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여자 축구판 만수르 미셸 강

메시도 몰랐는데 세계 축구 중심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재미동포 미셸 강 회장이 미국축구협회에 여성 중 역대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했다. 기업가로 성공한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3개의 여성 축구단을 운영하며 인생 2막을 열었던 그는 지난 2020년부터 여성 스포츠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서 태어나 미국 이민 후 성공한 여성 사업가인 미셸 강이 여자축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 있는 축구클럽 3곳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에는 미국 여자축구에 거금을 기부했다. 재미동포 여성 사업가 미셸 강 회장이 미국 여자축구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3000만달러(약 418억원)를 기부해 화제다. 해당 금액은 여성이 쾌척한 미국축구협회 기부금 중 최고액이다.

한국 태생
미국 이민

미국축구협회는 지난 20일(한국시각) “미셸 강 회장이 협회의 여성 및 유소녀 프로그램을 위해 향후 5년 동안 300만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며 “미국축구협회의 여성 및 유소녀 프로그램에 대한 역대 가장 큰 규모의 기부”라고 밝혔다.

미국축구협회는 강 회장의 기부금으로 유소녀 선수들의 경쟁 기회를 확대하고 재능 있는 선수를 발굴·육성하며, 여성 선수·코치·심판의 전문성 개발을 촉진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강 회장은 “여성 스포츠는 너무 오랫동안 과소평가되고 간과됐다”며 “저는 여성 선수들이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데 필요하고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전문적인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경기장 안팎서 여성 축구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전념하려 한다”고 전했다.


신디 팔로우 콘 미국축구협회 회장은 “미셸 강의 선물은 미국의 여성 및 유소녀 축구를 변화시킬 것”이라며 “선수, 코치, 심판을 포함한 우리 축구계서 여러 세대의 여성 및 유소녀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미셸 덕분에 우리는 여성과 유소녀들에게 더 많은 지원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회장은 11대, 13대 국회의원으로 여성 권익 신장에 이바지한 이윤자 전 의원의 딸로 서강대에 재학하다 1981년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한국에선 여성은 결혼=퇴사가 당연했고, 경력을 이어나간다고 해도 유리천장을 깨기 어려웠다. 나의 꿈은 최고경영자(CEO)의 비서가 아닌 CEO가 되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혼수 자금을 당겨서 달라”고 부모를 설득해 미국서 대입부터 다시 시작, 시카고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EY에 들어가 컨설턴트로 일하다 ‘포춘 500대 기업’인 방위산업체 노스럽그러먼의 임원으로 이직했다. 

그러다 2008년 48세 나이에 미국 워싱턴DC서 헬스케어 정보기술(IT) 업체인 코그노상트를 창업했다. 그는 미국서 활동하며 헬스케어 정보기술 분야가 아직 블루오션으로 남아있다고 판단했고, 그의 판단을 증명하듯 코그노상트를 10여년 만에 연매출 4억달러(약 5500억원)에 직원 2000여명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미국축구협회에 418억 기부 화제
여성 기부 최고액…그녀는 누구?

강 회장은 성공비결에 대해 “미국서 여성이 세운 회사는 100만달러 매출을 넘기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그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게 다른 사람의 힘이고 팀워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조직의 힘을 키우기 위해 회사 매출이 2000만달러일 때도 10억달러 회사에 뒤지지 않는 조건을 내세워 직원들을 뽑았다”며 “남들이 잘 안 하는 과감한 투자를 했기 때문에 매년 매출이 두 자릿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업가로 성공한 강 회장은 이제 여성 축구 구단주로서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다. 기업 CEO로서 유리천장을 몸소 깬 그는 은퇴를 고심하던 시점부터 여성 축구계에 자꾸 관심이 갔다고 한다. 어떤 선수의 우수성, 어떤 팀의 우승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여성 축구계가 남성 축구계에 비해 이윤 창출이 부진하고 그렇기에 활력이 없어지는 악순환 때문이었다.


강 회장은 처음 여자 축구에 진출하면서 현지 언론에 “난 솔직히 리오넬 메시가 누구인지도 몰랐다”며 “나는 의료 업계도, 축구도 잘 모르고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어느새 세 구단을 소유한 구단주가 됐다.

그가 인수한 축구단은 프랑스의 올랭피크 리옹 페미냉(Olympique Lyon Feminin), 미국의 워싱턴 스피릿(the Washington Spirit)과 영국의 런던시티 라이어네시즈(the London City Lionesses)다.

이 중 가장 먼저 인수한 구단은 워싱턴 스피릿이다. 그는 지난 2020년 12월 워싱턴 스피릿의 공동 구단주로 이름을 올린 지 2년이 지난 2022년에 단독 구단주가 됐다. 당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딸인 첼시 클린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딸인 지나 부시 해거 등이 워싱턴 스피릿의 주요주주 명단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혼수 자금
당겨 사업

강 회장은 단독 구단주에 오른 후 “전임 감독의 폭력으로 선수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축구단 운영을 맡게 됐다”며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3년 내 선수 연봉과 팀 운영 등 모든 면에서 워싱턴 스피리트를 세계 최고의 여자 축구팀으로 키울 것”이라며 “그 이후에 유럽과 한국의 여자 축구팀을 인수해 세계적인 여자 프로축구단으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강 회장이 두 번째로 인수한 구단은 잉글랜들 2부 클럽 소속인 런던시티 라이오네시스다. 강 회장은 지난해 말 런던시티를 인수한 후 연고지를 브롬리로 옮기고 세계적인 수준의 훈련 센터를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12월엔 파리생제르맹 감독인 조셰린 프뤼처를 새 사령탑으로 선임하고, 스웨덴 출신 베테랑 코소바레 아슬라니를 영입하는 등 공격적으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강 회장은 두 번째 구단으로 런던시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런던시티가 독립적이어서다. 남성팀과 여성팀을 분리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거래”라며 “클럽 이름에 런던이 들어가는 것은 실로 엄청나다. 축구가 활성화되지 않은 지역에 들어가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잉글랜드 클럽을 한 팀씩 인수한 강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5월17일 <AP통신>은 “미국여자축구리그 워싱턴의 구단주인 미셸 강 회장이 워싱턴과 프랑스 리그1 올림피크 리옹을 포함하는 ‘멀티 구단 법인’을 이끌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강 회장과 리옹을 소유한 OL그룹의 최대주주인 이글 풋볼 홀딩스가 맺은 계약에 따르면, 워싱턴과 리옹으로 구성된 별도의 축구 법인이 새로 설립된다. 강 회장은 이 법인의 대주주 겸 최고경영자가 된다. 사실상 강 회장이 리옹을 인수한 셈이다.

강 회장은 새 법인 지분을 나눠 갖는 OL그룹의 이사회에도 합류한다. <AP통신>은 당시 “해당 계약은 미국여자축구리그 사무국의 승인만 남겨두고 있으며 6월 말에 모든 절차가 완료된다”고 전했다. 

강 회장은 “이번 계약은 여자 프로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진전”이라며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 챔피언스리그(UWCL) 8회 우승에 빛나는 리옹의 독보적인 전통과 2021년 미국여자축구리그 챔피언 워싱턴의 역동성이 결합해 여자축구를 새로운 시대로 안내할 것”이라 강조했다.


여자축구
새 시대로

3개의 구단을 인수한 강 회장은 지난 7월 여자축구의 프로화에 중점을 둔 세계 최초의 멀티구단 글로벌 조직 ‘키니스카 스포츠 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강 회장의 꿈은 남자축구의 ‘시티풋볼그룹’ ‘레드불풋볼’과 같은 축구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의 대부호인 세이크 만수르는 지난 2014년 시티풋볼그룹이란 지주 회사를 세운 뒤 맨체스터시티(잉글랜드), 뉴욕시티(미국), 멜버른시티(호주), 지로나(스페인) 등 12개국의 축구 구단을 인수하거나 지분을 사들여 운영 중이다. 

시티풋볼그룹은 단순히 축구가 좋아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아닌 부동산 투자와 개발을 통해 자본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도 가지고 있는 만큼 인수하는 구단 역시 대부분 투자를 통해 수익을 불리기 좋은 대도시 연고의 구단 위주로 구성돼있으며, 해당 구단이 빠르게 성장하거나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공격적인 초기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레드불풋볼은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뉴욕 레드불스(미국), 브라간치누(브라질), 라이프치히(독일) 등 4개국서 프로축구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세계적인 음료 회사 레드불은 스포츠계에 많은 투자를 하는 그룹으로 유명하다. 

레드불은 전 세계인이 즐기는 레이싱 스포츠 F1(Formula 1)을 비롯해 아이스하키, 크라켓, 랠리, 배구 등 여러 스포츠에 스폰을 하는 등 전 세계 스포츠계에 깊게 잠식돼있는 회사다. 레드불은 약 200개국서 판매되는 에너지 음료의 브랜딩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스포츠계에 투자를 하는 반면, 축구계에서는 직접적인 이윤을 발생시키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레드불풋볼그룹은 마치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유망주를 발굴하고 양육하고 판매해 방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조슈아 킴미히, 엘링 홀란드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이 시스템 안에서 탄생했으며 지금도 그들과 같은 수많은 인재들이 레드불 풋볼 시스템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

강 회장은 여성 스포츠도 돈이 된다고 강조해 왔다. 그는 지난 8월19일 <가디언>이 공개한 인터뷰서 “여성 스포츠가 좋은 사업이라는 걸 증명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라며 “절대 자선이 아니다. 진지한 투자”라고 밝혔다. 강 회장에게 여자축구를 비롯한 여성 스포츠는 수익성을 품은 ‘신사업’인 셈이다.

강 회장이 생각하는 여자축구 산업 확장의 핵심은 중계권과 판권 등 미디어를 통한 수익이다.

기업 CEO서 구단주로
현재 3개 구단 운영 중

강 회장은 “남성 스포츠도 미디어를 통해 버는 돈을 빼면 수익을 내는 팀이 그리 많지는 않다”며 “미국여자프로농구가 새로 맺은 계약을 보라. 그게 여자축구서도 새로 일어날 일”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게 지금 어떤 상태인지’와 ‘그게 어디까지 클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거다. 아무도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는 데서 어리둥절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내 사업적 역량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여자축구 경기를 보는 시청자가 경기당 5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며 “남자 축구 시청자 수를 능가할 정도로 여자축구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강 회장은 여자축구도 남자 축구 못지않게 큰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기존 중계권 계약이 2025년 만료되는 미국여자프로농구는 지난 7월 디즈니, NBC, 아마존 등과 11년짜리 새 계약을 체결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계약 규모는 22억달러(약 2조9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강 회장은 여성들에게도 더 많은 삶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강 회장은 “난 이민자고 운 좋게 아메리칸드림을 이뤘다. 이제 내가 기회를 제공할 차례다. 똑같은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으나 동등한 기회는 줄 수 있다”면서 “대단히 재능 있는 젊은 여성이 전문적인 직업 경로가 보이지 않아 꿈을 포기하는 걸 봐왔다. 남자아이들처럼 제약 없이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 “미국서 남자 축구선수는 40만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지만 여자 선수의 평균 연봉은 4만달러에 그쳐 대부분 여자 선수들이 대학 졸업 후 축구를 포기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림픽서 금메달을 따는 것도 여자 선수들이고 아이비리그 출신 선수들도 수두룩한데 이들의 연봉이 남자 선수의 10% 수준에 그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를 위해 강 회장은 구단 확장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는 “대륙마다 팀 한 곳은 가지고 싶다”며 “욕심이나 허영심서 그런 게 아니라 여자아이들이 TV를 보고 ‘영국, 프랑스, 미국서나 있는 현상’이라고 말하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강 회장은 한국에 먼저 진출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회장은 지난해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팀 인수나 창단도 검토한 걸로 알려졌다. 연고지까지 물색했으나 각종 행정상 난관에 구체적 단계까지 진행되지는 않은 걸로 전해진다.

“여 스포츠도 
돈이 된다”

이런 강 회장의 행보에 미국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지난 2023년 ‘영향력 있는 스포츠계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뉴욕 타임스>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리오넬 메시를 몰랐던 강 회장이 지금은 세계 여자축구의 판도를 바꾸는 인물이 됐다”고 평가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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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후폭풍> 끝나지 않은 탄핵 시나리오

[12·3 계엄 후폭풍] 끝나지 않은 탄핵 시나리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탄핵 열차가 멈춰 섰다. 시동이 걸릴 듯 말 듯 미적대던 열차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동력 삼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열차를 레일 위에 올린 것은 야권이지만 운전대를 잡은 여당이 브레이크를 잡았다. 탄핵 열차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재가동이냐, 전복이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부터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뤄진 7일까지 정치권을 비롯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였다. 야권은 비상계엄 선포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공개하면서 ‘윤석열 퇴진’을 외쳤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탄핵안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고 이탈표 단속에 나섰다. 국민은 서울 여의도, 광화문 등지서 열린 탄핵 찬반 집회에 참석했다. 숨가쁜 4일 쪼개진 국민 여야는 표결 전까지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다. 야권은 ‘김건희 특검법’과 ‘대통령 탄핵안’을 같이 표결하겠다고 선언했고 국민의힘은 김 여사 특검법에만 표를 던지고 탄핵안 표결 때는 퇴장하는 방식으로 맞섰다. 그 결과 김 여사 특검법은 부결, 탄핵안은 정족수인 200석을 채우지 못해 표결이 무산됐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본회의서 ‘김건희 특검법(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재의의 건)’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 결과,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찬성 198표, 반대 102표로 부결됐다. 2표차로 김 여사 특검법은 최종 폐기됐다. 이후 이어진 대통령 탄핵안 표결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단체로 퇴장했다. 안철수 의원이 자리를 지키고 김예지·김상욱 의원 등이 본회의장으로 돌아와 표를 던졌지만 정족수를 채우진 못했다. 대통령 탄핵안의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다. 범야권 찬성 표를 192명으로 계산했을 때 국민의힘 의원 8명의 이탈표가 필요했다. 표면상으론 윤 대통령 부부가 ‘한숨 돌린’ 모양새다. 하지만 여론의 파도는 훨씬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서 보여준 모습이 국민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 여사 특검법 표결 후 국회 본회의장을 떠나는 모습이 생중계에 고스란히 잡히면서 ‘방탄 정당’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모든 일은 지난 3일 오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에서 시작됐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재현된 비상계엄 상황에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화들짝 놀랐다. 계엄군과 국회의원, 시민 등의 대치로 국회 앞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후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이 나오자 혼란은 더욱 극심해졌다. 3일 오후 10시25분 비상계엄 선포 이후 4일 오전 4시27분 해제되기까지 6시간 동안 국회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3일 오후 11시께 “모든 국회의원은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달라”고 공지했다. 재적 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 최소 150명 이상이 국회 본회의장으로 집결해야 했다. 여당, 표결 전 퇴장 직무 정지는 면했다 그사이 계엄군이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보좌진 등과 대치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됐다. 우 의장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을 진행할 당시 모인 국회의원은 190명이었다. 표결에 참여한 의원의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2시간30여분 만이다. 계엄 선포 해제 발표는 3시간 뒤인 오전 4시27분께 나왔다. 윤 대통령은 생중계 담화를 통해 “어젯밤 11시를 기해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며 “그러나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 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다”고 말했다. 6시간 만의 상황 종료였다. 문제는 후폭풍이다. 계엄군이 국회의원을 체포하거나 시민과 충돌해 사상자가 나오는 등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1979년 이후 처음 선포된 비상계엄이 한국 사회에 안긴 충격은 엄청났다. 여론이 들끓었고 특히 정치권은 사상 초유의 사태에 시계 제로(0) 상황이 됐다. 발 빠르게 움직인 쪽은 야권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롯한 야6당은 4일 오후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고 5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했다. 탄핵안 발의에는 야6당 의원 190명 전원과 무소속 김종민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헌법이 요구하는 그 어떠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원천 무효인 비상계엄을 발령했다”고 탄핵 사유를 들었다. 국민의힘은 표결 직전까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종일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상태였지만 내부 상황이 요동쳤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윤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면서 사실상 탄핵 찬성의 뜻을 밝힌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몇몇 의원이 당론과 상관없이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혼란이 더해졌다. 7일 국회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탄핵안 표결 결과에 따라 윤 대통령은 물론 여야의 운명이 갈릴 판국이었다. 윤 대통령과 윤석열정부, 여당과 야당 그리고 당 대표까지 정치적 셈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라 표결에 쏠린 관심이 컸다. 특히 칼자루를 쥔 국민의힘의 행보에 전 국민의 이목이 몰렸다. 여기에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국민 앞에 선 게 변수로 떠올랐다. 45년 만에 6시간 종료 윤 대통령은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국정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됐다”면서도 “그 과정서 국민께 불안과 불편을 끼쳐드려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해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며 “저의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약속했다. 2분 남짓한 짧은 담화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사흘 만에 나온 윤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였다. 일각에서는 탄핵 부결을 위한 ‘쇼’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고 국민의힘 표 단속을 위한 행보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탄핵안 표결이 무산된 후 대통령실에서는 이날 담화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안 폐기로 정치권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국민의힘은 표결 무산의 책임을 모조리 뒤집어 쓸 상황에 처했다. 지난 4일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에 친한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의원 18명이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이들 가운데 절반만 찬성에 표를 던졌으면 윤 대통령의 탄핵안은 가결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탄핵안 표결은 정치적 판단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야 간 상황이 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표결에 작용했다는 것이다. 야권은 상대적으로 탄핵 표결 여파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다. 탄핵안이 가결됐다면 윤 대통령의 직무가 바로 정지되는 상황이었고 부결이어도 책임 소재는 국민의힘으로 향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탄핵안 발의가 민주당의 ‘꽃놀이패’라는 말이 계속 나온 이유다. 여기에 민주당은 표결 전부터 탄핵안이 부결되면 재발의하겠다고 공언했다. 부결된 안건은 회기 중에 다시 제출할 수 없는 만큼 정기국회 회기가 종료되는 오는 10일 이후 임시국회를 소집해 탄핵안을 다시 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앞서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국가 비상사태를 막기 위해 탄핵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탄핵안이 가결될 때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고립된 여 힘 받는 야 정치권 일각에서는 ‘가결은 시간 문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의 퇴진을 바라는 여론이 심상치 않기 때문.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 여사 논란과 고 채 상병 사건 등에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었다. 실제 국민 사이에서도 10년 사이에 두 번이나 대통령을 탄핵하는 상황을 꺼리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완전히 뒤집혔다. 20~40대 청년층은 생전 처음 겪는 일에 충격을 토로했고 1980년대 비상계엄을 겪은 50대 이상 장년·노년층은 40여년 만에 다시 일어난 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탄핵을 통해 윤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4일 조사한 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5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서 반대는 24%에 그쳤다. 만 18~29세는 86.8%, 40대는 85.3%가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50대 76.4%, 30대 72.3%, 60대 62.1%, 70세 이상 56.8%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서 찬성 비율이 79.3%로 가장 높았고 서울은 68.9%로 나타났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경북서도 탄핵 찬성이 66.2%로 과반을 넘어섰다. 탄핵안이 표결까지 가지도 못하고 무산되면서 안 그래도 불붙은 대통령 퇴진 여론에 기름이 더해졌다. 윤 대통령이 탄핵 위기를 넘겼어도 여전히 가시밭길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결국 소나기를 피했을 뿐 ‘식물 대통령’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는 여전히 야6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야권의 192표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지난 5일 민주당이 발의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안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3명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서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안이 통과돼 직무가 정지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발의·명태균 첩첩산중 국민 신뢰 완전히 잃어 민주당은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이전 감사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이유로 최 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또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 과정서 이 지검장과 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 최재훈 서울중앙지검 반부패2부장 등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탄핵 사유를 들었다. ‘게이트’로 번질 조짐을 보이는 명태균 사건도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는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과 미래한국연구소의 불법 여론조사 의혹 등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민주당서 이른바 ‘명태균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일부 여당 인사가 언급되고 있다. 명씨는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김 전 의원을 경남 창원의창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로 추천하는 과정서 김 전 의원 회계책임자였던 강혜경씨를 통해 8070만원을 받고 2022년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북 고령군수와 대구시의원 예비후보로 출마한 사람들에게 유력 정치인 등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공천 추천과 관련해 2억4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일각에서는 명씨가 현재 받는 혐의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나온다. 명씨가 과시한 정치적 영향력이 윤 대통령 부부라는 ‘뒷배’로부터 나온 게 확인되면 그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명씨를 둘러싼 의혹을 파헤칠수록 검찰 수사가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김 여사 문제로 다시 귀결된다. 윤 대통령은 그간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이용해 김 여사에게 쏟아지는 공세를 막아왔다. 그럼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리고 있다”며 몸을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해제-탄핵안 발의-표결 무산 등의 과정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어 김 여사에 대한 공세를 더는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 본인도 내란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검·경은 수사 속도를 높이는 중이다. 여론이 더 악화되면 국민의힘서도 윤 대통령과 거리두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잃어버린 권위와 신뢰다. 탄핵안이 발의되기 전부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10% 후반을 오락가락했다. 국민 10명 가운데 2명도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지율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급전직하 상태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표결 직전 지지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성난 민심 극복 불가 대외적으로도 윤 대통령은 한국의 ‘리스크’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오판’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비판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세계 곳곳서 전쟁이 계속되는 등 급변하는 국제 상황서 윤 대통령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권의 탄핵 실패가 윤 대통령의 성공일 수 없는 이유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