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친부 살해 누명 벗은 김신혜

짜깁기로 만들어진 ‘패륜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무기수로 평생을 감옥서 지내게 될 수도 있었던 김신혜씨는 억울하게 24년의 세월을 빼앗겼지만, 나머지 시간들을 돌려받았다. 김씨는 그동안 있었던 여러 차례의 재판 과정서 무죄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2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김씨의 빼앗긴 시간은 대체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친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으로 무기징역을 구형받았던 지난 6일, 재심 1심서 김신혜씨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씨의 억울함이 24년 만에 풀리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하고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있지만, 이를 유죄로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

24년 만에
되찾은 자유

김씨의 24년간의 비극은 한 남성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2000년 3월7일 전라남도 완도군의 버스 정류장서 한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발견된 장소서 약 7㎞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3급 지체 장애인으로 김씨의 아버지였다. 처음 발견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 주변에 자동차 방향 지시등이 깨져있어서 단순 뺑소니로 의심했지만 시신에 외상이 전혀 없었다.

시신 부검 결과 별다른 외상이나 출혈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혈중알코올농도는 0.303%였고, 수면 유도제 성분인 독시라민이 검출됐다. 경찰은 부검 결과에 따라 누군가가 수면유도제와 술을 이용해서 김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보고 계획적인 타살로 추정했다.

이후 수사에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그의 큰딸(당시 나이 23세) 김씨였다. 최초 신고자는 김씨의 고모부였다.

경찰은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당해 3월9일 오전 0시10분에 이 사건 용의자로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순순히 모든 범행을 인정했고, 범행 동기는 ‘아버지의 성추행’이었다고 진술했다.

사건 발생 2개월 전인 2000년 1월, 김씨는 “고향에 살고 있는 이복 여동생과의 전화 통화에서 동생이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과거 중학생 시절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었고,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 싫어서 범행을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당일 새벽 1시에 수면유도제 30알을 술에 녹여 아버지에게 ‘간에 좋은 약’이라고 속여 마시게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함께 차를 타고 이동 중에 아버지가 정신을 잃자 버스 정류장에 시신을 유기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해 현장을 떠났다고 추정했다. 현장 검증서 김씨는 밥그릇에 수면제를 갈아 넣는 모습을 재연했다.

경찰은 김씨가 아버지 앞으로 다수의 상해보험을 들어놨다는 점도 범행의 동기 중 하나인 것으로 유추했다. 수사 도중 김씨의 집에서 범행 계획을 적어 놓은 듯한 수첩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범행 도구인 ‘양주’ ‘수면제’ ‘버스정류장’과 같은 키워드를 발견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첩 안에는 보험금을 계산한 흔적이 보이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 같은 증거물들을 근거로 경찰은 김씨가 아버지를 살해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 2000년 8월12일 모든 범행 사실에 대해 인정했던 김씨는 현장검증 시점부터 돌연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처음 조사부터 현장검증, 법정서 했던 진술까지 모든 사실을 번복한 것이다. 김씨가 말을 번복하게 된 건 다름 아닌 남동생 때문이었다.

김씨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식장서 고모부와 큰아버지를 만났다. 고모부는 “네 아버지를 죽인 것은 너의 남동생”이라면서 “네가 대신에 감옥에 가야 하고, 자수를 해야 한다”며 거짓 자백을 요구했다. 심지어 큰아버지는 “성추행을 원인으로 삼으라”며 감형될 수 있는 방법까지 조언했다.

그 말을 듣고 김씨는 남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기 위해 거짓 자백을 하게 된 것이다.

국내 누명 사건 최고 장기 복역
24년간 억울함에 갇혔던 무기수

거짓 자백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이후, 김씨는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동생이 “고모부께서 네 누나가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고 말해서 누나를 걱정했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김씨는 고모부의 말에 이상함을 느끼고, 그 후 현장검증을 하던 시점부터 “아버지가 성폭행을 했을 리 없고, 고모부가 이 사건의 뒤에 있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고모부는 김씨가 “본인 스스로 자백했다”고 말했지만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면서 김씨는 “고모부의 말에 자신이 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했을 뿐, 아버지를 살해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씨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서 사건 이후 고모부와 있었던 일에 대해 밝혔다. 그는 고모부와 아버지의 장례식장서 이야기를 나눈 이후, 자신을 경찰서에 끌고 갔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이 같은 주장에 경찰은 고모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김씨가 신고 내용과 다르게 진술하고 있다”며 단순히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고인으로서 조사했고, 김씨 고모부는 “김씨의 말은 거짓말이다. 나는 김씨의 자백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결국 해당 진술은 대법원까지 모두 받아들여졌다.

김씨가 자백한 부분과 이 자백을 들었다던 고모부의 증언, 그리고 김씨가 아버지의 명의로 상해보험을 8개나 들었다는 점과 범행 계획으로 보이는 수첩이 발견된 사실들이 증거가 돼 김씨의 범죄 혐의는 기정 사실로 굳어졌다.

김씨는 경찰이 보험금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했지만, 당시 아버지 앞으로 들어놓은 8개의 보험 중 3개는 이미 해지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또 보험설계사 자격증이 있었고 3년이 지나야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또 경찰이 자신을 상대로 ‘강압수사’를 했다며 수사 과정서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억울함도 호소했다.

재판서 김씨는 아버지의 성추행 사실에 대해선 부인하며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은 없다”고 증언했다. 김씨의 주장은 대법원까지 전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2000년 8월31일 존속살해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의문의 죽음
비극의 시작

무기징역 선고 후, 복역 중에도 김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교도소의 노역을 거부했다. 노역 거부 시 향후 감형에 어려움이 있는 등 불리한 점이 많았지만 김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는 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복역 중에도 지속해서 무죄를 주장하면서 김씨의 목소리가 점점 외부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이하 대한변협) 법률구조단에도 수사 및 재판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대한변협은 해당 사건서 위법을 인지하고 법률적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김씨는 대한변협의 도움을 받아 2015년 1월28일에 재심을 청구했다. 광주지방법원은 재심 청구를 인용했고 본격적인 재심 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서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검찰은 김씨가 먼저 자수해 강압 수사할 이유가 없다는 점, 남은 보험금 5개의 수령이 가능하다는 점, 수면 유도제 30알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주장했다.

김씨는 복역 중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노트에 상세히 메모했는데, 경찰의 강압수사에 대한 부분과 불법 증거 취득에 관한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대한변협은 해당 메모 내용을 기반으로 재조사를 신청했고 후에 조사가 진행됐다.

당시 경찰서 제시했던 증거물인 김씨의 수첩에는 보험금을 계산한 내역과 범행 계획을 적어놓은 듯한 내용이 있었다. 경찰은 그 수첩이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에 대해 “나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고 그 과정서 노트에 시나리오를 작성했었다”며 “수첩에 적힌 글 중 ‘수면제’ ‘양주’ ‘버스정류장’이라는 단어가 있었고 그것을 살해 계획으로 오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버지 사망보험금 계산 내역에 대해서는 “당시 보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보험 실적을 위해 아버지의 명의로 보험 8개를 가입했었다. 그 과정서 작성했던 계산 내역”이라고 주장했다. 보험 중 3개는 이미 해지됐다는 사실과 아버지 사망 시점에는 사망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없는 약관이 있는 보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심지어 그 보험금의 실질적 수령자는 자신이 아닌 동생들과 계모라는 사실도 언급했다.

강압수사
무기 선고

김씨는 경찰의 수첩 취득 과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수첩이 발견된 장소는 집인데 이 수첩을 취득하는 과정이 위법적이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영장 없이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므로 이미 법적 효력을 상실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경찰의 강압수사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씨는 경찰의 수사 과정서 명백한 폭행과 가혹행위가 있었고 그를 통해 자백과 범행 현장 재연을 강요받았다고 호소했다. 특히 경찰이 자신의 집을 불법 수색서 김씨가 찍은 누드 사진을 경찰끼리 돌려봤고, 이를 빌미로 범죄를 인정하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김씨의 아버지가 사망 당시 음주량과 독실아민 수치에 대해 재조사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수면 유도제의 치사량이 약 100알 정도므로, 치사량으로 보기 어렵다”며 “술에 다량의 알약을 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그 정도 양을 용해시킨다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항변했다. 김씨의 자백 당시 증언대로 양주에 수면제 독실아민을 치사량만큼 먹인다면 양주 750㎖ 기준 4병을 먹여야 한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숨진 부친의 혈중알코올농도는 4병을 마셔야 나오는 수치와는 차이가 컸고, 이 사실을 경찰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경찰이 조사했던 치사량 수치에도 문제가 있었다. 치사량 수치를 계산할 때는 사망자의 정확한 체중을 필요로 한다. 경찰이 당시 조사한 체중은 60㎏이었지만, 실제 사망자의 체중은 41㎏이었다.

이로써 경찰의 조사가 미흡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증거 효력을 잃게 됐다.

김씨에게 현장 재현을 하게 했을 때, 밥그릇에 수면제를 갈았다고 했지만 실제 그 밥그릇에서는 수면제 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언급했다.

사건 당일 자신의 알리바이에 대한 억울함도 호소했다. 사건 발생 이틀 전인 2000년 3월6일에 남동생을 김씨의 고향인 완도에 데려다줬고, 김씨는 서울의 거처로 이동했다. 후에 남동생의 ‘데리러 오라’는 연락에 데리러 가려 했지만 김씨의 차량이 사고가 나 3월7일에 차량을 렌트한 후 완도로 내려갔다.

“나는 아버지 죽이지 않았다”
재판에 청춘 바쳐…결국 무죄

김씨는 완도에 있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지만 내려가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3월8일 0시경에 도착했다고 한다. 도착 후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다음 날 약속을 잡았다. 이후 집에 전화를 걸었고 김씨의 여동생이 전화를 받아 “아버지가 술에 취해 할머니와 싸우고 집에서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여동생은 김씨에게 어딘지 물어봤지만 당시 술에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워 ‘검문소 앞’이라고 거짓말했다.

앞선 재판서 경찰은 거짓말 부분에 대해 아버지를 죽이기 위한 것으로 추정했다. 김씨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는 친구들을 증인으로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김씨는 이 같은 사실을 주장하며 큰아버지와 조카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사망한 아버지의 장애인 보조금과 기타 지원금에 대한 다툼이 있었고 고소까지 하게 된 일이 있었다”며 “마음 약한 저의 아버지가 합의해줬고 그 이후로 큰아버지와의 관계도 안 좋다”고 증언했다.

큰아버지는 부친 장례식서 “너의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하면 감형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씨는 이를 근거로 사건의 배후에 큰아버지와 고모부가 관여돼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버지의 성추행은 말도 안 된다”며 “고모부가 그렇게 말하도록 시켰고 이복 여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도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딸을 추행한 파렴치한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손도 못 쓰고 보고만 있었던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아버지의 누명을 벗길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내내 이 생각만 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내용으로 약 10여년의 수감생활 동안 김씨는 무죄를 받기 위해 검찰의 주장을 반박해 왔고, 마침내 지난 6일 재심 1심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이번 재심서 범행 동기, 자수 경위와 물적 증거, 알리바이, 강압수사 여부 등을 중요하게 여겼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증거 수집 과정이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경찰 측이 내놓은 증거에 대해 “영장 없이 확보한 증거물이므로 적법 절차와 영장주의에 반한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씨의 진술이 강요에 의한 허위 자백일 수 있다는 사실도 배제하지 않았다.

피고인의 자백을 직접 들었다는 친척과 경찰관의 진술 역시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당시 김씨가 보험금을 목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주장도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보험설계사 자격증이 있었고, 보험계약 체결 2년 이내에 보험사고 발생 시 보험금 지급이 어렵다는 부분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보험금 목적?
뒤집힌 판결

또 김씨가 사건 발생 당일 친구들과 만남을 약속했던 점을 감안할 때, 사전에 범행 계획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결국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했고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있지만 이를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심서 김씨의 사건을 맡은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24년 동안 무죄를 주장해 온 당사자의 진실의 힘이 무죄의 강력한 증거”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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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