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아도 훤히 보이는 민주당 전대 뻔한 결말

‘알고도 속는’ 짜고 치는 고스톱?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독무대’로 끝날 뻔한 더불어민주당 8·18 전당대회가 3파전으로 벌어졌다. 그래도 여의도에 짙게 드리워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 그림자를 걷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반전을 기대하는 것일까? 세 후보 모두 저마다의 계획을 안은 채 이 시나리오의 엔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달 18일 치러지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를 둘러싼 흥행의 불씨가 살아났다. 후보자 등록 마감을 앞두고 속속들이 출사표를 던지면서다. 민주당 전 의원이자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을 가진 김두관 후보(이하 김 후보)가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했다. 그 뒤로 유력 주자인 이재명 후보와 원외 인사인 김지수 후보가 대열에 합류했다.

한 명의 결단
두 가지 반응

지난 9일 김 후보는 세종특별자치시의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권 도전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동안 이 후보의 일극체제를 비판해 왔던 만큼 그의 출마는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다.

이날 그는 “민주당은 역사상 유례없는 ‘제왕적 당 대표 1인 정당화’로 민주주의 파괴의 병을 키워 국민의 실망이 커지고 있다”고 운을 뗐다. 민주당 내 불거졌던 ‘어대명’ ‘또대명(또 대표는 이재명)’ 등 추대론의 주인공인 이 후보를 직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는 “노무현 정신은 민주당서 흔적도 없이 실종된 지 오래”라며 “지금 이 오염원을 제거하고 소독·치료하지 않으면 민주당의 붕괴는 명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 김두관의 당 대표 출마는 눈에 뻔히 보이는 민주당의 붕괴를 온몸으로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후보의 출마 선언문을 두고 곳곳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해 4월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서 이 후보를 지지했던 마음을 한순간에 뒤집고 비명(비 이재명)계를 자처했다는 이유에서다.

김 후보는 지난해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그는 “힘 있는 단결로 이재명 대표를 지키고 영남에 교두보를 만들어 총선을 이기겠다. 누가 민주주의와 이재명 대표를 지킬 수 있겠나”라며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공약으로는 영남권을 기반으로 한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었지만 낙선하는 데 그쳤다.

부산·경남(PK)를 겨냥한 공약은 당의 주류인 호남과 수도권 유권자의 호응을 이끌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4·10 총선을 앞두고 작심하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민주당 내 공천 파동이 크게 일 조짐이 보이자 당 지도부를 겨냥해 “국민의힘보다 더 많은 다선 의원을 험지로 보내는 ‘내 살 깎기’를 시작해야 한다”며 이재명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가 험지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남 양산을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치열한 경쟁 끝에 국민의힘 김태호 후보에 패배했다.

친(친 이재명)·비명 프레임서 벗어나 ‘할 말은 하는’ 정치인이란 평이 나왔지만 일부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는 ‘수박’이라는 불만이 나왔다. 게다가 이번 출마를 기점으로 김 후보가 본격적으로 이 후보와 각을 세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출마를 고심하던 무렵 김 후보의 선택을 만류하던 이들도 있었다. 이 후보를 상대로 출마를 선언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후보와의 통화에서 직접 출마를 말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와 관련해 김 후보는 “‘어떻게 민주당 십자가를 지려고 하느냐’ (같이)저를 아끼는 차원서 ‘이번보다 다음에 준비해서 출마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조언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김 후보가 마음을 굳히면서 몇 개월 동안 이어지던 ‘이재명 추대론’이 막판에 뒤집혔다. 압도적인 찬성 속 다시 한번 당 대표를 지낸 뒤 대권까지 물 흐르듯 넘어가려 했던 이 후보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김 후보의 날 선 연설문이 구구한 해석을 낳는 사이 이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사실상 대표직 연임을 위한 절차에 가까웠다.

이재명 맞수로 돌아온 김두관
잘려 나간 ‘친명’ 꼬리표, 왜?

지난 10일 이 후보는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준비한 출마 선언문을 한 자씩 읽어내려갔다. 이 후보는 “다시 뛰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은 제1정당, 수권 정당인 민주당의 책임”이라며 “‘절망의 오늘’을 ‘희망의 내일’로 바꿀 수 있다면 제가 가진 무엇이라도 다 내던지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 후보는 윤석열정부를 비판하는 대신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와 비전을 제시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이 후보는 “단언컨대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에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가 돼야 한다” “기술인재 양성에 더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신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 한다” 등의 발언도 이어갔다.

정당의 발전 방향에 대해선 “당원 중심 대중 정당으로의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며 “당원들이 더 단단하게 뭉쳐 다음 지방선거서 더 크게 이기고 다음 대선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 강조했다. 이날 이 후보의 출마 선언은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한다는 평도 나왔다.

같은 날 한반도 미래경제포럼 김지수 대표까지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 후보의 단독 출마로 예상됐던 민주당 전당대회는 3파전으로 확정됐다. 막차에 탑승한 김지수 후보는 미래 세대에 초점을 맞춰 “젊은 세대의 슬픔과 고민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출마 소신을 밝혔다.

그러나 당내 지지 세력이나 체급서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전당대회가 3파전으로 벌어져도 어대명 아성이 무너질 가능성은 극히 적다. 김 후보의 출마로 인해 이 후보의 입지가 흔들리진 않겠지만 작은 흠 하나도 확대해 해석되는 등 골치 아픈 상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약속대련
진검승부


대표적인 예로는 이 후보가 얻게 될 득표율이다. 2년 전 치러진 전당대회서 이 후보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 대표로 선출됐다. 만일 이번 투표서 이 대표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해 77.77%보다 낮은 득표율을 얻을 경우 그의 평판에 한줄기 금이 그어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후보는 잃는 것보다 얻을 게 더 많다는 평이다. “단 1%의 반대 목소리도 전당대회를 통해 대변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책무”라고 밝혔지만 20~30%의 지지율로 반전을 보여줄 경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후기와 함께 비명계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다.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지금부터 인지도를 쌓아 다음 대선을 노리는 것도 예측 가능한 지점 중 하나다. 만일 이 후보가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출마가 불가능해질 때 ‘그래도 이재명과 겨뤘던 김두관’이 유권자의 뇌리에 스칠 것이란 후문이다.

이 후보의 대항마로 떠오른 김 후보는 ‘이재명 1인 정당’ ‘이재명 일극체제’에 대한 비판을 가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영화 <암살>을 언급하며 “누군가는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독립을 위한 싸움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립을 위한 길이기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해당 발언을 접한 이 후보의 강성 지지자들은 “그럼 이재명 대표가 당을 팔아넘겼냐는 뜻이냐”며 격분된 반응을 보였다.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지만 내심 이 대표의 추대를 기대했던 초선 의원들 사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도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 후보의 출마에 “용기 있는 결단”이라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지난 11일 평산마을을 찾은 김 후보는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날 문 전 대통령은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용기 있는 결단을 했다. 민주당이 경쟁이 있어야 역동성을 살리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김두관 후보의 출마가 민주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흥행 없이
노잼으로?

이에 김 후보 역시 “민주당을 구하는 큰일이라 계산 없이 나섰다”며 “최고위원 후보가 5인5색이 아니라 5인1색 될 것 같다. 다양성이 실종된 당의 현주소를 국민이 많이 불편해한다”고 화답했다.

오히려 김 후보의 출마를 반색하는 이들도 있다. 흥행 요소가 전혀 없는 ‘노잼 전당대회’로 끝날까 노심초사했지만 두 후보의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주목도가 높아졌다는 평이다. 이 후보에게만 쏠릴 뻔한 부담과 ‘이재명 일극체제’라는 비판적인 여론을 희석하는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툭’ 튀어나온 김 후보에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와의 관계성을 놓고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특히 두 사람이 사전에 합을 맞춘 ‘약속 대련’이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이 후보는 단독 출마라는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김 후보는 정치 활동반경을 넓힐 수 있는 이른바 ‘윈윈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두관 후보는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데 의의를 뒀을 것”이라며 “2026년 지방선거가 있지 않은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정치적 활동반경을 가늠하는 시간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PK와 친노(친 노무현), 친문(친 문재인) 세력까지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 후보에게 큰 위협이 될 것 같진 않다. 지난 총선서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비명계가 당을 떠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다들 알고 있다”며 “이번 양자 대결은 당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후보는 2010년 경남도지사를 비롯한 여러 굵직한 자리를 맡아왔으며 한때 대권주자로 거론되기도 했던 인사다. 비록 이번 총선서 고배를 마셨지만 2026년 전국동시지방선거서 승부수를 던져볼 만하다. 이번 전당대회서 거대 야당의 수장인 이 후보와 겨뤄봄으로써 스스로의 체급을 확인할 좋은 기회기도 하다.

민주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김두관 후보의 경우 ‘내가 이재명에 비해 뭐가 부족한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보면 김두관 후보는 부족함이 없다. 다만 이번 총선서 떨어진 게 마이너스로 작용했을 뿐, 당 대표에 도전하고 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면 고착된 민주당에 작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김 “내 나이가 몇인데…내 정치해야”
지선 생각 없다는데…혹시 또 대선?

약속 대련 의혹에 대해 양측 모두 선을 그었다. 특히 김 후보는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제 나이가 몇 살인데 제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박했다.

‘2026년 지방선거를 위해 출마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2010년 경남도지사를 지낸 후 도정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다음 지방선거가 워낙 중요해서 이번에 당 대표를 맡게 되면 기초광역의회 후보 공천 시스템을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도지사에 도전할 의사는)전혀 없다”고 답했다.

약속 대련이든 진검승부든 이번 전당대회서 승기를 거머쥘 사람은 결국 이 후보일 것이란 회의적인 시선이다. 아무리 결투의 장을 넓히고 후보군이 많아도 7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한 이 후보를 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서다.

김두관 후보와 김지수 후보의 출마는 이 후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장치라는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당에서는 김 후보가 주장한 ‘제왕적 대표’라는 표현과 약속 대련에 공감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 후보는 당원의 선택을 받아 다시 한번 당 대표직에 도전했을 뿐, 당 차원서 어떠한 압력도 외압도 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이재명 대표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천준호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서 “이 후보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문제 삼는 건 제한적 관점이라 본다”며 “다수의 지지를 받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의미가 있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위적으로 다양성 자체를 목표로 해서 경쟁구도를 만들고 지지를 조정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며 현 상황은 정치권 안팎서 제기되는 일극체제가 아닌 당원 중심 체제로 당이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당대회 대진표가 구성됐지만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강성 지지자 한 명 한 명을 찾아가 다독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다 보니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심리적 분당’의 원인이었던 친·비명간의 갈등이 재점화될까 마음졸이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어대명’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최요한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이 건강하단 증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우리나라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주의 체제로 들어섰다.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사건들이 중첩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 겹씩 쌓여갔다. 지금도 그런 과정”이라며 “이 후보의 77.77% 지지율이 깨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오는데 이는 큰 문제가 아니며 내부서 여러 이견이 나올 수 있다. 세 명의 후보 모두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당원도 거기에 맞게 한 표를 던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치 집단에서는 갈등이 필연적”이라며 “일각서 제기되는 계파 분열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용감한 도전자 김지수는 누구?

이재명·김두관 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할 김지수 후보는 1986년생으로 민주당서 꾸준히 활동해 온 청년·원외 인사다.

그는 재단법인 ‘여시재 북경사무소’ 소장 출신으로 한반도 미래경제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2022년에는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도 도전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출마 선언문을 통해 “미래 세대를 대표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당 대표에 출마한다”며 “저의 도전이 대한민국에 작지만 큰 파동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었다”며 “제가 도전하지 않으면 이번 전당대회서 언급되지 않을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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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