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친부 살해 누명 벗은 김신혜

짜깁기로 만들어진 ‘패륜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무기수로 평생을 감옥서 지내게 될 수도 있었던 김신혜씨는 억울하게 24년의 세월을 빼앗겼지만, 나머지 시간들을 돌려받았다. 김씨는 그동안 있었던 여러 차례의 재판 과정서 무죄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2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김씨의 빼앗긴 시간은 대체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친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으로 무기징역을 구형받았던 지난 6일, 재심 1심서 김신혜씨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씨의 억울함이 24년 만에 풀리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하고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있지만, 이를 유죄로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

24년 만에
되찾은 자유

김씨의 24년간의 비극은 한 남성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2000년 3월7일 전라남도 완도군의 버스 정류장서 한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발견된 장소서 약 7㎞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3급 지체 장애인으로 김씨의 아버지였다. 처음 발견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 주변에 자동차 방향 지시등이 깨져있어서 단순 뺑소니로 의심했지만 시신에 외상이 전혀 없었다.

시신 부검 결과 별다른 외상이나 출혈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혈중알코올농도는 0.303%였고, 수면 유도제 성분인 독시라민이 검출됐다. 경찰은 부검 결과에 따라 누군가가 수면유도제와 술을 이용해서 김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보고 계획적인 타살로 추정했다.

이후 수사에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그의 큰딸(당시 나이 23세) 김씨였다. 최초 신고자는 김씨의 고모부였다.


경찰은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당해 3월9일 오전 0시10분에 이 사건 용의자로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순순히 모든 범행을 인정했고, 범행 동기는 ‘아버지의 성추행’이었다고 진술했다.

사건 발생 2개월 전인 2000년 1월, 김씨는 “고향에 살고 있는 이복 여동생과의 전화 통화에서 동생이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과거 중학생 시절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었고,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 싫어서 범행을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당일 새벽 1시에 수면유도제 30알을 술에 녹여 아버지에게 ‘간에 좋은 약’이라고 속여 마시게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함께 차를 타고 이동 중에 아버지가 정신을 잃자 버스 정류장에 시신을 유기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해 현장을 떠났다고 추정했다. 현장 검증서 김씨는 밥그릇에 수면제를 갈아 넣는 모습을 재연했다.

경찰은 김씨가 아버지 앞으로 다수의 상해보험을 들어놨다는 점도 범행의 동기 중 하나인 것으로 유추했다. 수사 도중 김씨의 집에서 범행 계획을 적어 놓은 듯한 수첩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범행 도구인 ‘양주’ ‘수면제’ ‘버스정류장’과 같은 키워드를 발견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첩 안에는 보험금을 계산한 흔적이 보이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 같은 증거물들을 근거로 경찰은 김씨가 아버지를 살해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 2000년 8월12일 모든 범행 사실에 대해 인정했던 김씨는 현장검증 시점부터 돌연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처음 조사부터 현장검증, 법정서 했던 진술까지 모든 사실을 번복한 것이다. 김씨가 말을 번복하게 된 건 다름 아닌 남동생 때문이었다.

김씨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식장서 고모부와 큰아버지를 만났다. 고모부는 “네 아버지를 죽인 것은 너의 남동생”이라면서 “네가 대신에 감옥에 가야 하고, 자수를 해야 한다”며 거짓 자백을 요구했다. 심지어 큰아버지는 “성추행을 원인으로 삼으라”며 감형될 수 있는 방법까지 조언했다.


그 말을 듣고 김씨는 남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기 위해 거짓 자백을 하게 된 것이다.

국내 누명 사건 최고 장기 복역
24년간 억울함에 갇혔던 무기수

거짓 자백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이후, 김씨는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동생이 “고모부께서 네 누나가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고 말해서 누나를 걱정했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김씨는 고모부의 말에 이상함을 느끼고, 그 후 현장검증을 하던 시점부터 “아버지가 성폭행을 했을 리 없고, 고모부가 이 사건의 뒤에 있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고모부는 김씨가 “본인 스스로 자백했다”고 말했지만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면서 김씨는 “고모부의 말에 자신이 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했을 뿐, 아버지를 살해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씨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서 사건 이후 고모부와 있었던 일에 대해 밝혔다. 그는 고모부와 아버지의 장례식장서 이야기를 나눈 이후, 자신을 경찰서에 끌고 갔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이 같은 주장에 경찰은 고모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김씨가 신고 내용과 다르게 진술하고 있다”며 단순히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고인으로서 조사했고, 김씨 고모부는 “김씨의 말은 거짓말이다. 나는 김씨의 자백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결국 해당 진술은 대법원까지 모두 받아들여졌다.

김씨가 자백한 부분과 이 자백을 들었다던 고모부의 증언, 그리고 김씨가 아버지의 명의로 상해보험을 8개나 들었다는 점과 범행 계획으로 보이는 수첩이 발견된 사실들이 증거가 돼 김씨의 범죄 혐의는 기정 사실로 굳어졌다.

김씨는 경찰이 보험금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했지만, 당시 아버지 앞으로 들어놓은 8개의 보험 중 3개는 이미 해지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또 보험설계사 자격증이 있었고 3년이 지나야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또 경찰이 자신을 상대로 ‘강압수사’를 했다며 수사 과정서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억울함도 호소했다.

재판서 김씨는 아버지의 성추행 사실에 대해선 부인하며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은 없다”고 증언했다. 김씨의 주장은 대법원까지 전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2000년 8월31일 존속살해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의문의 죽음
비극의 시작

무기징역 선고 후, 복역 중에도 김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교도소의 노역을 거부했다. 노역 거부 시 향후 감형에 어려움이 있는 등 불리한 점이 많았지만 김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는 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복역 중에도 지속해서 무죄를 주장하면서 김씨의 목소리가 점점 외부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이하 대한변협) 법률구조단에도 수사 및 재판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대한변협은 해당 사건서 위법을 인지하고 법률적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김씨는 대한변협의 도움을 받아 2015년 1월28일에 재심을 청구했다. 광주지방법원은 재심 청구를 인용했고 본격적인 재심 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서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검찰은 김씨가 먼저 자수해 강압 수사할 이유가 없다는 점, 남은 보험금 5개의 수령이 가능하다는 점, 수면 유도제 30알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주장했다.

김씨는 복역 중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노트에 상세히 메모했는데, 경찰의 강압수사에 대한 부분과 불법 증거 취득에 관한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대한변협은 해당 메모 내용을 기반으로 재조사를 신청했고 후에 조사가 진행됐다.

당시 경찰서 제시했던 증거물인 김씨의 수첩에는 보험금을 계산한 내역과 범행 계획을 적어놓은 듯한 내용이 있었다. 경찰은 그 수첩이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에 대해 “나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고 그 과정서 노트에 시나리오를 작성했었다”며 “수첩에 적힌 글 중 ‘수면제’ ‘양주’ ‘버스정류장’이라는 단어가 있었고 그것을 살해 계획으로 오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버지 사망보험금 계산 내역에 대해서는 “당시 보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보험 실적을 위해 아버지의 명의로 보험 8개를 가입했었다. 그 과정서 작성했던 계산 내역”이라고 주장했다. 보험 중 3개는 이미 해지됐다는 사실과 아버지 사망 시점에는 사망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없는 약관이 있는 보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심지어 그 보험금의 실질적 수령자는 자신이 아닌 동생들과 계모라는 사실도 언급했다.

강압수사
무기 선고


김씨는 경찰의 수첩 취득 과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수첩이 발견된 장소는 집인데 이 수첩을 취득하는 과정이 위법적이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영장 없이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므로 이미 법적 효력을 상실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경찰의 강압수사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씨는 경찰의 수사 과정서 명백한 폭행과 가혹행위가 있었고 그를 통해 자백과 범행 현장 재연을 강요받았다고 호소했다. 특히 경찰이 자신의 집을 불법 수색서 김씨가 찍은 누드 사진을 경찰끼리 돌려봤고, 이를 빌미로 범죄를 인정하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김씨의 아버지가 사망 당시 음주량과 독실아민 수치에 대해 재조사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수면 유도제의 치사량이 약 100알 정도므로, 치사량으로 보기 어렵다”며 “술에 다량의 알약을 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그 정도 양을 용해시킨다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항변했다. 김씨의 자백 당시 증언대로 양주에 수면제 독실아민을 치사량만큼 먹인다면 양주 750㎖ 기준 4병을 먹여야 한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숨진 부친의 혈중알코올농도는 4병을 마셔야 나오는 수치와는 차이가 컸고, 이 사실을 경찰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경찰이 조사했던 치사량 수치에도 문제가 있었다. 치사량 수치를 계산할 때는 사망자의 정확한 체중을 필요로 한다. 경찰이 당시 조사한 체중은 60㎏이었지만, 실제 사망자의 체중은 41㎏이었다.

이로써 경찰의 조사가 미흡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증거 효력을 잃게 됐다.

김씨에게 현장 재현을 하게 했을 때, 밥그릇에 수면제를 갈았다고 했지만 실제 그 밥그릇에서는 수면제 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언급했다.

사건 당일 자신의 알리바이에 대한 억울함도 호소했다. 사건 발생 이틀 전인 2000년 3월6일에 남동생을 김씨의 고향인 완도에 데려다줬고, 김씨는 서울의 거처로 이동했다. 후에 남동생의 ‘데리러 오라’는 연락에 데리러 가려 했지만 김씨의 차량이 사고가 나 3월7일에 차량을 렌트한 후 완도로 내려갔다.

“나는 아버지 죽이지 않았다”
재판에 청춘 바쳐…결국 무죄

김씨는 완도에 있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지만 내려가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3월8일 0시경에 도착했다고 한다. 도착 후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다음 날 약속을 잡았다. 이후 집에 전화를 걸었고 김씨의 여동생이 전화를 받아 “아버지가 술에 취해 할머니와 싸우고 집에서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여동생은 김씨에게 어딘지 물어봤지만 당시 술에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워 ‘검문소 앞’이라고 거짓말했다.

앞선 재판서 경찰은 거짓말 부분에 대해 아버지를 죽이기 위한 것으로 추정했다. 김씨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는 친구들을 증인으로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김씨는 이 같은 사실을 주장하며 큰아버지와 조카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사망한 아버지의 장애인 보조금과 기타 지원금에 대한 다툼이 있었고 고소까지 하게 된 일이 있었다”며 “마음 약한 저의 아버지가 합의해줬고 그 이후로 큰아버지와의 관계도 안 좋다”고 증언했다.

큰아버지는 부친 장례식서 “너의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하면 감형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씨는 이를 근거로 사건의 배후에 큰아버지와 고모부가 관여돼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버지의 성추행은 말도 안 된다”며 “고모부가 그렇게 말하도록 시켰고 이복 여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도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딸을 추행한 파렴치한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손도 못 쓰고 보고만 있었던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아버지의 누명을 벗길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내내 이 생각만 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내용으로 약 10여년의 수감생활 동안 김씨는 무죄를 받기 위해 검찰의 주장을 반박해 왔고, 마침내 지난 6일 재심 1심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이번 재심서 범행 동기, 자수 경위와 물적 증거, 알리바이, 강압수사 여부 등을 중요하게 여겼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증거 수집 과정이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경찰 측이 내놓은 증거에 대해 “영장 없이 확보한 증거물이므로 적법 절차와 영장주의에 반한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씨의 진술이 강요에 의한 허위 자백일 수 있다는 사실도 배제하지 않았다.

피고인의 자백을 직접 들었다는 친척과 경찰관의 진술 역시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당시 김씨가 보험금을 목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주장도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보험설계사 자격증이 있었고, 보험계약 체결 2년 이내에 보험사고 발생 시 보험금 지급이 어렵다는 부분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보험금 목적?
뒤집힌 판결

또 김씨가 사건 발생 당일 친구들과 만남을 약속했던 점을 감안할 때, 사전에 범행 계획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결국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했고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있지만 이를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심서 김씨의 사건을 맡은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24년 동안 무죄를 주장해 온 당사자의 진실의 힘이 무죄의 강력한 증거”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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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