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흔드는 범야권 노림수

개헌이냐 탄핵이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탄핵’이란 단어에 여의도 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의원 개개인의 의견이라며 쉬쉬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공식 석상서도 제법 심심찮게 들려온다. 하지만 마음먹는 대로 대통령을 쉽게 끌어내릴 수는 없는 법. ‘윤석열 탄핵론’에 군불을 지피는 이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지난달 22일,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공식 석상서 ‘탄핵’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바로 다음 날이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왜 탄핵됐나”라며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 그럼 특검 거부권을 행사하는 자는 더 큰 범인인가”라고 직격했다.

불붙은
탄핵론

이날 정 최고위원은 회의서 박 전 대통령의 헌재 탄핵 심판 결정문을 한 자씩 읽어내려갔다. 그는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문을 읽어보고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며 “특검법 거부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거부권으로 국민적 저항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탄핵 열차’에 시동이 걸렸다는 평이 나온다. 여기에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인 ‘VIP 격노설’까지 불거지면서 화력이 더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 정당들은 지난달 25일, 서울 도심에 모여 특검법 재의결을 촉구하는 대규모 장외 여론전을 펼쳤다. 이날 집회에는 시민단체와 민주당을 비롯한 ▲정의당 ▲새로운미래 ▲조국혁신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등 야 7당이 자리했다.

개혁신당은 특별법 재의결에는 뜻을 함께했지만 시위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몇몇 발언자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공격 수위를 올렸다.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는 “해병대원 순직 사건을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키운 건 바로 윤 대통령 자신”이라며 “거부권의 사적 남용은 중대한 헌법 위반으로 탄핵 사유”라고 소리 높였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원내대표도 탄핵소추 의결에 관한 헌법 제65조를 설명하며 “윤 대통령이 직분을 남용해 수사외압을 행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대통령 탄핵의 사유”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이 사건 은폐를 위해 수사에 개입하거나 외압을 행했을 거라는 주장만 난무하던 중 수사의 변곡점이 생겼다. 수사를 통해 윤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8월2일 개인 전화번호로 연달아 세 차례 전화 통화를 한 정황이 포착되면서다.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야권은 해당 통화로 인해 경찰에 이첩된 자료가 도로 회수되는 등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VIP 격노설의 핵심인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녹취록과 전·현직 국방부 장관인 신원식-이종섭의 통화 기록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들은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통화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중요한 시점에 대통령실과 여러 고위 관계자가 소통을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의구심이 커졌다.

윤 격노설부터 수사 외압까지
차곡차곡 쌓이는 탄핵 마일리지

VIP 격노설이 진실 공방으로 번지면서 민주당의 공세는 강해졌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탄핵만 답이다’라는 문장의 앞 글자를 딴 6행시를 지어 공개적으로 탄핵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정 최고위원은 “통화 사실이 윤 대통령의 운명을 어떻게 가를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면서도 “수사외압 의혹 사건서 대통령의 격노설이 안개 속 의심이었다면, 대통령이 직접 국방부 장관과 세 차례 통화했다는 진실의 문은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2016년 박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태를 탄핵으로 이끈 건 태블릿PC였다. 이번에 밝혀진 용산 대통령실의 통화 사실이 제2의 태블릿PC가 될지 눈여겨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3년은 너무 길다’는 슬로건으로 일찌감치 윤 대통령 탄핵을 외치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역시 공세 수위를 바짝 올렸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한 방송을 통해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점점 쌓이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며 “어느 쪽이 먼저 될지는 모르겠지만 탄핵과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 투트랙을 실제 성취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수사가 진행될수록 탄핵 요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집권 3년차도 되지 않아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며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던 시기가 오버랩된다. 국정운영이 서서히 마비되는 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3%p 하락한 21%로 집계됐다. 이는 윤 대통령 취임 후 최저치다. 반면 부정 평가는 전주 대비 3%p 늘어난 70%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30~40%대 지지율을 유지했지만 임기 4년차 후반부에 들어 32%로 하락했으며 국정 농단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는 12%까지 떨어진 뒤 탄핵됐다.

또다시
2016?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어느 쪽도 아니다’는 4%, ‘모름·응답 거절’은 6%였다. 해당 조사는 이동통신 3사 제공 무선전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을 통한 전화 인터뷰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1.1%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김정숙 여사 특검법과 석유 매장으로 지지율 반등을 노리는 것 같은데 30%대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20%가 유지될 것이란 보장도 없다. 이미 하락세가 시작된 마당에 10%대로 주저앉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지지율이 10%대로 하락하면 ‘심리적 탄핵’ 사태까지 갈 수 있다는 게 야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때는 각 부처와 여당 등이 의욕을 잃고 국정운영에 대한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지난 4·10 총선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포함해 108석을 얻은 국민의힘은 22대 국회 개원 초반부터 단합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192석 범야권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끈끈한 결속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에서다.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워크숍에 참석해 “우리가 108석이라 소수정당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큰 숫자”라며 “우리는 여당 아닌가. 뒤에는 대통령이 계시고 옆에는 정부 모든 기구가 함께하기 때문에 강력한 정당이라는 생각을 하고 용기나 힘을 잃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윤 대통령 역시 워크숍에 참석해 “이제 지나간 건 다 잊어버리고 저도 여러분과 한몸으로 뼈가 빠지게 뛰겠다”며 직접 당을 격려했다. 정부여당이 단합을 강조하는 이유는 8석의 이탈표가 발생하면 100석인 탄핵 저지선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초선 의원이 합류한 국민의힘 내에서 당분간은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은 낮다. 아직은 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고 당론을 따르려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용산발 리스크와 각종 특검법으로 악재가 겹쳐 단일대오가 무너질 가능성을 마냥 배제할 수는 없다.

지난 국회에서는 18표의 이탈표가 관건이었지만 이번에는 고작 8표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8석을 지키기 위해 당 대표와 지도부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낮은 지지율은 회복하고 결속력이 약한 당은 사기를 북돋우면 된다. 하지만 좁은 인재풀로 인한 ‘회전문 인사’ ‘구인난 여론’ 등은 국정운영의 실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4월12일 국민의힘이 총선서 참패하자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 주요 대통령실 인사가 국정 쇄신을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후임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열댓명에 달하는 후보군이 ‘차기 국무총리 기용설’ 등의 제목을 달고 보도됐지만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오히려 비선 라인 의혹이 불거졌다.

미끼를
위한 미끼

지난달 25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의 3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이른바 박근혜정부 시절 ‘문고리 3인방’의 중 한 명이 용산으로 합류하면서 여권조차 고개를 갸웃한 탓이다.

대통령실은 이 같은 인사 배경에 역량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원내수석대변인 역시 “대통령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고 당이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그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결과를 놓고 평가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해당 인사를 두고 야권은 반발에 나섰다. 민주당은 “국정 농단 시즌2를 자인한 꼴”이라며 윤 대통령이 탄핵을 대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개혁신당은 “혹시 이번에는 기밀문서를 최순실이 아닌 여사님께 가져다드리는 역할이냐”며 “사람이 없으면, 공개채용을 하라”고 꼬집었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이번 인사를 두고 “용산이 드디어 갈 데까지 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대통령실은 자리를 내줘도 다들 고개를 ‘도리도리’하는 모양”이라며 “정권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초기 증상 같다. 같은 배를 탔다가 가라앉을까 봐 하나둘 발을 빼고 있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탄핵은 재적 의원 3분의 2인 200명이 찬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 65조에 따르면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 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 위원 등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탄핵은 단어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무게감을 준다. 그러나 탄핵이라는 단어가 주는 자극성에 일각서 주장하는 개헌 요구가 오히려 묻히고 있다. 더 나아가 “차라리 이승만 대통령처럼 하야하시라”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역시나 힘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범야권에선 금방이라도 끓어 넘칠 듯 탄핵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탄핵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는 하나같이 “가능성이 낮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국민의 분노를 원동력 삼아 탄핵 여론에 군불을 땔 수 있지만 장기화할 경우 민생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탄핵을 밀어붙이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혁신당 조 대표는 JTBC <오대영 라이브>서 “현재로서는 탄핵 사유와 관련해 (증거가)부족한 점이 있다”면서도 “채 상병 건에 대해 공수처 수사와 특검이 발동돼 증거가 수집되면 헌법이 요구하고 있는 대통령 탄핵 사유의 요건을 충족할 날이 올 것”이라고 시사했다.

계속 거부권 행사하면…
지지율 10%대 하락하면…

범야권, 특히 혁신당은 탄핵과 대통령 임기 4년 중임제를 포함한 개헌 논의를 투트랙으로 가져가고 있다. 4년 중임제를 통해 윤 대통령의 임기를 1년 앞당기면 2026년에 지방선거과 대선을 동시에 치르게 돼 국력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국민의힘에서는 야권의 탄핵 카드는 4년 중임제를 이끌어내기 위한 미끼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통해 실질적인 탄핵을 노렸다는 것이다. 야권이 탄핵과 개헌 카드를 들고 협상에 나선다면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임기를 1년 단축하는 명예로운 방식을 택할 것이란 설명에서다.

차기 대선주자를 노리는 이들에게 있어 개헌 논의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여권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SNS서 이 대표를 언급하며 “이제는 아주 노골적으로 탄핵 바람 잡기에 앞장섰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병에 걸려도 아주 단단히 걸린 모양”이라며 “길거리로 나서 반정부 투쟁과 선동에만 몰두하며 이재명식 ‘조직 보스 정치’에 빠져 있다”고 직격했다.

국민의힘 이상민 전 의원 역시 자신의 SNS에 단축 개헌론에 대해 “이 대표의 형사재판 진행을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대선 이후로 미뤄보겠다는 시커먼 속셈”이라고 직언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를 벗어나야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소 잦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대통령과 비교했을 때 30%대는 결코 높은 숫자는 아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안정권으로 보기 때문이다.

신평 변호사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대해 “바닥을 쳤고 서서히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커먼 속셈
반등의 기회

신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정숙 여사 특검법이 국민의힘 당론으로 정해지지 않더라도 점차 화력이 더해질 것”이라며 “특검법을 주장한 김민전 의원은 비대위의 수석 대변인이다. 당직자인 만큼 황우여 비대위원장하고 소통할 여지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황 비대위원장 체제서 당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점도 지지율 반등의 계기로 내다봤다

다만 ‘동해 석유 매장이 지지율 반등의 원인이 될 것으로 보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등을 근거로 들며 “큰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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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