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 동화마을 ⑤유럽마을 엥겔베르그

유럽이라 착각 이국적인 풍경

정읍은 백제가요 ‘정읍사’의 도시다. <고려사>에는 물건을 팔러 간 남편이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부른 노래라고 전한다. ‘정읍사’의 고장답게 정읍을 대표하는 관광지 역시 백제가요정읍사문화공원, 한국가요촌 달하 등이다. 

요즘은 유럽마을 엥겔베르그가 ‘정읍사’만큼 관심을 끈다. 김병조 대표가 웰니스관광 휴양촌으로 조성했다. ‘정읍사’를 떠올리며 예스러운 전통 풍경을 예상했던 이들은 그 풍경에 놀란다. 정읍서 유럽의 어느 도시로 순간 이동한 듯하다.

순간 이동

엥겔베르그는 스위스 인터라켄 북동쪽의 마을 지명이다. 천사를 뜻하는 ‘엥겔(Engel) ’과산을 의미하는 ‘베르그(Berg)’를 합친 지명으로 김석주 유럽마을 엥겔베르그 촌장이 제일 좋아하는 휴양지다. 그렇다고 스위스 마을은 아니다. 독일 문화를 중심으로 유럽 전반을 아우른다. 

마을은 크게 실버타운 형태의 일반 분양 공간과 유럽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건물동, 그리고 유로마켓동으로 나뉜다. 일반 여행자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유로마켓 1층의 베이커리 카페로, 면적이 넓고 층높이가 높아 여유롭게 머물며 쉬기에 좋다.

천장은 유럽식 목골 구조(건축물의 뼈대는 목재로 구성하고 벽체는 다른 구성재를 이용하여 만든 구조)가 고스란하고 카페를 채운 가구 역시 유럽풍이다. 벽면은 앤티크 소품이 장식하고 있어, 유럽의 어느 저택에 들어온 듯 구석구석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베이커리 카페는 차와 디저트 등으로 이뤄진 애프터눈티 메뉴를 예약제로 운영한다.

베이커리 카페 외에 3층 앤티크 라운지 또한 유로마켓의 명소다. 앤티크 라운지는 애프터눈티 예약 고객에 한해서 개방한다. 도슨트와 함께 약 30분가량 돌아보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 층 전체를 가득 채운 앤티크 소품과 가구에 압도된다.

김병조 대표 가족이 20여년에 걸쳐 수집한 물건들이다. 독일 마이센 도자기부터 순금으로 금박 입힌 그릇과 주전자, 100년 이상 된 목가구 등 진귀한 볼거리가 많다. 그 가운데 스페인 옛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해 만든 식탁은 김병조 대표가 가장 아끼는 전시물이다. 

유로마켓을 나와서는 본격적인 유럽마을 엥겔베르그 탐방에 나선다. 차 박물관은 앤티크 라운지와 비교해 관람할 만하다. 유로마켓 베이커리 카페는 이례적으로 진년보이차(21년 발효) 메뉴를 내는데 그 비밀 또한 차 박물관서 밝혀진다. 

차 박물관은 이양수 향원당 원장이 반세기 넘게 공을 들여 모은 다구와 다기 등으로 반짝인다. 앤티크 라운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자사호(자줏빛 진흙이 특색인 항아리), 탕관(약을 달이거나 국 등을 끓이는 그릇), 개완(뚜껑이 있는 찻잔) 등 그 모양과 빛깔 등이 아름다워 어느 하나 쉬이 지나칠 수 없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것처럼
구석구석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

3층은 21년 숙성 보이차가 빼곡한데 초입부터 은은한 차향이 매혹적이다. 차 박물관은 한국, 중국, 일본의 차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유럽마을 안의 동양 차 문화공간이다. 


차 박물관을 나와서는 유럽마을을 돌아본다. 독일 마을을 모티브로 한 건물의 이중경사(Mansard) 지붕, 첨탑 등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건물과 건물 사이 거리나 광장을 거닐 때는 잠시 유럽으로 연말 여행을 떠나온 듯하다. 실내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지만, 일부 개방하는 내부는 유럽식 목골 구조나, 바닥을 꾸민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각 국가의 도시 깃발 문양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국가요촌 달하는 ‘정촌가요특구’의 새로운 이름이다. 지난해 공모를 통해 지어졌다. ‘달하’는 ‘정읍사’ 가사의 첫 문장 ‘ㄷ·ㄹ하 노피곰 도ㄷ·샤’의 첫 번째 단어다. 지금 말로 풀어 쓰면 ‘달아 높이 높이 돋으시어’다. 원조 한류 가수 보아의 ‘No.1’이 ‘정읍사’에서 달의 모티브로 가져왔다. 

가요전시관 전시는 크게 ‘정읍사’와 현대 음악 두 가지 테마로 나뉜다. 제1전시실은 ‘정읍사’ 설화를 소개하고 이를 영상 등으로 연출해 선보인다. 제2전시실은 19 00~1980년대 현대 가요의 흐름을 다룬다. 가요의 역사를 따라 전시실을 이동하는데 마치 영화 세트장에 온 듯하다. 옛날 극장이나 공연장, 음악다방 등을 재현해 보는 재미가 있다.

갤러리카페 이오일스페이스는 정읍을 찾는 20~30대가 손에 꼽는 ‘핫플’이다. 가운데 잔디마당과 스크린을 두고 ‘ㄷ’자형으로 자리한 2층 건물은, 도로를 등지고 주변 산세를 품는다. 그저 흔한 지역 갤러리카페 정도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카페 한가운데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Focus Moving 2018’이 턱 하니 걸려 있다.

심지어 화장실에는 백남준과 김중만의 작품이 있다. 서울스퀘어의 ‘걷는 사람’으로 유명한 줄리안 오피(Julian Opie), 작품에 ‘××’ 눈을 그려 넣는 팝 아티스트 카우스(Kaws), 아톰 형상의 오브제로 잘 알려진 허명욱 작가 등의 작품도 찾아볼 일이다. 

레트로 감성의 여행자라면 정읍에서 쌍화차 한 잔을 마시지 않고 떠날 수는 없다. 하물며 마음마저 덥히는 겨울 쌍화차다. 정읍의 정읍쌍화차거리는 정읍 8경의 하나다.

레트로 감성

새암로를 따라 약 450m 거리에 몰려 있다. 쌍화차는 숙지황, 생강, 대추 등 총 20여가지 약재를 달여 만든다. 정읍이 쌍화차로 알려진 건 주재료인 숙지황의 주산지기 때문이다. 차뿐만 아니라 밤, 은행, 잣 등의 고명을 먹는 즐거움 또한 쌍화차만의 매력이다. 곱돌로 만든 찻잔에 마시며 같이 나오는 가래떡, 누룽지 등을 먹는 즐거움도 각별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유럽마을 앵겔베르그→한국가요촌 달하→정읍쌍화차거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유럽마을 앵겔베르그→한국가요촌 달하→정읍쌍화차거리 
-둘째 날 정읍시립미술관→백제가요정읍사문화공원→이오일스페이스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유럽마을 엥겔베르그 https://blog.naver.com/euro-market
-정읍시 문화관광 https://www.jeongeup.go.kr/culture
-이오일스페이스 http://www.251space.com

운영 정보
유럽마을 엥겔베르그(유로마켓 카페&베이커리)
*운영시간: 11: 00~16:00(화,일) 11:00~18:00(수~토) *휴무: 월요일


문의 전화
-유럽마을 엥겔베르그 063)535-5398
-정읍시 관광과 063)539-5235
-한국가요촌 달하 063)533-7922
-이오일스페이스 070-8691-2611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정읍역, KTX 18~19회(05:08~22:23) 운행, 약 1시간30분 소요. 정읍역 정류장서 215번 버스 이용 야룡정류장 하차 후 264m 이동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정읍시청 교통과 063)539-5911

-버스 센트럴시티-정읍, 센트럴시티터미널서 하루 10~13회(07:00~22:00)운행, 2시간55분 소요. 정읍고속터미널 터미널후문정류장서 101, 102, 103, 128 버스 이용 야룡정류장 하차 264m 이동.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정읍시청 교통과 063)539-5911   

자가운전
정읍IC→IC사거리 좌회전 →벚꽃로→충정로→유럽마을 엥겔베르그


숙박 정보
-호텔로얄: 정읍시 중앙로, 063-538-0500, https://juroyalhotel.modoo.at
-골드스테이호텔: 정읍시 서부로 51, 063)533-3100, https://www.instagram.com/goldstay_2024
-호텔그린토피아: 정읍시 내장산로, 063)538-9763

식당 정보
-대일정(참게장백반): 정읍시 태인면 수학정석길, 063)534-4030
-양자강(비빔짬뽕): 정읍시 우암로 57, 063)533-4870
-다선전통찻집(쌍화차): 정읍시 중앙1길, 063)531-0852

주변 볼거리
백제가요정읍사문화공원,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내장산국립공원, 무성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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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