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밟으며 걷는 길 ②오대산 선재길 & 밀브릿지

‘바스락바스락’ 만추의 산책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따라다니는 만추의 산책은 유독 즐겁다. 기분 탓만은 아니다. 낙엽 밟는 소리에서 나오는 고주파가 정신을 맑고 상쾌하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낙엽 쌓인 길을 걸으면 신체 건강과 함께 정신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낙엽비’ 내리는 이 계절에 열심히 걸어야 하는 이유다.

낙엽 밟으며 걷기 좋은 길로 오대산 선재길 만한 곳이 없다. 선재길은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숲길로 지금의 도로가 나기 전부터 스님과 신도들이 두 절을 오가던 길이다. 월정사 일주문서 시작한다면 상원사까지 약 10㎞ 코스로 결코 만만한 거리는 아니지만 길이 평탄해 걷기 어렵지는 않다.

전나무 숲길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이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으로 들어서면 월정사의 자랑이자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으로 꼽히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산책로가 어찌나 반질반질하고 반듯한지 걷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흙길의 촉감을 고스란히 느끼고자 맨발로 걷는 사람도 많다.

피톤치드 한가득 마시며 걷는 길, 좋은 문구가 힐링의 기운을 더해준다. ‘크게 호흡하고 숲의 친절함을 느껴보라.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저 걸음을 즐기라. 그저 걷는 것이다.’ 곳곳에 걸린 문구들을 읽으며 걸으니 걷기의 깊이가 달라지는 기분이다.

전나무 숲길 끝에 월정사가 나타난다. 여기서 월정사 옆 오솔길로 가는 방법과 월정사 경내를 통과하는 방법이 있다. 이왕이면 경내로 들어가 월정사의 명물인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을 감상하길 추천한다. 정교한 석탑과 그 앞에 공양을 올리는 듯한 자세의 석조보살좌상이 쌍을 이룬 모습이 흥미롭다.


두 유물 모두 국보로 지정돼있는데 석조보살좌상 경우 경내에 있는 건 복제품이고 진품은 성보박물관에 전시 중이니 참고하자.

석탑을 관람한 후 범종과 법고가 있는 누각(종고루, 鐘鼓樓) 쪽으로 걸어가면 월정사 밖으로 나오게 된다. 길 건너편에 본격적인 선재길 진입을 알리는 입구가 등장한다. 전나무 숲길과 월정사가 일종의 몸풀기 구간이라면, 여기서부터가 선재길 본 구간이라 할 수 있다.

오대산 선재길과 평창의 자연 및 문화 탐방

계곡과 숲, 온통 자연으로 뒤덮인 오솔길이 9㎞ 정도 이어지는데 가을이면 단풍과 낙엽을 한껏 즐기며 걸을 수 있다. 늦가을에는 수많은 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이 켜켜이 쌓여 두툼한 낙엽 카펫이 깔린다. 폭신폭신한 카펫 덕일까? 오래 걸어도 피로하지 않다.

선재길은 자연 속에 역사가 어우러진 길이다. 산림철길 구간을 시작으로 조선사고길, 거제수나무길, 화전민길, 왕의길 등 지역 역사를 담은 5개 테마 구간을 만들었다. 이와 관련된 일제강점기 제재소 터, 화전민 터 등을 알리는 안내판도 설치돼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본의 이야기, 일제강점기 때 오대산 산림 반출을 목적으로 상원사까지 협궤레일이 깔렸다는 이야기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오대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선재길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 여러 다리가 나타난다. 돌다리, 나무다리, 출렁다리 등 재질도 형태도 다양한데 가장 인기 있는 포인트는 섶다리다. 기둥은 나무로 돼있고 상판 옆으로 나뭇가지들이 삐져나온 독특한 모양새로 눈길을 끈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섶다리는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을 세우고 소나무나 참나무로 만든 다리 상판 위에 섶(솔가지나 작은 나무 등의 잎이 달린 잔가지)을 엮어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다리’라고 한다. 선재길의 운치를 살리는 섶다리는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높다.

이런 다리들은 선재길과 도로를 잇는 역할을 한다. 전 코스를 완주하기 힘들다면 원하는 곳에서 빠져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된다. 다리로 연결되는 여러 진출입로에 버스 정류소가 있다. 각자 체력에 맞는 만큼만 걸어도 된다는 점이 선재길의 장점이기도 하다. 단 버스가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므로 미리 시간표를 확인해야 한다. 

선재길 초입에 월정사가 있다면 마지막에는 상원사가 기다린다. 잠시 시간을 내 상원사까지 들러볼 일이다. 고 신영복 교수가 쓴 글씨가 담긴 표지석을 지나 짧은 오르막길을 올라 상원사에 이른다. 월정사보다 높은 위치라 전망이 시원하다.

오대산에 안긴 산사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경내에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종 중 가장 오래됐다는 상원사 동종(국보)과 예배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인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같은 귀한 국가유산도 있다. 

오대산 내 만추 산책 코스로 추천할 만한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방아다리약수터를 중심으로 조성한 자연체험학습장 밀브릿지다. 이곳에 들어서면 울창한 전나무 숲이 반기는데 ‘산림 왕’이라고 불렸던 고 김익로씨가 수십 년에 걸쳐 가꾼 숲이다.

한국전쟁 이후 황폐된 산자락이 한 개인의 정성으로 오늘날 아름다운 숲으로 변신한 것이다.

숲속에 들어선 수수한 건축물이 매력을 더하는데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다. 건축물들은 각각 숙소, 카페, 갤러리 등의 쓰임을 갖는다. 하룻밤 묵으며 숲을 온전히 느껴도 좋고 반나절 코스로 잠시 숲길을 걸어도 좋다. 3개 산책로가 있으며 모두 20분 안팎 코스라 가볍게 걸어볼 만하다. 군데군데 눕거나 앉을 수 있는 벤치도 마련돼있다.

산책을 마친 후에는 약수로 목을 축이자. 방아다리약수는 조선시대에 발견됐으며 약수터 주변이 디딜방아 다리 형상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탄산, 철분 등이 함유되어 특유의 맛이 강하다. 이 때문에 물맛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린다. 밀브릿지는 유료 시설로 입장료는 어른 기준 3000원이다. 

요즈음 평창서 뜨는 여행지를 말할 때 실버벨교회를 빼놓을 수 없다. 언덕 위에 자리한 이국적인 건축물이 입소문을 타면서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내부도 개방돼있는데 화목 난로와 아치형 창문으로 포인트를 살린 예배당 분위기가 따뜻하다. 교회로 올라오는 길에는 알파카, 포니, 산양 등이 사는 작은 동물농장도 관람할 수 있다.

삼양라운드힐(전 삼양목장)은 언제 방문해도 눈과 마음이 트인다. 대관령 고원지대에 펼쳐진 드넓은 초지와 젖소, 양떼, 풍력발전기가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거대한 목장을 따라 5개 테마, 총 4.5㎞의 목책로가 조성돼있으며 해발 1140m 꼭대기에는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동해전망대가 있다. 양몰이 공연, 타조 먹이 주기, 양 먹이 주기 등 다양한 체험은 물론, 이곳에서 생산한 유기농 우유를 이용한 각종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삼양라운드힐

대관령면 횡계리에는 오삼불고기 거리가 형성돼있다. 이 지역에서는 예전부터 바다와 가까워 쉽게 구할 수 있던 오징어와 고랭지 채소, 여기에 돼지고기를 더해 오삼불고기를 만들어 파는 곳이 많았다. 지금도 여러 식당서 오삼불고기를 맛볼 수 있으며 집마다 양념과 재료, 조리법은 조금씩 다르다. 채소를 넣어 볶아 먹는 스타일, 채소 없이 숯불에 구워 먹는 스타일 등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밀브릿지→오대산 선재길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밀브릿지→오대산 선재길 
-둘째 날 삼양라운드힐→실버벨교회→오삼불고기 거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오대산국립공원 www.knps.or.kr/odae
-월정사 http://woljeongsa.org/
-밀브릿지 www.millbridge.co.kr
-삼양목장 www.samyangfarm.co.kr
-평창문화관광 https://tour.pc.go.kr

운영 정보
밀브릿지 운영시간: 09:00~18:00(시기별로 변동 가능), 주소: 평창군 진부면 방아다리로 1011-26, 휴무: 연중무휴, 요금: 어른 3000원, 청소년(중·고등학생)·만 65세 이상 2000원, 어린이(만 6세~초등학생) 1000원 

문의 전화
-오대산국립공원 사무소 033)332-6417
-월정사 033)339-6800
-밀브릿지 033)335-7282
-삼양목장 033)335-5044
-평창군종합관광안내소 033)330-2771

대중교통
-버스 서울-진부, 동서울터미널서 하루 8회(06:40~20:20) 운행, 약 2시간10분 소요. 진부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서 225·226·227번 버스 이용, 월정사 정류장 하차.(선재길) 진부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서 223번 버스 이용, 방아다리약수터 정류장 하차.(밀브릿지)


*문의: 동서울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 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진부시외버스터미널 033)335-6307 평창군 대중교통정보 www.pyeongchang-pti.kr

-기차 서울역-진부역, KTX 하루 9회(06:01~22:11) 운행, 약 1시간 40분 소요. 진부역서 택시 이용.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자가운전
-영동고속도로→진부톨게이트→진부IC교차로서 진부(오대산)역 방면→오대교교차로서 주문진·오대산 방면으로 회전교차로 9시 방향→경강로→월정삼거리서 주문진·오대산·월정사 방면 좌회전→월정사 주차장
-영동고속도로→속사톨게이트→속사IC교차로서 주문진·진부 방면 좌회전→속사삼거리서 인제·창촌 방면 좌회전→1.9㎞ 직진 후 방아다리약수 방면 우회전→밀브릿지

숙박 정보
-화이트캐빈: 봉평면 태기로, 033)333-7444, http://www.whitecabin.com/
-오대산자연명상마을 옴뷔: 진부면 오대산3길, 033)333-6500, www.omv.co.kr
-켄싱턴호텔 평창: 진부면 진고개로, 1670-7462, www.kensington.co.kr/hpc

식당 정보
-납작식당(오삼불고기): 대관령면 올림픽로, 033)335-5477
-도암식당(오삼불고기): 대관령면 대관령로, 033)336-5814
-진태원(탕수육): 대관령면 횡계길, 033)335-5567
-나폴리피자(화덕피자): 대관령면 경강로, 0507-1435-3657

주변 볼거리
하늘목장, 대관령양떼목장, 발왕산 천년주목숲길,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 등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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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