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익는 마을을 찾아 ④진주진맥브루어리

수제 맥주와 야시장의 낭만

먹거리가 여행이 되는 시대다. 진주진맥브루어리는 맥주 마니아들은 물론 여행객들에게 진주 명소로 떠올랐다. 진맥은 진주 한가운데를 흐르는 1급수 남강과 진주 땅에서 자라는 앉은키밀을 주원료로 만든 고급 수제 맥주다. 진주밀로 만든 맥주, 풍미가 진한 맥주, 진짜 맥주라는 이름처럼 맥주 마니아들의 취향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진주진맥브루어리는 지난 4월에 문을 열었다. 오픈은 4월이지만 본격적인 개발은 21년부터다. 진주시상권르네상스사업의 하나로 개발한 특화상품이다. 20여곳 이상의 업체가 참여해 6000여명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쳤다. 진맥의 주원료인 진주밀은 다른 밀보다 키가 작다. 그래서 앉은키밀이라 불린다.

앉은키밀

웬만한 바람에도 잘 쓰러지지 않고, 병충해에 강하다. 그래서 수확률이 높은 것은 물론 일반 밀가루에 비해 부드럽고, 맛이 구수하다. 

앉은키밀은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전 세계가 기아에 헤매던 1945년, 미국 농학자인 노먼 볼로그 박사가 한국 토종 밀인 앉은키밀을 발견하고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지역에 전파해 세계 기아 해결에 이바지했다.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때 앉은키밀은 수입밀에 밀려 명맥이 사라질 뻔했으나 진주 금곡정미소서 3대에 이어 도정해오고 있었고, 우리밀 살리기 운동과 함께 되살아났다. 지금은 금곡면을 비롯해 진주서 드넓은 밀밭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진주논개시장 입구에 자리한 진주진맥브루어리는 건물 외관부터 예사롭지 않다. 오래된 폐가구점을 리모델링했다. 붉은빛에 가까운 외벽은 잘 익은 앉은키밀의 색깔이라고 한다. 1층은 수제 양조장과 맥주 펍, 그리고 굿즈숍이 있고, 2층은 맥주 펍과 아카이브 공간, 3층은 진주시상권활성화재단과 교육장이다.

1층 양조장은 커다란 통창 안으로 맥주 만드는 장면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가구점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앉은키밀의 불그스름한 색은 내부 인테리어에도 이어진다. 주황과 붉은빛 그 사이 앉은키밀 색은 검은색 의자와 가구들과 어우러져 고급스럽고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2층에는 LP와 턴테이블이 주르륵 놓여 있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 헤드폰과 멋진 조명까지 연출해 놓았다.

진주밀로 만든 부드럽고 구수한 맛
맥주 마니아들의 취향 저격

원하는 LP를 고른 다음 헤드폰을 끼고 맥주를 마시는 로망을 실현하게 해준다.

맥주는 두 종류다. 밀의 고소함과 풍부한 향을 느낄 수 있는 에일과 시원함과 청량감을 자랑하는 라거다. 첫 모금에 밀의 구수함과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목 넘김은 부드럽고 뒷맛은 깔끔하다. 깊은 풍미와 보디감,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청량함이 정말 매력적이다. 지금은 두 가지를 선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호핑에일, 페일에일, 스타우트 등 5종의 라인업으로 손님을 맞을 예정이다. 진주진맥브루어리 애호가들의 관심이 벌써 뜨겁다. 

맥주와 어울리는 특별한 메뉴들도 준비돼있다. 나초&살사소스, 트러플 프라이즈는 깔끔한 라거와 잘 어울리고, 진주 토마토 라구파스타와 진주 토마토 카프레제는 진한 에일과 찰떡궁합이다. 모양도 예뻐서 메뉴가 나오면 너도나도 휴대폰으로 사진 찍기 바쁘다.


집에서나 밖에서 진맥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캔맥주와 페트병 맥주를 판매한다. 캔에 그려진 수달은 진주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진주 남강에 사는 천연기념물 수달이 주인공이다. 진주진맥브루어리가 자리 잡은 논개시장에서는 토요일마다 올빰토요야시장이 열린다.

진주하면 생각나는 육전부터 삼겹말이, 납작만두, 해물부추전, 대왕고기완자, 스테이크새우꼬치까지 먹거리 천국이다. 야시장 입구 양쪽에 테이블이 놓여 있어서 구매한 음식을 식기 전에 맛볼 수 있다. 

평소 진주진맥브루어리는 외부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지만, 토요일 야시장 음식은 대환영이다. 진주진맥브루어리에서 판매하는 캔맥주와 페트병 맥주를 사 들고 야시장에서 즐겨도 좋다. 진주의 토요일 밤이 낭만으로 익어가는 이유다.

유등테마공원

10월에 진주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남강유등축제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대한민국 대표축제다. 7만여개의 등불이 진주성 아래 남강 위를 형형색색 수놓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가을을 선사한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서 김시민 장군이 남강에 유등을 띄워 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물리쳤던 것에서 유래한다. 

소망진산 유등테마공원은 진주를 상징하는 유등을 365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남강과 진주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야경 명소로 자리 잡았다. 공원 내에 있는 진주남강유등전시관은 유등 전시부터 체험까지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이다. 화려한 소망등으로 장식된 터널은 인생샷 성지로 손꼽힌다.

온몸으로 남강을 즐기려면 물빛나루쉼터로 가보자. 이곳에는 남강 유람선인 ‘김시민호’를 운행한다. 김시민호에 몸을 실으면 아름다운 남강을 따라 진주성과 촉석루, 의암 등 진주의 절경이 이어진다. 진주성의 야경과 화려한 음악분수대를 눈에 담을 수 있도록 밤에도 운영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진주남강유등전시관→물빛나루쉼터와 김시민호→진주성→진주진맥브루어리→올빰토요야시장(진주논개시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진주남강유등전시관→물빛나루쉼터와 김시민호→진주성→진주진맥브루어리→올빰토요야시장(진주논개시장)
-둘째 날 경상남도수목원→진양호 호반전망대→까꼬실둘레길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진주관광 https://www.jinju.go.kr/tour.web
-진주문화관광재단 https://jjct.or.kr
-진주진맥브루어리 https://www.insta gram.com/jinmacbeer/
-진주시상권활성화재단 https://www.jinjumr.or.kr
-물빛나루쉼터(김시민호) https://www.jinju.go.kr/cruiseship/

운영 정보
진주진맥브루어리 운영시간: 17:00~23:00(22:00 라스트오더), 휴무: 월요일, 메뉴: 에일맥주 7000원, 라거맥주 7000원, 진주 토마토 라구파스타 1만7000원, 진주 토마토 카프레제 1만6000원, 나초&살사소스 1만4000원, 트러플 프라이즈 1만4000원

문의 전화
-진주진맥브루어리 0507)1410-1466
-진주관광안내 055)749-2114
-진주시관광안내소 055)749-7449
-진주역관광안내소 070)4916-1489
-진주남강유등전시관 055)762-8583
-물빛나루쉼터(김시민호) 055)761-3691


대중교통
-버스 서울-진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서 개양고속버스정류장 하루 29회(06:00~00:10) 운행, 약 3시간35분 소요. 개양고속정류장서 20m 정촌초등학교 정류장서 120 버스 승차, 논개시장 하차, 도보 117m 진주진맥브루어리 도착. 
-기차 서울-진주, 서울역서 하루 10회(05:03~20:38) 운행, 약 3시간35분 소요. 진주역서 200, 150 버스 이용, 경상국립대학교가좌캠퍼스후문 하차, 도보 170m 경상국립대학교가좌캠퍼스후문 120 버스 승차, 논개시장 하차, 도보 117m 진주진맥브루어리 도착.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시스템 (www.kobus.co.kr), 개양고속버스정류장 055)752-5167~8

자가운전
통영대전고속도로 서진주 IC→공설운동장 방면 2시 방향→숙호산로 진행 후 신안광장오거리서 10시 방향→진양호로 직진 후 인사광장서 ‘진주성’ 방면 우회전→시외버스터미널서 ‘산청, 중앙시장’ 방면 좌회전→구부산교통사거리서 ‘진양호, 진주성’ 방면 좌회전→진양호로567번길 방면 우회전→진주진맥브루어리

숙박 정보
-주식회사제이스퀘어호텔: 진주시 솔밭로, 055)749-0022, http://www.jsquarehotel.com
-뉴라온스테이: 진주시 영천강로, 055)751-1111, https://www.newraonstay.com
-골든튤립호텔남강: 진주시 남강로673번길, 055)760-9600~2, http://hotelnam gang.com

식당 정보
-천황식당(육회비빔밥): 진주시 촉석로, 055)741-2646
-하연옥(진주냉면): 진주시 진주대로, 055)746-0525
-유정장어(장어구이): 진주시 진주성로, 055)746-9235

주변 볼거리
밀알영농우리밀체험장, 월아산자연휴양림,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국립저작권박물관, 철도문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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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