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언론인서 기업가로’ 민경중 코아스 대표

40년 전통에 혁신을 더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길로 뚜벅뚜벅 걸었다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면 발자국은 온갖 방향으로 고루 찍혀 있었다. 가시밭길이든 꽃길이든 일단 발을 내디디고 본 결과다. 남들과 ‘다른 선택’이 남긴 족적은 조직의 변화로 이어졌다. 그가 지나온 자리에 이름이 남는 이유다. 민경중 코아스 대표를 만났다.

‘때로는 과감하게 판을 바꿔야 할 때가 있다.’ 민경중 코아스 대표는 2015년 펴낸 저서 <다르게 선택하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판을 바꾼다’는 ‘저항을 마주한다’는 말과 궤를 같이한다. 조직의 변화를 꾀하는 사람은 성공하면 ‘혁신가’, 망하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실패 위험이 주는 부담은 ‘다른 길로 가보자’는 생각을 머뭇거리게 한다.

다른 생각
변화 추구

1987년 CBS 공채 10기로 입사한 민 대표는 2014년까지 한 회사에만 몸담았다. CBS 전국팀장, 보도국장, 심지어 노조위원장까지 요직은 다 거쳤다. 특히 ‘인터넷 신문의 혁신’으로 불리는 <노컷뉴스>를 기획‧창간하고 국내서 가장 영향력 있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김현정의 뉴스쇼>를 만드는 등 굵직한 이력을 남겼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끊임없이 다름, 새로움을 추구했던 민 대표는 27년의 언론인 생활 내내 다양한 갈래의 물길을 만들었다. 어떤 물길은 강으로, 또 다른 물길은 바다로, 때론 벽에 막혀 웅덩이가 되기도 했다.

민 대표의 시도는 ‘변화’라는 흔적으로 남았다. 거대한 조직을 흔들어 수십년이 지나도 사라지질 않을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2014년 CBS를 떠난 뒤 한국외대 초빙교수, 법무법인의 고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전북은행 사외이사 등을 지낸 민 대표가 최근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는 지난 9월 사무용 가구 전문기업 코아스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언론인 출신이 홍보 등 전문 분야가 아닌 제조업체의 사장으로 가는 사례가 많지 않아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민 대표가 사장으로 취임할 시기 코아스는 최악의 상황에 있었다. 1984년 한국OA시스템으로 시작한 코아스는 사무용 가구를 전문으로 제작, 판매하는 기업이다. 2000~2010년대 현재 사무용 가구업계 1위인 퍼시스와 경쟁할 만큼 잘 나갔다고 한다.

B2B(기업 사이의 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를 중심으로 공공조달 시장에서 최상위권에 자리했다.

다른 선택이 조직 변화로 이어져
지금 욕먹어도 나중엔 박수 자신

하지만 공공조달 시장에 대한 지나친 의존, 변화에 대한 늦은 대응 등 기업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하락세가 시작됐다. 결국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 민 대표는 그런 상황서 사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3년간 이어진 영업손실, 굳어버린 조직문화, 사라진 비전 등 민 대표 앞에 놓인 벽은 산처럼 높았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코아스 본사서 만난 민 대표는 “60년 인생서 딱 하나 못 해 본 게 ‘사장’인데 막상 해보니까 정말 쉽지 않다. 회사가 매각·인수됐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라는 뜻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모든 게)주어진 상황서 일한 적은 많지 않았다. 늘 없던 것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쪽에 익숙했다”고 덧붙였다.


대표가 된 지 이제 막 100일을 넘긴 그는 “미국은 사무용 가구를 기업경기실사지수에 포함하고 있다. 경기가 침체하면 사무용 가구를 사는 회사가 줄어들고, 반대로 호황이면 매출이 늘어나는 게 지수에 반영된다. 사무용 가구의 매출 현황이 체감경기와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는 뜻이다.

또 최근에 공유 오피스가 늘어나는 등 사무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데, 다른 경쟁사들은 그에 발 빠르게 대응했으나 코아스는 좀 늦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민 대표는 B2B를 중심으로 공공 분야에 사무용 가구를 납품해 사업을 영위해 왔던 과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대 기업’으로 거래하다 보니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고 변화와 혁신을 이끌지 못한 부분을 문제로 봤다. 코아스가 사무용 가구업계의 ‘트렌드’ 싸움서 밀리고 있다는 게 민 대표의 분석이다.

수직적인 조직문화도 걸림돌로 꼽혔다. 코아스는 창립자인 노재근 전 회장이 40년을 이끈 회사다. 의사결정권이 소수에 집중된 형태의 기업은 조직문화가 수직적인 경우가 많다. 코아스 역시 그런 상황이었다. 임원이 결정하면 직원은 따르는 톱-다운 방식이 고착화한 상태였다.

최악 상황
사장 맡아

민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회사의 체질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그는 “대표 자리를 제안한 쪽에서 나를 선택한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CBS,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큰 조직을 관리한 경험이 있는 점,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점이다. 이런 부분서 내부 혁신이 필요한 코아스에 적임자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취임 이후 3개월여 동안 두 번에 걸쳐 직원들의 의견을 모았다. 사무용 가구와 AI(인공지능)의 결합에 관한 생각, 조직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방안 등을 제안해 달라고 직원들에게 요청했다. 그는 “AI 관련 의견만 28건이 접수됐다. 이전까지는 이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직원들이 더 놀라고 있다”며 웃었다.

앞으로 코아스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민 대표는 거침없이 풀어놨다. 그는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현장을 언급하면서 최근 모든 글로벌 회사가 지향하는 세 가지 추세에 관해 설명했다. 첫째 AI와 IoT(사물인터넷), 네트워크가 결합된 디지털 헬스 제품, 둘째 모빌리티(이동성)의 활용, 셋째 친환경 제품 생산 등이다.

민 대표는 “가구와 디지털 헬스 제품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또 제품에 바퀴나 모터가 달려서 원격 조정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성을 위해 친환경 제품이 사무용 가구에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 가지 방향 중에 친환경 제품 생산을 우선적으로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옆에 놓인 가죽 의자를 예로 들면서 사무용 가구는 물론, 가구산업 자체가 굉장히 비환경적이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톱밥, 스펀지, 가죽 등이 환경 파괴의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소나 양보다 9배나 질긴 연어 가죽을 이용하고 스펀지 대신 해조류나 건초더미를 활용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민 대표는 “이렇게 만들면 당연히 단가는 올라간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이 의자도 종류에 따라 싸게는 몇 만원서 비싼 것은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하이엔드(최고 품질)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있는 셈이다. 코아스는 그동안 공공조달에 치중하면서 중저가 제품을 주로 생산했다. 선도적으로 이런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거침없이
방향 제시


민 대표의 목표는 2010년 서울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의 재연이다. 당시 코아스는 G20 정상회의에 정상용 상석 의자 ‘바흐 체어’를 공급했다. 내년 경북 경주서 열리는 ‘2025경주 APEC 정상회의’에 친환경 소재의 정상용 의자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제작을 지시한 상태다.

신사업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코아스는 지난 9월 임시주주총회서 바이오 기업으로의 변화를 예고했다. 그러면서 ▲신약개발사업, 컨설팅업 ▲의약품 생산 및 판매업 ▲의약품 의료용 화합물 및 생약제재 제조업 ▲동물용 의약품 및 영양제 제조업 ▲동물용 의약품 영양제 및 관련 용품 도매, 소매업 등을 신규사업에 추가했다.

40년 동안 사무용 가구로만 사업을 진행해 온 코아스였기에 바이오 분야로의 진출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 대표는 코아스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산업의 영역적 한계를 없애는 방향으로 회사를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말 그대로 사무용 가구업체에서는 사무용 가구만 만들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민 대표는 “이제는 이종 산업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후지필름은 지금 필름 회사가 아니다. 제약·바이오 회사로 탈바꿈했다. 설탕, 밀가루를 수입하던 CJ는 어떤가. 반도체도 만들고 영화도 제작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제조업체, 중소기업이 이종 산업으로의 진출을 이야기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고 토로했다. 

그는 “많은 기업이 본질적인 것에 충실하면서 그 안에서 혁신을 이룬다. 185년 동안 농업용 쟁기를 만들던 존디어라는 기업은 AI를 도입해 자율 트랙터를 개발했고 이미지 센싱 기술로 농약 살포 등에서 혁신을 이뤄냈다. 사무용 가구 회사도 미래형으로 가다 보면 가구를 파는 게 아니라 ‘공간 데이터’를 파는 식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예를 들어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눌 경우 착석한 시간, 소요 시간, 나눈 대화 등이 디지털 기기를 통해 데이터화되는 시대다. 외국은 아이를 따로 재우지 않나. 요람에 디지털 기기를 부착해 아이가 왜 우는지, 심장박동 수는 어떤지 부모에게 원격으로 전달되도록 하는 제품을 개발 중인 회사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며 “우리 같은 규모의 회사가 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회사의 체질 바꾸는 중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

흥미로운 대목은 민 대표가 혁신과 변화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사람’을 꼽았다는 점이다. 그는 아버지가 창업한 회사를 자식이 물려받지 않으려 하는 세태를 우리 제조업계의 문제점으로 꼽으면서, 그렇게 되면 사람이 유출되고 산업의 기반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전통을 고수해 망하는 길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게 사람과 산업을 지키는 데 훨씬 낫다는 것이다.

실제 민 대표는 취임 이후 코아스서 일하는 7개 나라 100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기숙사와 식당을 리모델링했다. 또 7개 국가의 국기를 공장에 걸어뒀다. 그들이 모두 ‘코아스 가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일이었다. 민 대표는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서 또 다른 일화를 들려줬다. 

민 대표는 스리랑카서 온 외국인 노동자 ‘와제두’가 눈이 온 날 바닥에 그린 그림을 보고 영상을 제작해 SNS에 올렸다. 그는 “와제두는 그날 태어나서 눈을 처음 본 것이다. 그 눈 위에 ‘Kakkada’라는 단어를 쓰고 하트를 그린 것을 봤다. Kakkada는 7월을 뜻하는 말이다. 그가 7월에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민 대표가 SNS에 올린 영상은 많은 이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는 와제두를 찾아 선물도 주고 따뜻한 말도 건넸다. 민 대표의 노력은 ‘안정성’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 ‘함께’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긍정적인 방향의 대화도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 대표는 “CEO나 리더는 빠르게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면서 사람을 키워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CBS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직원이 내는 아이디어에 ‘내가 책임질 테니 해봐’라는 자세로 살아왔다. 감히 이야기하지만 구루(Guru, 스승) 같은 리더가 되고 싶다. 직원을 끌고 가는 리더가 아니라 누구라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리더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루 리더십
미래에 관심

그러면서 민 대표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 그러면서도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모든 리더가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내가 있는 동안 뭔가를 이뤄내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떠났을 때 그 사람이 있던 시기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다고 기억되길 바란다”고 환히 웃었다. 

‘인간 민경중’의 목표를 묻는 말에도 답은 한결같았다. 그는 “있을 때는 욕을 먹어도 떠난 뒤에는 박수 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또 나는 과거나 현재를 잘 얘기하지 않는다.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 편이다. 누군가는 나를 늘 미래를 얘기했던 사람, 앞으로의 일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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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