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 기술 유출 의혹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7.29 15:28:23
  • 호수 1490호
  • 댓글 1개

“사장 앉혔더니···” 빼앗긴 밥그릇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체외진단기업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의 창업주인 김철우 교수가 대표이사 이덕윤을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코스닥 상장을 예고한 지 7년여가 지나도록 코넥스에 머무른 배경도 “이 대표의 부실 경영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 교수로 32년간 재직한 김철우 교수는 18년에 걸쳐 ‘아이파인더(i-finder)’ 스마트검사 기술을 연구 개발했다. 2014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이 기술은 환자의 혈액검사로 암 위험도를 예측·진단해주는 검사 기술이다. 그러나 최근 경영권을 확보한 이덕윤 대표는 김 교수가 개발한 아이파인더 기술을 상의조차 없이 미국에 팔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주인 행세

앞서 김 교수는 ‘미래 의료의 방향은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전환된다’는 확신을 갖고 지난 2001년도에 벤처기업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이하 바이오인프라)을 창업했다. 투자에 힘입어 김 교수는 2014년 ‘다중암 조기진단’ 아이파인더를 연구 개발했다. 이는 소량(5mg)의 혈액검사를 통해 주요 8대 암과 8대 만성질환을 진단할 수 있도록 발전했다.

아이파인더는 환자의 혈액 내 바이오마커(표지자)를 분석해 암 위험도를 예측·진단해주는 ‘혈액다중표지자’ 검사다. 바이오마커란 몸속 세포나 혈관, 단백질, DNA, 바이러스 등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다.

암에 걸리면 종양은 특정 단백질을 배출하고 종양 주변의 세포들도 암세포와 연관된 특정 물질을 분비한다. 따라서 혈액 속 바이오마커 농도가 높으면 암 가능성도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이파인더는 김 교수가 창업한 바이오인프라가 출시해 지난 2018년부터 한국장외주식시장(K-OTC)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바이오산업의 강대국인 미국도 아이파인더 기술을 의료 진단 분야의 유망 기대 품목으로 눈여겨봤다.

그 배경은 2022년 초 바이든 정부가 발표한 암 정복 프로젝트(Cancer Moonshot Project) 정책과 관련이 있다. 이 프로젝트는 급속히 증가하는 암 치료비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실정 속에서 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비를 대폭 절감하고, 사망률 등을 낮추자는 게 골자다. 즉, 조기진단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된 것이다.

전문경영인의 필요성을 느낀 김 교수는 한국거래소 임원 출신 이덕윤을 지난 2019년 2월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김 교수는 연구자로서 개발에만 전념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 대표는 모 벤처캐피탈(VC) 대표 황모씨와 결탁해 김 교수의 경영권을 탈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이 대표는 지난해 미국 메릴랜드주 소재의 ‘20/20 진시스템’(Genesystem)사에 아이파인더 핵심 기술을 약 3억원이라는 헐값에 팔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8개 암 진단, 세계 최초 혈액검사 기술 
“코스닥 상장시키겠다” 자신하더니···

김 교수 측은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이 대표에게 20/20사와 계약은 고려해봐야 할 문제라고 했고, 전문 로펌에 맡겨 기술 유출이 없도록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계약을 서둘러 체결하지 말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20/20와의 계약은 이 대표가 회사에 입사하기 전인 2018년 계약체결 협상이 진행됐으나, 계약조건이 바이오인프라와 맞지 않았다. 기술 유출로 인한 역설계 등의 우려가 불식되지 않아 계약체결이 무산된 것이다. 경영권을 확보한 이 대표는 2018년 계약조건보다 더 악화된 조건으로 20/20와 기술이용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 8월말 이 대표는 아이파인더 원천기술 허여 및 접근 계약을 20/20와 체결했다. 이 대표 측이 20/20와 작성한 계약서에 따르면, ‘바이오인프라는 20/20에게 바이오인프라의 컴퓨터 알고리즘, 실험보고서, 임상·과학 지식 및 기타 유용한 지적 재산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적혀 있다.

이어 ‘20/20은 바이오인프라에게 선불 이전료로 30만달러를 지급한다. 선불 이전료의 반은 선불 로열티고 나머지 반은 미합중국 의사들에 대한 소프트웨어 집적 및 임상훈련·지원 등 기술적·의학적 지원 서비스 요금’이라며 ‘20/20이 수확물을 채취하는 결과물 검사의 경우, 20/20은 바이오인프라에게 검사당 로열티를 지급한다’고 돼있다.

‘로열티는 종양 항원만을 검증하는 검사의 경우 검사 1개당 12달러로 첫 판매 후 24개월 안에 하는 각 검사의 대가로 지급한다’고 구체적으로 적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해당 계약체결에 대해 “이사회 결의나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지 않았으며, 기술개발자인 김 교수와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저지른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현재 김 교수는 계약의 효력을 중지시키기 위해 소송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2018년 말 한국거래소서 퇴사를 앞둔 이 대표는 김 교수의 아들 김모씨의 소개를 받아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이 대표는 회사 관련 거래소 내부 파일을 보여주는 등 거래소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를 동원해 “바이오인프라를 코스닥에 상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사장으로 취임한 이 대표는 돌연 “김 교수와 아들이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은 향후 상장에 장애가 된다”며 압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김씨는 2019년 12월 회사를 떠났고, 이 대표는 2019년 6월과 2021년 8월 2차례에 걸쳐 지인 황씨가 주도하는 6개 벤처캐피탈연합서 125억원을 투자받아 14.59%의 지분을 확보했다.

“골프와 유흥비 탕진”
법카 사적 유용 논란

이를 기반으로 김 교수에게 각자 대표직을 요구했으며, 김 교수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 대표와 황씨의 경영권 침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2020년 2월 정기이사회서 김 교수는 “코로나 엔데믹 상황에 맞춰 마케팅 활성화를 위해 보험회사와 연계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구체적인 마케팅 제안을 했다.

이에 황씨는 회의를 주도하면서 “마케팅 분야도 이덕윤 대표가 총괄해야 한다”며 “(김철우 박사는)회사에 필요 없는 존재이니 나가라”고 소리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20년 3월 주주총회서도 이 대표는 ‘김 교수가 무능하다’는 프레임을 씌웠고, 결국 단독대표로 올라섰다. 하지만 같은 해 약속한 상장이 어렵게 되자 코스닥보다 비교적 진입이 수월한 코넥스에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 싸움에 밀려난 김 교수는 현재 경영권을 내려놓은 상태다. 

김 교수는 인터뷰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기 때문에 이사회서도 지난 2월 자진 사퇴했다”고 토로했다. 

현재 김 교수의 지분율은 11%대로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김 교수의 무능함을 주장하며 경영권을 확보한 이 대표의 지난 행보는 초라한 모양새다. 이 대표가 입사하기 전 바이오인프라의 가치는 약 700억원대였으나, 현재는 30~40억원대로 추락했다.

김 교수는 “황씨가 투자한 125억원은 회사의 발전이 아닌, 상습적인 골프장 출입과 유흥비에 사용됐다”며 “이덕윤의 대표이사 권한을 뒷받침한 황씨가 회사를 최악의 경영 상태에 몰아넣었으니 명백한 배임”이라며 고소 취지를 밝혔다. 

이 대표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 논란도 제기됐다. 당초 회사는 이 대표에게 법인 차량과 함께 한도 500만원의 법인카드 2장을 제공해 업무추진비 등에 사용하도록 했다. 

고소전

그러나 바이오인프라 재무팀 측에 따르면 “김 교수에게는 비밀로 하라”며 이 대표가 법인카드 한도를 2배로 증액하도록 지시했다. 이 대표는 평일 근무일은 물론 주말까지 매주 2~3회 이상 법인 차량을 이용해 골프를 친 것으로 전해진다. 골프 후에는 2차, 3차까지 식사와 술자리를 이어가며 법인카드를 사용하고 다녔다. 

이 대표의 운전기사는 “주말까지 근무해야 했고, 평일 근무일에도 아내, 친구 등 지인들과 골프를 치는 경우도 많았다”고 증언했다. 내부자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취임한 2019년 6월 이후 2023년 8월까지 상습적인 골프장 출입과 유흥업소 출입으로 법인카드를 남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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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