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판부터…’ 이재명 유죄 결정적 이유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1.25 14:05:28
  • 호수 1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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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동이 발목 잡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벌금 100만원 선고 여부를 주목했던 예상과는 달리, 법원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프롤로그서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본게임은 3개가 남아있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검찰은 이 대표에게 재판 1건을 또 추가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한성진)는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치권 안팎서 유죄 선고 시 공직선거법상 당선무효 기준인 벌금 100만원을 기준으로 형량을 예상했던 것을 뛰어넘는 선고였다.

“협박 없었다”
무게 둔 법원

여론은 사건의 흐름을 이해하기 쉬운 “김문기(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를 아느냐” 여부에 관심을 집중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백현동 용도변경 특혜 의혹에 집중됐다. 130쪽 분량의 판결문서 김 전 처장 관련 내용은 5쪽에 불과했지만, 백현동 의혹은 61쪽을 할애했다.

성남시장 재임 시절 백현동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에게 적용됐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성남시가 용도변경을 자체 결정한 것인데, ‘국토교통부 협박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취지의 허위 사실 공표였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재임 중이던 지난 2021년 10월20일 국회 국토교통위 경기도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민주당 문진석 의원은 이 대표에게 백현동 의혹 관련 질의를 했고, 이 대표는 “한국식품연구원(이하 식품연구원)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국토부 요청에 따라 부지를 팔았다”며 “국토부가 공공기관이전특별법을 근거로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압박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토부 장관이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요구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반영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는 협박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용도변경을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발언에 허위 사실 공표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의 ‘국토부의 협박’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토부가 용도변경을 통한 민간 매각 추진을 확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변경될 용도지역은 특정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토부가 성남시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낸 것도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용도지역을 명시하지 않은 채 용도지역 변경이 가능하다고만 회신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가 언급했던 공공기관이전특별법에 대해서도 “성남시 검토 공문서는 국토부가 성남시 의사와 무관하게 용도지역 변경을 강행할 수 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의 ‘국토부의 직무유기 협박’ 주장에 대해서는 법원도 “이 대표나 성남시 공무원들이 협조 요청에 대해 부담감을 느꼈다고 볼 여지는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국토부는 의무조항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공문을 보냈고, 국토부 주도의 부지 매입이 실제로 진행됐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증인으로 출석한 성남시 공무원들도 ‘압박이나 협박은 없었다’ ‘그런 말은 못 들었다’ ‘기억나지 않는다’ 등의 증언을 했다”고 제시했다.


녹지 바다에 준주거지역 섬처럼 ‘둥둥’
산 깎아 50m 옹벽 둘러친 중대형 아파트

식품연구원은 참여정부서부터 진행됐던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전북혁신도시 이전이 확정됐고, 2015년 2월 부지를 민간사업자 성남알앤디PFV에 매각했다. 성남알앤디PFV는 부지의 47%엔 1223가구(전용 84㎡ 이상 중대형) 규모의 아파트를 지었고, 53%는 공원과 R&D(연구·개발) 용지로 성남시에 기부채납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부지의 용도지역은 자연녹지지역이었다. 자연녹지지역엔 건폐율 최대 20%, 용적률 최대 100%가 적용된다. 부지 매각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지난 2021년 10월 성남시 도시주택국 2015년 4월 작성 보고서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도시관리계획 변경 검토 보고’를 공개했다. 보고서엔 “개발이 불리한 자연녹지지역으로 돼있어 부지매각 입찰이 8차례 유찰되는 등 매각에 어려움이 있으니, 용도지역 등을 변경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어 “식품연구원은 자연녹지지역·보전녹지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하고, 공동임대주택과 연구개발(R&D) 센터를 건립하겠다”고 제안했다. 보고서엔 민주당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당시 성남시 정책비서관)과 이 대표의 서명이 있었다.

준주거지역은 주거 기능을 중심으로 하되, 일부 상업·업무 기능을 보완하는 지역이다. 준주거지역엔 건폐율 최대 70%, 용적률 최대 500%가 적용된다. 식품연구원이 원래 제안했던 용도지역은 제2종 일반거주지역이었다. 제2종 일반주거지역엔 건폐율 최대 60%, 용적률 최대 250%가 적용된다.

현재는 지역별로 없애는 추세지만, 18층이라는 층수 제한도 있었다. 준주거지역엔 원래 층수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백현동 의혹의 핵심은 이 대표가 준주거지역 변경을 허용한 것이었다. 성남시는 자연녹지지역서 1~3종 일반주거지역을 모두 뛰어넘고 준주거지역 변경을 허용했다. 식품연구원의 제2종 일반주거지역 변경 제안은 허용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이보다 제한이 더 풀리는 준주거지역 변경을 결정했던 것이다.

법률적 표현은 아니지만, 개발에 유리한 용도지역으로 변경되는 것을 일반에선 ‘종상향’이라고 한다. 식품연구원은 2단계 종상향을 요구했고, 성남시는 이를 허용하지 않다가 스스로 4단계 종상향을 결정했다. 종상향은 통상 단계별로 진행되지만, 이 사례는 4단계 종상향이 단 1회의 변경으로 진행됐다. 

용도 변경 
시장 권한

용도지역 변경은 도시관리계획 변경으로 결정해야 한다. 도시관리계획 결정권자는 시도지사와 인구 50만명 이상 대도시 시장이다. 성남시 인구는 90만명이 넘는다. 국토교통부 장관은 개발제한구역 등 일부 사안과 관련해서만 도시관리계획을 결정할 수 있다.

성남시장은 성남시의 용도지역 변경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이 대표는 ‘국토부의 협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식품연구원 주변의 용도지역을 확인하면, 준주거지역이 일대의 자연녹지지역·보전녹지지역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현황을 볼 수 있다. 지도·지적도로 보면, 준주거지역이 ‘녹지 바다’에 섬처럼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백현동은 성남에 소재한 서울공항으로 인해 건축물 높이가 해발 139m 이내로 제한된다. 고도제한이 있는 산 중턱에 있는 부지를 확보해 고층 아파트를 짓자니 절토 작업은 필수였다. 게다가 부지의 53%는 성남시에 공원 등 형태로 기부채납을 해야 했다.

공원은 지어졌지만, “R&D 건물을 지어 기부채납하겠다”는 내용은 “R&D 건물을 지을 수 있는 토지 7995㎡를 추가 기부채납하겠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성남시는 “R&D 예상 건축비(약 357억원)와 추가 기부채납하는 토지 예상가(약 385억원)의 차이가 크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면서 이를 수용했다.

이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더욱 깊이 절토해서 층수를 올렸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이 가능성은 해당 부지에 시공 중인 아파트의 옹벽이 30m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큰 논란으로 이어졌다. 해당 아파트는 높이 50m의 옹벽이 300m의 길이로 삼면에 감싸진 채 자리 잡고 있다. 시공 중 30m 높이였던 옹벽이 준공 후 더욱 높아진 것이다.

박 의원이 성남시로부터 제출받은 2014년 5월 작성 문서 ‘한국식품연구원 이전 예정 부지 활용방안 타당성 조사 보고’에 따르면, 해당 사업 부지는 대부분 경사지고, 부지의 31%는 경사도가 20도를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성남도시공사는 사업 기획 과정서 “사업성 향상을 위해 경사지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해도 개발면적은 전체 부지의 60%가 적합하다”면서 5m 높이의 옹벽 건설을 계획했다. 성남도시공사는 개발사업에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4단계 종상향’ 이후 민간시행사가 독점해 아파트를 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50m 옹벽은 민간시행사가 독점 시공을 하던 중 수익성을 높이는 과정서 함께 높아진 결과물이었을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옹벽은 기후변화에 따라 붕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지자체별로 높이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경기도는 이 대표가 지사로 재임 중이던 지난 2020년 각 지자체에 옹벽 높이를 6m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경기도 산지 지역 개발행위 개선 및 계획적 관리지침’을 시달했다.

당시 이 대표는 “도가 기준을 마련해주면, 각 시·군이 (개발 압력을)버티기 쉬울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동과 
한 번에

시행사가 높은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방안 중 하나는 임대주택 비중의 감소였다. 성남알앤디PFV는 용도변경 조건 중 하나로 ‘100% 임대주택 건설’을 제시했다. 나중엔 이 조건에 대한 변경도 요청했다. 성남알앤디PFV는 “임대주택 대신 일반 분양주택을 짓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 성남시는 임대주택 비중을 10%로 줄여줬다. 백현동 부지에 세워진 아파트단지는 총 1223가구 규모였기 때문에, 임대주택은 123가구로 결정됐다.

성남시는 지난 2017년 6월 성남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용도지역 변경을 위한 관련 기관 협의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기반시설 증가 등 여건이 변동돼 분양주택으로 변경했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도 지난 2021년 11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개발 관련 사항은 식품연구원의 심각한 비위 사항이 드러난 사건”이라며 “2018년 5월15일 최재형 감사원장 당시 감사 결과로 상세히 공개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담당자가 부지 매입회사 대표의 부탁을 받아 지구단위계획 입안제안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성남시에 공문을 보내는 등 식품연구원 내부 비위 행위”라고 주장했다.

반면 백형희 당시 식품연구원장은 “매매계약서상 매수자에게 협조해야 할 의무조항이 있어서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성남알앤디PFV는 약 3143억원의 분양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제1심 재판 중 지난해 11월24일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모 전 성남시 주거환경과장의 증언은 판결서 언급한 ‘이 대표의 주장과 다른 성남 공무원의 증언’의 핵심이다.

전씨는 이날 “국토부가 2014년 12월9일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은 성남시가 판단해야 할 사항’이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증언했다. 이어 “식품연구원 부지는 혁신도시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서 성남시가 법률상 의무조항에 따라 반드시 용도변경을 해줘야 하는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전씨를 직접 신문했다. 이 대표는 “식품연구원이 빨리 이전할 수 있도록 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고, 국토부가 이를 수행했는데, 부담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전씨는 “부담은 없었고, 오로지 시장님(이 대표)의 지시사항만 따랐다”고 답변했다.

이 대표는 “용도변경 신청이 있을 때마다 국토부가 공문을 보냈는데도 부담이 없었다는 것이냐”고 물었고, 전씨는 “부담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10월27일 진행된 ‘백현동 로비스트’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의 공판엔 성남시 도시계획과장을 지낸 A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이 대표가 전화해서 ‘국토부의 협박을 받은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저는 협박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고 증언했다.

이 대표가 “국토부의 협박을 취재해보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일간지 기자 김모씨는 지난 6월28일 증인으로 출석해 “직무유기라는 말을 꺼낸 국토부 공무원을 찾지 못했고, 중앙정부와 지방이 너무 장시간 갈등을 끌고 있어 보도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취재를 더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로비스트는 법정 구속
이 대표의 본게임은?

반대로 성남시 비서실장·국장·공보관 등을 지냈던 공무원들은 “성남시 공무원이 국토부의 압박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정도로 기억한다”는 등 이 대표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언을 남겼다. 따라서 항소심서 격론이 이어지거나, 이들을 증인으로 다시 소환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 전 대표는 정바울 아시아디벨로퍼 대표가 백현동 개발사업 진행을 위해 로비스트 격으로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성남알앤디PFV 최대주주로서, 약 480억원대 횡령 혐의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다. 김 전 대표는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이 대표의 성남시장 선거 선대본부장을 맡았고, 이 대표, 정 전 실장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김 전 대표와의 연락은 2010년 이후로 끊겼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 전 대표도 지난 2023년 3월 <세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서 “이 대표가 2010년 성남시장 선거서 나를 배제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성남시 도시계획팀장을 지낸 A씨는 지난 2023년 9월13일 김 전 대표 재판서 “정 전 실장이 술자리서 ‘인섭이 형이 백현동 개발사업을 하려고 하니, 잘 챙겨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A씨는 “거스를 수 없는 지시로 받아들여졌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이 따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소회를 남겼다.

김 전 대표는 지난 2월13일 제1심 선고공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제1심 재판부는 이 대표가 김 전 대표의 알선·청탁을 들어줬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전 대표와의 연락은 끊겼다”는 이 대표의 주장을 배척하고, 이 대표와 김 전 대표의 특수관계는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지난 8월23일 제1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고, 김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오는 28일 김씨에 대한 상고심 선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선고는 프롤로그에 불과하다는 것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12일 이 대표와 정 전 실장에게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관련 특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재판을 이 대표의 대장동·위례신도시 특혜 의혹 재판을 담당하는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에 배당했다. 이 재판의 1심 선고서 이 대표 관련 핵심 의혹들에 대한 잠정적인 판단이 모두 쏟아져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1건 추가
총 5건

검찰은 이 대표에게 재판 1건을 추가했다.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는 지난 19일 이 대표에게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재임 중 관용차량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법인카드로 음식을 구입하는 등 총 1억653만원 상당의 배임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배우자 김혜경씨와 관련된 의혹이었고, 김씨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로써 이 대표가 받는 형사재판은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특혜 의혹 ▲위증교사 ▲공직선거법 위반 ▲대북 송금 ▲업무상 배임 등 총 5건이 됐다. 프롤로그의 충격은 가시지도 않았지만, 본게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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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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