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의 머니톡스> 와타나베 부인과 엔화의 운명

  • 조용래
  • 등록 2024.09.09 16:14:16
  • 호수 1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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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부인’(Mrs. Watanabe)이란 이름은 30년 세월의 저금리 환경에 적응하려는 일본인을 상징한다. 경기침체(Recession)는 물가하락(Deflation)을 이끌고 낮은 물가는 경제를 더 끌어내리는 악순환을 겪었다.

일본의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경로에 빠져들었다는 것은 은행에 돈을 맡긴 국민이 이자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돈 보관비까지 물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한 푼의 이자 수입이 절실한 일본인이 금리 관점으로만 엔화를 바라본다면 엔화는 돈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다른 나라의 돈, 그 중에서도 단연 미국 달러화다. 일본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는 계속 확대돼 5.5%에 이르렀다. 와타나베 부인 입장서 캐리트레이드는 더 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을 것이다.

‘엔캐리트레이드’라는 이름의 투자 방식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크게 끼쳤다. 1990년대 후반, 국내 외환위기 때, 외화대출 중에서도 특히 엔화 대출은 악명이 높았다.

눈떠보니 하루아침에 대출금이 두 배, 세 배로 커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던 달러/엔 환율은 떨어지고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은 우리나라의 원화는 달러당 800원 선에서 2000원 위로 뛰어 올랐다. 필자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당시 달러당 원화 환율 최고점은 2400원을 넘겼다.

썰물처럼 우리 자본시장서 빠져나간 엔화는 그 뒤로도 틈틈이 한국시장을 노크했다. 일본 돈이 본격적으로 미국 자본시장에 침투하게 된 건 지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였다.

위기의 미국은 비행기서 돈을 뿌렸고 일본은 미국이 발행한 채권을 미친 듯이 사들였다. 

엔화는 미국 주식시장을 벌겋게 달구기도 했고 덕분에 이자에 굶주린 와타나베 부인은 미국 시장서 꽤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행복한 시절이 영원하다면 아마도 이 같은 칼럼은 쓰게 되지도 않았겠지만, 모든 일에는 그 끝이 보이는 법이다.

캐리트레이드를 위해 엔화가 일본을 빠져나가면서 일본 돈의 가치는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으로 향하는 관광객이 늘었고 수출 증가 효과를 누렸던 건 환율 덕분이었다.

역사상 유래 없이 길어진 디플레이션과 저금리 환경서도 ‘아베노믹스’가 힘을 받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다.

하지만 일본이 영원히 제로 금리를 유지할 수는 없으리란 전망은 시간문제일 뿐 현실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은행이 드디어 제로(0%) 이하 금리의 탈출 신호탄을 쐈다. 때마침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 인하를 강력히 예고하고 나섰다. 해외로 흩어진 엔화 투자자금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것이란 견해에 이견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1980년대에 기록한 달러당 엔화 환율의 역사적 고점(엔화 약세)은 280엔에 근접했지만 ‘플라자 합의’ 이후 지난 1995년도엔 달러당 80엔을 위협할 정도로 강세로 돌변했다.

2010년대 초반엔 75엔선까지도 깨질 것을 우려했다. 지금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150엔 수준이고 이를 역사적 관점서 본다면 그다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쯤에 있다. 앞으로 몇 년 뒤엔 반 토막이 나거나 두 배로 뛰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다.

시장 참여자 수백만, 수천만명의 의견을 다 들어보지 않는 한 확증적이진 않지만 얼마 전 세계 증시 동반 폭락 원인이 엔캐리트레이드 청산 위험 때문이었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얼마나 많은 엔화 투자금이 미국을 비롯한 해외로 나갔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엔캐리 포지션이 청산될지 가늠하기는 더 어렵다.

와타나베 부인과 엔화의 운명, 그리고 세계 경제의 미래 흐름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낙관적이기보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사건의 전말이 뒤엉키고 본질적 원인이 모호해진 상황을 설명하는 ‘붉은 청어’(Red Herring) 현상으로 일본 경제의 난맥상을 해석하기도 한다. 

파생 상품화된 형태로 해외상품시장과 자본시장에 투자된 엔화 자금의 규모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세계 금융시장의 위기가 다시 온다면 그 이유가 누구 잘못 때문인지는 몰라도 파생상품이 관련됐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리먼 사태로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도 역시 파생상품이 주인공이었다. 

일본의 진짜 위기는 화산이나 지진이 아니라 파생화돼 전 세계에 침투한 와타나베 부인의 돈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이 세계 경제위기의 서막을 이제 막 연 것이라면 진짜 공포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셈이다. 엔화의 미래가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조용래는?]

▲ 전 홍콩 CFSG 파생상품 운용역
▲ <또 하나의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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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