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⑪저물어가는 수용소 첫 날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07.15 03:00:00
  • 호수 1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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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불현듯 벌컥 욕설이 튀어나온 건 그때였다.

“야! 거기 쥐뿔만한 새끼, 너 이리 나와!”

그건 안으로 들어서던 주번이 용운이 또래의 어느 소년 원생에게 하는 소리였다.

“이 쌍놈 새끼야! 너만 아가리냐, 엉?”

주번은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따귀부터 오지게 올려붙였다. 밥을 다 먹은 그 소년이 밖으로 나가는 척하다가 배식 중인 다른 사(舍)의 줄 뒤에 다시 슬쩍 붙어섰던 모양이었다. 


쥐뿔만한 새끼

“이 개같은 새끼, 너 어느 사야?”

“잘못했어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일루 와, 새꺄. 여기가 니네 집 안방인 줄 알어?”

주번은 소년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면서 마구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둔탁한 손놀림으로 이리저리 치는 품이 체벌을 가하는 건지 자신의 주먹을 과시하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한참 후에 주번은 코피가 흐르는 소년을 다시 출입구 앞에 끌어다 세워놓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소년의 얼굴에 두려움이 역력했다.

“물구나무!”


소년은 주번의 명령에 따라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무릎을 구부려 물구나무 설 자세를 취했다. 

“실시!”

소년은 겨우 물구나무를 섰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걸어!”

소년은 명령에 따라 손바닥으로 걷다가 벌건 얼굴로 다리를 달달 떨었다. 저런 자세로 과연 얼마나 버틸까? 아마 팔과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플 게 뻔했지만 주번은 한 술 더 떠 소년의 발바닥 위에 그의 밥그릇까지 위태스럽게 올려놓았다.

얼마 안 돼 소년의 온몸은 바들거리기 시작했고 표정도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밖은 어느덧 저녁 어스름에 젖어들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던 노을도 거의 다 스러졌다. 군데군데 원생들이 무리를 이루고 서 있었다. 갈 때도 숙사별로 모여서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우물이 있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용운도 따라가 식기를 닦은 다음 충심사 줄을 찾아 섰다.

“다 모였지? 자, 출발한다. 앞으로 갓!”

스라소니가 나와서 인솔을 했다. 그의 쥐어짜는 듯한 구령 소리가 차츰 드세어지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별자리에서 태어났기에 여기서 만나 적대적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전쟁고아…… 누구처럼 부모의 손에 의해 고의적으로 팽개쳐진 운명일까? 하지만 아무러면 어떠랴! 이제 다 똑같은 신세인 것을.

앞날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운명이 어떤 식으로 변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을…….


용운은 가슴속이 황량해지면서 눈물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아 삼켰다. 울음이 또 무슨 화근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봄날을 아쉬워하는 듯 점점 사라지는 노을 위로 어둠이 덮이기 시작했다. 수용소의 첫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캄캄한 방안에서 용운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지친 원생들은 자리에 눕자마자 이내 잠이 들어 코를 골기도 하고 꿈속에서 뭣에 쫓기는지 신음과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이제 다 똑같은 신세인 것을”
엄마 치맛자락으로 훔친 눈물

산속 어디선가 두견새가 서럽게 울었다. 

용운은 자신이 누워 있는 그 컴컴한 공간이 꿈속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어 괴로운 듯 이따금 긴 한숨을 쉬었다. 


‘왜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엄마는 어디 있을까?’

용운은 한숨소리 사이로 작게 흐느꼈다.

5년여 전 그날도 화창한 봄날이었다. 

어린 용운은 엄마의 손을 잡은 채 타박타박 걷고 있었다. 천왕산(天王山)엔 연분홍빛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뻐꾸기가 멀리서 울었다.

고갯길을 올라가다 눈을 돌리면 산중턱에 상여집이 보였다. 야심한 밤이면 백여우가 나와 돌을 던진다는 얘기가 도는 곳이었다.

술에 취한 사람이 도깨비와 밤새도록 씨름을 하다가 술이 깨어 보면 피 묻은 빗자루만 보인다는 풍문도 들렸다. 그러나 엄마가 곁에 있었으므로 용운은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엄마는 평소에 입던 낡은 몸뻬가 아닌 흰 옥양목 적삼과 검정 통치마 차림이었다. 풀꽃처럼 향긋한 냄새가 났다. 등엔 세 살짜리 동생이 업혀 콜콜 자고 있었다.

고갯마루를 넘어 황톳길을 지나서 신작로로 나서자 엄마는 발걸음을 좀더 빨리해 담뱃가게 집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들고 온 보따리에서 새물내가 나는 옷을 꺼내 용운에게 급히 갈아입혔다.

옷이래야 회색 물을 들인 광목 상의에 검정색 핫바지였다. 검정 고무신도 한 켤레 꺼내 놓았다. 용운은 어쩐지 엄마가 뭣에 쫓기는 듯싶어 제풀에 서두르다가 도리어 발을 헛꿰곤 했다. 

“오동댁, 워디 가려구?”

가겟집 할머니가 물었다.

“저희 사정이 어려우니 어쩌나요? 인천에 사는 얘 작은아버지라도 찾아가서 당분간 얘를 좀 맡길까 해서요.”
엄마는 눈을 내리깐 채 대답했다.

“참, 용운이 작은아배가 세관에 기시다매?”

“예.”

“에구, 잘 생각했구먼. 보릿고개에 한 입이 황소처럼 무섭다구… 그래, 어서 댕겨오구랴. 시방 용운네 형편이 이것저것 눈치 가릴 때여?”

엄마는 목례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으로 휙휙 스쳐가는 보리밭을 바라보던 용운이 입을 열었다.

서울역 고아원

“엄마, 나 거기 가기 싫어.”

“그래도 어쩌니? 너도 집안 사정을 잘 알잖니, 응?”

엄마는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그날 오후 모자가 도착한 곳은 인천의 작은아버지 댁이 아니라 서울역 앞에 자리잡은 한 고아원이었다. 아직 한글을 채 다 깨우치지 못했던 용운은 팻말을 보면서도 그곳이 뭘 하는 곳인지 알지 못했다. 하긴 글자를 알았어도 뜻은 몰랐으리라.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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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