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부는 등록금 인상 바람

17년 만에 크게 오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대학가에 등록금 인상 바람이 불고 있다. 전국 32개 대학이 올해 등록금 인상을 확정했고 120여개 대학은 논의 중이다. 교육부의 만류가 있지만 재정 악화로 인해 등록금 인상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총장들은 말하고 있다. 학생들의 반발도 강한 가운데 교육부가 어떻게 대처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최근 대학교들이 줄줄이 등록금을 인상하고 있다. 16년간 동결됐던 주요 대학의 등록금이 인상되자 교육부와 학생들의 반발도 거세다. 하지만 대학은 재정 악화를 이유로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위기의 대학
재정 악화

교육부는 지난해 12월25일 대학·대학원 등록금 법정 인상 상한을 5.49%로 확정했다. 다만 등록금 동결 기조는 유지했다. 고등교육법에 따라 대학(대학원) 등록금 인상률은 직전 3개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할 수 없다.

내년 법정 인상 상한은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3.66%)의 1.5배인 5.49%로 확정됐다. 교육부는 이를 지난해 12월30일 공고했다. 최근 4년간 법정 인상 상한은 2021년 1.20%, 2022년 1.65%, 2023년 4.05%, 2024년 5.64%였다.

지난 4년간 법정 인상 상한률 고지에도 대학들은 등록금을 올리지 않았다. 교육부의 등록금 동결 기조에 따른 것이다. 올해에도 교육부는 등록금 동결 기조를 유지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등록금 법정 인상 상한을 공고하며 “그간 국가장학금이 지속 확대됐음에도 대학의 등록금 수입이 교내장학금 지원에 집중돼 교육 여건 개선에 상대적으로 투자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 규제 완화를 통해 학생들의 등록금이 교육 여건 개선에 투자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또 교육부가 대학의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2023년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신설 등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다양한 정책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 왔고, 국가장학금도 대폭 확충하는 등 학생들의 학비 부담 완화에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 대학들은 재정 악화를 이유로 등록금 인상을 주 현안으로 꼽고 있다.

전국 4년제 대학들이 모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올해 정기총회를 맞아 실시한 ‘2025 KCUE 대학 총장 설문조사’ 분석 결과 지난 2009년부터 올해까지 교육부로부터 학부등록금 동결 압박을 받고 있는 대학들은 저출생에 따른 학령인구 급감 등도 더해져 ‘재정 위기’를 가장 큰 화두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총장들은 ‘현 시점서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복수응답)’을 묻는 질문에 77.1%(108명)가 ‘재정 지원 사업(정부·지자체 등)’을 1순위로 꼽았다. 이어 ▲신입생 모집 및 충원 62.9%(88명) ▲외국인 유학생 유치 및 교육 56.4%(79명) ▲등록금 인상 55.7%(78명) ▲재학생 등록 유지 38.6%(54명) 등이 5순위 안에 들었다.

재정 지원과 신입생 모집은 예년에도 최대 관심사(1·2위)였다. 다만, 전자는 올해 본격 도입되는 라이즈(RISE·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로 인해 지난해보다 주목도가 높아진 것으로 파악됐다(71.9%→77.1%).

또 ‘등록금 인상’을 실질적으로 고민하는 총장들도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 43.7%에서 12.0%p 오른 55.7%를 기록했다. ‘재학생 등록 유지’(36.3%→38.6%)는 상위 5개에 진입한 반면, ‘교육 과정 및 학사 개편’은 16%p 넘게 급락하면서 종전 4순위에서 8순위로 밀려났다.

32곳 확정, 120여곳 논의 중
총장 관심사 1위도 ‘등록금’

설립 유형에 따라 일부 관심 영역이 갈리기도 했다. 국·공립 대학은 등록금 인상(5순위)보다 학생 취·창업(2순위)과 교육과정·학사 개편(3순위) 등이 앞섰고, 사립 대학들은 신입생 모집(2순위) 및 해외 유학생 유치(3순위) 등이 우선이었다. ‘당국의 재정 지원’은 둘 다 부동의 1위였다.

또 시·도 단위 대학들에게는 신입생 모집이 가장 큰 이슈였으나, 수도권 대학은 5위였고 국·공립대학의 경우 아예 순위에 들지 않았다. 총장들은 향후 5년간 대학별 재정상태가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보다 악화’된다고 답한 비율이 75%(105개교)에 달했고, 이 중 ‘매우 악화’라는 응답도 44개교나 됐다.

‘현 상태 유지’를 예상한 대학은 19.3%(27개교), 지금보다 안정적 재정이 가능할 거라고 본 대학은 5.7%(8개교)였다. 비수도권 소재 광역시 대학 중 상황 호전을 기대한 곳은 전무했다. 특히 국·공립 대학의 경우, 81.8%(33개교 중 27개교)가 재정 악화를 전망해 운영난을 짐작케 했다.

이런 상황에 서강대와 국민대를 시작으로 대학가가 연쇄적으로 등록금 인상에 나서고 있다. 전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이하 사총협)가 지난달 23일 배포한 ‘2025학년도 등록금 인상 현황 등에 따르면 사립대 27개, 국·공립대 5개 등 32개 대학이 등록금을 올리기로 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대 18곳, 비수도권대 9곳이 등록금 인상을 결정했다. 인상률은 사립대 2.2~5.48%, 국·공립대 4.96~5.49%다. 이 외에도 현재 120여개 대학서 등록금 인상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0여개 대학에선 현재 등록금 인상을 놓고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서 막바지 회의를 진행 중이다.

최근 3년 새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은 2022년 6곳, 2023년 17곳, 2024년 26곳이었다. 2009년부터 계속된 정부의 등록금 동결 압박 정책은 올해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와 대교협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대학·폴리텍대학을 제외한 4년제 일반대·교육대 193개교 학생 1인이 연간 분담하는 평균 등록금은 682만700원으로 전년(679만4000원) 대비 0.5% 상승했다.

설립 유형별로는 사립대가 762만9000원, 국·공립대학 421만1000원이었고, 소재지별로는 수도권 768만6000원, 비수도권 627만4000원이었다. 계열별로는 의학(984만3000원)이 가장 비쌌고, 예체능(782만8000원), 공학(727만7000원), 자연과학(687만5000원), 인문사회(600만3000원) 순이었다.

연쇄적으로
인상 릴레이

전문대 130개교 학생 1인의 평균 등록금은 618만2000원으로 전년(612만7000원) 대비 0.9% 상승했다.

설립 유형별로는 사립대 625만원, 공립대 237만6000원이었고, 소재지별로는 수도권 662만2000원, 비수도권 583만원이었다.

계열별로는 예체능(675만9000원), 공학(626만9000원), 자연과학(626만2000원), 인문사회(551만1000원) 순이었다.

대학알리미 집계상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대학 연간 평균 등록금은 672만원, 672만7000원, 674만8000원, 678만2000원, 682만원으로 1.48% 늘었다. 전문대학도 581만원, 582만1000원, 583만9000원, 595만8000원, 601만7000원으로 3.56% 늘었다.

4년제 대학 195개교 가운데 지난해 평균 등록금이 가장 비싼 대학은 추계예술대학교(923만9000원)이었고, 연세대(919만5000원), 한국공학대(903만5000원), 신한대(881만8000원), 이화여대(874만6000원)가 뒤를 이었다.

전문대 중에선 서울예대의 평균 등록금이 825만5000원으로 가장 비쌌고, 이어 한국골프대(793만원), 계원예대(771만4000원), 백제예대(754만5000원), 동아방송예대(743만2000원) 순이었다.

전국 여러 대학들이 잇따라 등록금 인상을 의결하거나 검토하자 학생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오랜 기간 등록금이 동결돼온 것은 맞지만, 등록금 인상 전에 학교당 최대 수천억원에 이르는 적립금부터 소진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들이 규정을 깐깐하게 해석해 적립금 사용에 소극적인 상황이라, 큰 돌파구가 마련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학 총학생회들은 학생 대부분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한다며 긴급 설문 결과를 공개했다. 연세대에선 전체 응답자의 88.9%(3362명)가, 고려대에선 응답자의 79.9%(1105명)가 등록금 인하·동결을 요구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전국 160여 개 대학에 실시한 인식 조사에서도 97.9%(1825명)가 등록금 인상에 반대했다.

4년제 평균
682만700원

학생들은 과도하게 축적된 적립금부터 소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2년 대학교육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국내 사립·전문대학 교비회계 적립금은 총 10조6202억원에 달했다. 그중 적립금 3000억원을 넘어선 상위 6개 대학(고려대·수원대·성균관대·연세대·이화여대·홍익대) 모두 등록금 인상을 의결했거나 검토 중이다.

대학들은 적립금 사용엔 한계가 크다고 말한다.

성균관대는 “적립금은 대체로 사용 목적이 지정된 채 기부되는 금액이 많다”며 “등록금 대신 쓸 수 있는 금액은 막상 많지 않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대학 적립금은 대개 퇴직금 지급을 위한 적립금이나 시설 정비에 필요한 건축 적립금 등이 많다고 설명했다.

사립학교법 제32조의2(적립금)는 대학 적립금은 기금으로 예치해 관리하고, 그 적립 목적으로만 사용(3항)하도록 하면서도, 적립금을 재난 상황서 학생 지원 목적으로 변경해 사용(4항)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있다. 교육부도 적립금 비율이 높은 대학은 등록금을 전년도 수준으로 유지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적립금과 등록금의 용처가 낱낱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서 대학이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놓고 쓸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니, 학생들의 불신이 높은 상황이다.

학생들은 교비회계 중 법인 전입금(법인이 대학에 내려주는 금액) 비율이 낮다고도 지적했다. 2022년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4년제 사립대학 법인의 전입금 비율은 평균 4.1%에 불과한 반면, 같은 해 등록금 의존율은 51.4%에 달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이·공계 전공은 산업체와의 연구개발(R&D)로 수익 자구책을 마련하지만, 문과에 집중된 외대는 별도 수익을 내기도 쉽지 않다”며 “와중에 법인 전입금도 적어 등록금 의존율만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 역시 “우리 대학은 등록금이 교비회계의 57.4%를 차지하지만 법인 전입금은 0.4%밖에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대학들은 기업 법인과 달리 설립 목적이 이윤 추구가 아닌 사학법인 특성상 전입금을 높이기 어렵단 입장이다.

한국외대·숙명여대는 “사학법인이 수익창출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며 “관련 법도 교육기관 책무에 부합하도록 법인을 규제하는 성격이 강해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2023년 사립학교법 시행령을 개정, 대학 법인의 재산 처분 제한 규정을 일부 폐지했지만 법인 재산 활용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등록금 인상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대학총장단은 이 부총리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성근 성신여대 총장은 “장학금은 국가가 학생들에게 주는 보편적 복지 중 하나인데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 장학금을 주지 않는 것은 학생 부담을 늘리는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박상규 대교협회장(중앙대 총장)도 “등록금을 인상하는 대학들에 대한 불이익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학생 89%가 반대
국제 5위 등록금

앞서 교육부는 등록금을 인상하면 정부의 국가장학금Ⅱ유형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해 왔다. 교육부는 또 올해 등록금을 동결 또는 인하하는 대학의 대학혁신지원사업과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의 인건비 집행 한도를 25%에서 30%로 상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올해만 등록금 인상을 참아달라는 뉘앙스로 이에 답변했다. 그는 “현재 권한대행 체제라 갑자기 정책을 발표하는 것도 쉽지 않고 경제도 어려워 민생이 힘들다 보니 교육부도 한 해 더 참아달라고 부탁드린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등록금을 동결할 경우, 교육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등 대학이 숨통을 틀 수 있도록 조치를 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다같이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독려했다.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회장인 변창훈 대구한의대 총장도 “새로운 교육 환경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필요하다”며 정부 차원의 노력을 요구했다.

이 부총리는 “(3년 전)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고특회계)으로 큰돈을 가져왔고, 일몰이라 올해 연장해야 하는데 많은 도움을 부탁한다”며 “라이즈를 통해서도 지방 정부가 대학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즈는 교육부가 보유하고 있던 약 2조원의 대학 재정 지원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고, 지자체는 이를 바탕으로 지역발전 전략을 고려해 대학을 선별 지원하는 체제다. 지자체는 사업비의 20%를 매칭해 총 2조4000억원이 될 예정이다.

다만 대학들은 고등교육의 안정적인 재정 확보를 위해서 중장기적으로는 법적 기반이 재정비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라이즈에 관한 우려도 이어졌다.

고창섭 충북대 총장은 “라이즈는 실용 학문에 지원이 집중된다”며 “다양성을 위해 기초학문을 발전시키는 대학들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부총리는 “인문·사회 분야 등 기초학문은 (타 학문과)융합을 했을 때 혁신의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융합연구지원 등을 늘리고 있다”고 답했다.

국가별로 인구, 재정 규모, 교육 투자비, 대학 형태와 개수 등이 달라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각국의 물가 수준을 반영한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등록금은 상위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
금액 보니…

지난해 9월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2024에 따르면 2022년(810.43원/달러) 국내 국·공립대 등록금은 5171달러로 2019년 대비 6.9% 상승했다. 사립대 등록금은 9279달러로 7.1% 올랐다.

국·공립대는 관련 자료를 제출한 국가 24개 중 6번째로 높았으며, 사립대는 13개국 중 5위였다. 등록금이 가장 비싼 국가 1∼5위는 영국(1만3135달러), 미국(9596달러), 일본(5645달러), 캐나다(5590달러), 리투아니아(5458달러)였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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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