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판부터…’ 이재명 유죄 결정적 이유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1.25 14:05:28
  • 호수 1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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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동이 발목 잡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벌금 100만원 선고 여부를 주목했던 예상과는 달리, 법원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프롤로그서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본게임은 3개가 남아있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검찰은 이 대표에게 재판 1건을 또 추가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한성진)는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치권 안팎서 유죄 선고 시 공직선거법상 당선무효 기준인 벌금 100만원을 기준으로 형량을 예상했던 것을 뛰어넘는 선고였다.

“협박 없었다”
무게 둔 법원

여론은 사건의 흐름을 이해하기 쉬운 “김문기(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를 아느냐” 여부에 관심을 집중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백현동 용도변경 특혜 의혹에 집중됐다. 130쪽 분량의 판결문서 김 전 처장 관련 내용은 5쪽에 불과했지만, 백현동 의혹은 61쪽을 할애했다.

성남시장 재임 시절 백현동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에게 적용됐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성남시가 용도변경을 자체 결정한 것인데, ‘국토교통부 협박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취지의 허위 사실 공표였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재임 중이던 지난 2021년 10월20일 국회 국토교통위 경기도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민주당 문진석 의원은 이 대표에게 백현동 의혹 관련 질의를 했고, 이 대표는 “한국식품연구원(이하 식품연구원)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국토부 요청에 따라 부지를 팔았다”며 “국토부가 공공기관이전특별법을 근거로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압박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토부 장관이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요구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반영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는 협박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용도변경을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발언에 허위 사실 공표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의 ‘국토부의 협박’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토부가 용도변경을 통한 민간 매각 추진을 확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변경될 용도지역은 특정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토부가 성남시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낸 것도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용도지역을 명시하지 않은 채 용도지역 변경이 가능하다고만 회신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가 언급했던 공공기관이전특별법에 대해서도 “성남시 검토 공문서는 국토부가 성남시 의사와 무관하게 용도지역 변경을 강행할 수 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의 ‘국토부의 직무유기 협박’ 주장에 대해서는 법원도 “이 대표나 성남시 공무원들이 협조 요청에 대해 부담감을 느꼈다고 볼 여지는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국토부는 의무조항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공문을 보냈고, 국토부 주도의 부지 매입이 실제로 진행됐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증인으로 출석한 성남시 공무원들도 ‘압박이나 협박은 없었다’ ‘그런 말은 못 들었다’ ‘기억나지 않는다’ 등의 증언을 했다”고 제시했다.


녹지 바다에 준주거지역 섬처럼 ‘둥둥’
산 깎아 50m 옹벽 둘러친 중대형 아파트

식품연구원은 참여정부서부터 진행됐던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전북혁신도시 이전이 확정됐고, 2015년 2월 부지를 민간사업자 성남알앤디PFV에 매각했다. 성남알앤디PFV는 부지의 47%엔 1223가구(전용 84㎡ 이상 중대형) 규모의 아파트를 지었고, 53%는 공원과 R&D(연구·개발) 용지로 성남시에 기부채납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부지의 용도지역은 자연녹지지역이었다. 자연녹지지역엔 건폐율 최대 20%, 용적률 최대 100%가 적용된다. 부지 매각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지난 2021년 10월 성남시 도시주택국 2015년 4월 작성 보고서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도시관리계획 변경 검토 보고’를 공개했다. 보고서엔 “개발이 불리한 자연녹지지역으로 돼있어 부지매각 입찰이 8차례 유찰되는 등 매각에 어려움이 있으니, 용도지역 등을 변경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어 “식품연구원은 자연녹지지역·보전녹지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하고, 공동임대주택과 연구개발(R&D) 센터를 건립하겠다”고 제안했다. 보고서엔 민주당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당시 성남시 정책비서관)과 이 대표의 서명이 있었다.

준주거지역은 주거 기능을 중심으로 하되, 일부 상업·업무 기능을 보완하는 지역이다. 준주거지역엔 건폐율 최대 70%, 용적률 최대 500%가 적용된다. 식품연구원이 원래 제안했던 용도지역은 제2종 일반거주지역이었다. 제2종 일반주거지역엔 건폐율 최대 60%, 용적률 최대 250%가 적용된다.

현재는 지역별로 없애는 추세지만, 18층이라는 층수 제한도 있었다. 준주거지역엔 원래 층수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백현동 의혹의 핵심은 이 대표가 준주거지역 변경을 허용한 것이었다. 성남시는 자연녹지지역서 1~3종 일반주거지역을 모두 뛰어넘고 준주거지역 변경을 허용했다. 식품연구원의 제2종 일반주거지역 변경 제안은 허용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이보다 제한이 더 풀리는 준주거지역 변경을 결정했던 것이다.

법률적 표현은 아니지만, 개발에 유리한 용도지역으로 변경되는 것을 일반에선 ‘종상향’이라고 한다. 식품연구원은 2단계 종상향을 요구했고, 성남시는 이를 허용하지 않다가 스스로 4단계 종상향을 결정했다. 종상향은 통상 단계별로 진행되지만, 이 사례는 4단계 종상향이 단 1회의 변경으로 진행됐다. 

용도 변경 
시장 권한

용도지역 변경은 도시관리계획 변경으로 결정해야 한다. 도시관리계획 결정권자는 시도지사와 인구 50만명 이상 대도시 시장이다. 성남시 인구는 90만명이 넘는다. 국토교통부 장관은 개발제한구역 등 일부 사안과 관련해서만 도시관리계획을 결정할 수 있다.

성남시장은 성남시의 용도지역 변경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이 대표는 ‘국토부의 협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식품연구원 주변의 용도지역을 확인하면, 준주거지역이 일대의 자연녹지지역·보전녹지지역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현황을 볼 수 있다. 지도·지적도로 보면, 준주거지역이 ‘녹지 바다’에 섬처럼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백현동은 성남에 소재한 서울공항으로 인해 건축물 높이가 해발 139m 이내로 제한된다. 고도제한이 있는 산 중턱에 있는 부지를 확보해 고층 아파트를 짓자니 절토 작업은 필수였다. 게다가 부지의 53%는 성남시에 공원 등 형태로 기부채납을 해야 했다.

공원은 지어졌지만, “R&D 건물을 지어 기부채납하겠다”는 내용은 “R&D 건물을 지을 수 있는 토지 7995㎡를 추가 기부채납하겠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성남시는 “R&D 예상 건축비(약 357억원)와 추가 기부채납하는 토지 예상가(약 385억원)의 차이가 크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면서 이를 수용했다.

이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더욱 깊이 절토해서 층수를 올렸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이 가능성은 해당 부지에 시공 중인 아파트의 옹벽이 30m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큰 논란으로 이어졌다. 해당 아파트는 높이 50m의 옹벽이 300m의 길이로 삼면에 감싸진 채 자리 잡고 있다. 시공 중 30m 높이였던 옹벽이 준공 후 더욱 높아진 것이다.

박 의원이 성남시로부터 제출받은 2014년 5월 작성 문서 ‘한국식품연구원 이전 예정 부지 활용방안 타당성 조사 보고’에 따르면, 해당 사업 부지는 대부분 경사지고, 부지의 31%는 경사도가 20도를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성남도시공사는 사업 기획 과정서 “사업성 향상을 위해 경사지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해도 개발면적은 전체 부지의 60%가 적합하다”면서 5m 높이의 옹벽 건설을 계획했다. 성남도시공사는 개발사업에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4단계 종상향’ 이후 민간시행사가 독점해 아파트를 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50m 옹벽은 민간시행사가 독점 시공을 하던 중 수익성을 높이는 과정서 함께 높아진 결과물이었을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옹벽은 기후변화에 따라 붕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지자체별로 높이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경기도는 이 대표가 지사로 재임 중이던 지난 2020년 각 지자체에 옹벽 높이를 6m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경기도 산지 지역 개발행위 개선 및 계획적 관리지침’을 시달했다.

당시 이 대표는 “도가 기준을 마련해주면, 각 시·군이 (개발 압력을)버티기 쉬울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동과 
한 번에

시행사가 높은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방안 중 하나는 임대주택 비중의 감소였다. 성남알앤디PFV는 용도변경 조건 중 하나로 ‘100% 임대주택 건설’을 제시했다. 나중엔 이 조건에 대한 변경도 요청했다. 성남알앤디PFV는 “임대주택 대신 일반 분양주택을 짓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 성남시는 임대주택 비중을 10%로 줄여줬다. 백현동 부지에 세워진 아파트단지는 총 1223가구 규모였기 때문에, 임대주택은 123가구로 결정됐다.

성남시는 지난 2017년 6월 성남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용도지역 변경을 위한 관련 기관 협의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기반시설 증가 등 여건이 변동돼 분양주택으로 변경했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도 지난 2021년 11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개발 관련 사항은 식품연구원의 심각한 비위 사항이 드러난 사건”이라며 “2018년 5월15일 최재형 감사원장 당시 감사 결과로 상세히 공개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담당자가 부지 매입회사 대표의 부탁을 받아 지구단위계획 입안제안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성남시에 공문을 보내는 등 식품연구원 내부 비위 행위”라고 주장했다.

반면 백형희 당시 식품연구원장은 “매매계약서상 매수자에게 협조해야 할 의무조항이 있어서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성남알앤디PFV는 약 3143억원의 분양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제1심 재판 중 지난해 11월24일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모 전 성남시 주거환경과장의 증언은 판결서 언급한 ‘이 대표의 주장과 다른 성남 공무원의 증언’의 핵심이다.

전씨는 이날 “국토부가 2014년 12월9일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은 성남시가 판단해야 할 사항’이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증언했다. 이어 “식품연구원 부지는 혁신도시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서 성남시가 법률상 의무조항에 따라 반드시 용도변경을 해줘야 하는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전씨를 직접 신문했다. 이 대표는 “식품연구원이 빨리 이전할 수 있도록 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고, 국토부가 이를 수행했는데, 부담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전씨는 “부담은 없었고, 오로지 시장님(이 대표)의 지시사항만 따랐다”고 답변했다.

이 대표는 “용도변경 신청이 있을 때마다 국토부가 공문을 보냈는데도 부담이 없었다는 것이냐”고 물었고, 전씨는 “부담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10월27일 진행된 ‘백현동 로비스트’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의 공판엔 성남시 도시계획과장을 지낸 A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이 대표가 전화해서 ‘국토부의 협박을 받은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저는 협박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고 증언했다.

이 대표가 “국토부의 협박을 취재해보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일간지 기자 김모씨는 지난 6월28일 증인으로 출석해 “직무유기라는 말을 꺼낸 국토부 공무원을 찾지 못했고, 중앙정부와 지방이 너무 장시간 갈등을 끌고 있어 보도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취재를 더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로비스트는 법정 구속
이 대표의 본게임은?

반대로 성남시 비서실장·국장·공보관 등을 지냈던 공무원들은 “성남시 공무원이 국토부의 압박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정도로 기억한다”는 등 이 대표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언을 남겼다. 따라서 항소심서 격론이 이어지거나, 이들을 증인으로 다시 소환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 전 대표는 정바울 아시아디벨로퍼 대표가 백현동 개발사업 진행을 위해 로비스트 격으로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성남알앤디PFV 최대주주로서, 약 480억원대 횡령 혐의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다. 김 전 대표는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이 대표의 성남시장 선거 선대본부장을 맡았고, 이 대표, 정 전 실장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김 전 대표와의 연락은 2010년 이후로 끊겼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 전 대표도 지난 2023년 3월 <세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서 “이 대표가 2010년 성남시장 선거서 나를 배제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성남시 도시계획팀장을 지낸 A씨는 지난 2023년 9월13일 김 전 대표 재판서 “정 전 실장이 술자리서 ‘인섭이 형이 백현동 개발사업을 하려고 하니, 잘 챙겨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A씨는 “거스를 수 없는 지시로 받아들여졌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이 따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소회를 남겼다.

김 전 대표는 지난 2월13일 제1심 선고공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제1심 재판부는 이 대표가 김 전 대표의 알선·청탁을 들어줬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전 대표와의 연락은 끊겼다”는 이 대표의 주장을 배척하고, 이 대표와 김 전 대표의 특수관계는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지난 8월23일 제1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고, 김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오는 28일 김씨에 대한 상고심 선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선고는 프롤로그에 불과하다는 것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12일 이 대표와 정 전 실장에게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관련 특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재판을 이 대표의 대장동·위례신도시 특혜 의혹 재판을 담당하는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에 배당했다. 이 재판의 1심 선고서 이 대표 관련 핵심 의혹들에 대한 잠정적인 판단이 모두 쏟아져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1건 추가
총 5건

검찰은 이 대표에게 재판 1건을 추가했다.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는 지난 19일 이 대표에게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재임 중 관용차량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법인카드로 음식을 구입하는 등 총 1억653만원 상당의 배임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배우자 김혜경씨와 관련된 의혹이었고, 김씨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로써 이 대표가 받는 형사재판은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특혜 의혹 ▲위증교사 ▲공직선거법 위반 ▲대북 송금 ▲업무상 배임 등 총 5건이 됐다. 프롤로그의 충격은 가시지도 않았지만, 본게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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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