으로 맨 마지막에 남은 아이에게 책을 준다고 해 시청각실로 데려왔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범행 당일 오후 학교 근처 마트서 흉기를 미리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사건 당일 오후, 학교서 약2㎞ 떨어진 주방용품 가게서 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흉기의 길이는 28㎝였다”고 밝혔다. A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복직 후 3일 만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교감이 수업을 못 하게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사건 발생 직전까지 약 6개월간 질병 휴직을 했다가 복직한 지 불과 20여일 만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이번 사건이 계획된 범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A씨가 사건 당일 마트서 흉기를 미리 구매한 점과, 할머니가 최초로 현장을 발견했을 당시 가해 교사에게 자해 흔적이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김 양의 할머니는 “시청각실 문이 잠겨있었는데 경찰이 강제로 개방했을 때, A씨는 이미 피투성이였다. 들킨 후 자해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사건 당시 딸의 위치를 추적할 때 사용한 애플리케이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하늘이의 휴대폰에 부모 보호 앱을 설치해뒀기 때문에 전화를 걸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아이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오후 4시50분쯤부터 아이 휴대폰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를 확인하면서 현장으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4시50분부터 들었을 때 하늘이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나이 든 여성이 달리기한 뒤 숨을 헉헉거리는 소리, 서랍을 여닫는 소리, 가방 지퍼를 여는 소리 등이 들렸다”며 당시의 녹취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다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A씨는 2018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해 12월9일엔 질병 휴직을 신청했으며, 휴직 기간 동안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휴직 당시 제출한 진단서에는 “5년 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반복해 왔으며, 지난해부터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9월 이후 증상이 악화됐다. 심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려 최소 6개월간 안정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를 근거로 A씨는 지난해 12월9일부터 6개월간 질병 휴직에 들어갔다. 그러나 불과 20여일 만에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

휴직 당시
진단서 보니…

복직 당시 제출한 진단서에는 “12월 초에 심했던 잔여 증상이 현재는 거의 사라져 정상 근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기재돼있었다. 문제는 이 두 개의 진단서가 같은 병원의 동일한 의사에 의해 발급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즉,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같은 의사로부터 정반대의 소견을 받은 것이다.

A씨는 복직 후, 의사의 소견과는 달리 이상행동을 보였다. 그는 “왜 내가 이렇게 불행해야 하느냐”며 혼잣말을 반복하는 등 피해망상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 주변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사건 발생 나흘 전에는 동료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당시 A씨는 웅크린 채 앉아있었고, 이를 걱정한 동료 교사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갑자기 헤드록을 걸고 손목을 강하게 붙잡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 상황은 주변 동료 교사들이 말려야 할 정도로 심각했으나, 경찰 신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학교 측은 A씨의 상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에게 다시 휴직을 강하게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A씨의 문제 행동과 관련해 대전시교육청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교육청은 같은 병력으로는 추가 휴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시교육청 초등담당 장학 관계자는 “학교 측이 대전서부교육지원청에 해당 사안을 보고해, 지난 10일 오전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해 사실 조사를 진행했다”며 “조사 후 장학사는 학교 측에 해당 교사의 분리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뒤 돌아갔으나, 결국 그날 오후 사건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당사자를 직접 조사할 경우 자극할 우려가 있어 면담은 진행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현행 교육공무원법에 따르면, 휴직 교사는 기간 만료 후 30일 이내에 복귀 신고만 하면 자동으로 복직할 수 있다. 문제는 복직 심사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각 지역 교육청마다 내부 지침이 다르다 보니, 어떤 곳은 단순한 서류 검토만으로, 또 어떤 곳은 면담 한 번으로 복직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김양의 죽음을 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고 지적한다. 복직 직후 나타난 이상행동, 학부모들의 문제 제기, 동료 교사들의 반복된 이상 행동 보고 등 세 차례의 경고 신호를 무시한 결과 비극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공무원법 제44조에 따르면, 교사가 정신적 또는 신체적 문제가 명백할 경우 임용권자가 직권으로 휴직을 명령할 수 있다. 또, 제45조에는 정신 건강 문제가 의심될 경우 최대 5년까지 휴직이 가능하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정신질환이 있는 교원이 교직 수행이 가능한지 심의하고, 필요할 경우 교육감이 직권으로 휴·면직을 권고할 수 있는 ‘질환교원심의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교육 당국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쁜 별’
애도 물결

결국 법적 장치가 마련돼있었음에도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점이 이번 사건의 핵심 문제라는 것이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정신질환 이력이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이에 대한 편견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지난 11일 엑스(구 트위터)에 “우울증은 죄가 없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나 교수는 해당 글에서 “가해자는 응당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면서도 “아직 아무것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서 언론이 우울증 휴직 전력을 앞다퉈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죄는 죄인에게 있지, 우울증이 죄는 아니다”라며, “우울증 휴직 이력을 강조하는 보도는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강화해, 정작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게 만들고, 한국의 정신건강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현재 한국의 우울증 치료율은 10%에 불과하다. 즉, 10명 중 9명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언론이 정신질환을 자극적으로 보도할 경우, 치료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사람의 생명은 의사만이 살리는 것이 아니다. 펜으로도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다”며, 신중한 보도를 당부했다.

나 교수는 “같은 나이 딸을 둔 아버지로서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피해자 유가족의 감정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가해 여교사의 우울증을 앞세운 보도에 대해 나 교수와 비슷한 의견을 냈다. 백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오늘 오전 환자들이 ‘회사에서 나를 살인자로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많이 전해왔다”며 “우울증이 있을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국내 현실인 만큼 여론이 이런 방식으로 조성되는 것이 무척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언론에 가해자의 진단명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정신 건강 관련 자문을 담당하는 지원단은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특정 진단명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편견을 가중시킬 뿐,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사실에 기반해 사건의 사회 구조적 요인과 개선 방안에 집중해 주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막을 기회 3번 있었다”
병력 언급 편견만 가중

이어 “범죄 행위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하며, 유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원단은 정신 건강 보도와 관련한 권고 기준으로 기사 제목에 정신질환을 언급하는 것을 지양할 것, 정신 질환을 범죄 동기나 원인과 연결하는 데 신중을 가할 것을 제안했다.

김양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김양의 아버지는 딸이 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을 특히 좋아했다고 전했다. 그는 “하늘이의 꿈이 장원영이었다. 생일 선물로 아이브 포토카드를 받길 원했고, 특히 장원영 카드만 원했다”며 “어떤 프로그램이든 장원영이 나오면 늦게 자더라도 본방 사수를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동생이 뽀로로를 보고 싶어해도 무조건 장원영을 봐야 하는 아이였다”며 “장원영양이 하늘이가 가는 길에 따뜻한 인사 한마디를 건네준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한 그룹 아이브는 김양의 빈소에 근조화환을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화환에는 “가수 아이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황선홍 K1 대전시티즌 감독도 김양의 빈소를 찾아 추모했다. 생전 김양은 축구 팬인 아버지와 함께 대전시티즌 서포터즈로 활동해 왔다. 홈 경기 때마다 대전월드컵경기장을 찾아 응원했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던 김양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축구계도 깊은 애도를 표했다.

빈소를 찾은 황 감독은 “하늘이가 너무 어리고,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라 더 가슴이 아프다”며 “좋은 곳에서 편안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애도했다. 축구 팬들도 추모의 뜻을 전했다. ‘대전하나시티즌 팬’ ‘대전 붉은악마’ 등의 이름으로 근조화환이 보내졌다.

김양의 빈소에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육종명 대전 서부경찰서장,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방문해 조의를 표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빈소서 기자들과 만나 “제가 바라는 건 앞으로 우리 하늘이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신질환을 앓는 교사들의 치료와 저학년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할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교육부는 교원이 정신질환 등으로 정상적인 교직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직권 휴직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는 ‘하늘이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늘이 법
입법 추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정신질환이 있는 교원이 일정 절차를 거쳐 직권 휴직을 받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늘이법은 교직 수행이 어려운 교사를 학생들과 분리하고, 복직 시 정상 근무 가능 여부를 엄격히 심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부총리는 폭력성 등 특이 증상을 보이는 교원에 대한 긴급 개입 제도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법 개정으로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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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