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한숨 소리를 귓가에 듣는 사이에 용운은 눈물을 닦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래도 또 새로운 눈물이 고였다.
눈을 들었을 때 하늘엔 핏빛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석양 빛을 받은 바다는 잔잔하게 출렁이며 잔인하고 아름다운 고락의 세계로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석상인 양 선 용운의 눈망울엔 또 한 방울의 눈물이 맺혔다. 그의 입에서 울음기가 섞인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의 짐
“엄마, 지금 어디 계세요? 품속에 안겨야 할 어린 새가 우는 소리 들리지 않으세요? 할딱이는 이 가슴에 새겨진 피멍이 보이지 않으세요? ……오늘도 긴 하루 해가 저물어요. 밤 같은 절망이네요. 엄마, 어딘가에 계시다면 큰 소리로 저를 한번만 불러봐 주세요. 그 소리 파도 따라 이곳까지 들릴 것도 같네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하늘가의 노을은 점점 짙어지더니 차츰 청회색으로 물들며 스러지고 있었다.
용운은 계속 바다를 바라보았다. 석양은 마지막 핏방울을 떨어뜨리고 바다는 낙조(落照) 아래서 장엄한 생사(生死)의 춤을 추는 듯싶었다.
“울지 마라, 아가야. 고통스런 밤을 지새고 나면 무섭던 상처도 아물고 아무도 모르게 새살이 돋는단다. 오늘의 짐에 억눌려 찌그러지지 말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거라.”
“아, 엄마…….”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귀 기울여 듣던 용운은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불렀다.
엄마가 들려준 그 침묵 속의 목소리는 용운이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독백의 목소리이기도 했을 터였다.
아래쪽에서 울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용운은 총총히 산을 내려갔다.
혹독한 생활 속에서도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갔다.
예쁘던 소녀는 그 후 다시 볼 수 없었다. 고운 목소리의 언약만 귀에 쟁쟁 맴돌았다.
‘다음에 또 봐…….’
용운의 내면에서는 두 가지의 생각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장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욕구와 좀더 좋은 기회를 기다려 보자는 계산이 서로 싸웠다.
마치 두 장의 색다른 풍경이 그려진 카드가 마음속에서 교차하는 듯했다. 상상 속의 고운 엄마와 현실의 박꽃 누나가 겹쳐져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쨌든 지옥을 탈출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곳에서 얼마 동안 더 머문다는 것도 별로 무섭게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일말의 아쉬움이 일면서, 이곳의 잔혹한 실상을 좀더 혹독히 겪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야 탈출한 후에 제대로 진상을 고발할 수 있을 터였지만, 좀 엉뚱한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아예 된장이나 고추장처럼 그 지옥에서 푹 썩어 발효되면 한층 웅숭깊은 사람의 맛을 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것은 다 값어치가 있다! 행복의 깊이는 자신이 진실로 감수해내는 고통에 정비례한다고 했어.’
심호흡을 하며 홀로 중얼거렸다.
물론 그런 우스꽝스런 공상은 각박한 하루하루의 일상에 묻혀 곧 사라져 버렸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지만 이른바 ‘쓰레기’로 지목되어 쓸려 온 청소년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많아졌다.
가슴에 새겨진 피멍
꿈꾸는 더 나은 내일
용운이 처음 왔을 당시 1000여명쯤 되던 원생의 수는 더욱 더 늘어났다. 그 중엔 부랑아라고 말할 수 없는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멀쩡한 집안의 아이나 구두닦이 또는 신문팔이를 하다가 졸지에 잡혀 온 경우였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게 죄일 뿐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하는 뜻은 강했던 그 애들은 선감원에 살면서 낙심과 절망에 빠져 차츰 진짜 불량아로 변질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지옥은 도대체 누가 만든 걸까?
용운은 누명을 쓰고 잡혀 와서 너무 억울했으나, 다른 원생들의 별별 어이없는 경우를 들어 보고는 스스로 마음을 다독거렸다.
‘나도 불행하지만 훨씬 더 불행한 애들도 있구나.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여기서 좌절해선 안 돼.’
그 무렵 어떤 국제적인 행사가 서울에서 열렸는데, 추저분한 몰골로 구두통을 메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꼴이 혹여 외국인의 눈에 빈곤의 상징으로 보일까봐 걱정한 정부 당국자들이 그런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치안국장이 “대문을 열어두고 살아도 될 정도로 도둑과 거렁뱅이들의 씨를 말리겠다”라고 호언장담한 후로 할당량을 정해 마구 잡아들였다는 소문도 들렸다.
선감원 측으로서는 원생이 늘면 자연히 국가보조금이 증액되므로 이를테면 풍년을 맞이한 셈이었다.
쓰레기 같은 인간 말종이라며 그렇게 욕을 퍼붓고 족쳐대는 원생들이지만, 만일 그들이 줄어든다면 원장과 선생들도 존재 가치가 반감될 터이었다.
그러기에 그곳의 지배자들은 겉으로는 험상궂게 인상을 쓰면서도 불량아가 많아질수록 어딘지 모르게 활기를 띠는 것이었다.
원생수가 늘어난 만큼 탈출 빈도 또한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간의 탈출사건 중 기억에 남는 건 어린 꼬마 사건이었다.
꼬마 사건
여덟 살짜리 꼬마가 용케 수용소를 빠져나갔는데, 바다를 절반도 못 건너고 그만 허우적거려야 했던 것이다. 다행히 새벽녘이었던 터라 어느 부지런한 어부에 의해 건져지긴 했다.
하지만 수색을 나갔던 팀이 어부에게서 꼬마를 인계받았을 때는 복어처럼 불룩한 배를 하고 뻗어 있었다.
한데 용운이 혹시나 하고 다급히 인공호흡을 시도한 끝에 불씨처럼 가물거리던 그 목숨이 극적으로 회생된 것이다.
어린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던가. 그앤 탈출에 실패는 했어도 기적적인 실패를 한 셈이었다. 과연 무엇이 그 꼬마로 하여금 무모한 시도를 하게끔 했던 걸까?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