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19만6465m 오른’ 전성기 회계사 등산 예찬론

“건강에 공짜 없습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30여년 간 숫자를 봐온 회계사는 6년째 산에 푹 빠져있다. 산을 공부하고 기록하면서 ‘발전’에 목말라 하는 모습이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뽐내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뭔가 하나에 빠져서 ‘그래도 이 분야는 내가 좀 알아’ 이 정도는 돼야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내려올 거, 왜 산에 오르는 걸까요?” 기자의 우문에 전성기 회계사는 “‘어차피 죽을 거, 왜 사냐’는 질문과 같습니다”라는 현답을 남겼다.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전 회계사는 등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몇 번이나 “재미있다,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아파서…

등산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미 순위서 매번 최상위권에 자리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5년 단위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등산은 지난 20년간 1-1-1-2위를 기록했다. ‘등산은 중장년 남성만 좋아한다’는 인식도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MZ세대가 등산을 더 즐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서 만난 전 회계사는 ‘등산 매니아’를 넘어 ‘등산 덕후(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산은 물론 교통편, 동호회, 심지어 보폭, 호흡법 등 관련 정보에 해박했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에 적어둔 등산 기록은 ‘등반 일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꼼꼼하게 정리돼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끌던 것은 등산에 관해 이야기할 때의 표정이었다. 1964년생, 중년의 회계사는 산과 봉우리, 정상서 본 경치 등을 말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공자는 ‘지자요수(知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전 회계사를 보면서 ‘즐기는 자는 산을 좋아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회계사가 된 그는 2019년 5월 은퇴할 때까지 ‘숫자’와 씨름하며 살았다. “회계사 생활이 지겨워져서”라고 은퇴 이유를 밝힌 그는 비슷한 시기에 등산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건강상의 이유였다. 2018년 4월경부터 척추관협착증으로 고생하던 그에게 ‘아파도 참고 걸으라’던 조언이 등산으로 이어졌다. 

2019년 1월부터 오르기 시작
100대 명산 정복…200대 도전

2019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산행에 나선 전 회계사는 6년여 동안 우리나라 100대 명산을 오르고 현재 200대 명산 완등에 도전하고 있다. 전 회계사가 보여준 등산 앱 기록으로는 220회에 이른다. 지금까지 등반한 산의 고도를 합친 거리는 19만6465m에 달했다. 백두산(2744m)을 72번 등반한 수준의 거리다.

전 회계사는 “처음에는 북한산, 두 번째가 관악산, 세 번째는 검단산이었다”며 “같이 간 선배가 검단산 정상서 보이는 산을 가리키면서 용문산이라고 알려줬다. 바로 다음 주말에 용문산에 올랐다. 정상만 찍는 것은 내 스타일과 맞지 않아 긴 코스(11.5㎞)로 설계해 다녀왔다. 그때 등산 앱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1호 기록이 용문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용문산 백운동은 산이 뾰족하게 돋아 있어 한국의 마테호른이라고 불린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가팔라진다. 계단 하나하나를 오르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정상서 쉬다가 다시 산행을 시작할 때 느낌이 아직도 선하다. 지난해 겨울에 다시 한번 다녀왔는데 경사는 여전히 가팔랐다”고 설명했다.

전 회계사는 주로 혼자 산에 오른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차를 이용하거나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안내산악회’라는 등산 에이전시를 알게 됐다. 특정 산에 오를 인원을 신청받아 최소 출발 명수 이상이 되면 안내산악회서 버스와 가이드(산행 대장)를 섭외해 산행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1회성 산악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려 220회 
등반 기록

마치 플래시몹처럼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28인승 버스를 함께 타고 등반할 산 입구까지 간다. 산 입구서 각자의 코스로 산을 탄 뒤 정해진 시간까지 공지한 장소로 가면 다시 버스를 타고 처음 출발지로 향한다. 산행 이후 출발할 때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 10분 이상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한다. 

전 회계사는 “산행의 60% 정도는 안내산악회를 이용했다”며 “무박 등반을 하는 경우 새벽 3~4시 사이에 버스서 내리면 28명 내외의 사람들이 각자 부산하게 움직이며 등반 준비를 하고 속속 들머리를 지나 사라진다. 어떤 사람은 버스서 내리기 30분 전부터 신발 끈을 동여매거나 머리띠를 하는 등 준비에 몰두한다.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엔 ‘오늘 하루 산행이 어떻게 펼쳐질지’ 두려움도 느껴지고 흥분되기도 한다. 때로는 몸의 신경조직에 뭔가 짜르르 흘러 들어오면서 팽팽하게 긴장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완등한 산에 대해 언급하면서 당시에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그가 직접 찍은 사진과 기록한 글은 해당 산을 처음 가는 사람이 보면 바로 길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세세했다. 언제 출발했고 어디서 쉬었으며, 어떤 코스를 이용해 산에 올랐는지, 심지어 경사도는 어느 정도였는지까지도 적었다.

그런 전 회계사도 속리산에서는 심하게 ‘알바(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알바는 일종의 등산 용어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뜻한다. 계획한 코스를 ‘본업’으로 치고 엉뚱한 곳으로 가면 ‘알바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전 회계사는 “혼자 다른 데 가서 헛짓하다 오는 것”이라면서 웃었다. 

성취감
엄청나

전 회계사는 “등산 앱을 켜면 내가 등로서 어느 쪽으로 벗어나 있는지 대략 알 수 있다. 그걸 보고 찾아가면 얼추 찾는데 속리산에서는 느낌으로는 왼쪽으로 가는데 실제로 내 움직임은 왼쪽으로 가질 않더라. 정말 난감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가만히 앉아 쉬고 있는데 뿔 달린 사슴이 지나갔다. 산에서 사슴을 처음 봤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결국 그는 속리산 법주사 쪽으로 방향을 완전히 틀어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위 옆이나 계곡 근처를 지날 때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고 설명했다. 평지 길은 사람이 지나다니면서 흔적이 남는데 바위 옆이나 계곡은 그 흔적이 잘 보이지 않아 인근을 지날 때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 쉽다는 것이다. 

전 회계사는 산에 오르기 전 ‘설계’, 즉 준비를 엄청나게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설악산은 봉우리가 매우 많은데 그 이름을 다 알기 위해 인터넷 ‘키워드’를 기록해둘 정도였다. 그는 “산에 올라서 보이는 봉우리의 이름을 다 알아야 한다. 내가 보고 그 봉우리 이름을 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산행 기록을 보고 인터넷 자료를 뒤져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여러 차례 돌려보고 난 후에 산행을 시작한다. 그러고 산에 가서는 주요 장소마다 사진을 찍고 기록한다. 산행을 마친 뒤에는 산의 경사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보며 또 공부한다. 산을 오르는 것을 넘어 탐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 회계사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재미있다’는 표현과 함께 ‘발전’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등산을 통해 발전하고 등산을 위해 발전하는 삶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에게 등산을 다닌 6년의 시간은 ‘체득’의 과정이었다. 산행하면서 본인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6년 동안 산행하면서
최적화된 방식 찾아내

전 회계사는 “산에서 내려올 때 스틱(등산 장비)이 유용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나는 사용하지 않는다. 하체를 단련하기 위해서다. 무릎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하체에 부하를 줘야 한다. 또 보폭을 크게 해 허벅지에 부하를 주기도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호흡과 스태핑의 조화와 균형에 대해서도 말했다.

전 회계사는 “호흡의 들숨과 날숨의 주기는 수시로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경사도에 따라 보폭의 크기, 스탭핑의 완급, 호흡의 완급 등 3가지를 잘 조절하면서 산행하면 덜 지치고 꾸준히 할 수 있다. 몸의 에너지를 100% 쓰는 게 아니라 80%만 쓴다는 생각으로 걸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회계사가 이렇게 산에 푹 빠진 이유는 뭘까? 전 회계사는 ‘성취감’을 첫 번째로 꼽았다. 그는 “농담처럼 하는 말인데 세상에 없는 게 3가지가 있다. 정답이 없고, 비밀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짜가 없다. 등산은 ‘공짜가 없다’는 말에 가장 부합하는 취미다. 힘들게 올라갔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은 그것에 비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행복과 고통은 서로 등을 대고 붙어 있다고 생각한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면 고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고통을 참고 올라가면 거기에 비례한 만큼 행복이 다가온다. 쉽게 산에 오르면 그 행복감이 덜하다”고 덧붙였다.


‘밋밋한’ 산보다는 오르기 어려운 산을 등반했을 때 더 큰 행복함을 느낀다고도 했다. 전 회계사의 다음 목표는 200대 명산을 완등하는 것이다. 또 백두대간 종주도 꿈꾸고 있다. 

고통과 행복
비례한다

이어 “산에 가면 모든 게 다 좋다. 높은 곳에 올라 뻥 뚫린 산하, 겹겹이 펼쳐진 산 그리메,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 정말 너무 좋다. 또 힘들게 올라간 뒤 편안하게 난 능선길을 걷는 느낌, 땀을 뻘뻘 흘리고 난 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느낌도 좋다. 피곤한 즐거움조차 좋다”고 등산을 예찬했다. 

 

[전성기 회계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한국공인회계사
▲미국공인회계사 시험 합격
▲세화회계법인(1990. 9~1993. 4)
▲세동회계법인(1993. 5~1999. 5)
▲안진회계법인(1999. 6~2019. 5)
▲Deloitte 안진회계법인 부대표
▲Deloitte 안진회계법인 금융산업감사 부문 그룹장 및 Country Leader 역임
▲신한회계법인(2023.10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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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미묘한 시기에 사정기관의 칼끝이 문재인정부를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관에 대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행보를 달리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기’ 상황에 놓여있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탄핵안 인용으로 파면됐고 새 대통령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 이후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정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는 이른바 ‘반쪽짜리 정부’ 상태에 있는 셈이다. 새 정부 앞두고…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와 180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보고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형태로 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 정부는 여느 정부보다 ‘전 정부 지우기’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서 새로운 정책을 펴거나 기존 정책을 발전시키는 행보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정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라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특히 유력 후보와 관련한 사건은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칫하다가는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 이번 대선은 선거 기간이 짧아 국민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작은 사건이 대선에 나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검찰과 감사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전 대통령이 표적이 됐다. 이전부터 해온 수사와 조사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하기엔 시기가 미묘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21년 12월 시민단체 고발 이후 3년5개월여 만이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모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등을 수사해 왔다. 서씨가 취업했던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도 뇌물공여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전 대통령의 딸인 다혜씨와 서씨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다혜씨, 서씨와 공모해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이스타항공의 해외법인 격인 타이이스타젯에 서씨를 임원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서씨는 2018년 8월 취업 이후 2020년 3월까지 타이이스타젯에서 급여로 약 1억5000만원, 주거비 명목으로 6500만원을 받았다. 집값 통계 조작 결과 발표 청와대 외압 정황도 나와 검찰은 서씨의 취업으로 문 전 대통령이 그간 다혜씨 부부에게 주던 생활비 지원을 중단한 점을 들어 문 전 대통령이 이 금액만큼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판단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의원은 “터무니없고 황당한 기소”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보복성 기소”라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다. 그는 “법정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검찰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행사되고 남용되고 있는지 밝히는 계기로 삼겠다”며 “수사권 남용 등 검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 고소하는 것은 물론, 검찰을 개혁하는 기회로 여기겠다”는 발언도 내놨다. 검찰 기소에 앞서 감사원도 문정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놨다. 문정부 임기 동안 부동산 등 국가 통계를 광범위하게 조작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가 통계 작성 기관 등에 압박을 가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지난달 17일 감사원은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주택통계), 가계동향 조사(소득통계), 경제활동인구 조사(고용통계) 등을 감사한 자료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11명)·국토교통부(7명)·한국부동산원(7명)·통계청(6명) 등 총 31명에 대해 징계 요구(14명)·인사자료 통보(17명) 등 엄중 조치하는 한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통계청 등에 통계의 정확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제도개선 통보 및 주의 요구를 처분했다. 검찰 기소 왜 지금? 감사원은 2023년 9월 대통령비서실·국토부·통계청·한국부동산원(이하 부동산원) 소속 22명 가운데 일부 주요 관련자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당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및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부는 주택 가격에 대해 부동산원에 ‘통계 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사전 제공하도록 지시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결과를 임의로 수정하고 통계 개선 명목으로 표본 가격을 조작하는 등 통계 왜곡을 은폐했다. 이렇게 집값 관련 통계 수치를 조작한 사례는 감사원 확인 결과 102건에 달했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외압은 2018년 1월 서울 양천, 성남 분당의 주택 매매 가격 주간 변동률 왜곡 등에 처음 시작됐고, 2018년 하반기 부동산시장이 요동치자, 객관적 근거도 없이 특정 지역 개발계획 철회 등 정부 발표 내용이 시장 안정에 효과를 준 것처럼 통계에 반영토록 요구했다. 감사원은 “국회·언론은 국정감사 등에서 주택 가격 동향 조사 변동률 등이 시장 상황 및 민간 통계 등과 다르다며 통계의 정확성·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으나 개별 표본 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표본 가격이 시장가격과 격차가 벌어진 사실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정부가 핵심 정책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문정부는 출범 때부터 ‘소득 주도 성장’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도 정부 주도로 진행했다. 문제는 그 효과를 정부 차원에서 왜곡했다는 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각각 2·3·4분기 가계소득을 가집계한 결과 전년 대비 감소로 확인되자, 정당한 절차 없이 표본 설계에 없는 가중값을 임의로 적용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켰다. 부동산·고용 다 건드렸다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마사지’가 들어갔다. 청와대는 2018년 1분기 소득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5.95)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에 개인정보 등이 포함된 통계자료를 사전 제공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했다. 또 한 노동연구원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별 근로소득 불평등 개선’으로 보고·발표하도록 지시했다. 통계청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통계자료 제공 관련 보도 설명 자료 등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발표했다. 감사원 결과가 나온 이후 정치권은 들끓었다. 국민의힘은 ‘국기 문란 범죄’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라고 맞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 모든 실패를 통계 조작으로 감추고 국민의 고통 위에 거짓의 탑만 쌓아 올렸다. 거짓의 탑이 무너지려고 하자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했다”며 “한술 더 떠서 이재명은 감사원을 민주당 자신들이 장악한 국회 아래로 이관해 손아귀에 틀어쥐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표본도, 지수 작성 방식도, 자료 수집 방식도 다른 통계를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이미 전 정권이 돼버린 윤석열정권의 잔당들이 전 정권(문재인정부)의 숨통을 기어이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부른 희대의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한 시기도 지적했다. 한 최고위원은 “윤석열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착수한 감사를 새 정부 수립을 불과 47일 앞둔 때에 마무리한 저의가 대체 무엇인가”라며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저열한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이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북한 GP 파괴 두고도 수사 요청 민주 “해체 준하는 개혁” 반발 감사원은 지난달 24일에도 문정부 당시 군 인사 6명을 수사해달라 요청했다. 이들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북한이 파괴한 북한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대한 우리 측의 불능화 검증을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경두·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이 수사 요청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018년 체결한 9·19 군사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GP 10개씩을 파괴하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시킨 뒤 상호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당시 군 당국은 북한군 GP 1개당 총 7명씩 총 77명으로 검증단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한 뒤 북한군 GP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북한군 GP 지하시설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우리 군 당국이 이 부분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전직 군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지난해 1월 이 내용을 포함한 북한군 GP 불능화 검증 부실 의혹에 대한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그 결과가 이번 감사원의 수사 요청인 셈이다.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와 감사원의 연이은 문정부 ‘공격’에 민주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검찰과 감사원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며 ‘신 관권선거’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5일 국회 소통관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감사원이 북한의 GP 파괴 관련 결과를 내놓은 이후다. 조 수석대변인은 “권력기관이 이제 대통령선거에까지 사실상 개입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마지막까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졸개이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내란 세력이 벌이는 최후의 저항을 국민과 함께 막아내고 내란 세력을 철저히 뿌리 뽑아 국민 주권을 돌려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대세 영향 미칠까? 앞서 민주당은 집값 등 통계 조작 관련 감사원 발표 이후 ‘해체에 준하는 개혁 대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 전 정권 탄압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서 나온 발언이다. 민주당은 “독립 기관이라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 채 내란 옹호 기관이라는 오명을 안은 감사원에 닥칠 결말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문정부 표적 감사, 윤정부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해 최 원장은 직무에 복귀했으나 감사원장이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