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약자와의 동행’ 김기철 한국노총 서울본부 의장

“노동 존중의 시대 아직 멀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노동자가 죽어 나가고 있다. 내국인, 외국인, 청년 등 노동자의 죽음은 이제 더 이상 사회를 놀라게 하지 못한다.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는 법에 기댈 수도 없다. 노동의 가치는 나락으로 향하고 있다. 김기철 한국노총 서울본부 의장은 “노동 존중의 시대는 아직 멀었다”고 한탄했다.

19세 아들이 일터에서 갑자기 죽었다. 유가족은 진상규명을 위해 곡기를 끊었다. 회사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반복되는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유가족의 외침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메아리로만 남았다. 또 다른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그 메아리를 이어받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반복되는
노동자 죽음

화마가 노동자 2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층 작업장서 시작된 불은 내국인 노동자 5명, 외국인 노동자 18명을 집어삼켰다. 인력 공급 과정을 두고 도급·파견업체가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사이 타국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은 뒷전이 됐다. 어느 순간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는 ‘관성’처럼 여겨지고 있다.

김기철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 서울본부 의장은 “노동자는 상품이 아니다.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를 물건 취급하는 사용자를 향한 일침이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서울본부서 김 의장을 만났다. 해외 출장으로 다소 지친 기색이었지만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한국노총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함께 국내 노동계 양대산맥으로 불린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2022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한국노총의 조합원은 112만1000명, 노조 수는 2325개에 이른다. 한국노총은 2021년 이후 1노총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노총은 노동계가 참여하는 정부 기구 등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김 의장은 2022년부터 산별노조 500여개, 조합원 약 19만명의 한국노총 서울본부를 이끌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구성, 대의원 배정 기준 등의 문제로 재선거까지 치르는 우여곡절 끝에 22대 서울본부 의장으로 당선됐다. 당시 김 의장은 ‘화합과 복지의 서울노총’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선거에 나섰다.

김 의장은 “선거 과정서 규정 문제가 나왔다. 그게 법적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여러 가지 고통이 뒤따랐다”며 “특히 안타까웠던 점은 선거를 치르면서 노노 갈등이 야기된 부분이다. 화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본부의 ‘복지’ 제도를 강화해 궁극적으로는 조합원 간의 연대성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부연했다.

김 의장은 단체협약이나 임금교섭 등 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선봉장’보다는 산별노조를 지원하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국노총 지역본부는 각 노조가 사용자와 충돌이 발생했을 때 이를 교섭해나가는 과정서 힘을 실어주는 든든한 ‘뒷배’로 존재한다. 끊임없는 소통이 전제돼야 하는 기구다. 

택시회사 조합장으로 노동운동의 길
단체협약·임금교섭에선 강성 투쟁

김 의장은 “의장은 산별노조의 대표자와 항상 교류해야 한다. 조합원이 2만명에 이르는 대형 노조부터 50여명도 안 되는 작은 노조까지 모든 산별노조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려움도 많고 문제도 많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의장이 되자마자 의욕적으로 서울본부 ‘개조’에 나섰다. 

당장 선거 과정서 불거진 규정 문제를 손질했고 회계도 투명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도입했다. 오랜 시간 변동이 없던 직원의 임금도 손봤다. 김 의장은 “노동조합은 재정이 튼튼해야 제대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의 힘은 조합원 규모와 재정서 나온다는 생각이다. 

외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노동자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관심을 쏟았다. 또 서울시 25개구 노인 요양원에 김장 김치를 지원하고 장학사업을 벌이는 등 ‘복지’에 초점을 맞춘 사업도 꾸준히 진행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논의해 지자체 차원서 ‘약자와의 동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소통을 이어갔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김 의장은 지난 4월30일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국가산업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김 의장은 그 공을 서울본부 직원들에게 돌렸다. 그는 “우리 직원들이 열심히 노력해줘서 노동절에 훈장을 받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직원들에게)항상 고맙다”고 감사해했다. 

인터뷰 도중 김 의장을 찾는 직원들이 여러 차례 의장실을 드나들었다. 워크샵 단복을 제작하는 문제를 두고도 전화가 걸려 왔다. 김 의장은 직원들을 일일이 상대하면서 세부 내용을 살폈다. 오랜 시간 노동운동을 해온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부 개조
외부 활동

김 의장은 30년 넘게 이 길을 걸으면서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업에 실패한 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시작한 택시 운전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잠깐 하고 말아야지’라고 생각한 일이 노동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1992년 몸담고 있던 택시회사 노조 조합장으로 선출된 게 시작이었다.

김 의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고 나처럼 가방끈이 짧은 사람은 그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며 “또 사용자가 노조의 입을 막기 위해 돈을 쓰는 게 비일비재하던 시대였다. 나도 어느 날 사장이 봉투를 주길래 그걸 얼굴에 집어 던졌더니 그다음부터는 돈 얘기를 하지 않더라”고 회상했다.

조합원의 대표로 나선 김 의장은 임금교섭, 단체협약 등을 해내야 했다. 조합장은 조합원의 권익을 위한 자리인 만큼 사측으로부터 무엇이든 얻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발품을 팔아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손으로 써가며 단체협약서를 작성하던 시대였다. 결국 김 의장이 답을 찾은 건 ‘현장’이었다. 

김 의장은 “서점이라고는 종로서적, 영풍문고, 교보문고 3개밖에 없던 시절이다. 그런데 거기에도 근로기준법 관련 책은 많지 않았다. 찾고 찾다가 다른 회사 단체협약서가 괜찮다는 말을 듣고 그걸 구해봤다. 공부 끝에 126개 조항을 일일이 손으로 써서 ‘내 것’(단체협약서)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운행 도중 사고로 차를 폐차할 상황이 돼도 노동자에게 수리비를 요구할 수 없게 하는 등 단체협약 내용의 60% 이상을 관철시켰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김 의장은 1992년 처음 조합장에 당선된 이후 내리 12선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조합원은 내가 지킨다’는 신념이 만든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김 의장은 여러 차례 ‘내가 졌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가 원할 때에는 언제든 휴가를 부여해야 한다고 돼있다. 그 조항을 가지고 연차휴가를 요구하다가 회사에 경영상 어려움이 있으면 (연차를)안 줘도 된다는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사측이 들고나오면 내가 지는 거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배웠다”고 설명했다.

36년 동안 노동운동을 하며 현장서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김 의장에게 윤석열정부나 국회의원들의 탁상공론은 ‘그들만의 리그’였다. 노동에 대한 인식이나 사회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는데 정부 정책이나 국회의원 입법, 심지어 사법부의 판결까지 현장 상황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의장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전반적으로 사회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한번 직장에 들어가면 거기에 매여 있어야 하고 장기 근속해야 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지 않았나. 젊은 친구들은 짧게 일하고 돈을 모아서 여행을 가거나 문화생활을 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 맞게 노동현장이 바뀌었다는 걸(위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서 찾은
답으로 행동

그러면서 운수 계통 이야기를 꺼냈다. 택시나 버스, 화물 등의 현장에 노동자가 없다는 것이다.

김 의장에 따르면 현재 운수 현장의 노동자 연령대가 고령화되고 있다. 60대 운전자가 30~40%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김 의장은 “택시에는 완전월급제, 버스에는 공영제가 언급되면서 임금이 줄었다. 당연히 노동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도 화성의 화재사고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 전주의 한 공장서 숨진 청년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여의도의 국회의원 300명이 결국 ‘그들만의 리그’에 있다는 게 이런 것이다. 법을 만들 때 시행령 등을 통해 (법의)구멍을 잘 틀어막아야 하는데 표에 눈이 멀어 사고가 일어날 때만 반짝 시늉을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렇다 보니 법에 허점이 많고 사고가 일어나도 노동자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인간의 두뇌가 충격을 받으면 그게 딱 49일 간다고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우리가 배운 게 뭐가 있나. 반복되고 반복되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윤석열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30점’ 정도로 혹평했다.

김 의장은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 출신이라 검사 특유의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상명하복의 문화, 고집 같은 게 드러나면서 주변에 적을 만드는 식이다. 윤정부서 추진하는 노동개혁도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하다 보니 ‘노동탄압’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역할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했다. 노조의 정치 참여는 필요하지만 ‘세력화’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의장은 “노조가 정치 세력화되는 순간 노조는 죽는다. 어느 한쪽 편에 서게 되면 휘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이번 총선 때도 노동계서 국회의원을 배출했지만 진정으로 노동운동을 위해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다.

2022년 ‘화합과 복지’ 내세워 당선
노동조합 “정치 세력화되면 죽는다”

강한 어조로 윤정부와 국회의원에 대해 ‘쓴쏘리’를 쏟아내던 김 의장은 30여년 노동운동 과정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는 질문에 얼굴이 풀어졌다. 조합장 시절 사용자의 책상을 뒤엎거나 노숙투쟁, 단식투쟁 등을 언급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신 그는 후원과 봉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김 의장은 “1997년도인가 한 조합원이 찾아와 다른 조합원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아이가 샴쌍둥이라고 했다. 간만 하나고 다른 장기는 전부 따로 있는데 배가 붙어서 나온 샴쌍둥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놀라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사에 샴쌍둥이 소식을 알리고 모금 운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샴쌍둥이 분리수술이 이뤄졌다. 분리된 쌍둥이 가운데 1명은 10세 때 사망했고 또 다른 1명은 현재 생존해 있는 상태다. 김 의장은 30년의 세월에도 두 아이의 이름을 정확히 언급했다. 살아 있는 1명은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김 의장에게 카드를 보낸다고 한다.

김 의장은 “(살아 있는) 아이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봉사를 다니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필리핀 한센인 마을 봉사와 후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의장은 “내 지인이 25년째 필리핀 한센인 마을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1000만원 정도씩 몇 년간 후원했다”며 “필리핀쌀이 비싼 편인데 그 한센인들이 고마움을 표현한다고 봉지에 쌀을 넣어서 주곤 한다. 한센병 때문에 손가락이 잘린 사람도 있고 그런데 그런 손으로 쌀봉지를 건네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앞으로도 화합과 복지에 힘쓰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때로는 강성 투쟁도 필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파업도 해야 한다. 하지만 파업은 생계와 직결된 부분이기 때문에 가능한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과거 조합장을 할 때 파업을 진행한 적 있는데 조합원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내 사전에 파업은 없다’는 신조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안타까워도
계속 가야

70대인 김 의장은 인생의 절반 가까이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럼에도 노동 존중의 시대는 아직 멀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시대가 언제 올지 모르는 현실이 안타깝고 부끄럽다는 뜻도 드러냈다. 하지만 김 의장은 계속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언급하면서 “내 조합원만큼은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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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재명 부동산 평행이론

문재인-이재명 부동산 평행이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제9회전국동시지방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호재에도 악재에도 민감한 시기다. 정부 정책이 선거판을 뒤흔들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실제 정치권은 선거에 가까워질수록 유권자를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작은 불씨가 승리와 패배를 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 최근 대통령이 연이어 ‘부동산’ 이슈를 던지고 있다. 부동산, 주식, 세금 등 돈 관련 이슈는 대중의 최대 관심사다. 실생활과 밀접하게 얽혀있어 체감 수준도 크다. 선거가 다가오면 돈을 풀지언정, 세금 등으로 거둬들이는 정책을 자제하는 이유다. 특히 아주 작은 이슈로도 승패가 갈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세제 정책이나 자산 이슈는 건드려선 안 될 ‘금기’나 다름없다. 잘못 건들면 민심 나락 그중에서도 단연 민감한 부분은 ‘부동산’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자산 구성 자체가 부동산에 편중돼있는 구조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금융자산에 눈을 돌리는 비율이 늘고 있지만 집과 땅, 즉 부동산은 전통적인 ‘선호 자산’이었다. 대부분 국민이 근로소득, 사업소득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고 그 자산을 불려왔다. 지난해 12월 한국경제인협회가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에게 의뢰한 ‘주요국 가계 자산 구성 비교 및 정책 과제’ 연구용역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에는 우리나라의 비금융자산 비중이 주요국 중 가장 높다는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 내용대로면 우리나라의 비금융자산 비중은 64.5%에 이른다. 예를 들어 전체 자산이 5억원이라면 3억2250만원이 토지나 주택, 산업용 부동산 등 실물자산으로 이뤄졌다는 뜻이다. 국내 가계 자산 중 비금융자산의 비중은 2020년 65.3%에서 2021년 66.8%, 2022년 66.3%, 2023년 65.2%를 기록하고 지난해 소폭 줄었다. 문제는 주요국과 비교해 부동산 쏠림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미국은 32%, 일본은 36.4%(2023년 기준), 영국은 51.6% 정도다. 우리나라가 꾸준히 65%대 전후를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다. 자산의 3분의 2가 부동산에 묶여있다 보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초유의 관심사다. 여기에 교육열이 더해져 학군에 따라 부동산의 등급이 달라진다. 이른바 상급지로 불리는 지역에 사는 이들과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에 사는 이들 사이에는 보이진 않지만 분명하게 계급이 존재한다. 문정부 “부동산 실패 인정” 오락가락한 정책에 정권교체 정부는 ‘우상향’하는 집값을 잡겠다고 각종 대책을 내놓는다. ‘발표 날짜+대책’으로 나온 정책은 시장에 충격을 가한다. 다주택자, 1주택자, 무주택자 등 정부가 표적으로 잡은 주체로부터 연쇄적으로 반응이 일어난다. 시장의 반응 속도는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부동산은 심리’라는 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다. 문재인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집값이 오른다’는 풍문을 현실화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20번이 넘는 부동산 정책은 시장에 상처를 냈다. 연이은 정책에 상처는 곪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정도로 상했다. 고름을 빼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을 땐 집값은 이미 정부의 손을 떠난 상태였다. 이때 ‘영끌’ ‘벼락거지’ 등의 부동산 관련 신조어가 쏟아졌다. 부동산 매입에 성공한 이들과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을 빗댄 표현들이다. 대출 등 돈을 끌어올 수 있는, 즉 영혼까지 자금을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이 있었고, 그 사이클에 올라타지 못해 상대적으로 ‘거지’가 된 기분을 느끼는 이들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정책이 나올 때마다 시장이 요동쳤고 부동산은 문정부 임기 내내 불안정했다. 그 결과는 정권교체였다.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말까지 40%를 넘나들었다. 역대 대통령이 집권 4~5년 차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져 레임덕을 겪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진보와 보수 진영이 10년씩 정권을 차지한다는 ‘10년 주기설’도 깨뜨릴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래도 아직 집 문 전 대통령이 지지율은 유지했을지언정 일부 국민에게 ‘실패한 대통령’으로 인식되는 이유가 집권 5년 만에 정권교체를 당했다는 것인데, 그 배경에 부동산이 있던 셈이다. 실제 문 전 대통령은 최근 들어 부동산 실패를 인정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다른 정책은 몰라도 부동산 정책만큼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자인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9일 유튜브 채널 ‘평산책방’에 올라온 ‘평산책방 시즌2’ 예고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경제 관련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평산책방은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에서 운영 중인 평산책방과 관련한 콘텐츠를 올리는 채널이다. 탁 전 비서관은 이날 방송에서 “부동산이 나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는 문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언급했다. 그러자 문 전 대통령은 “일단 실패했다고 인정해야죠”라면서 “우리가 부동산 정책만큼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에도 부동산 문제를 아쉬웠던 점으로 꼽은 바 있다. 2021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또 지난 보궐선거에서도 그에 대해서 아주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 여파를 직접 겪은 당사자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0.73%p로 졌을 때 부동산 문제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 사이의 표 차이는 23만표에 불과했다. 서울에서 예상보다 적은 표를 얻은 점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그 배경에 집값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대선 이듬해인 2023년 8월 패배 원인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민주당이 짚은 주요 패인은 문정부 당시 오락가락했던 부동산 정책이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는 녹서(주요 정책 방향에 대한 조직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일종의 대화록) 형태의 <민주당 재집권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다가오는 선거 변수 을지로위원회는 녹서에서 문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에 일관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철학과 원칙은 버리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반면 “문정부는 집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세제 강화가 오히려 집값 상승의 원인이며 징벌적 조세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시중의 돈이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투자로 쏠리고 서울 강남의 ‘똘똘한 한 채’ 현상을 부추겼다는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부동산 정책에 ‘가급적 손을 대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지난해 2월 이 대통령은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인 ‘삼프로TV’에 출연해 “내가 돈 벌어서 비싼 집에 살겠다고 하는 1가구 1주택 실거주는 제약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주택자에 관한 질문에는 “세금을 열심히 내면 된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막을 수 없고, 대신 세율은 조금 비싸게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최근 이 대통령은 ‘SNS’로 연일 부동산 정치를 하고 있다. 부동산 안정화에 대한 의지를 SNS 글로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를 종료하는 내용이 불씨가 됐다. 지난달 23일 양도세 중과 유예 연장 여부를 둘러싸고 시장에서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었는데 이 대통령이 SNS에 글을 올려 매듭지은 게 시작이었다. 지난 3일에는 “상식적이고 번영하는 나라를 위해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잡을 것” “높은 주거비용으로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수백만 청년의 피눈물은 안 보이나” “돈이 마귀라더니, 설마 마귀에게 최소한의 양심마저 빼앗긴 것은 아닌가” 등으로 발언 수위를 높였다. SNS 통해 다주택자 경고 5월9일까지 변화 있어야 이재명정부는 임기 초부터 대출을 조이고 공급을 예고하는 방식으로 집값 잡기에 나섰다. 서울 전 지역과 경기 일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는 등 초강경 대책도 내놨다. 집값은 정부의 정책 발표 이후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상승곡선을 그렸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튀어나오는 ‘풍선 효과’도 일어났다. 한 지역을 규제하면 다른 지역의 집값이 오르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결국 이 대통령이 SNS를 통해 직접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일단 정부는 이 대통령의 의지를 담은 정책을 내놨다. 다주택자에게 주고 있던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혜택을 예정대로 오는 5월9일 종료하기로 한 것. 동시에 혼선을 줄이기 위한 출구전략도 내놨다.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정부는 이 정책을 중심으로 한 일부 다주택자의 매물이 시장에 나와 공급효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세금 부과는 예정대로 하되 다주택자에게 퇴로를 열어줬다. 이제는 시장의 몫이다. 5월9일까지 매물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끝나는 시기는 지방선거(6월3일)를 한 달여 앞둔 때다.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이후 처음 진행되는 대형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국정 동력에 부스터를 달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방 권력까지 빼앗기면 ‘식물 야당’이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 봉착해 있다. 양당 모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주식시장 등에 업고? 이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 “비정상을 정상화할 수단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등의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가 투기 바람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 것이다. 과거와 달리 돈의 흐름이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점도 이 대통령으로선 든든한 지원이 될 수 있다. 앞서 문정부는 시장에 졌는데, 이정부는 이길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