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밟으며 걷는 길 ②오대산 선재길 & 밀브릿지

‘바스락바스락’ 만추의 산책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따라다니는 만추의 산책은 유독 즐겁다. 기분 탓만은 아니다. 낙엽 밟는 소리에서 나오는 고주파가 정신을 맑고 상쾌하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낙엽 쌓인 길을 걸으면 신체 건강과 함께 정신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낙엽비’ 내리는 이 계절에 열심히 걸어야 하는 이유다.

낙엽 밟으며 걷기 좋은 길로 오대산 선재길 만한 곳이 없다. 선재길은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숲길로 지금의 도로가 나기 전부터 스님과 신도들이 두 절을 오가던 길이다. 월정사 일주문서 시작한다면 상원사까지 약 10㎞ 코스로 결코 만만한 거리는 아니지만 길이 평탄해 걷기 어렵지는 않다.

전나무 숲길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이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으로 들어서면 월정사의 자랑이자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으로 꼽히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산책로가 어찌나 반질반질하고 반듯한지 걷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흙길의 촉감을 고스란히 느끼고자 맨발로 걷는 사람도 많다.

피톤치드 한가득 마시며 걷는 길, 좋은 문구가 힐링의 기운을 더해준다. ‘크게 호흡하고 숲의 친절함을 느껴보라.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저 걸음을 즐기라. 그저 걷는 것이다.’ 곳곳에 걸린 문구들을 읽으며 걸으니 걷기의 깊이가 달라지는 기분이다.

전나무 숲길 끝에 월정사가 나타난다. 여기서 월정사 옆 오솔길로 가는 방법과 월정사 경내를 통과하는 방법이 있다. 이왕이면 경내로 들어가 월정사의 명물인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을 감상하길 추천한다. 정교한 석탑과 그 앞에 공양을 올리는 듯한 자세의 석조보살좌상이 쌍을 이룬 모습이 흥미롭다.


두 유물 모두 국보로 지정돼있는데 석조보살좌상 경우 경내에 있는 건 복제품이고 진품은 성보박물관에 전시 중이니 참고하자.

석탑을 관람한 후 범종과 법고가 있는 누각(종고루, 鐘鼓樓) 쪽으로 걸어가면 월정사 밖으로 나오게 된다. 길 건너편에 본격적인 선재길 진입을 알리는 입구가 등장한다. 전나무 숲길과 월정사가 일종의 몸풀기 구간이라면, 여기서부터가 선재길 본 구간이라 할 수 있다.

오대산 선재길과 평창의 자연 및 문화 탐방

계곡과 숲, 온통 자연으로 뒤덮인 오솔길이 9㎞ 정도 이어지는데 가을이면 단풍과 낙엽을 한껏 즐기며 걸을 수 있다. 늦가을에는 수많은 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이 켜켜이 쌓여 두툼한 낙엽 카펫이 깔린다. 폭신폭신한 카펫 덕일까? 오래 걸어도 피로하지 않다.

선재길은 자연 속에 역사가 어우러진 길이다. 산림철길 구간을 시작으로 조선사고길, 거제수나무길, 화전민길, 왕의길 등 지역 역사를 담은 5개 테마 구간을 만들었다. 이와 관련된 일제강점기 제재소 터, 화전민 터 등을 알리는 안내판도 설치돼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본의 이야기, 일제강점기 때 오대산 산림 반출을 목적으로 상원사까지 협궤레일이 깔렸다는 이야기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오대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선재길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 여러 다리가 나타난다. 돌다리, 나무다리, 출렁다리 등 재질도 형태도 다양한데 가장 인기 있는 포인트는 섶다리다. 기둥은 나무로 돼있고 상판 옆으로 나뭇가지들이 삐져나온 독특한 모양새로 눈길을 끈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섶다리는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을 세우고 소나무나 참나무로 만든 다리 상판 위에 섶(솔가지나 작은 나무 등의 잎이 달린 잔가지)을 엮어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다리’라고 한다. 선재길의 운치를 살리는 섶다리는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높다.

이런 다리들은 선재길과 도로를 잇는 역할을 한다. 전 코스를 완주하기 힘들다면 원하는 곳에서 빠져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된다. 다리로 연결되는 여러 진출입로에 버스 정류소가 있다. 각자 체력에 맞는 만큼만 걸어도 된다는 점이 선재길의 장점이기도 하다. 단 버스가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므로 미리 시간표를 확인해야 한다. 

선재길 초입에 월정사가 있다면 마지막에는 상원사가 기다린다. 잠시 시간을 내 상원사까지 들러볼 일이다. 고 신영복 교수가 쓴 글씨가 담긴 표지석을 지나 짧은 오르막길을 올라 상원사에 이른다. 월정사보다 높은 위치라 전망이 시원하다.

오대산에 안긴 산사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경내에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종 중 가장 오래됐다는 상원사 동종(국보)과 예배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인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같은 귀한 국가유산도 있다. 

오대산 내 만추 산책 코스로 추천할 만한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방아다리약수터를 중심으로 조성한 자연체험학습장 밀브릿지다. 이곳에 들어서면 울창한 전나무 숲이 반기는데 ‘산림 왕’이라고 불렸던 고 김익로씨가 수십 년에 걸쳐 가꾼 숲이다.

한국전쟁 이후 황폐된 산자락이 한 개인의 정성으로 오늘날 아름다운 숲으로 변신한 것이다.

숲속에 들어선 수수한 건축물이 매력을 더하는데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다. 건축물들은 각각 숙소, 카페, 갤러리 등의 쓰임을 갖는다. 하룻밤 묵으며 숲을 온전히 느껴도 좋고 반나절 코스로 잠시 숲길을 걸어도 좋다. 3개 산책로가 있으며 모두 20분 안팎 코스라 가볍게 걸어볼 만하다. 군데군데 눕거나 앉을 수 있는 벤치도 마련돼있다.

산책을 마친 후에는 약수로 목을 축이자. 방아다리약수는 조선시대에 발견됐으며 약수터 주변이 디딜방아 다리 형상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탄산, 철분 등이 함유되어 특유의 맛이 강하다. 이 때문에 물맛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린다. 밀브릿지는 유료 시설로 입장료는 어른 기준 3000원이다. 

요즈음 평창서 뜨는 여행지를 말할 때 실버벨교회를 빼놓을 수 없다. 언덕 위에 자리한 이국적인 건축물이 입소문을 타면서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내부도 개방돼있는데 화목 난로와 아치형 창문으로 포인트를 살린 예배당 분위기가 따뜻하다. 교회로 올라오는 길에는 알파카, 포니, 산양 등이 사는 작은 동물농장도 관람할 수 있다.

삼양라운드힐(전 삼양목장)은 언제 방문해도 눈과 마음이 트인다. 대관령 고원지대에 펼쳐진 드넓은 초지와 젖소, 양떼, 풍력발전기가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거대한 목장을 따라 5개 테마, 총 4.5㎞의 목책로가 조성돼있으며 해발 1140m 꼭대기에는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동해전망대가 있다. 양몰이 공연, 타조 먹이 주기, 양 먹이 주기 등 다양한 체험은 물론, 이곳에서 생산한 유기농 우유를 이용한 각종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삼양라운드힐

대관령면 횡계리에는 오삼불고기 거리가 형성돼있다. 이 지역에서는 예전부터 바다와 가까워 쉽게 구할 수 있던 오징어와 고랭지 채소, 여기에 돼지고기를 더해 오삼불고기를 만들어 파는 곳이 많았다. 지금도 여러 식당서 오삼불고기를 맛볼 수 있으며 집마다 양념과 재료, 조리법은 조금씩 다르다. 채소를 넣어 볶아 먹는 스타일, 채소 없이 숯불에 구워 먹는 스타일 등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밀브릿지→오대산 선재길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밀브릿지→오대산 선재길 
-둘째 날 삼양라운드힐→실버벨교회→오삼불고기 거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오대산국립공원 www.knps.or.kr/odae
-월정사 http://woljeongsa.org/
-밀브릿지 www.millbridge.co.kr
-삼양목장 www.samyangfarm.co.kr
-평창문화관광 https://tour.pc.go.kr

운영 정보
밀브릿지 운영시간: 09:00~18:00(시기별로 변동 가능), 주소: 평창군 진부면 방아다리로 1011-26, 휴무: 연중무휴, 요금: 어른 3000원, 청소년(중·고등학생)·만 65세 이상 2000원, 어린이(만 6세~초등학생) 1000원 

문의 전화
-오대산국립공원 사무소 033)332-6417
-월정사 033)339-6800
-밀브릿지 033)335-7282
-삼양목장 033)335-5044
-평창군종합관광안내소 033)330-2771

대중교통
-버스 서울-진부, 동서울터미널서 하루 8회(06:40~20:20) 운행, 약 2시간10분 소요. 진부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서 225·226·227번 버스 이용, 월정사 정류장 하차.(선재길) 진부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서 223번 버스 이용, 방아다리약수터 정류장 하차.(밀브릿지)


*문의: 동서울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 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진부시외버스터미널 033)335-6307 평창군 대중교통정보 www.pyeongchang-pti.kr

-기차 서울역-진부역, KTX 하루 9회(06:01~22:11) 운행, 약 1시간 40분 소요. 진부역서 택시 이용.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자가운전
-영동고속도로→진부톨게이트→진부IC교차로서 진부(오대산)역 방면→오대교교차로서 주문진·오대산 방면으로 회전교차로 9시 방향→경강로→월정삼거리서 주문진·오대산·월정사 방면 좌회전→월정사 주차장
-영동고속도로→속사톨게이트→속사IC교차로서 주문진·진부 방면 좌회전→속사삼거리서 인제·창촌 방면 좌회전→1.9㎞ 직진 후 방아다리약수 방면 우회전→밀브릿지

숙박 정보
-화이트캐빈: 봉평면 태기로, 033)333-7444, http://www.whitecabin.com/
-오대산자연명상마을 옴뷔: 진부면 오대산3길, 033)333-6500, www.omv.co.kr
-켄싱턴호텔 평창: 진부면 진고개로, 1670-7462, www.kensington.co.kr/hpc

식당 정보
-납작식당(오삼불고기): 대관령면 올림픽로, 033)335-5477
-도암식당(오삼불고기): 대관령면 대관령로, 033)336-5814
-진태원(탕수육): 대관령면 횡계길, 033)335-5567
-나폴리피자(화덕피자): 대관령면 경강로, 0507-1435-3657

주변 볼거리
하늘목장, 대관령양떼목장, 발왕산 천년주목숲길,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 등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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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남은 윤 레이스, 보이지 않는 돌파구

절반 남은 윤 레이스, 보이지 않는 돌파구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임기 반환점서 야심 차게 던진 승부수가 혹평으로 막을 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전례 없는 솔직함을 보여줬지만 국민이 원했던 방향과는 달랐던 모양새다. 남은 임기는 2년 반. 출구도 퇴로도 꽉 막힌 길목서 바라본 결승선은 아득하기만 하다. 지난 몇 주 동안 용산은 그야말로 지뢰밭을 걸었다. 날마다 새로운 의혹이 추가되는 ‘명태균 게이트’에 지지율은 20%대 안팎을 맴돌았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윤 대통령 임기 반환점을 맞아 탄핵소추안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계속되는 당정 갈등과 영부인 리스크는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TK)조차 흔들었다. 윤 대통령이 대대적인 쇄신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정 동력 상실은 물론 보수 궤멸, 더 나아가 2016년 탄핵 정국이 되풀이될 것이란 위기감마저 맴돌았다. 이번엔 다를까?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지난 4일, 국회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용산의 아픈 부분을 직격했다. 한 대표는 “민주당의 속 보이는 음모와 선동을 막기 위해선 변화와 쇄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대통령과 영부인이 정치 브로커와 소통한 녹음이 공개된 건 국민들께 죄송스러운 일이고 국민 실망은 정부·여당의 큰 위기”라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힘은 정치 브로커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당 차원서 당당하고 강력하게 촉구한다”며 “국민께서 걱정하시는 부분에 대해선 윤 대통령이 솔직하고 소상하게 밝힌 뒤 사과를 비롯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이른바 ‘명태균 녹취록’을 공개한 지 나흘이 지난 시점이다. 그동안 한 대표는 녹취록에 대한 질문에는 에둘러 대답을 피했다. 대신 국민의힘 중진 의원과 만나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고 중진을 설득해 용산에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녹취록에 대한 입장 발표를 무한정 미룰 수 없으니 용산과 물밑으로 소통하며 발언의 수위를 조절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날 한 대표는 전면 개각도 요구했다. 그는 “적어도 이번 사안의 경우 국민들께 법리를 먼저 앞세울 때가 아니다. 국민들께서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전혀 다른 것”이라며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참모진을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쇄신과 심기일전을 위한 과감한 개각을 단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과 함께 특별감찰관 임명 절차를 즉시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이 상황서 머뭇거리면 공멸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 보도가 난 건 이날 늦은 저녁이었다. 현재 상황이 임기 반환점을 돌아 연말까지 이어지면 국정 동력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예정보다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의견을 일부 수렴했다고 봤지만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과 만난 자리서 “대대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는 당 차원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윤 대통령을 움직인 배경을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허리 숙였지만…‘김건희 대변인’ 비판만 국회 특검은 삼권분립 위반? 자기모순 논란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임기 절반을 사흘 앞둔 7일, 회견을 통해 김 여사 문제와 명태균씨 관련 논란 등 민감한 사안을 정면 돌파할 것이란 이야기가 들려왔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8월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이는 약 20분 이상 국정 성과 위주의 담화를 발표한 뒤 정치·외교·사회·경제 등 분야를 나눠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회견에는 시간이나 질문 분야, 개수 등에 제한 없이 기자들의 모든 질문에 답하는 그야말로 ‘끝장 회견’을 통해 고꾸라지는 지지율을 반등할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 여사에 대한 솔직한 입장이 나올지, 그에 따른 대국민 사과가 이뤄질지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회견을 통해 각종 의혹에 대한 오해를 풀고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면 집 나간 TK 민심은 물론 국정운영까지 정상궤도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견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이 강조된 메시지를 기대했다. 이번 회견이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과 당정 관계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5월, 8월 대국민 담화처럼 ‘안 하느니만 못한 기자회견’이 된다면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6년 대국민 담화가 또다시 소환됐다.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지던 때 당시 정부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던 기자회견서 민심을 되돌리는 데 실패한 날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2분 남짓한 시간에 준비한 사과문만 낭독한 뒤 퇴장했으며, 취재진 질문도 받지 않았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도움을 받았다”면서도 추가 의혹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5%까지 추락했다. 민심을 확인한 청와대에서는 부랴부랴 특검 수사를 비롯한 개헌을 제시했지만 이미 탄핵의 강을 건넌 뒤였다. 지난 7일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 마련된 단상에 섰다. 윤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에 앞서 “지난 2년 반 정말 쉬지 않고 달려왔다. 국민 여러분 보시기에는 부족함이 많겠지만 제 진심은 늘 국민 곁에 있었다”며 “그런데 제 노력과는 별개로 국민께 걱정을 끼쳐드린 일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파격적? 뭐 하러… 이어 “민생을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시작한 일들이 국민 여러분께 불편을 드리기도 했고, 제 주변의 일로 국민께 염려를 드리기도 했다”며 “대통령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자리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윤 대통령은 ‘민생 변화’를 거듭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남은 2년 반은 민생의 변화를 최우선에 둘 것”이라며 “그동안은 잘못된 경제기조, 국정기조를 정상화시키는 데 주력했다면 남은 2년 반은 국민이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에 역량을 집중시키겠다”고 밝혔다. 해결이 시급한 의료개혁 역시 “국민께서 걱정하지 않으시도록 차분하고 꼼꼼하게 추진해 나가겠다”며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대국민 담화를 마친 윤 대통령은 곧바로 취재진들의 질의를 받았다. 먼저 ‘대선 이후에도 명씨와 소통을 이어갔는지’를 묻는 말에 윤 대통령은 “명씨와 관련해서 부적절한 일을 한 것도 없고, 또 감출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선 이후)축하 전화를 받고, 어쨌든 명씨도 선거 초입에 여러 가지 도움을 준다고 움직였기 때문에 ‘수고했다는 얘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분명히 있다’고 비서실에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대변인 입장에서는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얘기하기는, 그러니까 ‘사실상 연락을 안 했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라며 “자기(명씨)가 나한테 문자를 보냈을 수가 있다. 그런데 답을 안 하면 소통을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거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자신은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부탁한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 다음으로 김 여사에 대한 질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김 여사가 명씨와 주고받은 연락’에 대한 질문에는 “일상적인 것(연락)들이 많았고 (연락은)몇 차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가 아내 휴대폰을 보자고 할 수는 없는 거라 제가 물어봤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하면 그 전하고는 소통 방식이 좀 달라야 한다’고 이야기하니까 본인(김 여사)도 ’한 몇 차례 정도 문자나 이런 걸 했다‘고는 이야기한다”고 답했다. ‘김 여사가 직접 국민 앞에 사과하실 생각이 있나’라는 물음에는 “(김 여사)본인도 어찌 됐든 자신을 의도적으로 악마화하거나 가짜 뉴스로 침소봉대해서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그런 억울함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어쨌든 국민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고 (국민들이) 속상해하시는 것에 대한 그런 미안한 마음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어, 저에게도 ‘괜히 임기 반환점에 그동안의 국정 성과 이런 얘기만 하지 말고 사과를 좀 하라’(말했다)”고 설명했다. 임기 반환점 찜찜한 뒷끝 이날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에는 선을 그었으며 특검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을 임명한다는 것 자체가 헌법에 반하는 발상”이라며 “기본적으로 특검을 국회가 결정해 임명하고 방대한 수사팀을 꾸리는 나라는 없다”고 강조했다. 내각 및 대통령실 인적 쇄신 요구에 대해서는 “임기 반환점을 맞는 시점서 제가 적절한 시기에 인사를 통한 쇄신 면모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인재풀에 대한 물색과 검증에 들어가 있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이어 “늘 기조를 갖고 일관되게 가야 되는 부분도 있지만 일하는 방식이나 국민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적재적소의 적임자를 찾아서 일을 맡기는 문제는 늘 고민하고 있다”고 매듭 지었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상황서 이번 담화가 어떻게 작용할지 이목이 쏠렸다. 여권에서는 “솔직한 답변이었다” “겸허히 사과했다” 등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야당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국회 소통관서 브리핑을 열고 “윤 대통령이 끝내 국민을 저버리고 김 여사를 선택했다”고 직격했다. 조 대변인은 “140분의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은 알맹이 없는 사과, 구질구질한 변명, 구제불능의 오만과 독선으로 넘쳐났다”며 “김 여사 문제 해결은 전면 거부했으며 김 여사를 지키려 특검 제도마저 부정했다”고 지적했다. 브리핑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선 “이번 회견은 마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때 박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서 ‘최순실은 어려웠을 때 나를 도왔던 사람’이라고 말한 것과 데자뷰가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내용을 자세히 못 봐서 입장을 말씀드리기 이르다”면서도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국민께서 그렇게 흔쾌히 동의할 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힘만 빠지는 여 기회 노리는 야 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도 “이번 기자회견으로 사실상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은 끝이 났다. 국민께서 준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버렸다”고 비판했다. 황 원내대표는 “마지막 기회는 지나갔다. 이제 민심의 태풍을 그대로 마주하게 될 것”이라며 “윤석열 검찰독재정권 조기종식, 탄핵만이 해답”이라고 소리 높였다. 개혁신당은 “변화 없는 돌림노래”, 새로운미래는 “부부의 절절한 사랑을 과시하기에 바빴다”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은 방어에 나섰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국민께 걱정을 끼쳐드린 데 대해 모든 것이 본인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며 겸허히 사과하셨다”며 “앞으로 국민 여러분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 쇄신 의지와 당정 소통 강화에 대한 의지도 뚜렷이 밝히셨고 인적 쇄신도 적절한 시점에 하시겠다는 의사를 피력하셨다”고 설명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이 이상 지지율이 하락하는 걸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기자회견 중간중간마다 탄식이 나오는 부분이 있었다”며 “그나마 남아 있는 집토끼는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마음이 뜰락 말락 하는 지지자는 또 다른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여당은)오는 15일, 25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1심 선고 결과로 승부를 보려 하는데 반사이익으로 얻은 지지율은 아무 소용이 없다”며 “이번 기자회견이 앞으로의 분수령이라고들 해석하셨다. 변화와 쇄신이 키워드였는데 결국 국민께서, 특히 이탈한 보수층이 이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평가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남은 2년 반 동안 국정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등을 돌린 TK 지지층을 다시 끌어들이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해석이 나온다. 악재가 켜켜이 쌓이고 있지만 용산이 즉각 대응하지 않거나 거짓 해명으로 스텝을 꼬아 보수 지지층의 적잖은 실망감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반응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여론에 대한 반응성이 높아져야 지지율이 올라가고, 지지율이 올라야 개혁을 할 수 있다”며 “지금은 거꾸로 가는 상황이다. 개혁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여론의 지지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도 멀었다 신평 변호사 역시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번 회견서 윤 대통령은 평소 인품대로 아주 솔직 담백한 말을 했다”며 “고강도의 대책이 나오기를 바라는 분도 분명히 계셨을 테지만 윤 대통령이 김 여사에 대한 여러 가지 일화를 꺼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정 쇄신과 앞으로의 운영 방안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과 의견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다”며 “국정운영이 답답한 때도 있다. 조금 더 긴밀히, 그리고 국민의 심기를 살피면서 해나가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당과 되도록 많은 소통을 하고 또 나아가서는 협치까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