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미끼로…’ 한컴가 차남 코인사기 전말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7.22 10:10:07
  • 호수 1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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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사기꾼과 어울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한글과컴퓨터 김상철 회장의 차남 김모씨가 가상화폐로 90여억원대 비자금을 조성,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한글과컴퓨터 계열사인 한컴위드서 지분을 투자한 ‘아로와나 토큰’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다. 특히, ‘청담동 주식 사기’ 이희진이 아로와나 토큰의 시세조종 행위에 가담했다는 의혹도 재조명될 전망이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허용구)는 지난 11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김씨의 선고공판을 열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또 같은 혐의로 함께 기소된 아로와나 테크 대표 정모씨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지난 3월 보석으로 석방돼 불구속 재판을 받아왔으나 이날 실형 선고로 법정 구속됐다. 경찰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수사해 온 김 회장의 신병 확보 절차에 들어간 것도 확인됐다. 김 회장은 ‘아로와나 토큰’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 전반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징역 3년

앞서 검찰은 김씨에게 징역 9년 구형, 추징금 96억여원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되나 추징금에 대해서는 검사가 제출한 것만으로는 범죄 피해 재산에 대한 추징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컴 그룹의 총수 아들과 자회사 대표가 일반인들의 투자금을 끌어모아 이를 유용한 형태를 고려하면 이 사건 범죄는 매우 중대하고 사회적 해악이 너무 커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인들은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형사 처벌 받은 전력이 없다”며 “일부 투자자와 합의한 점과 피해 회사에서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양형 기준에 대해 설명했다.


김씨 등은 2021년 12월부터 2022년 6월까지 국내 가상자산 컨설팅 업자에게 아로와나 토큰 1457만1344개 매도를 의뢰해 수수료 등을 공제한 정산금 80억3000만여원 상당의 이더리움과 비트코인을 김씨 개인 전자지갑으로 전송받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22년 3월 해외 가상자산 관련 업자에게 아로와나 토큰 400만개 운용과 매도를 의뢰하고, 운용 수익금 15억7000만원가량의 가상화폐를 김씨 개인 전자지갑으로 전송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이렇게 조성한 비자금은 96억원에 달하는데, 이 사건에 김 회장이 깊이 관여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김씨는 이렇게 조성한 비자금 96억여원을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 구입, 주식매입, 신용카드 대금 지급, 백화점 물품 구입 등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컴그룹 측 자금으로 인수된 아로와나 테크는 아로나와 토큰 5억개를 발행하면서 디지털 6대 금융사업 플랫폼서 이용할 수 있는 가상자산이라고 홍보했다.

이후 아로와나 토큰은 2021년 4월20일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됐으나, 지난해 8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상장 폐지됐다. 현재 상장 폐지 상태인 아로와나 토큰은 2021년 4월20일, 첫 상장 후 30분 만에 최초 거래가인 50원서 1075배(10만7500%)인 5만3800원까지 치솟아 시세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이와 함께 김 회장이 아로와나 토큰을 이용해 100억원 가까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2022년 10월 한컴그룹 회장실 및 한컴위드 본사, 김 회장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며 수사를 본격화했다. 

이어 이듬해 12월 이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김 회장의 차남과 한컴위드 사내 이사인 김모씨, 가상화폐 운용사 아로와나 테크 대표 정씨를 구속했다.


오너 아들 가상화폐로 90억원 비자금 조성
자회사 대표와 투자금 전자지갑으로 빼돌려

법원은 이날 김씨에게 징역 3년을, 정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가 선고 후 김씨와 정씨에게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정씨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면 김씨는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경찰이 김 회장에 대한 혐의 입증이 끝났다고 보고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 가운데 법원이 이 사건 공범인 김씨와 정씨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향후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김 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할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한컴 측은 “김상철 회장에 대해 경찰서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과 관련해 주주, 투자자, 고객, 임직원을 비롯한 많은 이해관계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한컴과 회사의 경영진은 해당 사업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컴을 비롯한 각 그룹사는 이미 대표이사 중심으로 경영되고 있으며, 이번 구속으로 인해 한컴을 비롯한 그룹사들의 실질적인 경영에는 전혀 문제나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로와나 토큰 시세조종에 ‘청담동 주식 사기꾼’ 이희진과 동생 이희문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씨 형제가 암호화폐 MM에 관여했다는 의혹은 2021년부터 불거졌다. 당시 이들은 미국 국적 사업가 김경남과 아로와나 토큰의 시세조종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로와나 토큰이 1000배 넘게 폭등하며 시세조작 논란에 휩싸이자 김 회장의 비자금 창구라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희문은 한 암호화폐 발행업체 대표와 통화에서 아로와나 토큰의 MM 공모를 인정했다. 지난해 3월경 이희문은 암호화폐 발행업체 대표 A씨와 한 통화에서 “저희는 (김경남이 아로와나 토큰을)팔아 달라고 해서 팔아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희문은 김경남과 함께 다른 암호화폐에 대한 MM도 진행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희문은 “저희가 MM 한두 개만 한 것이 아니다”며 “MM을 하루에 한 것이 아니라 일주일서 열흘 정도 (시간을 두고)MM을 했다”고 부연했다.

A씨는 통화에서 “이희문 외에 이희진도 김경남과 같이 MM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주가조작 때와 마찬가지로 겉만 번지르르한 암호화폐를 내세워 투자자들 돈을 갈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식 사기’ 이희진과 연관?
김상철 회장 주도 혐의도

김경남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운영되는 ‘헤리티지DAO(탈중앙화자율조직)’의 설립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씨 형제와의 관계를 부인했다. 김씨는 <시사저널>과 한 통화에서 “이희진, 이희문과는 일면식도 없다”며 “협업하거나 연락을 주고받은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서는 “나와 관련된 사업체나 재단서 아로와나 토큰의 MM을 진행하거나 이를 위한 약정을 체결한 사실이 없다”며 “(이외의 코인에 대한)MM에 관여한다는 소문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희문과 김경남이 시세를 올린 암호화폐는 아로와나를 포함해 다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 형제는 피카, 아로와나 외에도 전기차 관련 T코인, 반려동물 관련 G코인 등 가격을 인위적으로 띄우는 등 MM으로 차익을 거둔 뒤 유용한 혐의(사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를 받는다.

MM 대상으로 거론된 일부 암호화폐는 상장폐지됐거나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됐다.

이씨 형제는 2014~2016년 비인가 투자회사를 운영하며 시세차익 130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증권방송서 특정 비상장주식에 대한 허위·과장 정보를 퍼뜨려 수백여명에게 투자를 유도, 200억원대 손해를 보게 한 혐의도 있다. 

이로 인해 이씨 형제는 2016년 9월23일 구속 기소됐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020년 1월30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희진에게 징역 3년6개월에 벌금 100억원을 선고하고 122억여원의 추징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동생 이희문에게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확정했다. 이희진은 2020년 3월 만기 출소했다.


출소 직후 이씨 형제의 MM은 일반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혔다. 하지만 MM 작업과 관련한 혐의 입증은 쉽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와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MM은 통상 내부계약에 따라 이뤄진다. 내부 폭로자가 아니면 이를 외부서 알기 어려운 구조다. 가상자산 거래의 성격상 증거인멸도 쉽다.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에 코인이 처음 상장된 이후 유동성이 공급돼야 한다”며 “이에 상장 코인에는 MM이 당연히 전제되고 이를 관련 업체에선 인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코인 가격을 띄웠다가 다시 내리는 과정서 MM팀이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는 일이 생긴다”면서 “이는 곧 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지고, 사실상 다단계 사기와 같은 피해 구조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처벌 기준이 뚜렷하지도 않다. 6월30일 국회 문턱을 넘은 가상자산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매매·거래 유인 목적의 시세조종 행위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하지만 이 법은 2024년 7월19일 시행된다. 1년여간 규제 공백 상태인 것이다. 현재로선 사기 등 혐의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아로와나 토큰

지난해 MM 사기와 관련한 사법부의 판단 기준이 처음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은 2022년 9월27일 특경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한모씨에게 징역 5년과 벌금 1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MM팀을 통한 펌핑(pumping·가격 상승)’ 등과 같은 비정상적 시세조종·조작을 통해 가상자산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며 투자를 유인한 경우”에 대해 사기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가상자산 전문인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현재는 규제 공백 상태지만 MM과 관련해 특경법상 사기 혐의 등을 핵심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며 “MM팀이 코인 가격을 끌어올렸다가 일반투자자들에게는 떨어뜨리는 덤핑 행위가 사기에 해당한다는 판례들이 최근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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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