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건설업 요동치는 이유

물가변동 배제 특약 뭐길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철강 감산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원자재 등 가격이 역대급으로 상승했다. 건설업계는 발주사에 해당 금액과 관련해 증액을 신청했지만 발주사들은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내세워 거절했다. 이런 와중에 대법원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오며 관련 소송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건설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다시 법원 심판대에 올랐다. KT와 쌍용건설이 KT 판교 신사옥 공사비를 두고 소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4월 물가변동 배제 특약 효력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효력 무효

KT는 지난 5월10일 쌍용건설에 공사비를 모두 지급했고, 비용을 추가로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법원으로부터 확인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이에 쌍용건설은 지난달 26일 KT를 상대로 추가 공사대금을 청구하는 내용의 반소를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완공된 KT 판교 신사옥 공사비 초과분을 놓고 법적 분쟁 중이다. 쌍용건설은 코로나19와 러·우 전쟁 여파로 인해 2020년 계약체결 당시보다 원가가 크게 오른 만큼 공사비를 171억원 증액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KT가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근거로 증액을 거부한 것이 법적 분쟁까지 이어진 것이다.

KT는 소송 입장문에서 “쌍용건설 측에 대한 모든 공사비 지급 의무이행을 완료했으므로 추가 비용 요구에 대한 지급 의무가 없다는 것을 법원으로 확인받기 위해 소를 냈다”며 “쌍용건설과 맺은 건설계약은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포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KT 판교사옥 건설 과정에서 쌍용건설의 공사비 조기 지급 요구,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액(45억5000만 원) 요구, 공기 연장(100일) 요구 등을 모두 수용했다”며 “상생을 위한 원만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쌍용건설은 입장자료를 통해 “KT는 법원에 소를 제기해 공사비 분쟁에 대한 협상 의지 자체가 없음을 드러냈고, 그동안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며 “지난해 10월 KT 판교사옥 집회 이후 7개월간 KT의 성실한 협의를 기대하며 분쟁조정 절차에 임해왔던 당사는 황당하고 억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 향후 KT 본사 앞 집회 등으로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KT·쌍용건설 소송으로 다시 심판대
지난 4월 대법원에서 판결 뒤집혀

이 같은 법적 분쟁은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3호 등에 의거해 무효라는 건설업계 측 의견과 계약준수의 원칙에 따라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이 부정될 수 없다는 발주자 측의 입장 차이로 일어났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 3호는 ▲계약체결 이후 설계변경, 경제 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않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1호) ▲도급계약의 형태, 건설공사의 내용 등 관련된 모든 사정에 비추어 계약체결 당시 예상하기 어려운 내용에 대해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3호)를 건설공사 도급계약의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KT는 2020년부터 ▲쌍용건설(KT 판교사옥 건립) ▲롯데건설(KT 광진지사 부지 재개발) ▲현대건설(KT광화문사옥 서관 리모델링) ▲한신공영(부산 초량동 임대주택) 등과 도급계약을 맺으면서 모두 계약서에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담은 만큼 이번 법적 분쟁의 결과가 중요한 상황이다.

현대건설에 따르면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원자잿값, 인건비 등 인상에 최초 계약 금액 대비 300억원이 추가 투입돼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양 사가 계약한 공사비는 1800억원이다. 


롯데건설은 KT 부지가 포함된 광진구 자양1재정비촉진구역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롯데캐슬 이스트폴 사업 공사비를 1000억원 증액을 요구했지만 발주처인 KT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양1구역 정비는 KT가 보유한 구 전화국 부지 일대 50만5178㎡를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사업비 규모 1조원 이상으로 역대 KT가 진행한 사업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한신공영은 KT의 자회사 KT에스테이트가 발주한 부산 초량 오피스텔 개발사업을 지난 2020년 수주해 작년 9월 준공했다. 계약 당시 공사비 519억원 대비 추가 비용이 141억원 발생해 KT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지만,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가변동 배제 특약과 관련해 법원의 판결은 최근 들어 바뀌었다. 최근까지 법원은 지난 2017년 국가를 상대로 하는 공공계약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유효성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필두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판결은 공공계약에 대한 판시였다는 점에서 사적자치의 원칙의 적극적으로 적용되는 사인 간의 계약에 있어서는 그 계약에 포함돼있다면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고 더욱 엄격히 준수돼야 한다는 견해가 주를 이뤘다.

“원자재 급등 시공사 책임 없어”
“공사비 증액 목소리 더 커질 것”

그런데 지난 4월 대법원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부정하며 건설업계에서는 다시금 다수의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판결서 대법원은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에 의거해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이 일부 제한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결을 살펴보면 ▲공사도급계약 특약사항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계약에 첨부된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 일반조건서 특정한 조건하에서 물가변동을 반영한 공사대금의 조정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 ▲도급인의 귀책사유로 착공이 8개월 이상 지연됨으로 인해 원자재인 철근 가격이 2배가량 인상됐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공사대금의 변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수급인에게 현저히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서의 ‘계약체결 이후 설계변경, 경제 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않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물가변동 배제 특약 중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 일반조건에 반하는 부분의 효력이 부정된다고 판단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향후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이 제한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번 판례로 기존 시공사와 발주처 갈등의 판세를 단숨에 뒤집기는 어렵겠지만 최근 건설업계가 처한 상황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건설공제조합의 한 관계자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전면 무효로 본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별 사례에 따라 판단이 일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시공사의 귀책 사유가 없는 상태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사유로 표준도급계약 일반조건을 위반해 원자재 가격 급등 부담을 시공사에 떠넘기는 것은 무효임이 확인됐다”며 “발주자와 시공사의 공사비 분쟁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구체적 사안서 시공사 및 보증기관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 자재담당 한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와 러‧우 전쟁 등으로 발생한 물가상승이 예측 범위를 벗어난 데다 한쪽에 너무 불리한 물가변동 배제 특약에 유효성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 나온 만큼 발주처의 적극적인 협상 의지가 요구된다”며 “소송 중인 사안에서도 시공사에 유리한 판결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리한 판결

공사비 분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무효로 본 결정이 나왔으나 시공사가 요구한 증액분을 발주처가 모두 인정 수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며 “그럼에도 이 조항에 발목이 잡혀 협상력을 높이기 어려웠던 건설사, 하청업체들이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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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