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트럼프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 탈환에 성공했다. 민주당 해리스 후보에 박빙이 아닌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히스패닉과 흑인 집단 사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한국 외교·안보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했다. 미국 역사상 최고령으로 취임한 대통령이자 그로버 클리블랜드 이후 131년 만에 첫 임기 후 재선에서는 낙선하고 3번째 선거서 당선된 인물이다. 수백건의 논란을 달고 사는 그의 재등장으로 국제 정세 지각변동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업가 출신
재집권 성공

트럼프는 역사상 가장 보유 재산이 많은 미국 대통령이다. 로널드 레이건에 이은 미국 역대 두 번째 셀럽 출신이기도 하다. 그는 1946년 뉴욕서 부동산 재벌인 프레드 트럼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메리 앤 매클라우드 트럼프는 스코틀랜드서 온 이민자였고, 가정부로 일하다 아버지인 프레드와 결혼했다. 그의 친할아버지 프레더릭 트럼프와 친할머니인 엘리자베스 크라이스트 트럼프는 당시 바이에른 왕국 칼슈타트서 온 독일계 이민자였다.

트럼프는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자존심이 강한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도저식으로 추진하는 추진력이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으나, 반대로 자기만이 옳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선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는 항상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그 누구도 자신보다 앞설 수 없고 본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성향이 강하다. 트럼프는 어린 시절부터 일반적인 성향이 아니었다고 한다. 극단적인 수준으로 자신감이 넘쳤으며 그 누구도 존경하거나 롤모델로 삼지 않았다.


트럼프의 극단적 자기애는 사업체에서 자신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으로 드러난다. 몇몇 반대자들은 트럼프의 자신감이 병적인 수준으로 높은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규정한다.

트럼프의 저서를 보면 그 성격의 진가가 드러난다. 트럼프는 “옛날 이야기는 싫다. 현재와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그 외 트럼프를 잘 아는 이들의 일화를 들어보면 자존감이 강하고 타인에게 지는 것에 대단히 민감하다고 한다.

트럼프는 할리우드서 성공을 거둔 배우 아세니오 홀을 보는 관점도 달랐다. 홀이 대중으로부터 극심한 굴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트럼프에게 홀은 그저 하찮은 존재로 평가됐다.

트럼프의 첫 번째 아내 이바나 역시 굴욕을 끔찍이 싫어하는 트럼프와 관련한 일화를 얘기했다. 결혼하기 전 두 사람은 콜로라도로 스키 여행을 떠났다. 스키 실력이 상당했던 이바나는 자신의 실력을 트럼프에게 미리 귀띔해주지 않았다.

이바나는 “트럼프 앞에서 제비 돌기를 두 차례 하고선 사라졌는데 트럼프가 화가 많이 났다”며 “트럼프는 스키를 벗어던지고 레스토랑으로 갔는데 (자신보다 여자친구의 실력이 뛰어났다는)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자기 자신을 “나는 매우 반항적인 사람”이라며 “논쟁이든 육체적인 다툼이든 모든 싸움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13세였을 때는 심지어 음악교사가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며 교사를 폭행했다고 한다. 이 같은 어린 시절 기행으로 인해 트럼프의 부모는 그를 뉴욕 군사학교에 입학시켰다.

어린 시절부터 악동·이단아…군사학교 계기
카지노·연예 사업 등 벌이다 수차례 파산도


이후 트럼프는 군사학교를 대단히 싫어했는지, 부모에게 잘못했다고 자주 빌었다고 한다. 당시 동료들도 그가 하급생 시절에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였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상급생이 되자 군사학교를 좋아했다. 명령을 받는 건 무척 싫어했지만 남에게 명령하는 건 무척 즐겼기에 그는 노력 끝에 중대장 생도가 됐다.

그는 훗날 이 상류층을 위한 사립 군사중고등학교서 5년간 군대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군사훈련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작 군대는 면제를 받았다. 1966년과 1968년 징병검사 당시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68년 재검서 1-Y(평시 면제/전시 징집) 판정을 받았고, 전시 징집 상황에 놓이자 입영 연기를 거듭한 끝에 다시 재검을 신청해 1972년에 4-F(전/평시 모두 면제) 판정을 받았다.

거친 언행과 성격, 다부진 덩치와 달리 트럼프는 술과 담배를 절대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는 형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가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해 폐인이 돼 사망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술을 가끔 즐겼으나 알코올 의존증으로 사망한 형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겨 절대로 술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단 한 번도 술을 입에 댄 적이 없다고 한다.

한 청소년 행사에 참석해서 즉석으로 아이들을 뒤에 세워놓고 “나는 도널드 트럼프 앞에서 술, 담배, 마약을 하지 않기로 서약합니다”라는 약속을 읽게 하기도 했다. 백악관 내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적발된 관료들은 다 해임했을 정도다.

흡연자인 장관들도, 백악관 보좌관들도 트럼프 앞에서는 담배 냄새를 안 풍기게 철저히 입을 가글했다고 한다. 일부 측근들은 이를 계기로 금연에 도전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트럼프는 뉴욕 군사학교를 졸업한 후 USC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할리우드서 활동하려던 기존의 계획을 접고 포덤 대학교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경제학과로 편입해 졸업한 후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는 길을 택했다.

사업가의 길을 걸었던 그는 본인 소유의 회사를 4번 파산시킨 전력이 있다. 1991년 애틀랜틱시티의 타지마할을 당시 돈으로 10억달러 넘게 빚더미에 올려 앉히고는 파산신청을 시작으로, 다음 해인 1992년 트럼프 플라자 호텔(부채 5억5000달러), 2004년 트럼프 호텔과 트럼프 카지노(부채 18억달러), 2009년 트럼프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파산했다.

어릴 때부터
극단적 성격

타지마할 카지노의 실패 이후 은행의 신뢰를 잃은 트럼프는 이후 피자 광고, 햄버거 광고 및 TV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했다. 시카고를 비롯한 많은 미국 주요 도시에는 트럼프의 이름이 크게 걸린 빌딩이 하나씩은 있는데 이건 본인이 지은 건물이라서가 아니라 자기 이름을 빌려준 것이다.

대한민국에도 서울, 부산 등에 트럼프월드가 있을 정도다. 이 밖에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들을 내기도 했다. 부동산 사업뿐만 아니라 미스 USA와 미스 유니버스를 소유하는 등 연예 사업도 진행했다.

트럼프는 젊은 시절부터 언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그의 저서에는 “언론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고, 싸움 붙이는 걸 좋아한다” “언론이 날 이용하듯이 나도 언론을 이용한다”는 등 단순히 언론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사실상 ‘언론이 공격하면 이용하라’고 적혀있다.

실제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서 트럼프는 언론과 적대 관계를 형성했고, 인터넷, 신문, 텔레비전, 유튜브, SNS 등에는 사실상 트럼프 이름밖에 보이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주장한 ‘언론을 역으로 이용하라’는 전략이 대선에도 통한 것이다.


트럼프가 영향을 받은 몇 안 되는 사례로 1970년대 매카시즘으로 유명한 로이 콘 변호사를 꼽을 수 있다. 로이 콘은 트럼프에게 “악명도 이득이 된다”고 조언했고 트럼프는 저서에도 비슷한 문구를 적기도 했다.

트럼프는 기업인으로서의 행보가 주가 돼 연방 상·하원 의원과 정부 공직은 물론이고, 주지사나 지방 의회 의원과 같은 자치단체 경력도 없어 정치 경력은 전무했다.

트럼프는 2000년대 당시 민주당의 성향과 일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의료보험 개혁을 찬성하거나 유색인종에게 호의적인 발언을 하고, 낙태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며 옹호하기도 했다. 실제 그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러나 2008년 대선서 매케인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예측 불가능(unpredictable)”하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기성 정치인들에게 피로를 느끼고 있던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게 됐다. 악명도 명성이라는 말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면서 공화당 경선을 1위로 통과하더니 결국 정치인으로 유명했던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정치 신인이었던 그가 당선되는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다.

감옥행 모면
위험한 복귀

2018년 5월 기준 여론조사에 발표한 트럼프 정부의 지지율은 약 41.2~42.3%, 반감도는 52.5~52.9%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여론은 나빴고, 공화당 지지자들의 여론이 좋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여느 중간선거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심판 선거로 작용했던 2018년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졌다. 중간선거 역사상 100년 만에 최고로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분노한 민주당과 지키려는 공화당이 거세게 맞붙었으나 결과는 트럼프에게 불리해졌다는 평이 상당했다. 상원은 민주당이 방어하는 형태였으나, 공화당이 2석을 더 가져가 수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43년 만에 최고의 성적을 얻어 과반수로 하원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에게 패배해 조지 H. W. 부시 이후 28년 만의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았다.

트럼프는 4년 만에 복귀에 성공했다. 그는 지난 6일(미국 동부 시각) 오전 2시30분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 팜비치서 연설을 통해 “오늘밤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다”며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당선을 “미국 역사상 본 적이 없는 정치적 승리”라고 자평하면서 “미국의 황금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공화당이 다시 상원 다수당이 됐고, 하원 다수당 지위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은 우리에게 전례 없고 강력한 권한을 줬다”며 행정부에 이어 의회 권력도 차지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미국을 다시 안전하고 강하고 번영하고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며 “내가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는 지난 4년간의 분열을 뒤로 하고 단결할 시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미국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당분간은 우리나라(미국)를 가장 우선해야 한다”면서 “국경을 굳게 닫을 것이고, 사람들이 미국에 올 수는 있지만 반드시 합법적인 방식으로 와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날 트럼프는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누르고 승리를 확정지었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전체 선거인단 538명의 과반(270명)을 웃도는 277명을 확보해 해리스 부통령(선거인단 224명)을 눌렀다.

이번 대선서 트럼프는 7대 경합주(선거인단 93명)서 해리스를 크게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트럼프는 남부 선벨트(Sun Belt)로 분류되는 경합주 조지아(16명)와 노스캐롤라이나(16명)서 승리를 확정 지었다.

돈·혐오 무기로 4년 만에 백악관 탈환
미디어 역이용 점령…행보는 예측 불가

경합주 중 선거인단 수가 19명으로 가장 많아 핵심 승부처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도 트럼프가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AP통신>은 트럼프가 백악관 탈환이라는 목표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향후 4년간 그의 형사 소송은 중단되게 됐다. 법무부 당국자들은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다는 법무부 방침에 따라 트럼프의 두 건의 연방 형사사건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 법무부는 트럼프가 대선서 패했더라도 이들 사건이 대법원 상고까지 갈 수 있을 만큼 쟁점이 첨예해 당분간 재판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왔다.

이에 공소를 유지해 취임 전 몇 주간 소송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최종 결정은 잭 스미스 연방 특별검사에게 달려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첫 임기 중 취득한 국가기밀문건을 2021년 퇴임 후 플로리다 자택으로 불법 반출해 보관한 혐의와 2020년 대선 패배를 뒤집으려 한 혐의 등으로 형사 기소된 상태다. 이 사건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이 임명한 스미스 특별검사가 수사해 기소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형사 기소된 전직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임기 중 형사 처벌 가능성은 낮아질 것으로 법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척 로젠버그 전 연방검사는 “합리적이고 불가피하지만 불행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연방 사건 외에도 트럼프는 두 건의 형사사건에 더 연루돼있다. 뉴욕서 진행된 성추문 입막음 돈과 관련된 회계장부 조작 사건과 조지아주 검찰이 제기한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의혹이다. 뉴욕 사건과 관련해서는 트럼프 변호인단이 오는 26일로 예정된 형량 선고 일정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이 사건으로 트럼프는 최대 4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었다. 법률 전문가들은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선고가 전례 없는 일이라며 선고가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조지아 사건은 수사 검사와 풀턴카운티 검사장이 사적인 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재판이 중단된 상태다.

트럼프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기소가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는 “취임 직후 2초 내에 스미스 특별검사를 해임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법무팀은 사건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기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반도
영향은?

스티븐 청 트럼프 대선캠프 대변인은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라는 국민의 압도적인 명령으로 당선됐다”며 “이제 국민은 사법제도 무기화를 즉각 중단해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을 통합하고 국가 발전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퇴임 후 사건이 다시 진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트럼프를 변호했던 제임스 트러스티 변호사는 “법무부가 자체적으로 사건을 기각할 것이라고 낙관하지 않는다”며 “적극적으로 소송을 취하하기보다는 현상 유지를 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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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