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이기흥 잡은 유승민

탁구 영웅, 체육 대통령 됐다

[일요시사 취재 1팀] 안예리 기자 = ‘아테네의 영웅’이었던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대한체육회장 선거서 3연임을 노리던 이기흥 현 회장을 꺾으면서 또 한 번 반전의 역사를 쓴 것이다. 역대 대한체육회장 중 최연소(43세)로 새로운 수장이 된 유 신임 회장은 한국체육계의 미래를 이끌게 됐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소재의 올림픽홀서 열린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서 가장 많은 표(34.5%)를 얻은 유승민 후보가 당선됐다. 이번 선거에는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 김용주 전 강원특별자치도체육회 사무처장, 유승민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강태선 현 서울특별시체육회장, 오주영 현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 강신욱 현 단국대학교 명예교수까지 총 6명이 후보자로 출마했다. 

3연임 저지
변화 시발점

이번 선거는 역대 최대 경쟁률을 기록했다. 투표인단은 총 2244명이었고 대한체육회 대의원, 종목단체, 시·도 체육회, 시·군·구 체육회 임원 및 대의원, 선수, 지도자, 동호인들로 꾸려졌다.

2244명 중 1209명(투표율 53.9%)이 투표에 참여했고 유승민 후보가 417표 34.5%, 이기흥 후보 379표, 강태선 후보 216표, 강신욱 후보 120표, 오주영 후보 59표, 김용주 후보 15표, 무효표 3표로 유 후보가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 유 후보와 이 후보는 단 38표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이 회장은 3연임을 노렸지만, 체육계는 기존 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유승민을 선택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한국 체육계가 현 체제의 변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유 당선인은 지방체육회와 종목단체의 자립성 확보를 통한 동반 성장, 선수와 지도자 케어 시스템 도입, 학교 체육 활성화 프로젝트 추진, 생활체육 전문화를 통한 선진 스포츠 인프라 구축, 글로벌 중심 K-스포츠 육성과 대한체육회 수익 플랫폼 구축을 통한 자생력 제고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유 당선인이 내건 공약들은 많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 잡았다.

물론 공약만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동요시킨 것은 아니다. 유 당선인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체육회 가맹 68개 전 종목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지난 7일 유 당선인의 캠프 측 관계자는 “유 당선인은 출마 기자회견 이후 3개월 이상 대한체육회 가맹 68개 종목을 직접 체험하기에 나섰다”며 “계절적인 요인으로 체험이 어려웠던 패러글라이딩과 수상스키를 제외하고는 경기장과 코트를 일일이 찾아 대부분의 종목 체험을 마쳤다”고 밝혔다.

택견이나 태권도 같은 전통 무술과 배드민턴, 테니스 등 라켓 종목, 승마, 수영 등 전 종목을 직접 체험한 이유는 모든 종목을 경험하며 선수, 지도자와 만나 각 종목 선수들이 겪는 고충과 현안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현정화 전 탁구 감독은 “전 종목 체험은 유 당선인이 젊고 소통하려는 진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유 당선인은 선수 시절이나 탁구협회장 때도 엄청난 에너지로 목표한 것을 이뤄내는 집념이 있었다. 체육회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으로 확신한다”고 신뢰했다.

김택수 미래에셋 탁구단 감독은 “유 당선인이 선수로 최고 자리에 올랐고, 지도자와 행정가로서 성과를 내 자질을 검증받았다”며 “선거 공약은 직접 전국을 돌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체험을 바탕으로 진정성을 갖고 다가갔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38표 차’ 대한체육회장 당선 대이변
42세 역대 최연소 수장 “변화 선택”

이번 선거는 이 회장과 ‘반 이기홍 연대’ 간의 대결이었다. 이 회장의 직원 부정 채용 및 금품수수, 후원 물품 횡령, 선수촌 시설 관리업체 입찰 비리 의혹 등으로 유 당선인을 포함한 다섯명의 후보가 이 회장의 실정을 비판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여론은 이 회장의 3연임 성공을 점쳤다. 각종 비위 혐의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부터 직무 정지를 당하고 사법 당국의 수사를 받아 비판 여론이 컸지만, 역대 최다 인원인 6명이 회장 선거에 입후보하고 ‘반 이기흥’ 단일화가 끝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 당선인은 야권 단일화 논의에 참여했었지만 “야권 후보들 사이에 권위 의식과 연장자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각종 의혹으로 수사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도전 자격을 승인받아 출마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부를 겨냥해 “문화체육관광부, 검찰, 경찰, 국회, 국조실, 감사원 등 거의 모든 국가 권력기관이 체육회 조사에 나섰다”며 “나를 악마화하고 있다”고 강력 항의했다.

이 회장은 문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체육회장 집행 정지 신청 항고심서 1심에 이어 패했다. 체육회장에 당선된 뒤 국면을 전환시키겠다던 이 회장의 전략은 끝내 좌절됐다.

한편 유 당선인은 대한탁구협회 회장 재임 시절 ▲후원금 페이백 의혹 ▲2020 도쿄올림픽 탁구 국가대표 선발 과정서 선수 바꿔치기 의혹을 받았다.

지난 4일 열린 제1차 후보자 정책토론회서 그는 “후원금 유치를 위해 인센티브 제도를 만든 건 사실이지만, 총 100억원의 후원금 가운데 직접 끌어온 28억5000만원에 대해 단 한 푼의 인센티브도 받지 않았다”면서 “대한체육회 감사를 매년 받았고, 5년간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법인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도쿄올림픽 당시 경기력향상위원회서 추천한 선수가 있었지만 선발전 성적과 세계랭킹이 더 높은 선수를 최종 선발했다”며 “위원회서 추천한 선수를 뽑았다면 오히려 불공정했다는 사회적 논란이 일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당선인은 해당 의혹을 제기한 후보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젊은 피
행정가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로부터 시작됐다. 안세영은 ‘28년 만의 금메달이라는 영광’을 안았지만, 대한배드민턴 협회의 비리와 불합리한 행정을 비판하고 한국 체육 행정의 변화를 요구했다.

안세영의 목소리는 개혁의 씨앗이 돼 닫혀 있던 체육계 내부의 말문을 틔웠다. 그동안 체육계에 뿌리 깊었던 비효율적 행정 시스템에 대한 젊은 선수들의 불만을 안세영이 대변함으로써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의 선거공약은 체육인들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유 당선인은 체육계의 오래된 관습을 타파하고, 더 나은 행정과 투명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으로 많은 체육인들의 지지를 얻었다.

유 당선인의 현재 가치관은 고단했던 선수 생활로부터 형성됐다. 선수 시절부터 뛰어난 면모를 보였던 그는 중학생 때 국가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어렸을 적부터 천부적 재능을 보였다. ‘탁구 천재’라는 수식어만큼 타고난 재능이 있었지만, 부친과 함께 체력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등 노력파로 통한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이미 실업팀들이 서로 스카우트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고, 삼성생명의 후원을 받을 정도의 인재였다. 16세였던 1997년 아시아 주니어 탁구 선수권 단식 4강에 진출했으며, 단체전에선 우승했다.

유 당선인의 신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의 신승 연대기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서 시작됐다. 당시 한국 탁구 국가대표였던 그는 탁구 남자 단식 결승서 중국의 왕하오(당시 세계랭킹 4위)를 4-2로 꺾는 ‘녹색 테이블 반란’을 일으켰던 역사가 있다.

앞서 1999년 주니어 아시아선수권서 당시 기대주였던 운명의 상대 왕하오를 처음 마주했다. 이때 왕하오를 단식 결승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최고 유망주 반열에 올랐다.

이후 5년 만인 아테네올림픽서 왕하오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당시 거의 모든 기술적 측면서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았던 그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압도적 경기력으로 결국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번엔
역전승

2012년 은퇴 이후 유 당선인은 체육 행정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2016년 리우올림픽 기간 중에 쟁쟁한 후보였던 역도 장미란, 사격 진종오를 제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 위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IOC 선수 위원 당선 이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선수촌장을 역임한 유 당선인은 2018 평창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내고, 대한탁구협회장 선거에 당선된 후 본격적인 체육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유 당선인이 43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은퇴 후 쌓은 체육 행정가로서의 다양한 경험도 한몫했다.

선수 생활 25년, 지도자 2년, 대한탁구협회장과 IOC 선수 위원으로서 8년간 행정경험을 쌓아온 유 당선인은 대한탁구협회장 재임 중 세계선수권대회인 부산 탁구 세계선수권대회를 최초로 국내에 유치했다. 또 2018 평창기념재단 이사장으로서 ‘신남방 선수 육성 사업’ ‘드림 프로그램’ 등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유산 사업들을 차질 없이 추진했다.

유 당선인은 당선 확정 후 “선거 과정에선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이젠 더 이상 네 편 내 편이 없다. ‘스포츠’라는 한 지붕 아래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발전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장을 열겠다”며 “당선 직후 모든 후보자들에게 전화를 드렸다. 이 회장께서는 잘하라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수많은 현안에 대해 걱정했다.

주무 부처인 문체부와의 관계 회복은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다. 이 회장이 이끄는 체제 아래서 문체부와 체육회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문체부와 체육회는 국무총리 산하 민관 합동기구인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인사 구성, 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연임 제한 폐지 내용이 담긴 정관 개정안 승인, 예산 교부 등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갈등의 여파로 체육회 예산은 약 1000억원가량 줄어들었다. 특히 문체부는 대한체육회를 거쳐 시도체육회로 배정되던 예산 400억원을 직접 교부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체육회 주요 사업이 문체부 등 다른 기관으로 이관되면서 삭감 폭이 더욱 커졌다.

21년 전 왕하오 꺾듯
또다시 짜릿한 신화

이에 대해 유 당선인은 “나는 아직 누군가와 척을 져본 적이 없다. 그 부분은 부드럽게 잘 풀리지 않을까 싶다”며 “지금은 체육계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정부와 소통으로 해결된다면 빠르게 대화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방체육회의 독립 행정과 예산 집행이 안 되면 줄기가 막힌다. 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지방체육회의 경우 시간이 많지 않다. 아수라장이 돼버린 학교 체육 정상화에도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대한탁구협회장, IOC 선수 위원, 2018 평창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문체부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유 당선인은, 정부와의 갈등을 해소할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현재 체육계는 정말 많은 현안을 갖고 있는데,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부족하지만, 열심히 그 역할을 해보도록 하겠다. 체육인이라는 자긍심을 잃지 말아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경쟁력을 한층 높이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체육회에 대해 “내부 조직은 물론, 사업 방식 등에 정체돼있거나 개선 여지가 있는 부분들을 찾아낼 것”이라며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바꿔 자존감이 낮아진 체육회 직원들에게 새로운 동기 부여를 하겠다. 개혁의 목적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단 따돌림으로 사망한 철인3종경기 선수 고 최숙현의 부친으로부터 당선 직후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는 그는 “대한민국 체육이 건강하고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는 문자 내용을 확인하고 가슴이 먹먹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IOC 선수 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IOC 산하 인권 소위원회에 몸담으며 배우고 익힌 내용들을 적극활용해 체육인들의 인권 보장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유 당선인에게는 2026 밀라노·코리티나담폐초동계올림픽,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아경기대회, 2028 LA 올림픽 등 다수의 국제종합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이들 대회서 좋은 성적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도 맡았다.

또 생활체육 활성화 및 학교 체육 진흥 등 체육계 전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등 현안들이 포진해있다. 대한체육회장은 연간 4400억원의 예산 집행을 결정하며, 정회원 64개, 준회원 4개, 인정회원 15개 등 총 84개 종목단체를 총괄해야 한다.

새로운 바람
책임감 막중

유 당선인의 당선은 앞으로 체육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 올 것을 암시한다. 기존 관습을 타파하고 개혁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유 당선인은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다음달 취임한다. 임기는 2029년 2월까지로, 앞으로 4년간 한국 체육계의 미래를 책임지게 된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의 행보에 체육계의 미래가 달려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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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