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 먹는 여의도 철새들 막전막후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0.22 09:38:57
  • 호수 1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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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 갈등 풀 수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과거부터 정당을 옮기는 철새들은 많았다. 하지만 계파를 옮기는 철새는 아직 공론화되지 않았다. 대선주자의 부각·몰락에 따라 계파는 형성과 해체를 반복했다. 지나치게 당무에 개입해 계파 갈등을 확산시키는 대통령의 존재도 여전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 6일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 20명과 서울 종로의 한 식당서 비공개 만찬을 함께했다. 원외 인사로는 김종혁 최고위원도 참석했다. 이날 회동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이 극심한 가운데 진행된 것이라서 친한계의 본격적인 태동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었다. 

친윤서
친한으로

현재 친한으로 거론되는 정치인 중 김 최고위원·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한때 친윤(친 윤석열)계로 분류됐다. 김 최고위원 및 신 부총장은 시사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윤 대통령의 편에 서서 이 대표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이 점화된 이후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친한 입장에 섰고,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연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국내 정가에선 정치인의 정당 이동을 유난히 민감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수(13회)의 당적 이동 전력을 가진 ‘피닉제(피닉스+이인제)’로 불렸던 이인제 전 의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매우 높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 대결 구도가 굳어지면서, 이제는 정당 이동보다는 계파 이동을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 이동이든 계파 이동이든, 유권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과 명분이 필요하다. 

정치사에는 늘 당쟁이 있었다. 특히 조선 당쟁에서는 거대 정당이 분열되는 흐름도 흔했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의 역사 속 당쟁에는 정책의 차이·인적 구성의 차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중국에선 환관 정치에 대한 견해 차이로 후한 말 청류파·탁류파의 갈등이 있었고, 북송 시절 왕안석의 신법을 놓고 신법당과 구법당의 갈등이 있었다.

조선에서는 각각 이황·이이라는 양대 유학자를 따르는 제자들이 학문적 계보 차이로 당쟁을 이어갔다. 계파 갈등으로 인해 분당하더라도, 상대 정당 혹은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한 분당이 대부분이었다.

현대 한국 정치는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보다는 대권주자에 대한 줄서기 차원서 계파 갈등이 진행된다. 최소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갈등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발탁 혹은 구 민정계 등 인적 구성의 차이라는 명분은 있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엔 오로지 두 사람만이 존재하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에 대한 줄서기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기 어렵다. 한 대표는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논란 ▲황상무 시민사회비서관 거취 ▲의대 정원 확대 ▲해외직구 규제 ▲특검법 등 김 여사 관련 논란 등 각론에서는 윤 대통령과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윤 대통령과의 근본적인 정책 및 정치관 등 총론에선 차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위의 견해 차이도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산발적으로 제시한 것에 불과했다.

지난 16일 재보궐선거서 국민의힘은 부산 금정구청장·인천 강화군수를 수성했다. 한 대표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당시 한 대표가 유세 현장서도 ‘정부 쇄신론’을 강조했던 만큼 윤 대통령과의 충돌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대통령 지나치게 당무 개입해 갈등 확산
복수 교섭단체로 파벌 견제하는 일 정당

국내 정치보다 당내 계파 갈등이 더욱 극심한 곳은 옆나라 일본이다. 일본 정치는 회파 간 밀실 합의가 없으면 정국을 이끌어갈 수 없을 정도로 계파 갈등이 구조화돼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등 자민당 의원 120여명이 모인 중의원 개혁실현회의가 2018년 6월 제안했던 개혁 제안에는 “국회 개혁을 본 회의서 계속적·주체적으로 논의하며 의원운영위원회, 국회 개혁소위원회의 논의 활성화 및 각 당·각 회파의 논의 심화를 기대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여기엔 ‘회파의 존재는 일상적’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이는 한 정당 안에 복수의 교섭단체가 공존하는 제도로부터 비롯된다. 국내 언론서도 곧잘 언급되는 자민당 내 ▲세이와정책연구회 ▲헤이세이연구회 ▲지공회 ▲굉지회 등 회파는 모두 독자적인 교섭단체들이었다. 

일본의 정치 구도는 다이묘(大名)의 지방(藩) 통치가 오랫동안 공고했고, 막부 붕괴 및 유신체제 성립 과정서 조슈·사쓰마·도사 등 토막파(討幕派)를 구성한 번의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막부 세력을 멸망시킨 보신전쟁도 조슈·사쓰마·도사 번이 승리를 주도했다.

하지만 번의 갈등을 조율할 세력은 없었기 때문에, 조슈와 사쓰마의 주도권 다툼은 구 일본군으로 이어졌다. 육군은 조슈 번이 주도했고, 해군은 사쓰마 번이 주도했다. 육군과 해군은 서로를 다른 나라의 군대로 인식했다. 

자민당은 1955년 일본민주당·자유당 등의 합당으로 창당됐다. 당시 제1야당 일본사회당이 선전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일본민주당이 제2야당 자유당 및 군소 정당들과 합당한 결과물이 자유민주당이었다. 국내 정치서 3당 합당 후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던 과정과 비슷하다. 

일본에선 이를 ‘55년 체제’라고 하고, 이후 시작된 자민당의 독주는 ‘자민 막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55년 체제는 1993년 8월 자민당의 중의원 과반 확보 실패 후 7개의 야당이 연립정권을 만들어 호소카와 내각을 출범시킬 때까지 38년 동안 이어졌다.

이렇듯 자민당은 다수의 당이 합당해 정권을 유지했기 때문에 회파의 존재를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은
더 심해

자민당 내 회파는 크게 보수본류(保守本流)와 보수방류(保守傍流)라는 틀로 구분할 수 있다. 보수본류는 ▲평화헌법 개헌 반대 ▲경제 중시 ▲케인즈주의 ▲자유무역 ▲미일동맹 중시 등 지향점을 가진 온건보수 성향이다. 보수방류는 ▲평화헌법 개헌 찬성 ▲역사수정주의 ▲자주외교 등 노선을 견지하는 강경 보수라고 할 수 있다. 

인적 구성 과정에도 차이가 있어 보수본류는 관료 출신들이 많고, 보수방류의 뿌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직서 추방됐다가 1951년 공직추방령 해제 이후 정계에 복귀한 정치인들이다. 1990년대부터 세를 잃었던 중도파는 혁신을 중시했던 제3세력이었지만, 대부분 자민당을 이탈했다.

남은 세력은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이끄는 파벌 지공회에 소속돼있다. 


보수본류와 보수방류가 크게 충돌했던 시기는 1970~1980년대였다. 보수본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와 보수방류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당총재·총리 자리를 놓고 약 10년 동안 대결했던 시기였다. 이들의 대결을 놓고, 일본에선 그들의 이름에서 각(角)과 복(福)을 가져와 ‘각복전쟁’이라고 불렀다.

둘의 대결에는 모략·금전거래·경선 부정 등 다양한 꼼수가 있었지만, 경제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도 있었다. 다나카 전 총리는 토건 중심의 확장 재정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했고, 후쿠다 전 총리는 내수경제 활성화와 대만과의 친교 유지를 중시했다.

자민당은 태생부터 한국 정치가 선호하는 빅텐트 정당이었다. 다양한 회파가 공공연하게 이합집산하고, 과거 한국 정치에 있었던 당 총재의 절대적인 위상도 없다. 대체로 총재 취임이 곧 총리 취임이기 때문에, 당 총재는 회파 간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기류가 강하다.

일본식 파벌 정치는 이합집산과 밀실 합의로 정치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에 유권자의 의사가 무시되는 경향이 짙다는 단점이 두드러진다. 

반대로 회파 간 견제가 활성화돼있어 특정인의 폭주를 견제할 수 있다. 아울러 회파 대부분은 겉으로라도 정책연구회를 표방하면서 각자의 정책을 제시한다. 그래서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달라져도 국민에게는 정권교체와 비슷한 체감을 준다. 근본적으로 각각의 회파가 독자적인 교섭단체로 등록돼있어 가능한 현상이다.

자민당이 회파의 이합집산과 밀실 합의에 의존하는 정치를 수십년 넘게 이어가면서, 일본 정치에서는 정·관·재계가 지나치게 야합하는 부작용이 구조화됐다. 일본의 정치인이 정계에 진출하는 과정의 표준은 명문대 졸업 → 3년 내외의 대기업 혹은 공무원 근무 → 현역 의원인 아버지의 비서로 정계 입문 → 아버지의 지역구 세습이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으면서 지역 조직·자금·지명도까지 함께 물려받는 셈이다. 

전형적인 
정관 밀착

지난 16일 <산케이신문>과 <교도통신> 보도에 따르면, 오는 27일 예정된 제50회 일본 중의원 선거의 전체 출마자 1344명 중 136명(10.1%)이, 이들 중 자민당 전체 출마자 342명 중 97명이 세습 정치인이다. 여기에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고이즈미 신지로 선거대책위원장도 포함된다. 고이즈미 위원장은 2008년 9월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로부터 후계자로 지목돼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준 고이즈미 전 총리였지만, 그의 정치 인생서 가장 유명한 것은 파벌 부수기 시도였다. 그는 모리 요시로 당시 총리의 지지율 추락과 참의원 선거 패배 상황서 돌풍을 일으켜 총재에 당선됐다. 총리 취임 이후 일본 정계에 투하했던 가장 큰 폭탄은 우정 민영화였다. 

일본의 우정공사는 우정성이 기업화돼 설립됐지만, 직원들은 모두 국가공무원이었다. 기업의 직원이 모두 국가공무원으로 구성된 기이한 형태는 전·현직 우체국장들의 모임과 우정노동조합이 각각 자민당과 민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이었던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게다가 우정공사가 관리하는 우편저금 잔고는 2007년 기준 약 182조엔이었다. 이 자금은 대장성에 위탁해 운용됐고, 대장성이 우편저금에 적용하는 금리는 시중금리보다 높았다. 전형적인 정·관의 밀착이었다. 

우정 민영화를 시도하는 법안은 2005년 8월 중의원을 통과했지만, 참의원서 자민당 일부 의원들이 반란표를 던지면서 부결된다.

그러자 고이즈미 총리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면서 중의원을 해산하고, 차기 총선을 ‘우정 민영화 총선’이라고 명명하는 등 승부수를 던진다. 이어 중진 의원 40명의 공천을 배제했고, 유명 여배우·아나운서 등 정치 신인을 대거 발탁해 그들의 지역구에 공천했다. 이것이 ‘고이즈미의 자객 공천’이었다. 

공천이 배제된 중진들은 신당 창당으로 맞대응했지만, 유권자들은 고이즈미의 손을 들어줬다.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은 2005년 9월 진행된 제44회 중의원 선거서 전체 480석 중 327석(68.1%)을 얻는 대승을 거둔다. ‘우정 민영화’라는 정책 이슈를 과감하게 투하한 후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선명성을 얻은 결과물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6년 4월 29.2%였던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를 20% 이하로 낮췄다. 이는 고리대금업을 광범위하게 영위하는 야쿠자에겐 큰 타격이었다. 야쿠자의 돈줄을 옥죄는 것도 파벌 부수기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었다. 고리대금업은 정·관계 모두 손을 대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이 역시 밀착이었다.

파벌 부수기 골몰한 고이즈미…결말은?
정작 초선은 ‘고이즈미파’ 가입 원해

이 외에도 고이즈미 총리는 ▲금융기관에 대한 재무성의 낙하산 인사 파견 금지 ▲공제연금(공무원연금)과 후생연금(국민연금)의 통합 ▲공영방송 NHK 개혁 등 회파의 인적·물적 자산이 될 수 있는 줄기를 그때그때 잘랐다.

강한 지도력을 가진 1명에 의한 정당 운영 및 통치는 과거 한국 정치서 흔히 보던 양상이었다. 일본은 반대로 회파의 밀실 담합에 관계와 재계까지 연결돼 부정부패를 양산하고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대중정치 재능을 한국식 정치 기법과 결합해 일본에 충격을 준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방법은 오로지 그만이 소화할 수 있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제44대 중의원 선거서 당선된 초선 의원 83명에게 ‘회파 입회 금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런데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초선 의원들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소속 파벌이었던 모리파(세이와정책연구회의 당시 별칭) 입회를 원하는 기류가 강했다. 

이는 일본 정치인에게 회파가 갖는 의미를 상징한다. 경제희 고마자와대 강사의 2019년 논문 ‘아베의 장기 집권과 자민당의 파벌 구도’에 따르면, 회파는 정치인에게 ▲각종 정보와 연수 기회 제공 ▲금전적·물리적·인적 지원 등을 제공 ▲의원들은 파벌 주요 인물에게 총재 선거 출마 보조 ▲총재 선거 당선을 위한 지지 활동 등을 진행한다.

일본에서는 이 관계를 클라이엔텔리즘(Clientelism)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서 유력 정치인과 신참 원로원 의원이 각각 파트로누스(Patronus)·클리엔스(Cliens) 관계를 맺었던 것과 비슷하다.

일본의 회파 정치는 2024년에 이르러 거의 해산되고 있다. 정치자금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는 등 규모를 축소하다가 대거 적발된 스캔들이 2022년 11월부터 불거졌기 때문이다. 세이와정책연구회·지수회·굉지회 등 주요 회파가 연이어 해산을 선언했고, 이시바 총리의 회파 수월회도 ‘당내 의원 그룹’으로만 남기로 했다.

현재 남은 회파는 아소 다로 전 총리의 지공회와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의 헤이세이연구회 밖에 없다. 하지만 이 회파들이 완전하게 해산됐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회파 정치는 그만큼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조선의 당쟁과 현대 정치의 공통점은 ‘자리’로부터 비롯됐다. 조선의 동서 분당은 간관 인사권을 가지고 있던 이조전랑 자리를 놓고 시작됐고, 현대 정치의 계파 갈등은 대부분 공천 문제로부터 불거진다. 옛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계파 친이(친 이명박)·친박(친 박근혜)은 공천 학살을 주고받았다. 민주당도 이재명 대표를 비판한 박용진 전 의원 1명의 공천을 주지 않기 위해, 후보 3명을 연이어 내보냈다. 

총재 1인이 견고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정당은 3김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정계서 은퇴하면서 사라졌다. 이와 가장 비슷한 정치를 했던 고이즈미 전 총리의 파벌 부수기도 고이즈미 전 총리의 퇴임 이후 흐지부지됐다. 

끝나지 않는
자리 싸움

하지만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정치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는 당무 개입을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당 대표들과 수시로 충돌하고 있다.

우리 국회법은 단일 교섭단체를 규정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계파는 공식화되지 않는다. 공식화되지 않는 틈을 파고드는 일부 정치인이 있고, 당에 3김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하는 대통령도 있다. 일본의 복수 교섭단체 제도·흐지부지 소멸한 고이즈미식 파벌 부수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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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한남동 라인’ 실체

진짜 ‘한남동 라인’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건희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비선 실세 모임이라고 알려진 ‘한남동 라인’의 실명까지 언급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으나 구체적인 해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제기된 여론조작 의혹을 두고 2년 전 김건희 여사 최측근들이 주도했던 것의 연장선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여론조작 논란은 2년 전 사건의 연장선이다.” 대통령실 출신 한 인사의 말이다. 해당 논란을 두고 명태균씨와 홍준표 대구시장은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아직 사실관계가 드러나진 않았으나 홍 시장을 깎아내리려 한 정황은 김건희 여사 최측근이자 코바나컨텐츠 출신 관계자들의 여론조작 의혹과 유사하다. 비선 실세 의혹 용산 사면초가 명씨는 영남권 기반의 여론조사 및 선거컨설팅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이자 미래한국연구소 회장 출신이다. 미래한국연구소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중앙여심위) 등록 기준으로 2019년 5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모두 109개 여론조사를 (주)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에 의뢰했다. 그가 대표로 있던 언론사 <시사경남>은 <뉴데일리>와 2021년 7월부터 12월까지 17차례에 걸쳐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공천 개입 의혹’은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으로부터 시작됐다. 김 전 의원은 명씨를 윤 대통령 등 정치권 인사들에게 소개했다. 지난 4월 총선서 김 전 의원은 경남 김해갑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경선서 배제되면서 실제 ‘공천 개입’으로 이어졌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명씨는 지난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직전 미래한국연구소 직원에게 ‘미공표용’ 여론조사 데이터를 손보라고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노컷뉴스> 단독 보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의원실은 지난 2022년 2월28일 명씨와 미래한국연구소 직원이었던 A씨와의 통화 녹취를 확보했다. 해당 녹취록서 명씨는 A씨가 진행 중이던 여론조사를 언급하며 “이게 연령별 득표율을 하면 더, 60세나 이런 데, 다 올라가제? 윤석열이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A씨는 “네”라고 답했고, 명씨는 “그거 계산해 갖고 넣어야 된다”고 말했다. 실제 당시 미래한국연구소가 작성한 미공표용 여론조사 보고서에는 20~40대 샘플은 줄이고, 50~60대 샘플은 늘린 결괏값이 별도로 존재했다. 미래한국연구소는 명씨와 A씨와의 통화가 이뤄진 당일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주제로 전국 단위 자체 여론조사와 연령별 가중치를 두 가지 버전으로 나눠 적용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조사완료 샘플은 3016명이었고, 미래한국연구소는 먼저 이를 실제 인구 구성비(만18세~20대 17.2%, 30대 15.2%, 40대 18.5%, 50대 19.6%, 60대 16.3%, 17세 이상 13.2%)에 따라 연령별 가중치를 적용했다. 60대의 경우 실제 응답한 샘플은 634명(21.0%)이었지만, 492명으로 줄어든다. 전체 샘플(3016명)의 16.31%(492명)까지만 반영하는 방식이다. 영남권 선거컨설팅 전문가? “사실상 브로커” 윤석열 부부 수십 차례 연락…국정까지 개입? 그러나 미래한국연구소는 ‘19대 대선 투표율 가중치’를 적용한 분석값을 하나 더 만들었다. 직전 대선서 투표장에 나온 연령별 투표율을 반영한 가중치를 적용한 것이다. 실제 윤 대통령의 상승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해당 여론조사 보고서가 완성된 날은 다음날인 3월1일이다. 홍 시장은 이 같은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난 대선후보 경선 때 명씨가 운영하는 PNR서 윤석열 후보 측에 붙어 여론조작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문제 삼지 않았다”며 “어차피 경선 여론조사는 공정한 여론조사로 이뤄지기 때문에 명씨가 조작해 본들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홍 시장은 “그런데 그 조작된 여론조사가 당원들 투표에 영향을 미칠 줄은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면서도 “그러나 국민 일반 여론조사에 10.27% 이기고도 당원투표에 진 것은 국회의원, 당협위원장의 영향이 더 컸다고 보고 나는 결과에 승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더 이상 선거 브로커 명씨가 날뛰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짓”이라며 “검찰에선 조속히 수사해 관련자들을 엄중히 사법처리해 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 여사의 최측근들도 여론조작 의혹의 중심에 선 바 있다. 현재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근무 중인 코바나컨텐츠 출신 정모씨는 김 여사의 일정과 각종 계획을 도맡아 관리해 왔다. 지난해 2021년 이명수 <서울의 소리> 기자가 김 여사와 접촉할 때도 정씨를 통해 일정을 확인했다. 정씨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김 여사와 코바나컨텐츠가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회사에 자주 출입하며 사실상 김 여사 ‘비서’ 역할을 자임해 왔다. 2022년 6월 본지 단독보도 정씨는 ‘김건희 녹취록’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일요시사>가 입수했던 해당 녹취록서 정씨는 다른 코바나컨텐츠 직원과 건진법사의 제자인 심 박사와 함께 ‘댓글 작업’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김 여사는 댓글 작업을 말했고, 정씨는 어둠의 세계에 대해 언급했다. 정씨가 다른 직원에게 “어디까지 올렸냐”고 묻자, 심 박사는 “특정 주제에 대한 게시물 수백개를 올렸는데 뒤로 밀렸다. 다른 걸 빨리 올려라”라는 식으로 답했다. 김 여사도 심 박사와 정씨의 말에 크게 공감하는 듯한 뉘앙스로 말했다. 정씨는 심 박사에게 “특정 워딩을 한번만 더 올려달라”며 “아무것도 없는 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들은 홍 시장과 커뮤니티명까지 언급하면서 논의를 이어갔다. 당시 홍 시장은 국민의힘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윤 대통령과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에펨XXX는 2030 남성이 주축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로, 대선후보 경선 때 홍 시장의 지지세가 두드러진 곳이었다. 정씨는 해당 커뮤니티를 코바나컨텐츠 직원들과 함께 살펴보면서 홍 시장 지지자들의 분위기를 살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출신 한 인사는 “명씨와 정씨가 직접적으로 여론조작과 관련해 논의했는지는 모른다”면서도 “김 여사와 접촉했던 만큼 연락은 취했을 것이다. 다만 단순하게 미팅을 위한 연락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통령실 출신 여권 인사도 “대선 직전까지 논란이 많았던 건 맞다. 정씨를 포함해 소위 말해 ‘김건희 라인’이라고 불렸던 인물들이 여론조작까진 모르겠으나 일부 커뮤니티에 타 후보들을 비난하는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올리거나 김 여사에게 보고했던 건 사실이다.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주로 있었던 일이고 대통령실 관계자들도 우려가 컸다”고 주장했다. 직원들과 분위기 살펴 김 여사가 논란의 꼬리표를 달고 다니자 대통령실은 제2부속실 출범에 속도를 냈다. 아직 김 여사의 집무실과 제2부속실 직원 사무실을 대통령실 내에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 중인 만큼 공식적인 출범 시기는 이달 말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로 거론된다. 제2부속실장으로 내정된 장순칠 시민사회2비서관은 실제 업무를 보고 있다. 규모는 장 비서관과 실무급 인원 2명을 충원해 7명이다. 제2부속실은 김 여사의 집무실과 외빈 접견실 등으로 이뤄지고 김 여사의 집무실은 윤 대통령 집무실과 다른 층에 설치될 예정이다. 청와대 본관 1층에 있었던 영부인의 집무실과 비교하면 공간은 작아졌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과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서 경호 및 예우 대상에 대통령 배우자를 포함시키고 있을 뿐 그 밖에 배우자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법 규정은 없다. 지난 1월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하던 대통령실도 “해외국 정상의 2부속실 운영 사례 등 폭넓은 검토가 필요하다”며 미국 대통령 부인의 지위 등 해외 법 규정과 사례를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퍼스트레이디’에게도 대통령에게 제공되는 예산 등이 배정되도록 연방법으로 정하고 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김 여사의 최측근이자 코바나컨텐츠 출신이 제2부속실 직원으로 채용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일요시사>는 대통령실에 제2부속실에 채용된 직원 명단을 공개하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한 상태다. 조작 정황 김건희 최측근 행위와 유사 특정 후보 깎아내고 게시물 밀어내기도 김 여사의 또 다른 라인으로 분류되는 ‘한남동 라인’에 관한 논란도 뜨거운 감자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직접 인적 쇄신을 요구하며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논란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 대표와 여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 부부와 대선 전부터 알고 지냈거나 대선을 도왔던 비서관·행정관 6~7명이 대통령실의 주요 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는 사실상의 ‘비선’이라고 본다. 대통령실의 김건희 라인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서 김 여사에게 수시로 보고한다는 소문 탓에 ‘한남동 라인’이라고도 한다. 대부분 ‘여의도 정치 경험’이 없거나 짧은데,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 부부가 이들 의견에 우선 귀를 기울인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여권에선 언론인 출신인 B, C 비서관, D 전 비서관, 과거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 행사에 참여한 E 비서관이 김건희 라인으로 거론돼왔다. 대통령실 청년 정책 담당 30~40대 행정관들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황모 행정관은 윤 대통령과 오랜 친분이 있는 기업인의 아들로, 윤 대통령을 ‘삼촌’, 김 여사를 ‘작은엄마’로 부를 만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황 행정관은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 부부를 비공식적으로 밀착 수행했는데, 명씨는 그가 운전하는 차를 윤 대통령과 함께 탔다고 주장했다. 당사자들은 ‘김건희 라인’의 실체가 없다고 반발 중하고 있다. 한남동 라인으로 거론된 대통령실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대통령 일가와 사적으로 인연도 없고 공적인 업무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 출신 여권 관계자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중 황 행정관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시도 때도 없이 언론에 언급됐음에도 살아남은 사람이자 총애받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김대남 전 행정관은 최근 공개된 녹취록서 일부 김건희 라인을 거론하며 “용산은 ‘십상시(박근혜정권 실세 10인방을 이르는 말)’ 같은 몇 사람이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친한(친 한동훈)계 핵심인 국민의힘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그분들이 정무나 공보 라인에 있는 분들이 아닌데 부적절한 정치 행위를 직무 범위서 벗어나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이들은 공식 라인을 무시하거나 대통령실의 정책기조와 배치되는 주장을 펴며 인사 등 대통령실 내의 주요 업무를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세를 과시했다는 설명이다. 신 부총장은 “(한남동 라인이)부적절한 정치 행위를 할 때 이른바 ‘여사님의 뜻’이라는 식으로 포장했다는 게 공통된 증언”이라며 “김 여사께서 직접 그걸 지시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한남동 라인이)호가호위하면서 그런 부적절한 정치 행위를 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면 굉장히 문제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