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이기흥 잡은 유승민

탁구 영웅, 체육 대통령 됐다

[일요시사 취재 1팀] 안예리 기자 = ‘아테네의 영웅’이었던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대한체육회장 선거서 3연임을 노리던 이기흥 현 회장을 꺾으면서 또 한 번 반전의 역사를 쓴 것이다. 역대 대한체육회장 중 최연소(43세)로 새로운 수장이 된 유 신임 회장은 한국체육계의 미래를 이끌게 됐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소재의 올림픽홀서 열린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서 가장 많은 표(34.5%)를 얻은 유승민 후보가 당선됐다. 이번 선거에는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 김용주 전 강원특별자치도체육회 사무처장, 유승민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강태선 현 서울특별시체육회장, 오주영 현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 강신욱 현 단국대학교 명예교수까지 총 6명이 후보자로 출마했다. 

3연임 저지
변화 시발점

이번 선거는 역대 최대 경쟁률을 기록했다. 투표인단은 총 2244명이었고 대한체육회 대의원, 종목단체, 시·도 체육회, 시·군·구 체육회 임원 및 대의원, 선수, 지도자, 동호인들로 꾸려졌다.

2244명 중 1209명(투표율 53.9%)이 투표에 참여했고 유승민 후보가 417표 34.5%, 이기흥 후보 379표, 강태선 후보 216표, 강신욱 후보 120표, 오주영 후보 59표, 김용주 후보 15표, 무효표 3표로 유 후보가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 유 후보와 이 후보는 단 38표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이 회장은 3연임을 노렸지만, 체육계는 기존 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유승민을 선택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한국 체육계가 현 체제의 변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유 당선인은 지방체육회와 종목단체의 자립성 확보를 통한 동반 성장, 선수와 지도자 케어 시스템 도입, 학교 체육 활성화 프로젝트 추진, 생활체육 전문화를 통한 선진 스포츠 인프라 구축, 글로벌 중심 K-스포츠 육성과 대한체육회 수익 플랫폼 구축을 통한 자생력 제고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유 당선인이 내건 공약들은 많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 잡았다.

물론 공약만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동요시킨 것은 아니다. 유 당선인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체육회 가맹 68개 전 종목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지난 7일 유 당선인의 캠프 측 관계자는 “유 당선인은 출마 기자회견 이후 3개월 이상 대한체육회 가맹 68개 종목을 직접 체험하기에 나섰다”며 “계절적인 요인으로 체험이 어려웠던 패러글라이딩과 수상스키를 제외하고는 경기장과 코트를 일일이 찾아 대부분의 종목 체험을 마쳤다”고 밝혔다.

택견이나 태권도 같은 전통 무술과 배드민턴, 테니스 등 라켓 종목, 승마, 수영 등 전 종목을 직접 체험한 이유는 모든 종목을 경험하며 선수, 지도자와 만나 각 종목 선수들이 겪는 고충과 현안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현정화 전 탁구 감독은 “전 종목 체험은 유 당선인이 젊고 소통하려는 진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유 당선인은 선수 시절이나 탁구협회장 때도 엄청난 에너지로 목표한 것을 이뤄내는 집념이 있었다. 체육회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으로 확신한다”고 신뢰했다.

김택수 미래에셋 탁구단 감독은 “유 당선인이 선수로 최고 자리에 올랐고, 지도자와 행정가로서 성과를 내 자질을 검증받았다”며 “선거 공약은 직접 전국을 돌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체험을 바탕으로 진정성을 갖고 다가갔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38표 차’ 대한체육회장 당선 대이변
42세 역대 최연소 수장 “변화 선택”

이번 선거는 이 회장과 ‘반 이기홍 연대’ 간의 대결이었다. 이 회장의 직원 부정 채용 및 금품수수, 후원 물품 횡령, 선수촌 시설 관리업체 입찰 비리 의혹 등으로 유 당선인을 포함한 다섯명의 후보가 이 회장의 실정을 비판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여론은 이 회장의 3연임 성공을 점쳤다. 각종 비위 혐의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부터 직무 정지를 당하고 사법 당국의 수사를 받아 비판 여론이 컸지만, 역대 최다 인원인 6명이 회장 선거에 입후보하고 ‘반 이기흥’ 단일화가 끝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 당선인은 야권 단일화 논의에 참여했었지만 “야권 후보들 사이에 권위 의식과 연장자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각종 의혹으로 수사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도전 자격을 승인받아 출마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부를 겨냥해 “문화체육관광부, 검찰, 경찰, 국회, 국조실, 감사원 등 거의 모든 국가 권력기관이 체육회 조사에 나섰다”며 “나를 악마화하고 있다”고 강력 항의했다.

이 회장은 문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체육회장 집행 정지 신청 항고심서 1심에 이어 패했다. 체육회장에 당선된 뒤 국면을 전환시키겠다던 이 회장의 전략은 끝내 좌절됐다.

한편 유 당선인은 대한탁구협회 회장 재임 시절 ▲후원금 페이백 의혹 ▲2020 도쿄올림픽 탁구 국가대표 선발 과정서 선수 바꿔치기 의혹을 받았다.

지난 4일 열린 제1차 후보자 정책토론회서 그는 “후원금 유치를 위해 인센티브 제도를 만든 건 사실이지만, 총 100억원의 후원금 가운데 직접 끌어온 28억5000만원에 대해 단 한 푼의 인센티브도 받지 않았다”면서 “대한체육회 감사를 매년 받았고, 5년간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법인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도쿄올림픽 당시 경기력향상위원회서 추천한 선수가 있었지만 선발전 성적과 세계랭킹이 더 높은 선수를 최종 선발했다”며 “위원회서 추천한 선수를 뽑았다면 오히려 불공정했다는 사회적 논란이 일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당선인은 해당 의혹을 제기한 후보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젊은 피
행정가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로부터 시작됐다. 안세영은 ‘28년 만의 금메달이라는 영광’을 안았지만, 대한배드민턴 협회의 비리와 불합리한 행정을 비판하고 한국 체육 행정의 변화를 요구했다.

안세영의 목소리는 개혁의 씨앗이 돼 닫혀 있던 체육계 내부의 말문을 틔웠다. 그동안 체육계에 뿌리 깊었던 비효율적 행정 시스템에 대한 젊은 선수들의 불만을 안세영이 대변함으로써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의 선거공약은 체육인들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유 당선인은 체육계의 오래된 관습을 타파하고, 더 나은 행정과 투명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으로 많은 체육인들의 지지를 얻었다.

유 당선인의 현재 가치관은 고단했던 선수 생활로부터 형성됐다. 선수 시절부터 뛰어난 면모를 보였던 그는 중학생 때 국가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어렸을 적부터 천부적 재능을 보였다. ‘탁구 천재’라는 수식어만큼 타고난 재능이 있었지만, 부친과 함께 체력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등 노력파로 통한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이미 실업팀들이 서로 스카우트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고, 삼성생명의 후원을 받을 정도의 인재였다. 16세였던 1997년 아시아 주니어 탁구 선수권 단식 4강에 진출했으며, 단체전에선 우승했다.

유 당선인의 신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의 신승 연대기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서 시작됐다. 당시 한국 탁구 국가대표였던 그는 탁구 남자 단식 결승서 중국의 왕하오(당시 세계랭킹 4위)를 4-2로 꺾는 ‘녹색 테이블 반란’을 일으켰던 역사가 있다.

앞서 1999년 주니어 아시아선수권서 당시 기대주였던 운명의 상대 왕하오를 처음 마주했다. 이때 왕하오를 단식 결승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최고 유망주 반열에 올랐다.

이후 5년 만인 아테네올림픽서 왕하오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당시 거의 모든 기술적 측면서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았던 그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압도적 경기력으로 결국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번엔
역전승

2012년 은퇴 이후 유 당선인은 체육 행정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2016년 리우올림픽 기간 중에 쟁쟁한 후보였던 역도 장미란, 사격 진종오를 제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 위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IOC 선수 위원 당선 이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선수촌장을 역임한 유 당선인은 2018 평창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내고, 대한탁구협회장 선거에 당선된 후 본격적인 체육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유 당선인이 43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은퇴 후 쌓은 체육 행정가로서의 다양한 경험도 한몫했다.

선수 생활 25년, 지도자 2년, 대한탁구협회장과 IOC 선수 위원으로서 8년간 행정경험을 쌓아온 유 당선인은 대한탁구협회장 재임 중 세계선수권대회인 부산 탁구 세계선수권대회를 최초로 국내에 유치했다. 또 2018 평창기념재단 이사장으로서 ‘신남방 선수 육성 사업’ ‘드림 프로그램’ 등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유산 사업들을 차질 없이 추진했다.

유 당선인은 당선 확정 후 “선거 과정에선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이젠 더 이상 네 편 내 편이 없다. ‘스포츠’라는 한 지붕 아래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발전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장을 열겠다”며 “당선 직후 모든 후보자들에게 전화를 드렸다. 이 회장께서는 잘하라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수많은 현안에 대해 걱정했다.

주무 부처인 문체부와의 관계 회복은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다. 이 회장이 이끄는 체제 아래서 문체부와 체육회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문체부와 체육회는 국무총리 산하 민관 합동기구인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인사 구성, 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연임 제한 폐지 내용이 담긴 정관 개정안 승인, 예산 교부 등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갈등의 여파로 체육회 예산은 약 1000억원가량 줄어들었다. 특히 문체부는 대한체육회를 거쳐 시도체육회로 배정되던 예산 400억원을 직접 교부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체육회 주요 사업이 문체부 등 다른 기관으로 이관되면서 삭감 폭이 더욱 커졌다.

21년 전 왕하오 꺾듯
또다시 짜릿한 신화

이에 대해 유 당선인은 “나는 아직 누군가와 척을 져본 적이 없다. 그 부분은 부드럽게 잘 풀리지 않을까 싶다”며 “지금은 체육계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정부와 소통으로 해결된다면 빠르게 대화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방체육회의 독립 행정과 예산 집행이 안 되면 줄기가 막힌다. 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지방체육회의 경우 시간이 많지 않다. 아수라장이 돼버린 학교 체육 정상화에도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대한탁구협회장, IOC 선수 위원, 2018 평창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문체부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유 당선인은, 정부와의 갈등을 해소할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현재 체육계는 정말 많은 현안을 갖고 있는데,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부족하지만, 열심히 그 역할을 해보도록 하겠다. 체육인이라는 자긍심을 잃지 말아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경쟁력을 한층 높이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체육회에 대해 “내부 조직은 물론, 사업 방식 등에 정체돼있거나 개선 여지가 있는 부분들을 찾아낼 것”이라며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바꿔 자존감이 낮아진 체육회 직원들에게 새로운 동기 부여를 하겠다. 개혁의 목적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단 따돌림으로 사망한 철인3종경기 선수 고 최숙현의 부친으로부터 당선 직후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는 그는 “대한민국 체육이 건강하고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는 문자 내용을 확인하고 가슴이 먹먹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IOC 선수 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IOC 산하 인권 소위원회에 몸담으며 배우고 익힌 내용들을 적극활용해 체육인들의 인권 보장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유 당선인에게는 2026 밀라노·코리티나담폐초동계올림픽,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아경기대회, 2028 LA 올림픽 등 다수의 국제종합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이들 대회서 좋은 성적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도 맡았다.

또 생활체육 활성화 및 학교 체육 진흥 등 체육계 전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등 현안들이 포진해있다. 대한체육회장은 연간 4400억원의 예산 집행을 결정하며, 정회원 64개, 준회원 4개, 인정회원 15개 등 총 84개 종목단체를 총괄해야 한다.

새로운 바람
책임감 막중

유 당선인의 당선은 앞으로 체육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 올 것을 암시한다. 기존 관습을 타파하고 개혁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유 당선인은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다음달 취임한다. 임기는 2029년 2월까지로, 앞으로 4년간 한국 체육계의 미래를 책임지게 된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의 행보에 체육계의 미래가 달려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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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수사’ 스텝 꼬이는 내막

‘12·3 비상계엄 수사’ 스텝 꼬이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시태를 수사하는 검찰과 공수처의 스텝이 꼬이고 있다. 국무위원들에 대한 내란죄 적용 여부를 두고 법리 검토에 나섰으나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직권남용 미수도 문제다. 현행법상 처벌이 불가하다. 비상식적 지시와 명령을 내린 혐의를 받는 전·현직 장관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이전부터 사건이 꼬이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공소장에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포함한 국무위원들의 그릇된 판단이 적나라하게 적시돼있다. 윤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했다면 내란 동조 또는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지시를 듣기만 했다면 다르다. ‘미수’에 그치기에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증언 거부 모르쇠로 <일요시사>가 입수한 윤 대통령의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이 전 장관에게 특정 언론사와 여론조사 업체 봉쇄 및 단전·단수를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경찰 조사에서 이 내용은 빼놓고 진술했다. 단전·단수 지시 의혹에 대한 국회 질의에도 증언을 거부한 채 ‘모르쇠’로 일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를 소집한 자리서 집무실로 들어온 이 전 장관에게 ‘24시경(자정에)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MBC, JTBC,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 단수하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건을 보여주는 등 계엄 선포 이후 조치사항을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이에 포고령이 발령된 직후인 3일 밤 11시34분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전화해 경찰의 조치 상황 등을 확인한 다음 3분 뒤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자정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JTBC·MBC, 여론조사 꽃에 경찰이 투입될 것인데 경찰청서 단전·단수 협조 요청이 오면 조치해줘라”라고 지시했다. 허 청장은 소방청 차장에게 같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공소장 내용은 경찰이 확보한 이 전 장관의 진술과 대조적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16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본부장) 조사에서 조 청장과 허 청장에게 연이어 전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따로 지시를 내린 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물어보려 조 청장에게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은 조 청장이)다른 누구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며 “아무 응답이 없어 조금 기분이 나빠서 대화도 전혀 하지 못한 채 제가 일방적으로 끊었다”고 했다. 또 “이후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사건 사고 들어온 것이 있느냐? 때가 때인 만큼 국민 안전을 각별히 챙겨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사전에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상계엄에 관한 준비나 필요한 조치를 지시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취지의 경찰 질문에도 “전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이상민에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범죄 시도했는데 실패 미수범 처벌 불가?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전 한덕수 국무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만류에도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나고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된다. 국무위원의 상황 인식과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다르다.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며 계엄을 강행했다. 이후 조 장관에게 ‘재외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켜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서를 건넸다. 윤 대통령 곁을 거의 내내 지켰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첫 증인으로 출석해 “최 대행에게 전달된 ‘비상입법기구’ 쪽지와 조태열 장관에게 건넨 문건 외에도 한덕수 총리와 이 전 장관 등에게도 쪽지를 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무위원 대다수는 윤 대통령이 최 대행과 조 장관에게 쪽지를 주는 걸 보지 못했고 윤 대통령으로부터 문건을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와 연결된 직권남용 혐의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애를 먹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수괴)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공소제기 요구’ 의견으로 검찰에 이첩한 후 이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법리 검토에 집중했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수사 역시 직권남용 혐의를 고리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공수처는 내란죄에 대한 직접수사 권한이 없다.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되는가 여부를 검토해도 수사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권남용죄는 범죄를 시도해 성공한 기수범 외 범죄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미수범에 대해서는 별도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갈리는 의견들 실제 단전·단수 의혹의 경우 이 전 장관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허석곤 소방청장은 지난달 13일 국회서 이 전 장관으로부터 “특정 몇 가지 언론사에 대해 경찰청 쪽에서 (단전·단수)요청이 있으면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사건을 다시 경찰에 이첩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계엄 선포 당시 언론사 단전·단수 의혹을 포함해 경찰이 이 전 장관 사건을 넘겨받아 조사하기로 공수처와 협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수본 관계자는 “공수처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이 전 장관에 대한 소환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국수본은 지금까지 계엄 사태와 관련해 이 전 장관을 포함해 총 53명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 중 당정 관계자는 28명, 군 20명, 경찰 5명 등이다. 지금까지 8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11명을 공수처 및 군 검찰에 이첩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별동대 성격인 사조직 ‘수사2단’ 의혹을 받는 방정환 2기갑여단장과 구삼회 국방부 혁신기획관도 지난달 22일 검찰에 송치했다. 공수처는 경찰에 한 총리와 이 전 장관의 사건을 이첩한 데 이어 검찰에도 이 전 장관 사건을 이첩했다. 한 총리 사건을 재이첩하는 이유에 대해선 “중복 수사 방지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지난해 12월 한 총리 조사를 한 차례 진행하고 계속 수사 중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수처가 사건을 다시 넘긴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체포·구속에 전념한다며 속도를 내지 못하던 이 전 장관 사건도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허석권 소방청장 등 소방청 간부들을 조사한 게 사실상 전부였다. 이 전 장관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지적에도 직권남용죄의 ‘관련 범죄’로 수사할 수 있다며 윤 대통령 사건을 건네받으면서 논란만 키웠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구속했지만, 이후엔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후 사건을 검찰에 돌려보냈다. 진행은 했는데…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자 경찰과 협의도 없이 “집행을 경찰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가 하루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첩 요청해서 받은 사건을 다시 돌려보내며 두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지체됐다는 비판에 대해 “이 전 장관의 단전·단수 의혹이 국회서 불거지자마자 관련자 진술을 받았고 자료도 검토했기 때문에 지체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두 수사기관에 각각 사건을 반환하는 이유에 대해선 “경찰은 사건을 이첩할 때 3가지 혐의를 적시한 반면, 검찰은 군형법상 반란 혐의를 포함해 8가지 혐의를 이첩했다”며 “검찰이 보는 혐의점이 많고 현재 군 검사들이 함께 수사하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반란 혐의를 수사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태스크포스(TF)를 유지하며 경찰 간부 등 남은 수사 대상에 대한 수사에 총력을 모으기로 했다. 경찰이 공수처에 이첩한 피의자 총 15명 중 경찰 간부는 조 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김준영 경기남부경찰청장(치안정감), 목현태 전 국회경비대장(총경) 등이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은 이미 구속 기소된 상태인 만큼, 김 청장과 목 전 대장만 남았다. 공수처 관계자는 “경찰 간부는 저희가 직접 기소할 수도 있어서 최선을 다해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경무관 이상 경찰 공무원에 대한 기소권을 갖는다.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국무위원들과 군·경찰 간부들을 상대로 내란죄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형법상 내란죄는 ‘우두머리’ ‘중요임무종사’ ‘부화수행’ 3단계로 구분해 처벌할 수 있다. 공수처, 사건 검경 재이첩 “시간만 날려” 중요임무종사·부화수행 혐의 적용 관건 나머지 수사는 ‘부화수행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에 대한 처리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피의자들이 계엄을 위헌·위법이라고 인식했는데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거나 가담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우선 검찰은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전 소집한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11명을 수사선상에 올려놨다. 검찰은 한 총리, 최 대행(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 장관 등이 계엄에 반대했다고 보고 있다. 국무회의 자체도 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계엄을 통보했을 뿐 실질적 논의도 없었던 데다 회의록도 없을 만큼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들이 계엄에 대한 후속 조치나 사전 준비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 부화수행이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최근 정성우 전 국군방첩사령부 1처장을 비롯한 군 중간급 간부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정 전 처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를 지시하자 군법무관 회의를 거쳐 강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항변했다. 방첩사 병력을 출동시키긴 했지만 고무탄총·가스총만 가진 사실상 비무장 상태로, ‘선관위 청사 내부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지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정치인 체포조’ 지원 의혹에 연루된 경찰 간부들도 피의자로 입건해 지난달 31일 압수수색했다. 이들이 방첩사의 요청을 받고 체포조 지원을 지시하거나 묵인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고위직은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중간직은 부화수행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국회 주변 계엄령 위반자 체포인 줄 알았지 특정 정치인 체포인 줄 몰랐다는 입장이다. 머리 아픈 남은 수사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부화수행 혐의를 어떤 사람에게 적용해야 할지가 고비가 될듯하다. 계엄 관련 위헌·위법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로 받을 수 있는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일부 참작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란죄가 중대범죄인 만큼 부화수행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진다. 공무원·군인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파면되고 연금이 절반으로 깎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