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의문 남기고 떠난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그렇게 씩씩해 보였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MBC 소속 기상캐스터 오요안나가 하늘의 별이 됐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오요안나의 비보에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 사내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비윤리적 사건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향년 28세, 젊은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에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고인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10일 오요안나의 부고 소식이 언론에 공개됐다. 고인은 그해 9월15일에 사망했다. 사망 후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유족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사망이었음을 알리기 위해 뒤늦게 부고 소식을 전했다.

집단 왕따?
가해자 4명

유족은 언론을 통해 고인이 직장 내에서 선배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고인의 휴대전화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해당 유서는 원고지 17장, 총 2750자 분량이었다.

유서에는 고인보다 먼저 MBC에 입사한 기상캐스터 한 명이 오보를 내고, 그 책임을 고인에게 뒤집어씌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또, 퇴근 후 ‘가르쳐야 한다’는 명목으로 고인을 회사로 호출했다는 사실도 언급됐다.

이 같은 괴롭힘으로 인해 고인은 유서에 “사는 게 너무너무 피곤하다. 나를 설득시켜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도 싫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마음껏 사랑만 할 수 없는 게 싫다, 벌어질 듯 아픈 것도, 명치가 찢어질 것 같은 것도 지긋지긋하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살리려고 불편하게 하는 것도 싫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유족은 생전 고인이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MBC 관계자 4명에게 알렸으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족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고인은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에 출연한 이후부터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해 의혹을 받고있는 한 기상캐스터는 고인이 <유퀴즈>에 섭외된 사실을 알자 “너 뭐하는 거야? 네가 <유퀴즈> 나가서 무슨 말 할 수 있어?”라며 조롱했다. 이후 그의 동기 금채림과 고인을 따돌리기 위해 2명을 제외한 단톡방을 새로 만들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유족은 문제의 단톡방에 있었던 기상캐스터 4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가해자로 지목했다. “진짜 악마는 이현승, 김가영”이라며 “박하명과 최아리는 대놓고 괴롭혔지만 이현승·김가영은 뒤에서 몰래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하명과 최아리는 장례식에 왔다. 정작 장례식에 안 온 2명은 이현승, 김가영”이라며 단체 채팅방의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공개된 대화 내용엔 고인에 대한 욕설과 비방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파악됐다.

고인은 자신을 제외한 단톡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휴대전화에 자신을 언급한 단톡방 대화 내용을 저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단톡방서 4명이 본인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출근을 해야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며 “그래서 수많은 구조 요청들을 주변에 해왔는데, 해결되지 않았다. 오요안나는 죽음을 결심하고 데이터 (카톡, 녹음기록 등)를 (핸드폰에)저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살아있으면 이걸 알릴 방법이 없으니까. 죽어서라도 알리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서 그 고통을 멈추게 막아주고 싶었다. 직장 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폭력이나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지난해 12월, 유족은 고인이 언급한 직장동료 4명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는 고인이 공개적인 폭언과 모욕을 당했으며 언어적 괴롭힘도 있었다고 적었다.

향년 28세, 안타까운 죽음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유는?

유족의 폭로로 인한 논란이 가중되자 지난달 28일, MBC에선 입장문을 내놨다. “프리랜서였던 고인이 일하면서 자신의 고충을 담당 부서(경영지원국 인사팀 인사상담실, 감사국 클린센터)나 함께 일했던 관리 책임자들에 알린 적이 전혀 없었다”며 해명했다.

이어 “고인이 당시 회사에 공식적으로 고충을 신고했거나, 책임 있는 관리자들에게 피해 사실을 조금이라도 알렸다면 회사는 당연히 응당한 조치를 했을 것”이라며 고인의 직장 내 괴롭힘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표했다.

또 “일부 기사에서 언급한 대로 ‘고인이 사망 전 MBC 관계자 4명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다’라고 한다면 그 관계자가 누구인지 저희에게 알려주시기 바란다”며 “정확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마치 무슨 기회라도 잡은 듯 이 문제를 ‘MBC 흔들기’ 차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MBC는 최근 확인됐다는 고인의 유서를 현재 갖고 있지 않으며, 유족들께서 새로 발견됐다는 유서를 기초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다면 최단 시간 안에 진상조사에 착수할 준비가 돼있다”고 덧붙였다.

입장문에 고인을 프리랜서라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고인을 프리랜서라고 강조하며 선긋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던 탓이다. 고인이 보도국 소속이라 감사국이 아닌 보도국에 고충을 알렸을 가능성이 크다며 말장난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졌다.

강명일 MBC 노동조합(제3노조) 비상대책위원장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고인의 1차 극단적 선택 시도 당시 MBC 내부에 보고가 됐을 것”이라며 “이로 인한 얼굴 부상으로 방송을 하지 못했고 결국 2차 시도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고인은 사망 전이었던 9월6일 가양대교서 투신을 시도했으며, 이후 두 차례 더 극단적 선택 시도 끝에 사망했다. 지난해 고인은 얼굴 부상으로 인해 날씨 방송을 하지 못하거나 손목에 테이핑한 상태로 일기예보를 하는 등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이 정도면 괴롭힘 사실에 대해 모를 수 없었을 것”이라며 MBC의 거짓 입장을 의심했다.

이틀 뒤, 유족들은 MBC 입장문에 대해 “MBC 관계자 4명에게 얘기한 녹취가 있으며, MBC에 사실관계 요청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 조사하고 진정 어린 사과 방송을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MBC가 입장문에서 유족들이 요청한다면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한 익명의 노무사는 “유족의 요청이 없더라도 의혹이 생겼다면 조사나 조치를 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라고 지적했다.


괴롭힘 후폭풍
비판의 목소리

논란이 불거지자 MBC는 이틀 만에 입장을 번복하며 외부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선 여론을 의식해 위원회 조사를 진행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후, 고인의 자필 일기 일부 내용이 공개됐다. 사망 2개월 전인 지난해 7월16일에 작성된 내용에 따르면 “억까 미쳤다. A는 말투가 너무 폭력적” “새벽 4시부터 일어나...(생략) 10시45분 특보까지 마침. 그 와중에 억까 진짜 열받음” 등 가해자를 직접 언급하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유족은 “A를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며 “가해자는 4명이다. 최소한의 방법으로 한 명에게 책임을 묻고 사실을 밝히기 위한 과정”이라고 전했다.

집단 괴롭힘의 주도자로 언급된 김가영은 이전에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홍보 영상에 출연한 적이 있어 더 큰 논란을 빚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홍보 영상에 어떻게 괴롭힘을 주도한 사람이 나올 수 있냐는 반응이다.

김가영은 평소에 밝고 좋은 성격의 이미지로 방송에 자주 출연했기에 누리꾼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 SBS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에도 출연하고 있어 팬들은 “그럴 줄 몰랐다”라며 <골때녀>서 김가영의 하차를 요구했다.


김가영이 후폭풍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자 <골때녀>에서는 이후 방영될 방송서 김가영 분량을 통편집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하차 결정은 보류 상태다. 그는 파주시 홍보대사에서 해촉됐고,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서도 자진 하차하는 등 후폭풍을 겪고 있다.

집단 괴롭힘의 주도자로 김가영이 거론되자 <꼴대녀>에 고정 출연 중인 유튜버 일주어터는 지난달 27일 김가영의 SNS에 댓글을 남겼다.

그는 “가영 언니는 오요안나님을 못 지켜줬다는 사실에 당시에도 엄청 힘들어했다. 나는 오요안나님과 같이 운동을 한번 해봤던 인연이 있는데 한번 뵀을 때도 오요안나님이 나에게 가영 언니 너무 좋아하고 의지하는 선배라면서 진심으로 얘기해줬다”고 운을 뗐다.

이어 “여기서 이런 댓글 다는 건 오요안나님이 절대 절대 원하지 않을 거다. 오지랖일 순 있으나 가영 언니가 걱정되고 짧은 인연이지만 오요안나님의 명복을 빌며 댓글 남긴다”고 김가영을 두둔하는 듯한 댓글을 달았다.

팬에게 위로
마지막 통화

이후 유가족이 김가영을 가해자로 언급하자 일주어터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유튜버 가로세로연구소는 아나운서 출신 장성규가 직장 내 괴롭힘을 알고도 방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녹취록에서 “장성규는 김가영과 아침 방송을 하고, 오요안나와도 운동을 같이 해 친한 사이”라고 언급됐다. 그러면서 “김가영이 장성규에게 ‘오빠 걔(오요안나) 거짓말하는 애야’라는 식으로 얘기했고, 장성규는 오요안나에게 ‘너 거짓말하고 다닌다던데’라고 전달했다”며 “오요안나가 깜짝 놀라 ‘누가 그랬냐’ 묻자 장성규는 ‘김가영이 그랬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 여파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장성규는 자신의 SNS에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처음 내 이름이 언급됐을 때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서 속상했지만 고인과 유족 아픔에 비하면 먼지만도 못한 고통이라 판단해 바로잡지 않고 침묵했다”며 “그 침묵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인 누리꾼들이 SNS에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이어 “급기야 가족에 관한 악플이 달렸고 댓글을 달 수 있는 권한을 한정하자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으로 판단한 누리꾼들은 수위를 더 높였다”면서 “고인의 억울함이 풀리기 전 나의 작은 억울함을 풀려는 것은 잘못된 순서라고 생각한다. 모든 게 풀릴 때까지 가족에 관한 악플은 자제해주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또 “지난해 12월 뒤늦게 알게 된 고인 소식에 그동안 마음으로밖에 추모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늦었지만 고인의 억울함이 풀려 그곳에선 평안하기를, 유족에겐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꼭 밝혀 달라” 유족 눈물
진실 규명 목소리 높아져

MBC 기상캐스터 출신 방송인 박은지는 지난 1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고인의 사망 기사를 올린 뒤 “MBC 기상캐스터 출신으로 너무 마음이 무겁다”며 “본 적 없는 후배지만 지금은 고통받지 않길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그는 “나도 7년이라는 그 모진 세월 참고 또 참고 버텨봐서 안다. 그 고통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지…도움이 못 돼줘서 너무 미안하다”며 “뿌리 깊은 직장 내 괴롭힘 문화가 끝까지 밝혀져야 한다”고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MBC 아나운서 출신인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MBC를 정면 비판했다. 지난 4일 배 의원은 “회사에 SOS(구조요청)를 했는데 묵살된 게 제일 큰 문제”라며 “MBC의 사내 문화는 굉장히 대학 동아리처럼 인적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그중에 누가 맘에 안 들면 굉장히 유치하고 폭력적인 이지메(집단괴롭힘)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 의원은 “사내 전반에 그런 문화가 있다. 누가 괴롭히는 걸 묵인하고 용인하고 쉬쉬하는 문화다. MBC의 나쁜 사내 문화”라며 “MBC서 퇴사하면서 한 얘기가 있다. 겉으로 보면 번지르르한 가정집인데 심각한 가정폭력을 자행하는 곳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고인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서 “사회적으로 파장이 크니 청문회 개최를 (야당에)요구해서 진실규명에 앞장서달라”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위원들에게 당부했다.

한 누리꾼은 과거 오요안나가 자신의 삶의 고충을 위로해줬다며 미담을 전했다. 작성자는 지난 3일 엑스(옛 트위터)에 “(오요안나가 진행한)라이브 방송서 내가 힘들다는 뉘앙스를 표현했더니 위로해 주셨다. 감사해서 메시지를 남겼더니 장문의 답변을 주셨다”며 고인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공개했다.

고인은 작성자에게 “저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한테 손을 뻗으면서 살려달라고 말한다. 그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을 내밀어 잡아준다. 물론 밀치고 잡아주는 척하면서 놓아버리는 사람도 있긴 하다”며 “어찌 됐든 저는 끝내 일어나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내 쓰러져만 있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과를 다닌다는 건 일어나기 위한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라며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하는 최선이자 자신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면서 “사회가 씌운 프레임 덕에 진입 장벽도 높은데 결심하고 해낸 작성자가 멋지다.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다”라고 작성자를 위로·격려했다.

고인은 사망 전 어렵게 살고 있던 지인에게 지난해 9월15일 마지막 전화를 걸었던 사실도 알려졌다. 당시 그는 “열심히 살아라. 힘내라”라며 어려움을 겪던 지인을 격려하며 20만원을 보내기도 했다. 고인이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받은 당시 월급은 150만원도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은 배가 됐다. 고인이 도와준 이는 꿈을 이루기 위해 상경한 젊은 청년이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아픔을 숨기고 타인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조사 착수해
진실 밝힌다

한편 지난 3일, 마포경찰서는 오요안나 사망 사건과 관련해 MBC 내부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 같은 날 MBC는 “1월31일 고인의 사망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휴일 사이 조사위원회의 인선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오요안나의 죽음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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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분당보건소 부지 올스톱 비스토리

[단독] 분당보건소 부지 올스톱 비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펜스로 둘러쳐진 땅에는 드문드문 잡초만 나 있었다. 입구 쪽의 주차 차단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사거리 주변서 이 땅만 ‘이가 빠진 듯’ 공터 상태다. 누가 봐도 ‘목이 좋다’는 말이 나올 법한 위치지만 오늘도 텅 비어있다. “원래 보건소가 들어오기로 했어요. 그전에는 정자1동 행정복지센터(임시 청사)가 있었고요. 노인분들이 휠체어 타고 다니면서 편의시설을 이용하고 그랬어요.” 한 성남시민이 텅 빈 부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건널목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는 대기업 사옥, 오른편으로는 상가, 뒤편으로는 아파트가 자리한 이른바 ‘노른자위 땅’이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지도를 확인한 뒤 “완전 정자동 메인이네. 부르는 게 값일 것”이라고 했다. 앞 뒤 양 옆 꽉꽉 찼는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163번지 일원 2832㎡(약 854평) 규모의 땅. 원래 성남시 소유의 땅이었다가 용도변경을 거쳐 기업에 매각됐다. 성남시가 ‘기업 유치’를 목적으로 부지의 매각 절차를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한 시기는 2015년이다. 2020년 성남시 판교에 있는 한 기업이 4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 문제는 그걸로 끝이었다는 점이다. 올해 6월에 이르도록 건물 건립을 위한 삽 한 번 뜨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0~2022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공사가 어려웠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그 이후에도 해당 부지는 여전히 공터로 남아있다. 한 성남시민에 따르면 주차장으로 사용된 적이 있을 뿐 공사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초 성남시는 정자동 163번지에 보건소를 세우려 했다. 그러다 2015년 11월16일 성남도시관리계획에 의거해 공공청사 부지서 중심상업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했다. 성남시는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 토지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수 기업을 유치하려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실제 2016년 1월21일 열린 성남시의회 제216회 경제환경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한 시의원이 “정자동에 있는 공공청사 부지를 매각해서 업무 단지로 사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지”라고 질문하자 성남시 회계과장은 “고용도 창출하고 시 재정의 효율성도 증대시키고, 실제로 보면 기업체가 유치됨으로써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고 보고 있다”고 답했다. 성남시의회는 2016년 1월과 3월, 5월에 ‘정자동 163번지 기업 유치를 위한 매각’ 안건을 두고 질의와 토론을 진행했다. 두 번의 부결 끝에 2016년 5월24일 안건이 가결됐다. 당시 경제환경위원회 위원장은 “매각 대금이 지역주민들께 일정 부분 투입될 수 있도록 신경 써주길 바란다”고 말한 뒤 안건 가결을 선포했다. ‘부르는 게 값’ 노른자위 땅 보건소 부지였다가 용도변경 성남시는 2017년 5월23일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부지의 매각을 공식화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성남시는 첨단산업육성위원회를 열어 해당 부지에 기업 유치를 위한 공모 지침과 평가 기준을 확정한 뒤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 모집 공고’를 냈다. 해당 부지의 공시지가는 211억원(㎡당 745만원), 감정평가액은 376억원(㎡당 1329만원)이라고 밝혔다. 당시 해당 부지에는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들어선 상태였고 정자1동 행정복지센터(임시청사)는 그해 9월 분당정자 청소년 수련관으로 옮긴다고 했다. 성남시는 부지 매입 자격을 ▲제조업의 연구시설 ▲벤처기업 집적 시설 ▲문화산업 진흥시설 등으로 제한했다. 지식산업, 전략산업, 벤처기업을 유치해 지역발전을 꾀하겠다는 취지다. 성남시는 “성남하이테크밸리, 판교테크노밸리, 분당벤처밸리 등 3대 산업집적지와 한 축을 이뤄 도시 균형발전과 첨단사업 고도화에 시너지효과를 낼 것으로 내다봤다”고 말했다. 부지 매각과 관련해 우선 협상자를 선정하기 위한 접수는 그해 7월17일부터 21일까지 닷새 동안 이뤄졌다. 성남시는 공급 신청서, 기업 현황, 사업 계획, 입찰 계획 등을 작성해 성남시 창조산업과에 직접 방문해 제출하라고 고지했다. 8월 중에 개발 방향 이해도, 사업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고 득점 기업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뒤 협상을 거쳐 매매계약을 체결한 계획이라고 전했다. 시의회서도 지역 기여 강조 성남시는 ▲기업 현황(정량 300점) ▲사업 계획(정성 500점) ▲토지 가격(200점) 등 총 1000점 만점으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현황의 경우 규모와 재무 상태로 구분해 각각 70점, 230점을 배점했다. 사업 계획은 사업 평가(200점), 건축 운영(150점), 지역 기여(150점) 등 세 분야로 나눴다. 2018년 4월 성남시는 드림시큐리티가 제안한 소프트웨어 진흥시설 설치 사업 계획이 시 첨단산업 육성위원회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드림시큐리티는 핀테크 서비스와 FIDO 기반의 생체인증 기술, 블록체인 기반의 인증과 암호를 개발하는 연구·개발 중심의 IT 벤처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성남시와 드림시큐리티 간의 계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성남시 관계자에 따르면, 드림시큐리티 측에서 매입을 철회했다. 이후 재차 공모 절차를 거쳐 ㈜마이다스아이티가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 회사 소개서에 따르면, 마이다스아이티는 공학기술용 소프트웨어 개발 및 보급 및 구조 분야 엔지니어링 서비스와 웹 비즈니스 통합 설루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마이다스아이티는 2020년 2월14일 424억원에 해당 부지를 샀다. 당시 성남시가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마이다스아이티는 1114억원을 들여 연면적 3만963㎡, 지상 15층, 지하 5층 규모의 벤처기업 집적 시설을 건립한다고 밝혔다. 4개 이상의 벤처기업이 입주하고 판교제1테크노밸리에 있던 마이다스아이티 직원 600명이 모두 옮겨온다고도 덧붙였다. 삽 한 번 안 떠 시민 의문 제기 그러면서 “마이다스아이티는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창업보육 지원, 커뮤니티 공간 조성, 청소년 자인씨앗학교를 운영하고 주말에 주차장(240면)을 전면 개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또 “일자리 매칭·치매 예방·스마트 제조혁신 등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관련 기관에 무상 지원하고 지역 주민 고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고 했다. 성남시가 우선 협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서 150점을 배점한 ‘지역 기여’ 관련 부분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성남시는 공사 완공 시점으로 2023년을 언급하면서 조감도도 공개했다. 당시 성남시 관계자는 “정자동 163번지 부지는 분당벤처밸리 내 벤처기업 육성촉진지구고 인근엔 네이버, 넥슨, 엔씨소프트 등 첨단지식산업 업체가 대거 포진해 벤처기업 집적 시설이 들어서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며 “아시아실리콘밸리 조성의 한 축이 돼 자족 기능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부지 매각 이후 5년이 지났다. 매각 전인 2019년 12월부터 주민 자율 주차장(90면)으로 사용되던 것도 이제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마이다스아이티가 세운 ‘개발 부지 안내문’이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안내문에는 ‘본 지역은 아래와 같은 방향으로 개발될 예정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연구/업무 공간 ▲자연주의 인본 경영 공간 ▲시민 행복 공간 등이라고 쓰여 있다. 한 성남시민은 “주민 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다가 기업에 매각된 이후 계속 비어있다. 성남시가 부지를 매각하겠다고 밝힌 시기로 따지면 8년, 마이다스아이티가 땅을 산 시기로 보면 5년째 땅을 놀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성남시에서 어떤 제재를 가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의 사정은 둘째치고 성남시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0년 판교 벤처기업 매입 “구체적인 내용 안내 어렵다” 성남시의회가 2020년 10월16일 진행한 경제환경위원회 제4차 회의서 정자동 163번지 관련 문제가 언급됐다. 매각 이후 8개월이 흐른 시점이다. 당시 한 시의원은 “빨리빨리 언제까지 안 되면 계약위반으로 통보해야 한다. 확인해야 한다”며 “계약위반이 될 수 있는 사항은 꼼꼼히 따져서 빨리빨리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성남시 아시아실리콘밸리 담당관이 “지금 그곳은 설계 단계다. 주차장 사용 문제는 확인해서 보고하겠다”고 답했다. 시의원은 “우리가 정해진 규칙대로 (첨단산업)육성위원회에서 심의했던 내용대로 계약위반이 아닌지 우리가 따져야 하는 거고…(중략)…우리한테 제출한 계획대로 이행을 안 했을 경우 계약위반으로 취소할 수도 있다고 얘기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회의 이후 성남시의회서 정자동 163번지 관련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성남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설계 변경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협약서에 공사 시점에 대한 부분이 있긴 하다. 다만 그 부분에 단서 조항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마이다스아이티서 단서 조항을 통해 공사 기간을 연장해 온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래 올해 상반기 중에 착공하는 것으로 얘기가 나왔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부연했다. 공사 지연에 대한 성남시 대응을 묻자 “더 이상 저희도 같은 사유로는 연장을 안 해주려는 상태”라면서도 “성남시 차원서 마이다스아이티 측에 법적으로 공사를 재촉하거나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사항이 명확하진 않다”고 설명했다. 시 직무유기? 제재 못한다 마이다스아이티 관계자는 “(해당 부지에)사옥을 지을 예정”이라며 “사옥을 처음 세우는 것이다 보니 잘 짓기 위해 설계를 변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남시 보도자료에 언급된 부분(지역 기여 관련)이 설계에 포함돼있는지는 답하지 않았다. 홍보팀 관계자는 <일요시사>의 추가 질문에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안내가 어려운 점 양해를 부탁한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