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생활주택 ‘오데뜨오드 도곡’ 시공사 VS 시행사 법적 분쟁 내막

비어 있는 건물 두고 알력 다툼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강남에 위치한 하이엔드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오데뜨오드 도곡’을 둘러싼 시행사와 시공사의 다툼이 격해지고 있다. 저조한 분양 실적과 공사 자재비 인상, 정부의 정책 변화로 준공 후에도 비어있는 건물은 공매 절차 및 그와 관련한 법적 분쟁으로 굳게 닫혀 있다. 

강남대로 벤츠 전시장 옆 핵심 입지에 하이엔드 도시형 생활주거 공간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오데뜨오드 도곡’이 분양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시행사인 도곡닥터스와 시공사인 DL이앤씨가 공매와 리파이낸싱을 두고 법적다툼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품급 마감재
프리미엄 가전

오데뜨오드 도곡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일원에 위치한 소형 하이엔드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특수목적기업(SPC)인 도곡닥터스가 시행하고 DL이앤씨가 시공을 맡았다. 오데뜨오드 도곡은 지하 6층~지상 20층 전용면적 31~49㎡, 총 86가구로 조성됐다.

이 단지는 상위 1%를 위한 소형 럭셔리 주거상품으로 기획돼 명품급 마감재 및 가구, 프리미엄 가전을 갖추도록 기획됐다. 또 헬스장, 골프연습장, 사우나 등 호텔급 커뮤니티시설뿐 아니라 발렛파킹, 하우스키핑, 최상급 조식 등 컨시어지 서비스까지 제공한다는 계획됐다.

공사를 시작할 당시에는 부동산시장서 소형이지만 럭셔리함을 갖춘 주거상품으로 주목받았다. 고소득 1인 가구 및 2030 영리치가 증가하면서 각종 커뮤니티시설과 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급 상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였다. 


이 같은 트렌드에 맞춰 건설사들도 각종 커뮤니티시설과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소형 럭셔리 주거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단지 내 수영장, GX룸 등 운동시설을 갖추는 것은 물론, 스카이라운지, 북카페, 소극장 등의 문화시설도 함께 조성했으며 이 외에도 세대 내 럭셔리 인테리어와 수입 가구, 최신식 가전을 마련하는 등 고급화를 추구했다.

실제로 럭셔리 주거상품은 분양 성적도 우수했다. 현대건설이 송파구 문정동에 공급한 ‘르피에드’는 전용면적 42~50㎡를 대표 타입으로 내세우는 소형 럭셔리 주택으로, 전 타입 완판됐다. 강남구 논현동에 공급된 ‘펜트힐 논현’, 부산 해운대에 공급된 ‘빌리브 패러그라프 해운대’도 완판되는 등 소형 럭셔리 주거상품의 인기는 멈출 줄 몰랐다.

이런 가운데 서울 강남 한복판에 1인 가구 하이엔드 라이프의 정수를 보여준다며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갖춘 상류층을 위한 럭셔리 주거시설로, 무려 18개 타입으로 구성한 오데뜨오드는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정부에선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 강화, 임대사업자 등록제도 개편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7·10 부동산 대책(2020년 7월10일자 주택시장 안전 보완대책)’을 발표하며 분양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코로나, 부동산 정책…저조한 분양 실적
외국 투자 유치하려 했지만 공매 넘어가

7·10 부동산 대책에 따르면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서울 소재 주택을 2주택 이상 보유한 개인에 대한 중과세율이 종전 0.8~4% 수준서 1.2~6% 수준으로 상향됐다. 다주택 보유 법인에 대해서는 중과 최고세율인 6%가 적용되는 것으로 변경됐다. 

또 서울을 포함한 규제 지역 다주택자에게 부과되는 양도소득세의 중과세율도 기존 2주택 이상 보유자 10%, 3주택 이상 보유자 20%서 각각 20%, 30%로, 다주택자 및 법인에 적용되는 취득세율은 각각 8%(2주택 보유 개인), 12%(3주택 이상 보유 개인, 법인)로 인상됐다.


게다가 오데뜨오드 도곡 인근에 공급 물량이 많았다는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당시 강남구를 중심으로 고급형 도시형 생활주택이 8곳 이상 분양되면서 수요가 분산됐다. 또 오데뜨오드 도곡이 준공될 당시 전세 사기에 대한 우려 분위기가 확산돼 도시형생활주택에 대한 인기가 크게 꺾인 점도 분양에 차질을 준 원인으로 꼽힌다.

코로나19와 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낮아진 소비 심리에 오데뜨오드 도곡은 2020년 하반기 분양을 시작했지만 지난해 7월 준공 이후에도 미분양 물량이 다수 남았다. 총 108호실 중 약 87호실이 미분양됐었다. 현재는 모든 호실이 미분양 상태다.

이 같은 부진한 실적에 대주단과 시공사 등에 원금, 이자 및 대금 지급이 지연돼 기한이익상실(EOD, Events Of Default)이 발생했다. 

공매는 금융기관이나 기업체가 가진 비업무용 재산과 국세, 지방세의 체납으로 인한 압류재산을 처분하는 것으로, 공매 물건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금융기관이 기업체나 개인에게 대출해 주고 약정한 기간에 돈을 회수하지 못해 매각 의뢰한 담보물이다. 

대주단은 1차 공매를 신청했지만 도곡닥터스를 믿고 취소했다. 도곡닥터스는 오데뜨오드 도곡 분양 대상자를 외국인과 시니어 층으로 바꾼 뒤 좋은 호응을 얻고 외국 투자사(SC Lowy Korea)와 1000억원가량의 투자의향서 체결에 협의했기 때문이다.

108호실 중 
87호실 미분양

도곡닥터스는 해당 투자를 받은 뒤 1순위 채권단인 대주단의 원금과 이자를 갚은 후 분양에 돌입해 분양금으로 2순위 채권단인 시공사와 신한자산신탁 채권을 해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DL이앤씨가 다시 신한자산신탁에 공매를 요청하며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DL이앤씨는 지난 10월14일 도곡닥터스의 공사대금 미지급을 이유로 신탁계약상 수탁자인 신한자산신탁에 공매절차의 개시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신한자산신탁은 지난 10월23일 오데뜨오곡 도곡에 대해 지난 11월4일부터 일반경쟁에 의한 공개 매각을 진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공매 공고를 했다.

해당 공고에 따라 공매는 4차까지 진행됐지만 입찰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시공사에서는 “당초 오데뜨오드 도곡의 분양가가 너무 높게 잡혀있어서 입찰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며 “주변 시세와 비슷한 분양가를 처음부터 내놨으면 공매까지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데뜨오드 도곡의 1차 최저 입찰가는 1829억5700만원이었다. 3차 최저 입찰가는 1335억40만원으로 책정됐다. 오데뜨오드 도곡의 감정평가액은 1407억3600만원이다. DL이앤씨가 오데뜨오드 도곡의 분양가가 높게 잡혀 있어 입찰이 안 됐다고 주장하지만 감정가보다 낮은 3차 최저 입찰가에도 입찰이 안 된 것이다.

첫 분양 당시 3.3㎡(1평)당 분양가가 7299만원에 달했다. 비슷한 시기에 강남 재건축단지인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가 평당 분양가가 5273만원, ‘디에이치 리클라스’가 4892만원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확연히 비싼 편이다.

시행사는 현재 공매중지가처분을 신청해 둔 상황이다. 시행사는 DL이앤씨의 납득할 수 없는 부당한 공사비 인상요구를 포함한 갑질로 분양 실적이 저조했다고 지적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DL이앤씨는 원자재 가격 상승을 핑계로 합리적인 수준 이상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는 경우 공사를 중단하겠다며 도곡닥터스를 협박하고 의도적으로 공사를 지연했다.

의도적으로 
공사 지연?

도곡닥터스 관계자에 따르면 도곡닥터스와 DL이앤씨는 처음 도급계약을 맺을 당시 체결 시점을 기준으로 연간단가 30% 이상 자재비 및 인건비가 폭등할 경우 채권자(도곡닥터스)가 채무자(DL이앤씨)와 공사비 증액을 협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특수조건 제12조와 제13조에 따르면 자재인상분에 대한 공사비 증액은 ‘철근·형강’에 대해서만 적용하도록 돼있지만 DL이앤씨는 자재비가 얼마나 올라갔는지도 공지하지 않고 철근과 형강 외 자재비 인상을 요구했다.

또 도곡닥터스는 DL이앤씨가 추가 공사대금을 요구하면서 오데뜨오드 도곡의 출입을 막고 있어 도곡닥터스는 물론 분양업체도 오데뜨오드 도곡을 출입할 수 없어 분양할 수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도곡닥터스의 이런 주장에도 재판부에서는 공매 중지 가처분 소송을 기각했다. 이에 DL이앤씨 관계자는 “시행사의 주장을 법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 주장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고 강조했다.

도곡닥터스와 DL이앤씨는 공사대금 채무부존재 소송도 진행 중이다. 도곡닥터스와 DL이앤씨는 사업 초기 공사 기간 28개월 343억563만원의 도급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공사가 예정보다 지연되는 등의 사정을 고려해 지난 2022년 3월25일 공사 기간을 실 착공일로부터 29.5개월(2021년 1월18일부터 2023년 6월30일까지)로 연장하고 총 계약금액을 435억563만원으로 변경해 다시 계약했다.


도곡닥터스는 도급계약에 따라 95억원가량 증가한 공사대금을 DL이앤씨에 지급했지만 DL이앤씨는 공사대금 192억원을 추가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추가된 192억원에는 공사 기간이 연장됨에 따른 추가 지출 공사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자재비, 연체이자 등이 포함됐다.

도곡닥터스는 공사 기간이 연장된 데 DL이앤씨의 책임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채무부존재 고소장에 공사가 마무리되어가던 지난 2023년 6월경 DL이앤씨가 원자재 가격 상승을 핑계로 합리적인 수준 이상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면서 공사를 악의적으로 지연했다고 적시했다. 

“192억 추가 공사대금 이해 안가”
“러·우 전쟁 여파로 정당한 요구”

도곡닥터스는 너무 높은 원자재 인상 비용에 DL이앤씨에 하청업체에 대한 공사비 지급 내역, DL이앤씨와 하청업체 간 계약이행증권 등을 요구했지만 DL이앤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추가 공사대금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공사 기간 중 DL이앤씨의 현장 관리 소홀로 공사 현장서 화재가 발생해 공사가 4주가량 지연됐으며 지난 2022년 8월경에는 DL이앤씨가 모델하우스를 본래 약정과 다르게 특 A급 원자재가 아닌 C급 원자재를 사용해 개설해 이를 허물고 다시 개설하는 과정서 추가로 4개월가량 공사 기간이 지연됐다고 한다.

심지어 모델하우스의 철거와 재시공은 도곡닥터스가 직접 다른 업체와 계약해 진행했다.

이를 두고 도곡닥터스 관계자는 “분양과 상관없이 연장된 공사 기간에 대한 책임은 DL이앤씨에 있다”며 “정상적인 추가 공사대금인 69억원 외에 공사 지연으로 인한 추가 대금을 부담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도곡닥터스는 오히려 DL이앤씨가 도곡닥터스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모델하우스 재시공 업체 계약 비용 3억3000만원을 포함한 모델하우스 재건축비 9억원, 4개월의 임차료 8억원, 분양 지연 등 행위에 따른 이자 60억원, 준공 후에도 현재까지 무단 점유로 분양을 막고 있어 발생하는 18개월의 이자 120억원 등이다.

추가로 매달 부과되는 세금과 관리비 등도 5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단순 계산하더라도 250억원가량의 손실을 입은 셈이다.

도곡닥터스 관계자는 “DL이앤씨의 모델하우스 부실 공사가 없었다면 초기 분양을 부동산 정책이 변하기 전에 시행할 수 있었다”며 “사업계획으로 분양광고를 냈을 때만 해도 분양 예약이 전체 호실을 넘어선 수준이었지만 수요자가 모델하우스를 보지 못하고 정부 정책이 바뀌면서 분양 기회가 사라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DL이앤씨가 요구한 공사대금을 100억가량으로 줄이면 요구에 응할 생각이 있다”며 “하지만 DL이앤씨가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서 공매는 진행되고 입찰가는 점점 내려가고 이자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다”고 호소했다.

DL이앤씨는 최근 해당 채무부존재 소송과 관련된 서류를 법원으로부터 송달받았다. DL이앤씨 관계자는 “회사는 시행사가 제기한 소송에 강력히 대응할 예정이며 허위 사실 유포와 관련된 법적 대응도 준비 중”이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정당한
공사대금”

DL이앤씨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철강·형강뿐 아니라 모든 공사 자재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며 “도곡닥터스가 요구하는 하청업체와의 계약은 업무상 기밀사항이라 알려줄 수 없으며 정당한 공사대금을 요구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2020년부터 분양 실적이 저조했는데 분양 대상을 바꾼다고 해서 분양이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보고 기다리는 것보다 공매를 통해 손실을 줄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해 공매를 진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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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권 전쟁’ 이재명-한덕수 파워게임

‘주도권 전쟁’ 이재명-한덕수 파워게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됨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그런 한 총리 옆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우뚝 섰다. 국정 주도권이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혼란스러운 한 해가 저물어간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란 대통령이 궐위, 또는 사고로 인해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이를 대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권한대행의 범위는 법으로 정해져 있으며 조약 체결이나 국군통수권을 비롯해 긴급명령·긴급경제명령 발동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헌정사 세 번째 권한대행이지만 구체적인 권한의 범위를 놓고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쌓여가는 요구안 첫 번째 권한대행은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서 고건 전 국무총리가 맡았다. 이후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공백을 채웠다. 윤석열정부서는 한덕수 권한대행이 그 자리를 맡으면서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권한대행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한 권한대행은 경제부총리와 한국무역협회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외교·안보는 물론 주가와 환율 등 경제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한 권한대행은 요동치는 경제 상황 안정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국정 주도권은 법적으로 권한을 가진 한 권한대행이 쥔 것처럼 보이지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입김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은 한 총리에 대한 탄핵 카드를 들고 있을뿐더러 헌법재판관 임명권과 거부권을 놓고 여당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이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무회의 심의 과정에 참여한 점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계엄법 제 2조 6항에 따라 국방부 장관의 계엄 선포 건의가 국무총리를 거쳐서 대통령에게 이뤄졌다면 내란죄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며 한 권한대행을 내란 혐의로 고발했다. 한 권한대행의 탄핵소추안 가결은 야권 의석수만으로도 가능한 만큼 정국의 목줄은 사실상 야당이 쥐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민주당 내부서도 한 권한대행의 탄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부겸 전 총리는 “나중에 (한 권한대행)수사를 하다가 혐의가 드러나면 그때 탄핵을 하면 되지 않나”라며 “당장 법안 하나하나 가지고 ‘뭘 하면 탄핵하겠다’고 하는 것은 국민이 보기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국 민주당은 “국정 혼선을 고려해 일단 탄핵 절차를 밟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전히 당내에서는 한 권한대행에 대한 내란 사태의 책임과 국정 난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국정 안정을 위해 일보 후퇴하겠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의석수로 밀어붙이면 그대로 끝 총리 탄핵 밀당…신중하게 접근 이 대표는 “어제(14일) 한 권한대행과 통화를 했다”며 “이제는 여야를 가리지 말고 정파를 떠나 중립적으로 정부의 입장서 국정을 해나가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한대행은 교과서적으로 현상 유지관리가 주 업무고 현상을 변경하거나 새 질서를 형성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대행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는 국정 공백 상황서 ‘탄핵 남발’ 프레임에 걸려들 경우 사법 리스크를 떠안은 민주당에 화살촉이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발 물러섰지만 언제든 탄핵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는 상황인 만큼 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쥔 거대 야당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다. 민주당은 어수선한 정국의 틈새를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바로 다음날인 지난 15일 이 대표는 정국 정상화를 위해 국회와 정부가 함께하는 초당적 협의체인 ‘국정안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크게 휘청인 금융경제, 민생에 관한 정책적 협의를 비롯한 추가경정예산안을 신속히 논의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이 이 대표를 선두로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고 자연스럽게 대권 행보로 이어가려는 포석을 깔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모든 정당과 함께 국정 안정과 국제 신뢰 회복을 위해 적극 협력하겠다”며 “시장 안정화, 투자 보호 조치 등 경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초당적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이 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 협조를 요구하며 “거절 시 정당으로서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이전에는 당 소속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무적 판단을 했다면 이제는 그냥 국회 구성원이자 제2당으로서 국정 안전, 민생회복이라는 큰 공통의 목표에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국민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서 국민이 직접 선출한 권력기관은 이제 국회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띄운 국정안정협의체 제안에 한 권한대행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지만 국민의힘은 사실상 이를 거절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여전히 여당이고 헌법 규정에 의해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됐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당정 협의를 통해 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정치를 끝까지 하려고 한다”며 “그동안 민주당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어떻게 하면 윤정부를 붕괴시킬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마치 탄핵소추 이후 민주당이 여당이 된 것처럼, 국정 운영 책임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건 옳지 못하고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기 대선 몸풀기 이에 이 대표는 “모든 논의의 주도권은 국민의힘이 가져가도 좋고 이름이나 형식, 내용이 어떻게 결정되든 상관없다”고 받아쳤다. 특히 “혹시라도 국정 전반에 대한 협의체 구성이 부담스럽다면 경제와 민생 분야에 한정해서라도 협의체를 구성해줄 것을 요청한다”며 거듭 국민의힘의 참여를 요구했다. 민주당이 손을 내밀었지만 여당은 연일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권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이 이 대표의 죄를 덮어주는 ‘대선 출마 허가증’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정국 불안정으로 경제와 외교적 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묻지마 탄핵’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대통령이 된 듯 ‘상왕 놀이’에 심취한 이재명 한 명의 존재가 한국 경제와 정치의 최대 리스크”라고 거들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 대표를 겨냥해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난동범일 뿐”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홍 시장은 “범죄자, 난동범을 대통령으로 모실 만큼 대한민국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향해 날을 세웠지만 ‘내란 정당’ ‘내란 공범’ 단어 앞에서는 무뎌질 뿐이다. 탄핵 찬성 의사를 밝힌 한동훈 전 대표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친윤(친 윤석열)계를 앉힌 국민의힘인 만큼 윤 대통령의 불법 계엄을 옹호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초당적 협의체를 제안한 야당과 이를 거절한 여당, 그리고 둘 사이에 낀 한 권한대행 간의 삼각관계는 갈수록 복잡하기만 하다. 권력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사이 이 대표는 ‘개딸(개혁의 딸)’과 거리를 두고 보수 세력과 만남을 가지면서 중도 세력 확장까지 보폭을 넓히고 있다. 우선 지난 16일, 그는 자신의 팬클럽인 ‘재명이네 마을’ 이장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이장직은 재명이네 마을 회원 등급 중 하나로 이 대표만 가진 등급이다. 이 대표는 재명이네 마을에 “삼삼오오 광장으로 퇴근하는 여러분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덩달아 요즘 챙겨야 할 일이 참 많아졌다”며 “재명이네 마을 이장직을 내려놓겠다는 아쉬운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비상시국인 만큼 야당 대표로서 업무에 주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다. 끝없는 딜레마 앞서 민주당 내 비명(비 이재명)계는 이 대표의 팬덤 정치, 정당 사당화를 비판했다. 그동안 이장직을 내려놓지 않은 이 대표가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자 중도층 확장을 위한 조치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8월 ‘이재명 2기체제’가 출범함과 동시에 금투세 폐지 등 경제 분야서 우클릭을 시도해 왔다. 12·3 내란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에도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TK(대구·경북) 지역을 찾거나 정·재계 보수 인사와 만남을 갖는 등 외연 확장에도 힘을 쏟았다. 지난 대선서 “윤석열은 싫지만 이재명도 싫다”는 비토 세력의 목소리가 컸던 만큼 중도층을 사로잡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 탄핵안을 연일 만지작거리고 있다. 국정 안정을 위해 한발 물러섰지만 한 총리가 ‘양곡관리법’을 비롯한 ‘내란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사용할 경우 탄핵안 발의도 고려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 후 한덕수 권한대행의 거부권 사용에 대해 “상황을 봐야겠다”면서도 “똑같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윤석열 시즌2’가 아닌가. 권한대행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만일 사태에 대비해서 탄핵안은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국정 안정을 위해 한 총리에 대한 탄핵안을 한 차례 보류했지만 윤 대통령과 똑같은 절차를 밟는다면 역시나 같은 결과를 맞이할 것이란 경고를 날린 셈이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한 권한대행은 헌법상 절차에 따른 권한대행일 뿐 선출된 권력이 아님을 명심하시라. 권한대행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헌법상의 필요 최소한의 대통령 권한 행사만 대행해야 한다”며 “권한대행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무시하고 국민의 권한을 침탈하는 입법 거부권과 인사권을 남용하는 것은 헌법 위반으로 또 다른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거부해라, 받아라” “임명해라, 못한다” 여야 사이에 낀 한 총리 깊어지는 고민 반면 국민의힘은 해당 법안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맞불을 놨다. 한 권한대행이 살얼음판을 걷는 사이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가 또다른 변수로 떠올랐다. 여야가 국회 추천 몫인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임명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면서다. 한 권한대행과 이 대표의 힘겨루기 역시 이 문제를 놓고 절정에 치달았다. 우선 야당은 한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거부권은 불가능하지만 재판관 임명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여당은 대통령 궐위 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직무가 정지된 때에는 임명할 수 없다며 ‘거부권은 가능하지만 재판관을 임명할수 없다’는 반대의 입장을 내놨다. 헌법재판관 임명은 향후 치러질 윤 대통령 심판의 핵심이 되는 축이다. 재판관 3인의 공석으로 인해 ‘6인 체제’로 재판을 치를 경우 한 명만 이탈하더라도 탄핵안은 기각된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위해 민주당이 강경하게 밀고 나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탄핵안 남발로 역풍이 불 것이란 우려가 나오지만 윤 대통령 탄핵이 갈림길에 선 지금 민주당은 ‘이판사판 전투태세’라는 게 한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국민의힘 주장대로라면 머릿수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서 무리하게 심판을 치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비상계엄 여진이 상당히 길다”며 “6인 체제로 심판할 경우 국민 정서에 어떻게 비춰질지 안 봐도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 권한대행을 탄핵하는 것은 결이 다른 이야기”라며 “국가가 불안정한 상태서 지도자를 자주 교체하는 건 대내외적으로 바람직하게 비치지 않는다. 지금 상황서 한 권한대행이 내밀 수 있는 카드가 없다. 협력 방안을 모색하며 여야의 협치에 기대는 게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벼랑 끝 탈출구 윤 대통령의 경우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달리 비상계엄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권한대행 역시 주어진 역할은 같지만 과거보다 활동 폭이 좁아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과거부터 권한대행은 여야 사이서 질타를 받는 위치였다. 잘해도 욕 먹고 못하면 더 욕먹는 고충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벌써 대통령처럼 행동하는 이 대표에게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여당의 제어가 필요하다”며 “여야 불문하고 힘든 시기일수록 협치를 최우선 가치로 둬야 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이 이상 국민에게 실망스러운 정치를 보여드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탄핵 후 처음 만났지만…빈손으로 돌아선 여야 지난 18일 국민의힘 권성동 신임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상견례를 가졌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첫 대표급 만남이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입장차만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권 원내대표는 “머리를 맞대면 혼란 정국을 잘 수습할 것”이라면서도 “탄핵소추로 인해 국정이 마비 상태니 그것도 풀어주시기를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고 당부했다. 이 대표는 “국정이 매우 불안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헌정 질서의 시급한 복귀”라며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가 완벽할 수 없으니 국회 1당과 2당 모든 세력의 힘을 합치자”고 말했다. 이들은 여야 간 소통을 강화하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가 ‘자주 만나서 같이 합의하고 결론을 낼 수 있는 게 있으면 보여주자. 오른손으로는 싸우더라도 왼손으로는 합의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