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한 법무법인서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가 ‘성범죄자 소굴’로 변질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피의자와 피의자였던 이들이 수사나 재판 과정서의 대처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형인자를 공유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기에 제재할 수도 없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법무법인의 윤리의식에 의문점을 표하지만, 이들은 피의자들의 온전한 방어권 행사를 위해 계속 카페를 운영한다는 입장이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고민,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사건, 여러분의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법무법인 A가 운영하는 성범죄 전문 온라인 카페에 소개돼있는 말이다. 법률상담을 위해 개설하고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일부가 이처럼 성범죄자들의 아지트로 변질됐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피의자들
양형 꼼수
범죄자들은 해당 커뮤니티서 서로 반성문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탄원서를 작성해 주며 감형을 노리고 있다. 로앤컴퍼니가 운영하는 온라인 법률 서비스 로톡에서는 ‘14만명 성범죄 전문 B 카페를 운영하는 법무법인 A의 OOO 변호사’라며 해당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가 카페를 광고하며 온라인 법률 상담을 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해당 카페는 지난 2010년 8월 개설돼 14만18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해당 카페의 게시글은 총 47만개가 넘는다. 해당 카페의 회원 수는 정부가 몰래카메라와의 전쟁을 선포한 시점과 N번방 사건 이후 대폭 늘었다.
게시글 중 대다수는 성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는 고백글과 감형 노하우, 경찰 및 검찰 조사 후기, 판례 등이다. 회원들은 자신이 해당하는 범죄 유형 게시판에 사건명, 사건 발생 일시, 사건 발생 장소, 사건 진행 단계 등 사건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감형 노하우, 재판 진행 과정을 주고받고 있다.
구체적인 카페 카테고리는 ▲나의 사건 진행사항 ▲조언 좀 해주세요 ▲날마다 반성 일기장 ▲경찰조사 받았어요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진행 중 사건 이야기 ▲변호인 때문에 고민 ▲어떻게 합의하나요 ▲재판 방청 후기 ▲판결 선고를 앞두고 ▲판결 선고 받았어요 ▲사건 최종 결과·경험담 등 성범죄 사건과 관련해 글을 작성할 수 있는 곳만 14개에 달한다.
또 ▲통매음 전용 토론방 ▲N번방·소지죄 토론방 ▲토렌트 전용 토론방 ▲구글드라이브 전용 토론방 ▲성매매특별법 전용 토론방 등 성범죄를 세분화해 의견을 나누는 카테고리도 존재한다.
14만명 회원수, 47만개 게시글
사건 관련 게시판만 14개 이상
B 카페를 운영하는 A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 C씨는 해당 카페에 대해 “형사사건 중 성범죄는 자신이 대응할 방향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며 “방향을 정하기 위해선 유사한 사건서의 대처와 결과 등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향을 정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해야 하는데 여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 국내 최대 규모 커뮤니티인 B 카페”라고 설명했다. 성범죄에 대한 정보에 쉽게 접근해 대처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 B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시민들은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고 감형받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두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누리꾼들은 댓글을 통해 “성범죄자 14만명이 있는데 저런 카페를 폐쇄하지 않고 뭐하냐”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해야겠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B 카페서 문제로 꼽히는 것은 피의자들이 서로 반성문을 공유하고 보완하며 서로 탄원서를 작성해 준다는 것이다.
해당 카페의 한 회원 D씨는 “억울하게 준강간으로 고소를 당하고 하소연할 곳이 없어 검색하다 B 카페를 발견했다”며 “이후 카페에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니 댓글과 쪽지로 반성문은 이렇게 써라, 감형을 받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지 등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회원 중 몇몇은 탄원서를 작성해 보내주기도 했다”며 “이후 카페서 소개받은 변호사와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고 무죄를 증명할 명확한 증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통해 불송치 처분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수사 가능?
제재 불가능
그러면서 “선임한 변호사가 해당 카페서 알려준 감형 방법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며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카페서 알려준 방법대로 사건이 흘러갔다면 사건은 실형이 나왔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도 카페서 받는 감형요소 정보에 관해 믿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성범죄의 감형은 ‘피해자와의 합의’가 제일 중요하다”며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고 오히려 사건을 신원미상의 사람에게 공유하고 대처방법을 공유하는 것은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문제는 자신의 사건을 공유하며 억울함을 호소한 글의 댓글에서 고소인에 대한 악플이 달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한 고소인은 “지난해 통매음으로 고소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B 카페에 해당 사건에 대한 글이 있었다”며 “가해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편집한 사진을 가지고 글을 작성하며 억울함을 호소한 글에는 ‘이게 고소가 성립된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X이네’ ‘돈 벌려고 XX하는 거 아니냐’ 등 댓글이 달렸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전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카페에 적힌 글만 보고서 판단을 하는데 ‘끼리끼리 모여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긋난
윤리의식?
C씨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성범죄자들이 모여서 이른바 ‘양형 꼼수’를 노리는 것으로 비쳐 안 좋게 보일 수 있다”며 “하지만 카페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회원들은 아직 형이 확정이 안 된 분들이 대부분이고 무죄 주장을 해서 무혐의를 받는 분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카페 회원들을 성범죄자로 부르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피의자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카페 대한 수사나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법정형 범위 내에서 선고형을 결정할 때 고려되는 요소인 양형인자는 이미 오픈돼있다”며 “이들의 반성 여부를 떠나 양형인자를 공유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기에 제재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구체적인 범죄 행위를 서술하지 않고 경찰 및 검찰 수사 상황을 공유하고 조언을 구하는 것 역시 불법이 아니다”라며 “댓글로 2차 가해를 당한 피해자나 명예훼손을 당한 사람이 직접 고소를 진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C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따르면 B 카페에서 활동해 입건된 사람은 없다.
법무법인이 카페를 통해 양형인자를 공유하고 변호사 선임을 유도하는 것이 직업적 윤리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법인이 성범죄 전문 카페를 운영하는 것, 이를 통해 변호사 수임을 하게 만드는 것은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 위반은 아니지만 변호사윤리장전에 적시된 윤리강령을 어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만약 ‘성범죄 전문 변호사가 운영하는 성범죄 전문 카페’라면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해당 케이스는 ‘성범죄등 형사범죄 전문 카페’로 이와 다르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로 서로 탄원서 작성도”
조언 후엔 변호사 추천까지
그러면서도 “다만 카페의 게시글이나 댓글을 살펴보면 변호사 선임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카페 회원들은 재판이나 수사 등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카페에 가입했다”며 “가입 후 원하는 정보를 얻게 되면 흔쾌히 카페를 운영하거나 카페서 활동하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 같은 점을 노리고 카페를 운영한다면 운영 주체인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들의 윤리관이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C씨는 카페 운영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카페에선 스태프들이 밤낮으로 활동하며 질문에 대한 답변과 안내를 드리고 있다”며 “카페서 무조건 우리 법무법인서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광고하진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성범죄 변호사는 피의자 편만 들면서 그 잘못을 없애거나 축소하기 위해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성범죄 변호사는 대한민국의 법과 절차, 대법원 양형기준 등을 기반으로 개개인의 사정과 사건 경위, 범죄 수위 등에 맞는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조력을 드리고, 수사 및 공판 과정서 불합리한 처분이나 대우를 받지 않고 온전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변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페에선 자신의 사건에 관해 명확히 파악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과정서 적절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카페를 운영하면서 사건 수임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카페를 운영하는 것은 사실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며 “14만명이나 되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수사 과정이나 재판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 법무법인에 대한 부정적인 게시글을 올릴 수 있고 카페 회원 수가 많은 만큼 법무법인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런 위험을 안고 있으면서 이렇게 공연히 운영하는 것은 누구보다 소통을 중요시하며 의뢰인, 회원님들과 같은 위치서 더 깊게 이해하고 더 나은 결과로 이끌어가기 위함이니 이해를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누군가엔
안식처로”
B 카페서 조언을 받아 억울함을 해소했다는 한 회원도 해당 커뮤니티를 그저 성범죄자 소굴로 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B 카페에 있는 모든 이들을 성범죄자이자 양형을 위한 정보 공유 소굴로 표현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며 “무고로 인한 맘고생에 인생하직 직전까지 갔던 입장서 B 카페가 없었다면 정말로 힘들었을 것이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안식처”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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