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산청-국민신탁 ‘유물 카르텔’ 의혹

‘알고도 모른 척’ 수상한 짬짜미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문화유산국민신탁의 민낯이 드러났다. 불합리한 의결권부터 이른바 ‘유물 카르텔’까지 전방위로 문제점이 제기된다. 국가유산청이 이전부터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 큰 논란이 예상된다. 감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문화유산국민신탁과 알고도 모른 체한 국가유산청이 나란히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하 국민신탁)은 국가유산청(이하 유산청·구 문화재청)이 관리·감독하는 특수 법인이다. 보전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국민이 자발적으로 나서 취득·보전·관리·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국민이 믿고 맡긴다’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깜깜이

설명과 달리 국민신탁의 내부 사정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지난 2009년 김종규 이사장이 위임되고 5연임을 하는 동안 비슷한 논란이 꾸준히 불거지면서다. 몇 차례 감사가 이뤄졌지만 사실상 이를 방치한 유산청 또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김재원 의원이 유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신탁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특정 업체 두 곳에서만 유물을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고미술인으로부터 1억1000만원어치의 유물 10건을, 갤러리 문우로부터는 8100만원어치의 유물 17건을 구입한 것이다.

고미술인 대표와 갤러리문우 대표는 모두 국민신탁 회원이다.


유물 매입 심의 과정을 둘러싼 이해충돌 의혹도 있다. 국민신탁이 두 업체로부터 3400만원 상당의 유물 21점을 매입할 당시 외부심의위원회 구성을 보면, 심의위원 세 명 모두 김 이사장과 친분이 있거나 판매자와 학회 활동을 한 지인 등이다.

특히 갤러리 문우 대표의 경우 대표 본인이 직접 매입 심의에 참여해 친인척의 유물을 매입한 사실도 드러나 ‘유물 카르텔’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유산청과 국민신탁이 이 같은 지적을 받은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산청은 지난 2018년 국민신탁에 대한 감사를 통해 김 이사장이 대상 유물을 선정한 후 별도 평가·심의 없이 매입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2020년에는 문화재청 자체 종합감사에서 유물 구입처 몰아주기 정황이 적발됐으며 이듬해인 2021년 국정감사에서는 여전히 특정 업체서 유물을 구매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문화유산 매입 관련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달라”는 감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화살은 김 이사장에게 돌아갔다. 장기간 집권으로 인한 국민신탁의 도덕적 해이와 유산청의 방임에 맞물려 부패의 온상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을 거쳐 삼성출판박물관장 겸 삼성출판사 전 회장을 지냈다. 한때 김건희 여사가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문화예술계 사교 모임 ‘월단회’를 창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2년 동안 두 곳에서만 유물 매입
감사도 소용없는 ‘이사장 고집’

김 이사장이 다섯 번이나 연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비이상적인 정관이 지목된다. 이사장 임기는 3년이지만 임원의 연임 횟수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을뿐더러 불합리한 의결권으로 장기 집권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국민신탁법 제17조에 따르면 국민신탁법인은 회원으로 구성되는 총회를 두고 있으며 회원은 총 8단계로 분류된다. 세부적으로는 ▲으뜸회원 ▲큰힘회원 ▲보람회원 ▲나눔회원 ▲키움회원 ▲함께회원 ▲기림회원 ▲늘빛회원 등이 있다.

가장 높은 등급인 으뜸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법인 또는 개인이 3억원 이상을 기부해야 하며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해 가입 절차가 까다롭다. 큰힘회원은 입회비 1000만원과 연회비 100만원 이상 납부를 원칙으로 한다. 보람회원은 매월 1만원 이상의 회비, 또는 10만원 이상의 회비를 납부한 개인에게 자격이 주어진다.

올해 기준 총회 의결이 가능한 회원은 으뜸회원 4명, 큰힘회원 8명, 보람회원 대표자 3명으로 총 15명이다.

의결권 정수 역시 차이가 있다. 으뜸회원과 큰힘회원에게는 각 1표가 부여되지만 보람회원은 6개월 이상 회비가 연체되지 않은 회원에 한해 1000명당 1표가 주어진다. 이마저도 자체적으로 선출해 총회 5일 전까지 의장에게 제출해야 하며 제출하지 않을 시 이사장에게 추천권이 돌아간다.

회원 간의 의결권 격차가 존재할뿐더러 특정 인물이 이사회에 개입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허술한 운영 구조가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감사의 지적에도 유산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국민신탁과의 관계성 때문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국민신탁 정관에 명시된 상임이사의 임기는 2년이다. 지난 2013년 전통문화연수원 기획과장이 국민신탁 상임이사로 임명된 이후 2년 단위로 유산청 문화재활용국장, 경복궁관리소장 등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지난해 8월에는 전 국립고궁박물관 기획과장이 새로운 이사로 임명됐다.

상임이사가 받는 연봉은 약 1억2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산청서 국민신탁으로 자리를 옮겨 억대 연봉을 받는 ‘전관예우’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너도나도 유산청→국민신탁 한 자리씩?
“기부금으로 전동카트” 쌈짓돈 의혹까지

국민신탁이 유산청의 기부금을 쌈짓돈처럼 쓴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국민신탁은 회원과 기부자가 용처를 별도로 지정하지 않은 기부금을 대부분 기관운영비로 쓰고 있어 이미 한차례 지적받았던 바 있다. 문화유산을 매입하거나 취득할 수 있는 재산은 2020년 기준 기부금 전체의 6%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보전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취득하기 위한 모금 활동 성과가 미흡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김재원 의원실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자료에 따르면, 국민신탁은 조선왕릉 전동카트를 구매하거나 청소년 문화유산 교육사업 등에 지정기부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국민신탁의 설립 목적은 사각지대에 놓인 미등록 문화재 보존을 목표로 하지만, 이를 고려하지 않고 국민신탁의 편의성을 위해 시설·장비를 기부금으로 구매해 그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산청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법인의 모든 의결은 총회와 이사회를 통해야 하므로 유산청에서는 말씀드릴 부분이 없다”며 “지적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시정, 개선안을 작성하고 내년 상반기 중 감사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027년까지인 김 이사장의 임기에는 변함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이사장 본인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짧게 답했다. ‘감사의 실효성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그동안 감사를 통해) 내부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알려줬다”며 “이를 실행하고 옮기는 건 순수 신탁의 몫”이라고 답했다.

국민신탁 관계자는 “이사장 임기를 1회에 한해 연임하는 규정 등을 신설할 예정”이라며 “총회를 거치고 유산청 승인을 받아야 정관이 개정되기 때문에 안을 올려야 (개정이)확정된다”고 말했다.

<일요시사>가 김 의원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월단회 회원으로 알려진 공훈의 전 위키트리 대표이사가 2013년 국민신탁 이사로 취임한 이후 그가 소속했던 회사와 홍보용역계약을 맺은 사실도 드러났다. 공 이사는 국민신탁 이사를 맡고 약 6년이 지나서야 대표이사를 사임한 반면, 계약은 2020년 12월까지 진행됐다는 점에서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빙산의 일각?

국민신탁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SNS를 연동해 국민신탁을 홍보하던 때라 OPM 시스템을 도입한 위키트리와 최초 계약을 했다”며 “공 전 대표이사가 국민신탁 이사여서 계약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해충돌 가능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는 “없다”고 답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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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