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언론인서 기업가로’ 민경중 코아스 대표

40년 전통에 혁신을 더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길로 뚜벅뚜벅 걸었다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면 발자국은 온갖 방향으로 고루 찍혀 있었다. 가시밭길이든 꽃길이든 일단 발을 내디디고 본 결과다. 남들과 ‘다른 선택’이 남긴 족적은 조직의 변화로 이어졌다. 그가 지나온 자리에 이름이 남는 이유다. 민경중 코아스 대표를 만났다.

‘때로는 과감하게 판을 바꿔야 할 때가 있다.’ 민경중 코아스 대표는 2015년 펴낸 저서 <다르게 선택하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판을 바꾼다’는 ‘저항을 마주한다’는 말과 궤를 같이한다. 조직의 변화를 꾀하는 사람은 성공하면 ‘혁신가’, 망하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실패 위험이 주는 부담은 ‘다른 길로 가보자’는 생각을 머뭇거리게 한다.

다른 생각
변화 추구

1987년 CBS 공채 10기로 입사한 민 대표는 2014년까지 한 회사에만 몸담았다. CBS 전국팀장, 보도국장, 심지어 노조위원장까지 요직은 다 거쳤다. 특히 ‘인터넷 신문의 혁신’으로 불리는 <노컷뉴스>를 기획‧창간하고 국내서 가장 영향력 있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김현정의 뉴스쇼>를 만드는 등 굵직한 이력을 남겼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끊임없이 다름, 새로움을 추구했던 민 대표는 27년의 언론인 생활 내내 다양한 갈래의 물길을 만들었다. 어떤 물길은 강으로, 또 다른 물길은 바다로, 때론 벽에 막혀 웅덩이가 되기도 했다.

민 대표의 시도는 ‘변화’라는 흔적으로 남았다. 거대한 조직을 흔들어 수십년이 지나도 사라지질 않을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2014년 CBS를 떠난 뒤 한국외대 초빙교수, 법무법인의 고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전북은행 사외이사 등을 지낸 민 대표가 최근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는 지난 9월 사무용 가구 전문기업 코아스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언론인 출신이 홍보 등 전문 분야가 아닌 제조업체의 사장으로 가는 사례가 많지 않아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민 대표가 사장으로 취임할 시기 코아스는 최악의 상황에 있었다. 1984년 한국OA시스템으로 시작한 코아스는 사무용 가구를 전문으로 제작, 판매하는 기업이다. 2000~2010년대 현재 사무용 가구업계 1위인 퍼시스와 경쟁할 만큼 잘 나갔다고 한다.

B2B(기업 사이의 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를 중심으로 공공조달 시장에서 최상위권에 자리했다.

다른 선택이 조직 변화로 이어져
지금 욕먹어도 나중엔 박수 자신

하지만 공공조달 시장에 대한 지나친 의존, 변화에 대한 늦은 대응 등 기업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하락세가 시작됐다. 결국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 민 대표는 그런 상황서 사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3년간 이어진 영업손실, 굳어버린 조직문화, 사라진 비전 등 민 대표 앞에 놓인 벽은 산처럼 높았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코아스 본사서 만난 민 대표는 “60년 인생서 딱 하나 못 해 본 게 ‘사장’인데 막상 해보니까 정말 쉽지 않다. 회사가 매각·인수됐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라는 뜻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모든 게)주어진 상황서 일한 적은 많지 않았다. 늘 없던 것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쪽에 익숙했다”고 덧붙였다.


대표가 된 지 이제 막 100일을 넘긴 그는 “미국은 사무용 가구를 기업경기실사지수에 포함하고 있다. 경기가 침체하면 사무용 가구를 사는 회사가 줄어들고, 반대로 호황이면 매출이 늘어나는 게 지수에 반영된다. 사무용 가구의 매출 현황이 체감경기와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는 뜻이다.

또 최근에 공유 오피스가 늘어나는 등 사무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데, 다른 경쟁사들은 그에 발 빠르게 대응했으나 코아스는 좀 늦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민 대표는 B2B를 중심으로 공공 분야에 사무용 가구를 납품해 사업을 영위해 왔던 과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대 기업’으로 거래하다 보니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고 변화와 혁신을 이끌지 못한 부분을 문제로 봤다. 코아스가 사무용 가구업계의 ‘트렌드’ 싸움서 밀리고 있다는 게 민 대표의 분석이다.

수직적인 조직문화도 걸림돌로 꼽혔다. 코아스는 창립자인 노재근 전 회장이 40년을 이끈 회사다. 의사결정권이 소수에 집중된 형태의 기업은 조직문화가 수직적인 경우가 많다. 코아스 역시 그런 상황이었다. 임원이 결정하면 직원은 따르는 톱-다운 방식이 고착화한 상태였다.

최악 상황
사장 맡아

민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회사의 체질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그는 “대표 자리를 제안한 쪽에서 나를 선택한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CBS,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큰 조직을 관리한 경험이 있는 점,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점이다. 이런 부분서 내부 혁신이 필요한 코아스에 적임자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취임 이후 3개월여 동안 두 번에 걸쳐 직원들의 의견을 모았다. 사무용 가구와 AI(인공지능)의 결합에 관한 생각, 조직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방안 등을 제안해 달라고 직원들에게 요청했다. 그는 “AI 관련 의견만 28건이 접수됐다. 이전까지는 이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직원들이 더 놀라고 있다”며 웃었다.

앞으로 코아스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민 대표는 거침없이 풀어놨다. 그는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현장을 언급하면서 최근 모든 글로벌 회사가 지향하는 세 가지 추세에 관해 설명했다. 첫째 AI와 IoT(사물인터넷), 네트워크가 결합된 디지털 헬스 제품, 둘째 모빌리티(이동성)의 활용, 셋째 친환경 제품 생산 등이다.

민 대표는 “가구와 디지털 헬스 제품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또 제품에 바퀴나 모터가 달려서 원격 조정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성을 위해 친환경 제품이 사무용 가구에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 가지 방향 중에 친환경 제품 생산을 우선적으로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옆에 놓인 가죽 의자를 예로 들면서 사무용 가구는 물론, 가구산업 자체가 굉장히 비환경적이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톱밥, 스펀지, 가죽 등이 환경 파괴의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소나 양보다 9배나 질긴 연어 가죽을 이용하고 스펀지 대신 해조류나 건초더미를 활용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민 대표는 “이렇게 만들면 당연히 단가는 올라간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이 의자도 종류에 따라 싸게는 몇 만원서 비싼 것은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하이엔드(최고 품질)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있는 셈이다. 코아스는 그동안 공공조달에 치중하면서 중저가 제품을 주로 생산했다. 선도적으로 이런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거침없이
방향 제시


민 대표의 목표는 2010년 서울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의 재연이다. 당시 코아스는 G20 정상회의에 정상용 상석 의자 ‘바흐 체어’를 공급했다. 내년 경북 경주서 열리는 ‘2025경주 APEC 정상회의’에 친환경 소재의 정상용 의자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제작을 지시한 상태다.

신사업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코아스는 지난 9월 임시주주총회서 바이오 기업으로의 변화를 예고했다. 그러면서 ▲신약개발사업, 컨설팅업 ▲의약품 생산 및 판매업 ▲의약품 의료용 화합물 및 생약제재 제조업 ▲동물용 의약품 및 영양제 제조업 ▲동물용 의약품 영양제 및 관련 용품 도매, 소매업 등을 신규사업에 추가했다.

40년 동안 사무용 가구로만 사업을 진행해 온 코아스였기에 바이오 분야로의 진출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 대표는 코아스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산업의 영역적 한계를 없애는 방향으로 회사를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말 그대로 사무용 가구업체에서는 사무용 가구만 만들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민 대표는 “이제는 이종 산업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후지필름은 지금 필름 회사가 아니다. 제약·바이오 회사로 탈바꿈했다. 설탕, 밀가루를 수입하던 CJ는 어떤가. 반도체도 만들고 영화도 제작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제조업체, 중소기업이 이종 산업으로의 진출을 이야기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고 토로했다. 

그는 “많은 기업이 본질적인 것에 충실하면서 그 안에서 혁신을 이룬다. 185년 동안 농업용 쟁기를 만들던 존디어라는 기업은 AI를 도입해 자율 트랙터를 개발했고 이미지 센싱 기술로 농약 살포 등에서 혁신을 이뤄냈다. 사무용 가구 회사도 미래형으로 가다 보면 가구를 파는 게 아니라 ‘공간 데이터’를 파는 식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예를 들어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눌 경우 착석한 시간, 소요 시간, 나눈 대화 등이 디지털 기기를 통해 데이터화되는 시대다. 외국은 아이를 따로 재우지 않나. 요람에 디지털 기기를 부착해 아이가 왜 우는지, 심장박동 수는 어떤지 부모에게 원격으로 전달되도록 하는 제품을 개발 중인 회사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며 “우리 같은 규모의 회사가 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회사의 체질 바꾸는 중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

흥미로운 대목은 민 대표가 혁신과 변화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사람’을 꼽았다는 점이다. 그는 아버지가 창업한 회사를 자식이 물려받지 않으려 하는 세태를 우리 제조업계의 문제점으로 꼽으면서, 그렇게 되면 사람이 유출되고 산업의 기반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전통을 고수해 망하는 길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게 사람과 산업을 지키는 데 훨씬 낫다는 것이다.

실제 민 대표는 취임 이후 코아스서 일하는 7개 나라 100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기숙사와 식당을 리모델링했다. 또 7개 국가의 국기를 공장에 걸어뒀다. 그들이 모두 ‘코아스 가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일이었다. 민 대표는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서 또 다른 일화를 들려줬다. 

민 대표는 스리랑카서 온 외국인 노동자 ‘와제두’가 눈이 온 날 바닥에 그린 그림을 보고 영상을 제작해 SNS에 올렸다. 그는 “와제두는 그날 태어나서 눈을 처음 본 것이다. 그 눈 위에 ‘Kakkada’라는 단어를 쓰고 하트를 그린 것을 봤다. Kakkada는 7월을 뜻하는 말이다. 그가 7월에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민 대표가 SNS에 올린 영상은 많은 이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는 와제두를 찾아 선물도 주고 따뜻한 말도 건넸다. 민 대표의 노력은 ‘안정성’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 ‘함께’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긍정적인 방향의 대화도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 대표는 “CEO나 리더는 빠르게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면서 사람을 키워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CBS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직원이 내는 아이디어에 ‘내가 책임질 테니 해봐’라는 자세로 살아왔다. 감히 이야기하지만 구루(Guru, 스승) 같은 리더가 되고 싶다. 직원을 끌고 가는 리더가 아니라 누구라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리더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루 리더십
미래에 관심

그러면서 민 대표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 그러면서도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모든 리더가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내가 있는 동안 뭔가를 이뤄내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떠났을 때 그 사람이 있던 시기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다고 기억되길 바란다”고 환히 웃었다. 

‘인간 민경중’의 목표를 묻는 말에도 답은 한결같았다. 그는 “있을 때는 욕을 먹어도 떠난 뒤에는 박수 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또 나는 과거나 현재를 잘 얘기하지 않는다.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 편이다. 누군가는 나를 늘 미래를 얘기했던 사람, 앞으로의 일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