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푸릇하게 ③국립한국자생식물원

찬 기온을 머금은 바람이 살랑 부니 나뭇가지에 매달린 윈드차임에서 ‘차라라’ 소리가 울린다. 마치 실로폰을 연주하는 듯 기분 좋은 멜로디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겨울에 오대산 기슭 숲속에 서 있으니 차분하게 가라앉은 평온함이 방문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숲속의 상록수들이 변함없는 푸른 자태로 반겨주니 한겨울도 온기마저 느껴진다.

연구센터를 겸한 국립한국자생식물원 방문자센터 로비는 폐목재를 활용해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이 놓여있어 포근한 분위기다. 판매대에 진열된 곤충과 동물 모양의 공예품, 접시와 머그잔 같은 도자기 제품, 여러 가지 생활 소품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나만의 컵이나 접시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초벌된 도자기 제품에 식물 이미지를 그려 넣으면 재벌한 뒤 완성한 제품을 택배로 집까지 보내준다.

포근한 분위기

찬바람에 언 몸은 겨울철 한정으로 제공되는 무료 음료로 녹일 수 있다. 아메리카노와 얼그레이, 캐모마일, 애플 티 중 원하는 것으로 선택할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핫초코도 준비돼있다. 방문자센터 2층에 마련된 카페 공간에서 커다란 창을 통해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음료를 즐겨보자. 눈이 많이 내리는 대관령 지역이어서 12월 하순 이후에는 설경을 만나는 날도 많다.

그런 날이면 나뭇가지에 눈꽃이 피어 동심을 자극하는 낭만적인 풍경을 만나게 된다. 창밖의 설경을 감상하며 마시는 차 한 잔의 호사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차를 마시며 테이블 주변에 비치된 책을 읽는 것도 좋다.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숲속 책장에 조정래 작가가 기증한 도서를 포함해 약 2만여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 일부를 주기적으로 바꿔가면서 방문객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비치한다.

지금의 모습을 갖춘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지난해 7월에 문 열었다. 식물원 곳곳에는 이곳을 설립한 김창열 원장의 손길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김 원장은 전국을 다니며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을 채취해 이곳에서 야생화 농사를 지었다.


이후 1999년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자생식물로 구성한 사립 식물원을 개원했다. 수십 개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다른 식물원과 차별되는 점은 외래종을 배제하고 오직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로만 구성한 식물원이라는 것이다.

이곳의 식물이 더 나은 보살핌을 받고 많은 사람이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은 2021년 산림청에 기부로 이어졌고 국립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최소 100년간 이곳을 식물원으로 운영할 것도 조건으로 내세웠다. 환경부서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식물 서식지 외 보전기관이며 산림청서 지정한 국가희귀·특산물 보전기관이라는 것이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의 가치를 말해준다.

국내종 다양한 관람 공간
대표적 야생화 볼 수 있어

관람 공간은 크게 희귀식물원과 특산식물원, 100회마라톤공원, 동물이름식물원, 모둠정원, 비밀의화원, 비안의언덕으로 구성돼있다. 모두 야외공간이어서 겨울에는 꽃과 화초를 만날 수 없다. 이를 보완해 겨울에도 야생화를 볼 수 있도록 전시 온실을 조성 중이다.

국립한국자생식물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 대표 야생화로 단양쑥부쟁이를 들 수 있다. 단양서 처음 발견돼 붙은 이름으로 구절초, 벌개미취와 함께 가을을 대표하는 야생화다.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귀한 식물이지만 생명력이 강해 군락을 이뤄 자생하는 꽃이다.

비안의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은 야생화 재배단지에도 가을 식물원을 대표하는 또 다른 식물인 벌개미취 군락지가 있다. 대군락을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에 방문객이 사진 명소로 사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깽깽이풀은 희귀식물원서 이른 봄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린다. 보라색의 앙증맞은 꽃잎이 예쁜 꽃이다. 모둠정원도 눈길을 끄는 공간 중 하나다. 옹달샘정원, 산나물정원, 우리집정원 등으로 구성돼있다. 그중 전원주택서 정원을 만들 때 참고할 만한 모델을 제시한 우리집정원은 아기자기한 예쁜 공간으로 꾸며놓아 포토스폿으로도 손색이 없다.


숲속 책장 옆으로 난 덱을 따라가면 비밀의화원을 만난다. 우리나라 고유의 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자라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다. 20m는 되어 보이는 소나무 군락은 겨울에도 푸른 초록을 품고 있다. 소나무 아래 장독대가 놓인 건물 한 채는 오대산 자락의 어느 산촌 풍경을 옮겨놓은 듯하다.

월정사성보박물관은 조계종 4교구 본사인 월정사와 60여개 말사에서 기증받은 4000여점의 국가유산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 국보인 평창 월정사 석조석조보살좌상과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서 발견된 진신사리가 대표적이다. 사바 세계서 극락정토로 이동한다는 의미를 지닌 연꽃 다리를 건너 만나는 성보실에는 불상, 불화 더불어 2층 높이의 미디어아트가 눈길을 끈다.

월정사

오대산자연명상마을의 가람채는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공간이다. 하룻밤 묵으며 마음을 치유하는 명상 체험을 할 수 있다. 객실에는 인터넷과 전자제품을 없앤 대신 개인 명상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오대산동림선원서 아침 요가 명상과 저녁 치유 명상을 진행한다. 자연명상마을서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나 선재길 종점까지 산책로도 걷는다. 저녁과 아침에 채식도 제공된다.

아름다운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월정사는 청정한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이다. 지장율사가 신라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창건한 사찰로 1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다. 고려 초기에 제작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등 여러 국보와 국가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산사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해보자.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국립한국자생식물원→월정사성보박물관→월정사→상원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국립한국자생식물원→월정사→상원사→오대산자연명상마을(숙박)
-둘째 날 한강시원지체험관→월정사성보박물관→모나 용평 스키장

관련 웹 사이트 주소
-평창군 문화관광 https://tour.pc.go.kr
-국립한국자생식물원 htt ps://nbgk.koagi.or.kr/intro
-월정사성보박물관 www.wjssm.kr
-오대산자연명상마을 www.omv.co.kr
-월정사 http://wolje ongsa.org/intro.php

운영 정보
-국립한국자생식물원 운영시간: 3~10월 09:00~18:00(입장은 17:00까지), 11~2월 09:00~17:00(입장은 16:00까지), 휴무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1월1일, 설·추석 당일, 요금: 어른 5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

-월정사성보박물관 운영시간: 동절기 09:00~16:50(입장은 16:30까지), 하절기 09:30~17:30(입장은 17:00까지), 휴무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1월1일, 설·추석 당일, 요금: 입장료 무료(주차요금 별도)

-오대산자연명상마을 운영시간: 체크인/체크아웃 14:00~11:00, 휴무일: 연중무휴, 요금: 1박 13만~32만원(시즌과 요일에 따라 다름)

문의 전화
-국립한국자생식물원: 033)339-9900
-월정사성보박물관: 033)339-7000
-오대산자연명상마을: 033)333-6500
-월정사: 033)339-6800


대중교통
-기차 서울역 또는 청량리역서 KTX-이음 열차를 이용해 진부(오대산)역까지 이동. 진부역 정류장서 221번(08:45, 15:06) 농어촌 버스 승차 후 진부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서 225번(07:50), 226번(09:05, 10:00, 11:00, 12:00, 13:10, 15:50, 17:00, 17:40), 227번(15:10) 농어촌 버스로 환승, 병안삼거리서 하차한 뒤 국립한국자생식물원까지 도보 약 25분(1.5㎞)

-버스 동서울터미널서 시외버스를 이용해 진부시외버스터미널까지 이동. 진부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서 225번(07:50, 08:10), 226번(10:24, 12:20, 13:24, 18:23, 19:03), 227번(15:10, 16:00) 농어촌 버스로 환승, 병안삼거리서 하차한 뒤 국립한국자생식물원까지 도보 약 25분(1.5㎞)

*문의: 평창군 버스정보시스템 080) 085-8888, https://bus.pc.go.kr

자가운전
영동고속도로 진부IC 진출→오대교교차로서 좌회전→월정삼거리까지 직진으로 진행→월정삼거리서 좌회전→진고개로 따라 직진으로 진행→병안삼거리서 우회전→약 300m 전방 국립한국자생식물원 1㎞ 이정표 방향 따라 우회전→약 1㎞ 진행→국립한국자생식물원

숙박 정보
-켄싱턴호텔 평창: 진부면 진고개로, 1670-7462, https://kensington.co.kr/hpc
-오대산힐링타운 별빛동: 진부면 오대산로, 010-9270-8358, https://odaesanstarlight.modoo.at/?link=5rjjxzm4
-하늘동화펜션: 대관령면 병내리, 010-8879-0374, www.skystory700.com

식당 정보
-진고개식당: 진부면 진고개로, 033)333-4466
-선재길식당: 진부면 오대산로, 033)336-9696
-신선희황기찐빵: 진부면 오대산로, 033)334-5127


주변 볼거리
평창송어축제: 2024년 12월27일~2025년 2월2일, 평창 송어 종합공연 체험장, www.festival700.or.kr, 대관령 눈꽃축제: 2025년 1월24일~2월2일, 평창군 대관령면 눈꽃축제장, www.snowfestival.net, 한강시원지체험관, 상원사(오대산), 모나용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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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