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이면 뚝딱’ 신분증 위조 실상

3만원이면 어른 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SNS를 통해 위조 신분증을 검색만 해도 관련 업체가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온다. 앱을 이용해 QR코드를 위조하는 등 수법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신분증을 확인한 사실만 증명되면 행정처분은 면제되고 있지만 미성년자의 문서·인장 범죄 피의자 수는 증가하고 있다. 이에 행정·수사기관의 위조 신분증 범죄 강력 규제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온라인서 위조 신분증 제작·판매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2022년 6월부터 행정안전부가 정부24 앱을 통해 실물 주민등록증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 주민등록증 모바일 확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SNS를 통해 위조 신분증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저가 유혹

위조 모바일 신분증 제작은 엑스(X, 옛 트위터), 텔레그램 카카오톡 오픈채팅 등 익명성이 높은 SNS서 검색만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글에서는 사기 걱정 X, 정부24 최초 QR 구현, 후기 다수 보유 등 불법적인 내용을 당연시하게 홍보하고 있었다.

<일요시사>는 엑스를 통해 불법 신분증을 제작하는 업체 3곳과 접촉했다. 신분증 위조 업자 A는 문의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신분증에 들어갈 이름, 주소, 사진, 생년월일 등을 요구해왔다. 그는 자신의 계좌번호를 알려주며 돈을 입금해달라고 했다.

제작 비용을 문의하자 “사진과 영상, 어느 것으로 구매하시고 싶으냐?”며 “5000원 차인데 차라리 더 내시고 영상으로 받는 걸 추천드린다”고 답했다. 이어 “가격은 트위터에 기재했듯이 3만원”이라고 설명했다.


‘(위조 신분증을)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에 “30분 안에는 충분히 완성된다”며 “지금 당장 사용하셔야 하는 거라면 10분 안으로 되도록 사장님 먼저 주문 넣겠다”고 답변했다.

또 다른 업체 B에 연락하자 이미 만들어놨던 신청서 양식 사진을 보냈다. 보내 온 사진은 ‘정부24 구매 전 필독 사항’으로 가격, 양식, 주의 사항이 기재돼있었다.

B 업체의 경우, 카카오페이로는 3만5000원을 받고 문화상품권으로 구매 시 4만원을 받고 있었다. 보내야 하는 양식은 앞서 접촉했던 A 업체와 동일했다. 제작 시간은 최대 15분이며 악의적인 목적이 보일 시 차단이라고 나와 있었다.

마지막으로 접촉했던 C 업체는 가격이 좀 달랐다. 위조된 신분증을 만드는 데 12만원을 받고 있었다. 이외에도 임시 신분증 7만원, 주민등록증 20만원, 운전면허증 20만원, 특수면허증 20만원, 공무원증 30만원 등 다양한 위조 신분증을 제작하고 있다. 각종 위조 서류 작성 상담까지도 가능했다.

불법인데 사기는 안 친다?
싼값으로 호객 경쟁 치열

위조 업자의 게시글에는 주로 구매자에게 후기를 요청해 답변받은 내용을 캡쳐 후 판매 작성 게시글에 함께 올려놨다. 구매자와의 대화 내역에는 “사장님이 친절하고 사기 아님” “미자 여러분 이곳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해당 게시글을 접한 몇몇 누리꾼은 “어디로 연락해야 하나요” “쪽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팔로우 받아주세요” 등의 구매 의사를 보였다. 


또 위조 모바일 신분증 앱을 구동하는 영상도 같이 게시해 놨는데 정부24 앱에서 보이는 모습과 유사하게 만들어져 맨눈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심지어 각 해당 계정에서는 서로 가격 경쟁을 하듯 ‘최저가’라는 문구를 명시하고 있었다. 

위조 모바일 신분증은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모바일 신분증 검증 앱이나 가게의 바코드 스캐너로 QR코드를 직접 찍어보면 곧바로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서 QR코드를 스캔하거나 확인하는 데는 여건상으로나 시간적으로도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다.

신촌의 한 호프집 직원 D씨는 “모바일 신분증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좀 있다”며 “QR코드 스캔을 하기는 하는데 사람이 몰리면 일일이 (스캔)하기는 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는 신분증 검사할 때 눈앞에서 정부24 앱 켜는 과정부터 확인하거나 신분 확인이 어려우신 분이 있으면 주민등록증으로 대신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근서 술집을 운영하는 사장 E씨는 “주로 연령층이 낮은 분들이 모바일 신분증을 보여주고 있다”며 “위조된 모바일 신분증을 봤을 때 스캔하기 전까지는 육안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맨눈으로 파악하기 어려워
“CCTV 설치만이 방어 수단”

이렇듯 많은 사람이 몰려 신원 확인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운 가게에 미성년자나 신분을 속인 성인이 출입했을 경우 범죄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신분증 위조를 의뢰·제작·사용했다가 적발되는 경우는 최근 3년 사이 급증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만 19세 미만의 문서·인장 범죄 피의자 수는 지난 2021년 656명서 2022년 875명으로 증가했으며 지난해는 1229명으로 급증했다. 2년 만에 두 배 가까운 미성년자들이 적발된 셈이다.

만약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나 실물 사진을 도용해서 위조 신분증을 만드는 경우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

세종경찰서 사이버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위조 업자들은 보통 텔레그램으로 대화한다”며 “텔레그램은 그 사람의 신원조차 확인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고도의 보안성 때문에 잡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국가서 발급하는 신분증은 개인의 신분을 보장하는 증명서로 위조해 사용할 경우 공문서위조죄나 공문서도용죄가 적용될 수 있다. 공전자기록을 위작 또는 변작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 이전에 일부 미성년자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속이고 주류나 담배를 구매해 처벌을 빌미로 업주를 협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월29일부터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현재 편의점이나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업주가 미성년자에게 주류나 담배를 판매했더라도 CCTV 등으로 신분증을 확인한 사실만 증명되면 행정처분은 면제된다. 

구제 속 규제

가짜 신분증에 속은 가게 주인이 과도한 책임을 져야 하거나 영업정지를 당하는 상황이 부당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다만 행정처분 면제 사유가 확대됨에 따라 신분증 단속 부담을 덜어준 만큼 행정·수사기관 측이 위조 신분증 범죄를 더욱 강력히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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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