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조 폰지사기’ 돈세탁에 감긴 시장님 추적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1.25 12:41:06
  • 호수 1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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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갤러리서 그림 산 돈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가짜 가상자산 예치 사이트를 만들어 투자자 1만671명으로부터 5062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검찰에 붙잡혔다. 일당은 금융관계법령에 따른 인·허가를 받거나 등록·신고를 하지 않은 채 원금 보전을 약속하면서 투자를 유도했다. 특히, 수익금을 세탁하기 위해 현직 광역시장의 아내가 운영하는 갤러리서 수억원대 미술품을 구매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수천억원대 가상화폐 폰지사기(불법다단계·유사수신) 의혹을 받는 ‘와콘’ 변영오 대표 등 2명과 국장·지사장·센터장급 간부 40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이들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사기),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다. 변 대표 등 구속된 2명은 지난 7월23일, 그 외 직원들은 지난달 23일 검찰에 넘겨졌다.

피눈물로

앞서 일당은 본사와 지사, 센터 등 전국에 있는 사무실서 사업설명회를 열고 “가상자산을 예치하면 해외카지노 사업 등에 투자해 수익을 창출, 40일의 약정 기간이 지난 뒤 원금을 그대로 돌려주고 20% 상당의 이자를 지급해주겠다”고 투자자들을 속였다.

이들은 상위 업체 SAK-3(싹쓰리)의 김대천 회장이 소개한 해외카지노 정킷 사업에 일부 투자할 뿐 피해자들에게 설명한 수익사업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는 전형적인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 수법으로 볼 수 있다. 

피해금 대부분은 일당의 수당과 돈세탁 용도의 미술품, 요트, 토지 구입, 정치인 로비를 위한 상품권 구입 등에 사용됐으며 기존 투자자들에게 지급할 수당과 소개비는 신규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충당했다. 또 실제 예치 사이트인 것처럼 꾸민 가짜 사이트를 만들어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투자금이 안전하게 예치되고 약정 이자도 정상적으로 지급되는 것처럼 보였던 해당 사이트는 단순 전산 담당이 입력한 숫자만 나타나게 설정된 것일 뿐, 실제 투자금과 가상자산은 모두 총책 김 회장의 계좌로 입금된 것으로 조사됐다.

투자 피해자들은 김 회장이 모든 사건의 설계자라고 설명했다. 싹쓰리는 변 대표를 포함해 6명의 이사(지분자)를 뒀다. 김 회장 일당은 마카오 카지노 정킷방 운영을 통해 수익을 내서 지급하겠다고 투자자들을 모집했으나, 이들은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경찰의 수사를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상 김 회장의 돈세탁 역할을 맡은 변 대표는 지난해 11월 전국 지사를 돌며 투자자들에게 “지난해 6월부터 출금이 막힌 이유로 싹쓰리에게 사기를 당해 돈을 못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싹쓰리 일당을 고소했고, 투자한 원금과 그 업체의 재산을 다 파악한 상태라고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카카오톡 대화 기록을 살펴보면, 김 회장이 변 대표에게 ‘H 화랑에 총 7억3700만4000원을 송금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김 회장은 2022년 5월31일, 7월16일, 9월1일 3차례에 걸쳐 모 광역시 소재 H 화랑에 각각 3억1220만4000원, 1억5680만원, 2억6800만원을 송금하라고 했다. 이에 변 대표는 즉각 이체확인증을 보내며 답장했다. 

취재 결과, H 화랑은 소재지인 모 광역시장의 아내가 운영하는 갤러리로 확인됐다. 실제로 김 회장 측은 H 화랑서 광역시장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은 시에 수억원을 기부하며 광역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의 장인 권모씨도 해운회사를 운영하며 지자체장을 후원했다고 알려졌다.

다단계 폰지사기 혐의 와콘 변영오 일당 송치
상위 업체 ‘SAK-3’ 김대천 회장 기막힌 작전

또 다른 대화 메시지에는 김 회장이 변 대표에게 ‘상품권을 구입해야 한다’며 2022년 10월7일, 11월8일과 지난해 2월6일 각각 3억5000만원, 2억8830만원, 1억9200만원을 입금하라고 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김 회장은 해당 상품권을 H 화랑 대표의 남편인 광역시장에게 전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김 회장이 구매한 약 10억원에 달하는 호화 요트도 발견돼 피해자들의 분노를 키웠다. 

싹쓰리와 와콘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본 한 남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광주시에 거주한 A씨는 지난해 11월28일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매체가 입수한 A씨의 유서에는 김 회장에 대한 원망이 담겼다.

A씨의 유서 마지막에는 “김 회장, 김주현, 강주연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피해자 구제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A씨 유서에 언급된 김주현은 직업 군인 출신으로 직접 투자 설명회를 갖고 투자자들로부터 끌어모은 이더리움을 김 회장에게 전달하는 최종 모집책의 역할을 했다. 김씨와 내연관계인 강주영은 자금관리를 맡았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의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고령 여성이다. 경찰은 투자자 1명 소개 시 그 투자액의 10%를 소개비로 지급하는 수법이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1인당 최대 피해금액은 92억원에 달했다. 와콘은 변 대표와 함께 구속된 공범이 기존에 갖고 있던 유사수신 조직을 활용해 투자자들을 늘려나갔다.

비전문가들은 알기 어려운 가상자산 투자라는 점도 피해를 키웠다.

경찰은 지난 3월부터 전국 경찰서에 접수된 사건 490건을 병합해 수사에 착수했다. 변 대표가 설립·운영한 서울 본사와 전국 지사 및 일당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고, 피의자 42명을 포함해 프로그램 개발자·직원 등 관련자 50여명을 조사했다.

압수수색 과정서 수천만원 상당의 명품시계 등을 압수했고, 추가 자금 추적 등을 통해 전체 101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에 대해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 결정을 받았다.

회원 수만 약 1만2000명으로 추정되는 와콘은 IT회사를 표방했지만, 뚜렷한 수익구조 없이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선순위 투자자에게 고배당을 지급한 다단계 폰지사기 의혹을 받는다. 전국 곳곳에 지사를 두고 금융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채 티핑·메인이더넷 사업 등으로 가상화폐 스테이킹 상품을 운용했다. 

투자자 모집 과정서 지인 소개비로 무제한 레퍼럴(거래 수수료) 수익을 두고 직급에 따라 고배당을 지급하는 등 다단계 방식을 취했다.

광역시장 부인 화랑에 7억 이상 송금 
로비용 상품권 구입에 총 8억3030만원

경찰은 싹쓰리를 대상으로도 수사 중이다. 현재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김 회장은 변 대표를 포함한 6명의 지분자를 두고 와콘과 같은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모았다가, 지난해 2월부터 원금 및 이자 미반환 사태가 발생했다. 싹쓰리로 인한 피해 금액은 와콘서 돌려받지 못한 금액과 다른 지분자들에게서 거둬들인 투자금까지 포함해 1조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와콘을 제외하고 다른 지분자들은 P2P(개인간 거래) 방식으로 개인 다단계를 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와콘을 변호한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의 남편 이종근 변호사가 농·수·축산물 거래를 가장한 폰지사기 혐의를 받는 시더스그룹 휴스템코리아 등의 변호도 맡아 눈길을 끌었다. 논란이 일자 최근 이 변호사는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휴스템코리아의 이상은 회장과 본부장 손모씨 등 4명은 지난 1월10일 구속 기소됐다. 또 휴스템코리아 법인 등 6명도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이 변호사가 검사 시절 수사 지시한 ‘브이글로벌 코인 사기’ 사건 관계자를 퇴임 후 변호한 사안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지난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이 전 검사장의 변호사법 위반 의혹 사건을 범죄수익환수부(부장검사 유민종)에 배당했다.

앞서 법조윤리협의회는 지난 8일 제131차 위원전원회의를 열고 지난해 하반기 공직 퇴임 및 특정 변호사에 대한 수임 자료 검토 결과 이 변호사를 포함해 총 4명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 2021년 대검 형사부장 시절 브이글로벌 코인 사기 사건 관계자 중 한 명을 퇴직 후 변호한 것으로 전해졌고, 법조윤리회는 수입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브이글로벌 코인 사기 사건은 코인업체 브이글로벌이 발행한 코인 ‘브이캐시’에 투자하면 300%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 5만여명에게 2조8000억원을 가로챈 사건이다. 이 변호사는 이 과정서 주요 피의자인 브이글로벌 관계사 대표 김모씨와 공범으로 기소된 곽모씨에 대한 변호를 수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이 변호사는 1조원대 피해를 낸 휴스템코리아 사기 사건의 휴스템코리아 법인과 대표 이모씨, 4400억원대 유사 수신업체 아도인터내셔널의 관계자 변호도 맡았지만 박 의원이 출마한 지난 총선 과정서 전관예우, 고액 수임료 논란이 일자 사임했다.

로비 시도?

국민의힘 이조(이재명·조국) 심판특별위원회는 지난 4월 휴스템코리아 사기 사건 관련 이 변호사를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대검에 고발했고, 중앙지검은 이를 범죄수익환수부에 배당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 변호사는 인천지검 2차장검사,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 대검찰청 형사부장, 서울서부지검장 등을 지냈고, 2016년 불법 다단계 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유사 수신·다단계 분야서 블랙벨트(공인전문검사 1급)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부 정책보좌관으로 가상화폐 태스크포스 실무 총괄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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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