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친부 살해 누명 벗은 김신혜

짜깁기로 만들어진 ‘패륜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무기수로 평생을 감옥서 지내게 될 수도 있었던 김신혜씨는 억울하게 24년의 세월을 빼앗겼지만, 나머지 시간들을 돌려받았다. 김씨는 그동안 있었던 여러 차례의 재판 과정서 무죄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2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김씨의 빼앗긴 시간은 대체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친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으로 무기징역을 구형받았던 지난 6일, 재심 1심서 김신혜씨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씨의 억울함이 24년 만에 풀리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하고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있지만, 이를 유죄로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

24년 만에
되찾은 자유

김씨의 24년간의 비극은 한 남성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2000년 3월7일 전라남도 완도군의 버스 정류장서 한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발견된 장소서 약 7㎞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3급 지체 장애인으로 김씨의 아버지였다. 처음 발견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 주변에 자동차 방향 지시등이 깨져있어서 단순 뺑소니로 의심했지만 시신에 외상이 전혀 없었다.

시신 부검 결과 별다른 외상이나 출혈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혈중알코올농도는 0.303%였고, 수면 유도제 성분인 독시라민이 검출됐다. 경찰은 부검 결과에 따라 누군가가 수면유도제와 술을 이용해서 김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보고 계획적인 타살로 추정했다.

이후 수사에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그의 큰딸(당시 나이 23세) 김씨였다. 최초 신고자는 김씨의 고모부였다.


경찰은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당해 3월9일 오전 0시10분에 이 사건 용의자로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순순히 모든 범행을 인정했고, 범행 동기는 ‘아버지의 성추행’이었다고 진술했다.

사건 발생 2개월 전인 2000년 1월, 김씨는 “고향에 살고 있는 이복 여동생과의 전화 통화에서 동생이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과거 중학생 시절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었고,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 싫어서 범행을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당일 새벽 1시에 수면유도제 30알을 술에 녹여 아버지에게 ‘간에 좋은 약’이라고 속여 마시게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함께 차를 타고 이동 중에 아버지가 정신을 잃자 버스 정류장에 시신을 유기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해 현장을 떠났다고 추정했다. 현장 검증서 김씨는 밥그릇에 수면제를 갈아 넣는 모습을 재연했다.

경찰은 김씨가 아버지 앞으로 다수의 상해보험을 들어놨다는 점도 범행의 동기 중 하나인 것으로 유추했다. 수사 도중 김씨의 집에서 범행 계획을 적어 놓은 듯한 수첩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범행 도구인 ‘양주’ ‘수면제’ ‘버스정류장’과 같은 키워드를 발견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첩 안에는 보험금을 계산한 흔적이 보이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 같은 증거물들을 근거로 경찰은 김씨가 아버지를 살해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 2000년 8월12일 모든 범행 사실에 대해 인정했던 김씨는 현장검증 시점부터 돌연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처음 조사부터 현장검증, 법정서 했던 진술까지 모든 사실을 번복한 것이다. 김씨가 말을 번복하게 된 건 다름 아닌 남동생 때문이었다.

김씨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식장서 고모부와 큰아버지를 만났다. 고모부는 “네 아버지를 죽인 것은 너의 남동생”이라면서 “네가 대신에 감옥에 가야 하고, 자수를 해야 한다”며 거짓 자백을 요구했다. 심지어 큰아버지는 “성추행을 원인으로 삼으라”며 감형될 수 있는 방법까지 조언했다.


그 말을 듣고 김씨는 남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기 위해 거짓 자백을 하게 된 것이다.

국내 누명 사건 최고 장기 복역
24년간 억울함에 갇혔던 무기수

거짓 자백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이후, 김씨는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동생이 “고모부께서 네 누나가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고 말해서 누나를 걱정했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김씨는 고모부의 말에 이상함을 느끼고, 그 후 현장검증을 하던 시점부터 “아버지가 성폭행을 했을 리 없고, 고모부가 이 사건의 뒤에 있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고모부는 김씨가 “본인 스스로 자백했다”고 말했지만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면서 김씨는 “고모부의 말에 자신이 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했을 뿐, 아버지를 살해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씨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서 사건 이후 고모부와 있었던 일에 대해 밝혔다. 그는 고모부와 아버지의 장례식장서 이야기를 나눈 이후, 자신을 경찰서에 끌고 갔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이 같은 주장에 경찰은 고모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김씨가 신고 내용과 다르게 진술하고 있다”며 단순히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고인으로서 조사했고, 김씨 고모부는 “김씨의 말은 거짓말이다. 나는 김씨의 자백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결국 해당 진술은 대법원까지 모두 받아들여졌다.

김씨가 자백한 부분과 이 자백을 들었다던 고모부의 증언, 그리고 김씨가 아버지의 명의로 상해보험을 8개나 들었다는 점과 범행 계획으로 보이는 수첩이 발견된 사실들이 증거가 돼 김씨의 범죄 혐의는 기정 사실로 굳어졌다.

김씨는 경찰이 보험금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했지만, 당시 아버지 앞으로 들어놓은 8개의 보험 중 3개는 이미 해지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또 보험설계사 자격증이 있었고 3년이 지나야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또 경찰이 자신을 상대로 ‘강압수사’를 했다며 수사 과정서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억울함도 호소했다.

재판서 김씨는 아버지의 성추행 사실에 대해선 부인하며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은 없다”고 증언했다. 김씨의 주장은 대법원까지 전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2000년 8월31일 존속살해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의문의 죽음
비극의 시작

무기징역 선고 후, 복역 중에도 김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교도소의 노역을 거부했다. 노역 거부 시 향후 감형에 어려움이 있는 등 불리한 점이 많았지만 김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는 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복역 중에도 지속해서 무죄를 주장하면서 김씨의 목소리가 점점 외부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이하 대한변협) 법률구조단에도 수사 및 재판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대한변협은 해당 사건서 위법을 인지하고 법률적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김씨는 대한변협의 도움을 받아 2015년 1월28일에 재심을 청구했다. 광주지방법원은 재심 청구를 인용했고 본격적인 재심 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서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검찰은 김씨가 먼저 자수해 강압 수사할 이유가 없다는 점, 남은 보험금 5개의 수령이 가능하다는 점, 수면 유도제 30알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주장했다.

김씨는 복역 중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노트에 상세히 메모했는데, 경찰의 강압수사에 대한 부분과 불법 증거 취득에 관한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대한변협은 해당 메모 내용을 기반으로 재조사를 신청했고 후에 조사가 진행됐다.

당시 경찰서 제시했던 증거물인 김씨의 수첩에는 보험금을 계산한 내역과 범행 계획을 적어놓은 듯한 내용이 있었다. 경찰은 그 수첩이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에 대해 “나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고 그 과정서 노트에 시나리오를 작성했었다”며 “수첩에 적힌 글 중 ‘수면제’ ‘양주’ ‘버스정류장’이라는 단어가 있었고 그것을 살해 계획으로 오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버지 사망보험금 계산 내역에 대해서는 “당시 보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보험 실적을 위해 아버지의 명의로 보험 8개를 가입했었다. 그 과정서 작성했던 계산 내역”이라고 주장했다. 보험 중 3개는 이미 해지됐다는 사실과 아버지 사망 시점에는 사망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없는 약관이 있는 보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심지어 그 보험금의 실질적 수령자는 자신이 아닌 동생들과 계모라는 사실도 언급했다.

강압수사
무기 선고


김씨는 경찰의 수첩 취득 과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수첩이 발견된 장소는 집인데 이 수첩을 취득하는 과정이 위법적이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영장 없이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므로 이미 법적 효력을 상실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경찰의 강압수사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씨는 경찰의 수사 과정서 명백한 폭행과 가혹행위가 있었고 그를 통해 자백과 범행 현장 재연을 강요받았다고 호소했다. 특히 경찰이 자신의 집을 불법 수색서 김씨가 찍은 누드 사진을 경찰끼리 돌려봤고, 이를 빌미로 범죄를 인정하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김씨의 아버지가 사망 당시 음주량과 독실아민 수치에 대해 재조사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수면 유도제의 치사량이 약 100알 정도므로, 치사량으로 보기 어렵다”며 “술에 다량의 알약을 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그 정도 양을 용해시킨다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항변했다. 김씨의 자백 당시 증언대로 양주에 수면제 독실아민을 치사량만큼 먹인다면 양주 750㎖ 기준 4병을 먹여야 한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숨진 부친의 혈중알코올농도는 4병을 마셔야 나오는 수치와는 차이가 컸고, 이 사실을 경찰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경찰이 조사했던 치사량 수치에도 문제가 있었다. 치사량 수치를 계산할 때는 사망자의 정확한 체중을 필요로 한다. 경찰이 당시 조사한 체중은 60㎏이었지만, 실제 사망자의 체중은 41㎏이었다.

이로써 경찰의 조사가 미흡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증거 효력을 잃게 됐다.

김씨에게 현장 재현을 하게 했을 때, 밥그릇에 수면제를 갈았다고 했지만 실제 그 밥그릇에서는 수면제 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언급했다.

사건 당일 자신의 알리바이에 대한 억울함도 호소했다. 사건 발생 이틀 전인 2000년 3월6일에 남동생을 김씨의 고향인 완도에 데려다줬고, 김씨는 서울의 거처로 이동했다. 후에 남동생의 ‘데리러 오라’는 연락에 데리러 가려 했지만 김씨의 차량이 사고가 나 3월7일에 차량을 렌트한 후 완도로 내려갔다.

“나는 아버지 죽이지 않았다”
재판에 청춘 바쳐…결국 무죄

김씨는 완도에 있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지만 내려가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3월8일 0시경에 도착했다고 한다. 도착 후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다음 날 약속을 잡았다. 이후 집에 전화를 걸었고 김씨의 여동생이 전화를 받아 “아버지가 술에 취해 할머니와 싸우고 집에서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여동생은 김씨에게 어딘지 물어봤지만 당시 술에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워 ‘검문소 앞’이라고 거짓말했다.

앞선 재판서 경찰은 거짓말 부분에 대해 아버지를 죽이기 위한 것으로 추정했다. 김씨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는 친구들을 증인으로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김씨는 이 같은 사실을 주장하며 큰아버지와 조카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사망한 아버지의 장애인 보조금과 기타 지원금에 대한 다툼이 있었고 고소까지 하게 된 일이 있었다”며 “마음 약한 저의 아버지가 합의해줬고 그 이후로 큰아버지와의 관계도 안 좋다”고 증언했다.

큰아버지는 부친 장례식서 “너의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하면 감형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씨는 이를 근거로 사건의 배후에 큰아버지와 고모부가 관여돼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버지의 성추행은 말도 안 된다”며 “고모부가 그렇게 말하도록 시켰고 이복 여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도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딸을 추행한 파렴치한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손도 못 쓰고 보고만 있었던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아버지의 누명을 벗길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내내 이 생각만 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내용으로 약 10여년의 수감생활 동안 김씨는 무죄를 받기 위해 검찰의 주장을 반박해 왔고, 마침내 지난 6일 재심 1심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이번 재심서 범행 동기, 자수 경위와 물적 증거, 알리바이, 강압수사 여부 등을 중요하게 여겼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증거 수집 과정이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경찰 측이 내놓은 증거에 대해 “영장 없이 확보한 증거물이므로 적법 절차와 영장주의에 반한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씨의 진술이 강요에 의한 허위 자백일 수 있다는 사실도 배제하지 않았다.

피고인의 자백을 직접 들었다는 친척과 경찰관의 진술 역시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당시 김씨가 보험금을 목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주장도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보험설계사 자격증이 있었고, 보험계약 체결 2년 이내에 보험사고 발생 시 보험금 지급이 어렵다는 부분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보험금 목적?
뒤집힌 판결

또 김씨가 사건 발생 당일 친구들과 만남을 약속했던 점을 감안할 때, 사전에 범행 계획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결국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했고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있지만 이를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심서 김씨의 사건을 맡은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24년 동안 무죄를 주장해 온 당사자의 진실의 힘이 무죄의 강력한 증거”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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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